The 9th Class Swordmaster: Blade of Truth RAW novel - Chapter (488)
9클래스 소드 마스터 : 검의 구도자 9클래스 소드 마스터 – 검의 구도자-488화 (외전)(488/497)
외전 1화
1. 자유의 시대
“이상입니다.”
앤섬 하워드는 허공에 만든 마경을 지우면서 말했다. 그의 보고는 끝났지만, 책상에 쌓여 있는 수많은 양피지들은 여전히 정신없이 나뒹굴고 있었다.
“수고했어.”
쌓인 서류들 사이로 카릴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는 보고를 마친 앤섬을 보지도 않고 그저 한쪽 손을 젓는 것으로 확인을 마쳤다.
그의 반대쪽 손엔 이제 검 대신 펜이 쥐어져 있었고 보고를 받는 순간에도 여전히 서류에 사인을 하고 있었다.
“…….”
앤섬은 그런 카릴을 바라보며 쓴웃음을 지었다.
“주군.”
보다 못한 그가 카릴에게 다가와 그가 쥐고 있던 펜을 낚아채듯 빼앗았다. 책사인 그가 카릴의 힘을 당해 낼 수 있을 리 만무했지만 예상외로 펜은 쉽게 카릴의 손에서 떨어져 나왔다.
“문관인 저는 전투에서 직접 싸우진 못했지만 적어도 이런 일은 도와드릴 수 있습니다. 아니, 이 일들이야말로 저의 일이지요. 적어도 책상 위에서만큼은 혼자서 모든 것을 다 하려 하지 마십시오.”
앤섬은 바닥에 떨어진 서류들을 대신 정리했고 카릴은 그제야 멋쩍은 웃음을 토해냈다.
“대륙을 7왕국으로 나눈 것을 조금은 후회 중이시죠? 주군의 이름하에 있었다면 각지에서 올라오는 보고가 단출해졌을 텐데 말이죠.”
양피지에는 서로 다른 인장들이 찍혀 있었고 앤섬은 짓궂게 그를 놀리듯 말했다.
카릴은 그의 말에 쓴웃음을 짓고는 집무실 벽면, 투명한 유리관 속에 보관되어 있는 작은 파편을 바라봤다.
유리관은 언뜻 보기엔 평범한 유리로 된 장식품 같았지만 그 유리는 오리하르콘보다 단단한 노움의 장인들이 세공한 작품이었고 그 안에는 종족을 아우르는 몇 겹의 결계 마법이 각인되어 있었다.
“정말 그렇게 생각하는 건 아니지?”
카릴이 유리관을 향해 눈짓하자 앤섬은 못 당하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대전쟁이 끝난 지 이제 5년이 흘렀습니다. 크고 작은 분쟁은 있지만 신과의 싸움에 비한다면 우스운 수준에 불과합니다. 그야말로 평화의 시대라고 할 수 있겠죠.”
“고작 5년밖에 지나지 않았어. 전쟁의 여파는 여전히 남아 있고 겨우 이 시간이 흘렀을 뿐인데 벌써 크고 작은 분쟁이 생겼지.”
“하지만 주군께서도 예상하신 일이지 않으십니까? 인간은 결국 부딪힘 없이는 성장할 수 없다는 것을 말이죠. 대륙이 주군의 통치하에 있었다면 평화는 있을 수 있지만 발전은 더뎠을 겁니다.”
앤섬은 주운 양피지 중에 하나를 펼쳤다.
녹색의 인장이 찍혀 있는 이것은 구 공국이었던 그란벨 가문에서 보내온 보고서였다.
“윈겔 하르트가 신형 골렘을 완성하였다고 하네요. 전투 골렘이 아닌 농경에 필요한 자동기계랍니다.”
양피지엔 후미에 갈퀴 같은 것이 수십 개가 달린 마도 전차를 닮은 기계가 그려져 있었다.
“이미 동쪽 평원에서 시험 사용을 하고 있다고 하네요. 이 골렘이 대량 생산이 된다면 그란벨 영토 내의 농업이 크게 발전할 겁니다.”
그는 또 다른 양피지를 꺼냈다.
푸른색 인장이 찍혀 있는 그것은 비올라의 라니온 연합에서 온 보고서였다.
“올 한 해 라니온 연합의 해협에서 수확된 어획량이 증가함에 따라 남부 일대에 공급이 가능하게 되었습니다. 디곤 일족과 연합의 거래가 앞으로 활성화될 것으로 기대됩니다. 이는 우호 관계에 있어서도 이바지할 겁니다.”
카릴은 그의 말에 옅은 미소를 지었다.
