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9th Class Swordmaster: Blade of Truth RAW novel - Chapter (489)
9클래스 소드 마스터 : 검의 구도자 9클래스 소드 마스터 – 검의 구도자-489화(489/497)
외전 2화
2. 아직 끝나지 않았다.
[나를 어디로 데려갈 생각이지?]무덤 밖으로 나온 올리번은 여전히 카릴에게 팔을 붙잡힌 채였다.
“그보단 주위를 둘러보는 게 어때. 나 같으면 내게 말을 걸 겨를도 없을 것 같은데. 네 눈에는 저 풍경들이 들어오지 않는가 보지?”
[크르르르르…….]마치 그의 말에 동의하는 듯한 비룡의 낮은 으르렁거림이 들렸다. 혹은 올리번을 혼내는 것 같은 목소리로 들리기도 했다.
[그렇게 얘기해 봤자 내게 무의미한 것은 마찬…….]올리번은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그의 투덜거림이 끝까지 이어지지 않은 것을 보며 카릴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옅은 미소를 지었다.
“어때.”
대단한 것을 요하는 듯한 카릴의 물음이었지만 사실 수도의 풍경은 그의 생전과 그다지 다르지 않았다.
소란스러운 시장의 풍경.
광장의 분수에서 쏟아지는 물에 손을 담그며 장난을 치는 아이들. 평범해 보이는 모습이었지만 그들의 외형은 조금 달랐다.
[회색…… 눈?]눈썰미가 좋은 올리번은 광장에 섞여 있는 몇몇 아이들의 눈동자가 다르다는 것을 단번에 알아차렸다.
그리고 그것이 가지는 의미가 무엇인지 역시 충분히 깨달았다.
[……혼혈인가.]“맞아. 신은 사라졌지만 그가 남긴 잔재는 여전히 존재하니까. 종족을 구분 짓던 마력의 유무는 인간의 힘으로 어찌할 수 없지.”
이민족과 제국인.
절대 하나 될 수 없으리라 여겼던 그들이 이제는 가족이라는 울타리 안에 하나가 되어 있었다. 올리번은 카릴을 향해 나지막한 목소리로 물었다.
[얼마나 흘렀지?]“5년.”
[5년이라……. 고작 그 시간만으로도 저들은 저렇게 웃을 수 있는가.]“흐른 시간은 중요한 게 아냐. 처음부터 종족을 구분 지으려 했던 것은 위에 군림한 자들이었으니까. 통치의 이유로 적이 필요했겠지만 저들은 누구를 다스리려 하지도 할 필요도 없으니 적대감을 가질 이유도 없지.”
[…….]올리번은 카릴의 말에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았다.
[그래, 모든 것은 통치하는 자의 죄이지. 그들이 잘못한 것은 없지. 그들은 그저 살아가는 것뿐이니까.]“그렇게 생각해?”
[……뭐?]“정말로 네가 저 모습을 보고 그렇게밖에 생각하지 못한다면 실망스럽군. 차라리 전쟁에서 내게 패한 것이 다행이었을지 몰라.”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거지?]올리번은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카릴을 바라봤다.
“저들은 그저 살아가는 것뿐이 아니야. 그들 역시 스스로의 의지를 가지고 나아가고 있다. 신은 인간을 마력으로 구분 짓게 만들었지만 저들은 신이 만든 구분을 스스로 허문 것이다. 그게 얼마나 대단한 일인지……. 모른단 말이냐.”
다그치듯 말하는 카릴은 뭔가 마지막 말을 내뱉지 못한 채 입술을 씰룩였다.
‘그렇군……. 적어도 백성과 나라를 위해 싸웠던 전생의 너는 이제 없는 거로구나.’
남은 것은 그저 황위를 위해 자신의 가족을 죽인 잔혹한 황제만이 남았을 뿐.
카릴은 그런 생각이 들자 입안이 모래알을 씹는 듯 까끌까끌해지는 기분이었다.
“돌아가자.”
[왜? 조금 더 보고 싶은데.]“가치를 알지 못하는 자에겐 시간 낭비일 뿐이니까. 네가 내게 하고 싶었던 말이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다지 기대되지 않는군.”
카릴은 비룡의 고삐를 당겼다. 돌아서려는 그와 달리 올리번은 여전히 광장 안의 사람들을 바라볼 뿐이었다.
[아니, 이건 통치한 자의 잘못이다. 내가 저들을 평화로 이끌지 못했으니 명백한 나의 잘못이지. 백성의 위대함은 왕이 된 자가 닦아 놓은 기틀 위에서 발현되는 법이니까.]“…….”
[십수 년을 살아온 제국의 수도에서 나는 저들의 웃음을 한 번도 볼 수 없었으니까. 내가 태어나기 이전 제국의 역사 속에서도 그들은 똑같겠지. 하지만 그걸 바꾼 것은 너다.]올리번은 말했다.
[5년이면 충분했던 웃음인 것을.]영령인 그는 비룡에서 내려와 마치 바람을 타듯 지면에 안착했다. 그는 무릎을 꿇고 앉아 광장 안에 뛰노는 아이들의 눈높이를 맞추었다.
카릴은 물끄러미 그런 올리번을 바라봤다.
[네게 한 가지 묻지. 정말로 율라를 쓰러뜨렸다면……. 파렐은 어떻게 되었지?]“무너졌다. 신이 사라지고 난 이후 힘을 잃은 탑은 가루가 되어 스스로 부서졌다.”
[잘됐군.]그의 대답에 올리번은 고개를 끄덕였다.
[천년 빙동의 파렐은? 그것도 함께 부서졌나?]“아니. 그건 남아 있다. 아무래도 우리 세계의 것이 아니기 때문인 듯싶더군. 율라가 죽고 난 이후에도 영향을 받지 않은 모양이야.”
카릴의 대답에 올리번은 천천히 몸을 일으켜 다시금 비룡 위에 있는 카릴에게 다가왔다.
[돌아가지. 충분히 네가 말한 세상은 본 것 같으니 말이야. 어차피 이제 망령에 불과한 내가 이제 와서 세상에 미련이 생겨선 안 되니까.]카릴이 비룡의 고삐를 움켜잡았다.
“답변으로 만족이 되었나?”
[충분해. 정말 너는 그들을 자유롭게 살아가도록 만들었구나. 과연 이 평화가 얼마나 오래 갈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말이야.]“아주 악담을 해라.”
[크르르르르…….]붉은 비늘이 낮게 울며 날개를 움직였다.
[그래도 저들은 행복하겠지. 적어도 평화 이전에 자유를 얻기 위해 타투르로 도망치는 일은 이제 없을 테니 말이야.]카릴은 자신의 등 뒤에서 들려오는 올리번의 씁쓸한 읊조림에 카릴은 낮은 한숨을 내쉬며 그를 방해하지 않았다.
솨아아아악—!!!!
비룡은 미끄러지듯 빠른 속도로 하늘을 날았다.
뺨을 스치는 바람 소리만이 들렸고 둘 사이에는 또다시 침묵이 이어졌다.
“그런데…….”
그런 침묵을 먼저 깬 사람은 카릴이었다.
“네가 그걸 어떻게 알지?”
[뭘?]“파렐(Pharerl). 네가 살아 있을 땐 율라의 강림도 없었다.”
카릴이 굳은 얼굴로 올리번을 바라봤다.
“게다가 천년 빙동 속 파렐은 그 당시에 비밀로 부쳐지던 사안인데. 그걸 네가 안다고?”
굳은 얼굴 속 눈동자는 떨리고 있었다.
“너 이 새끼……. 설마.”
아닐 거라고 머릿속이 외치고 있지만 가슴은 만약이라는 헛된 기대를 하고 있었다.