앤섬이 하고자 하는 말이 무엇인지 그는 알았다.
그가 이루어 낸 업적들이 인류의 미래에 있어 올바른 선택지였음을 앤섬은 말하고 싶었던 것이다.
“낯 뜨거운 얘긴 그만해.”
“전 그저 각지에서 올라온 보고를 주군께 알려 드린 것뿐입니다.”
앤섬은 카릴의 말에 어깨를 으쓱했다.
“그보다 안색이 좋지 않으십니다. 다시 한번 말씀드리지만 앞으로 국정을 보는 일은 저와 티렌 경이 보좌하겠습니다.”
“듣던 중 반가운 소리로군. 확실히 재상의 자리에 있는 그대들이 카릴을 돕지 않는다면 그거야말로 직무 유기겠지.”
방 안에 들려오는 카랑카랑한 목소리.
“오셨습니까.”
문이 열리자 앤섬은 웃으며 허리를 숙였다.
“잘 좀 하란 말이야.”
“하하……. 명심하겠습니다. 그럼, 말씀 나누시지요.”
밀리아나의 핀잔에 그는 들고 있던 양피지를 한쪽에 두고서 카릴을 향해 인사했다.
“오늘도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한 모양이지? 아랫사람들이 보필을 잘해야 위가 편한 법인데 말이야.”
“그는 충분히 잘하고 있어. 그리고 내가 잠을 자지 못하는 이유는 너도 알잖아.”
“그래. 아직도 알른이 꿈에 나오는 거지? 벌써 1년이나 되었는데 말이야. 영혼 계약의 영향인 걸까? 그가 널 붙잡고 있는 건지 아니면 네가 그를 놓아주지 못하는 건지…….”
밀리아나는 카릴에게 다가와 그의 머리를 가볍게 뒤로 쓸어 넘겼다.
“성년식을 치른 지도 한참이 지났는데 아직도 어른이 되지 못한 거야? 언제나 우리를 가장 앞에서 이끌던 당신이 아직도 그에게서 벗어나지 못하니 말이야.”
의자에 앉아 있던 카릴은 천천히 그녀를 올려다보았다.
“앗……!”
그러고는 허리를 감싸 그녀를 잡아당겼다.
“어른인지 아닌지는 이미 알 텐데.”
밀리아나의 옆구리에 얼굴을 기대고서 카릴은 능청스럽게 말했다. 그녀는 그의 말에 살짝 얼굴을 붉혔지만 이내 곧 여제의 모습으로 대답했다.
“하여간 그 노인네는 죽어서도 사람을 신경 쓰이게 하는군. 아니…… 원래 죽었었나?”
그녀의 농담 아닌 농담에 끈적했던 분위기는 조금 사라지고 카릴은 피식 웃었다.
“죄책감을 가질 필요 없어. 창밖을 봐. 당신이 해낸 모든 과업의 결과가 언제나 곁에 있으니까. 우리는 평화를 찾았고 이제 그 시대가 도래했다고 선언하여도 될 만큼 사람들의 표정은 밝아.”
밀리아나는 말했다.
“이게 모두 당신이 해낸 일이야.”
“평화라…….”
하지만 카릴은 그녀의 말에도 살짝 굳어진 얼굴로 창밖을 바라봤다.
수도의 저 멀리 외곽에 보이는 하나의 낡은 건물이 그의 눈에 들어왔다.
“그러기엔 아직 해야 할 일이 남아 있어.”
“할 일……?”
그녀가 그를 바라봤다.
“밀리아나. 신화시대 이후 마도 시대를 넘어……. 만약 이 시대에 명칭을 붙인다면 지금 이 시대가 평화의 시대라 불릴 수 있을까?”
갑작스러운 그의 물음에 밀리아나는 의아한 얼굴로 그를 바라봤다.
“아니.”
그러고는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왜? 조금 전에 분명 평화가 도래했다고 했잖아.”
“맞아.”
카릴은 살짝 인상을 구겼다.
오락가락하는 그녀의 대답이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기색이었다. 그런 그를 보며 밀리아나는 다시 한번 미소를 지었다.
“시대를 구분 짓는 것은 마치 지금 시대가 끝나게 될 것이라고 말하는 것 같잖아. 그건 꼭 미래에 또다시 평화가 깨어질 것 같은 기분이 드니까. 시대의 정의를 내리고 싶다면…….”
그녀는 카릴의 눈을 바라봤다.
“자유의 시대라고 불려야겠지.”
카릴은 밀리아나의 대답에 만족스러운 듯 한쪽 입꼬리를 올렸다.