[천년 빙동 속 파렐에 대해서 크웰 경이 네게 말하지 않았던가? 극비에 있다고는 하지만 그 존재를 아는 자는 분명 있었다.]“웃기지마. 크웰은 오직 자신의 친우를 제외하고 천년 빙동의 파렐에 대한 발설은 금했다. 그걸 알고 있다는 것은 네가…….”
카릴은 마지막 말을 목 안으로 삼켰다.
자칫 감정에 휘둘려 ‘회귀’라는 말을 내뱉을 뻔했기 때문이었다.
[글쎄, 그 비밀이란 결국 인간에 국한 된 일이니까. 신과 타락에 대한 것을 인간보다 훨씬 더 이전부터 알고 있는 또 한 명이 더 있잖아.]“백금룡?”
[그래. 맞아. 나르 디 마우그는 신살을 연구했던 유일한 드래곤이니까. 그는 제국의 수호룡으로서 내게 힘을 빌려주던 당시 천년 빙동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었다. 타락과 파렐에 대한 정보 역시 알고 있지. 나 역시 백금룡과 함께 타락을 멸할 준비를 했으니까.]그의 말은 틀리지 않았다.
확실히 전생에 율라가 강림하고 신탁이 내려졌을 때 혼란스러워하는 다른 사람들과 달리 차분히 타락과의 싸움을 준비했었다.
게다가 전생과 달리 배후에 백금룡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지금은 올리번의 말이 틀렸다고 볼 수는 없었다.
‘정말일까.’
다만 너무나도 딱딱 들어맞는 말이 오히려 카릴에게 의구심을 들게 만들 뿐이었다.
‘아니. 내가 의심하는 것은 그 이유가 아니다. 그저…… 내 욕심 때문이겠지.’
카릴은 낮게 고개를 저었다.
올리번이 비밀이었던 파렐의 존재를 알고 있는 것이 자신과 마찬가지로 회귀를 했기에 가능한 것이 아닌가 하는 기대감.
‘불가능해.’
올리번의 얼굴을 보자 카릴은 자신의 그 기대가 말도 안 되는 일이라는 것을 잊고 말았다.
누구보다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는 것이 끔찍한 고통을 감내해야 하는 것임을 자신이 잘 알고 있지 않았던가.
게다가 자신과 같은 실력자조차 파렐의 타락들을 물리치고 층을 올라감에 있어서 억겁과도 같은 시간이 걸렸는데 하물며 올리번이 그 괴물들을 이겨낼 리 만무했다.
‘평화가 나를 무디게 만든 모양이로군.’
무엇을 바란 기대였을까.
전생의 친우에 대한 속죄라도 하고 싶었던 것일까.
그래봐야 전생일 뿐.
현생에 있어 올리번에게 그는 결국 자신의 목숨을 빼앗은 적에 불과하지 않은가.
[너는 약속을 지켰다. 아무래도 이번엔 내가 너와의 약속을 지켜야 할 때겠지.]고민에 빠져 있던 카릴에게 올리번이 말했다.
[천년 빙동으로 가라.]“뭐?”
[내가 네게 남기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고 했었지? 만약 천년 빙동 속의 파렐마저 사라졌다면 그 이야기는 필요 없는 것이 되었겠지만……. 아무래도 아직 끝나지 않은 모양이로군.]올리번은 고개를 들어 북부를 향했다.
[너는 네가 해야 할 마지막 퍼즐 조각을 그곳에서 찾을 수 있을 거야. 그리고 모든 것의 시작이었던 그곳에서 끝을 맞이할 수 있을 거다.]휘이익……!!
카릴은 영령인 그의 목소리가 바람 속에 묻혀 속삭이는 것처럼 느껴졌다.
[신살(神殺)은 아직 끝나지 않았어.]“……!!!”
황급히 뒤를 돌아봤다.
하지만 이미 올리번은 사라지고 비룡의 위에는 카릴 혼자 남아 있었다.
꽈악-
카릴은 비룡의 고삐를 잡은 손에 힘을 주었다.
“올리번…….”
그러고는 그의 이름을 낮게 부르며 생각했다.
‘넌 무엇을 알고 있던 거지?’
솨아아아아악—!!
카릴의 떨림에 반응을 하는 듯 염룡의 피를 이어 받은 붉은 비늘은 불안한 듯 낮게 울면서 좀 더 속도를 높여 날아 오르기 시작했다.
* * *
“주군!!!!”
늑여우 부족의 파수꾼들은 붉은 비늘이 상공에 나타남과 동시에 보고를 올렸다. 하시르는 누구보다 발 빠르게 움직여 비룡이 착륙하는 장소로 달려왔다.
“그동안 잘 지냈나?”
“어떻게 되신 겁니까! 어째서 연락이 되지 않으셨는지요. 극비라고 말씀드려도 이스라필 님께서는 주군께서 명하신 일이라고 하명하시기 전까지 연락을 취할 수 없다고 하시더군요.”
“아아……. 잠시 누구를 좀 만날 일이 있어서 말이야. 방해를 받고 싶지 않았거든.”
“그래도 다행입니다. 주군께서 북부로 직접 오시다니 말이죠.”
오랜만의 재회였는데 하시르에게서 반가움보다 다급함이 보여 카릴은 의아한 얼굴로 그를 바라봤다.
“무슨 일인데 그래?”
“조금 전 지그라에게서 보고가 왔습니다.”
“월야(月夜)?”
“네.”
하시르의 대답에 카릴은 검은 눈 일족으로 구성된 특수 부대인 그들에게 내린 명령을 상기했다.
그리고 그것이 올리번이 말한 것과 연관성을 가진다는 사실도 말이다.
“천년 빙동에 침입자가 있습니다. 현재 월야가 감시 중이라고 합니다.”
하시르의 보고에 카릴의 얼굴이 굳어졌다.
“침입자? 내가 분명 그곳에 그 누구도 침입을 금하라 명했을 텐데.”
“그게…….”
카릴의 말에 하시르는 머리 위에 쓰고 있는 로브를 좀 더 잡아당기며 고개를 숙였다.
“침입조차 알지 못했다고 합니다. 그 월야가 말이죠. 뒤늦게 알아차린 것도 오히려 그자가 지그라를 찾아 왔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게 무슨…….”
카릴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비록 마력을 가지고 있지 않지만 월야는 암연과 견주어도 손색이 없을 정도의 북부의 정예였기 때문이었다.
“송구하옵니다. 저희 늑여우들 역시 그의 침입을 알지 못했습니다. 히나 만일을 대비하여 현재 잔나비 부족과 붉은달 그리고 호표 부족의 병력이 천년 빙동을 경계하고 있는 상태입니다.”
‘하시르와 지그라의 경계는 소드 마스터라 할지라도 쉽사리 피하기 어려울 텐데……. 도대체 누구지?’
카릴은 어쩐지 불안한 기분이 들었다.
“그가 주군께 말을 전하라 했습니다.”
“뭐지?”
하시르는 잠시 머뭇거렸다.
“말해봐.”
그런 그를 다그치듯 말했다.
“신살(神殺)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
카릴은 어쩐지 들던 불안한 기분이 현실이 되어 돌아오는 것 같았다. 마치 되풀이하듯 하시르의 보고는 올리번의 말과 똑같았기 때문이었다.
“웃기는 소리. 누가 그런 헛소리를 하고 있는지 확인해 봐야겠군. 불온한 혀를 놀리는 것이라면 내가 가만히 두지 않겠어.”
카릴은 빙동을 향해 날카롭게 말했다.
“신살(神殺)은 분명 끝났다.”
쿠그그그그그…….
하지만 그 순간 저 멀리 파렐이 남아 있는 천년 빙동이 마치 그의 말에 답하듯 무겁게 떨리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