“그렇군. 평화가 아닌 자유라……. 네게서 그 단어가 나왔다면 이제 조금은 녀석이 보고 싶은 광경에 다가간 걸까.”
그는 일어섰다.
“잠시 다녀올게. 이스라필에게 말해서 내가 말하기 전까지 누구도 연락을 금하라고 주의 시켜줘.”
“응? 어디를 가는데?”
카릴은 밀리아나의 뺨에 가볍게 입을 맞추고서 말했다.
“만나야 할 사람이 있어.”
* * *
“…….”
시대가 변하고 새로운 세상이 시작된 지금, 이제는 유물이 되어 버린 황가의 무덤 앞에서 카릴은 천천히 문을 열었다.
쿠그그그그그그……··.
커다란 석문이 열리고 차가운 냉기가 느껴졌다.
자유국이 성립되고 난 이후 수도 보수 과정에서 가장 먼저 황가의 무덤을 없애자고 했던 밀리아나는 카릴이 이곳을 남겨 둔 것에 대해서 못마땅해했었다.
역대 황제들이 잠들어 있는 이곳이야말로 자유국에 가장 반(反)하는 잔재였기 때문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카릴은 이곳을 남겨 두었다.
절대적인 그의 결정에 다른 이들은 이렇다 할 반발을 하지 않았지만, 대부분은 밀리아나의 생각과 비슷할 것이었다.
다만 케이 로스차일드만은 그의 결정에 동의했으나 말수가 적은 그녀였기에 사람들은 카릴의 의중을 알 수 없었다.
휘이이이익—!!!!
문 안쪽으로 발을 들여놓자 차가운 냉기가 카릴의 전신을 감싸듯 스쳐 지나갔다.
보존 마법이 걸려 있지 않은 이곳의 냉기는 단순한 바람이 아니라 영령의 기운이라는 것을 카릴은 잘 알고 있었다.
[카아아아아아—!!] [크르르……!!]제국을 멸망케 한 자신을 증오하는 망령들의 분노야 이해가 가지만 거기까지였다.
파앗……!!
손을 젓자 엉겨 붙은 영혼의 잔재들이 산화되듯 사라졌다. 마법과 검술의 극의라 할 수 있는 그랜드 마스터의 영역에 오른 그에게 그들은 아무런 반항도 할 수 없었다.
“오랜만이다.”
사라진 영령의 잔해들은 가루가 되었고 무덤 안에는 고요만이 남았다. 카릴은 안개 속 옥좌 위에 앉아 있는 한 소년을 바라봤다.
시간이 흘러 성년이 된 자신과 달리 그는 여전히 그 시절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올리번.”
[정말로 왔구나.]“케이의 사령술로 시체를 부활시킨 것도 아닌데……. 영령의 형태를 이렇게까지 제대로 유지하고 있다니 놀랍군.”
“그 정도로 놀라서야 되겠어. 살아남은 수준이 아니라 승리를 했는걸.”
카릴의 말에 올리번의 눈썹이 씰룩였다.
“인간은 신에게서 자유를 되찾았다.”
올리번은 어쩐지 시원섭섭한 표정이었지만 제국의 멸망 때만큼이나 의외로 담담하게 인류의 승리를 받아들이는 눈치였다.
마치, 카릴이라면 성공할 것이라고 예상하기라도 했던 것처럼 말이다.
“일전에 네가 내게 말했었지. 자유국의 번영을 이루게 되었을 때 네 마음속에 남겨 둔 이야기를 내게 하겠다고 말이야.”
[망령이 남긴 말을 담아두고 있다니 의외인걸.]옥좌에서 일어선 올리번은 천천히 그에게 다가갔다.
[하하, 설마 진짜 믿은 거야? 네가 어떤 말을 해도 그게 내게 무슨 의미가 있겠어. 결국은 이제 모든 것이 너의 것이고 나는 그저 무덤 속 망령에 불과한 것을.]“의미는 있다.”
카릴은 빈정거리는 그에게 담담한 얼굴로 대답했다.
[무슨 의미?]“그 전에 할 일이 있다.”
[……뭐?]카릴은 올리번을 바라봤다.
“네가 보고 싶었던 것. 네 얘기를 듣는 것은 그 이후에 해도 늦지 않아.”
[무, 무슨…….]그때였다.
“밖으로.”
그 한 마디에 올리번은 아무런 말을 하지 못한 채 어안이 벙벙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봤다.
카릴이 그의 팔을 붙잡았다. 영령의 상태임에도 불구하고 마치 살아 있는 사람처럼 카릴은 올리번의 팔을 꽉 붙들었다.
“네게 세상을 보여주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