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9th Class Swordmaster: Blade of Truth RAW novel - Chapter (492)
9클래스 소드 마스터 : 검의 구도자 9클래스 소드 마스터 – 검의 구도자-492화(492/497)
외전 5화
5. 파렐의 기억
“정말 혼자서 괜찮겠어?”
밀리아나는 걱정스럽게 물었다. 그녀뿐만 아니라 천년 빙동을 지키고 있던 북부의 수장들 역시 불안한 기색을 보이긴 마찬가지였다.
“카릴!!”
그때였다.
빙동의 입구에 마법진이 나타나더니 한 무리의 사람들이 그의 이름을 불렀다.
카릴을 이름으로 부를 수 있는 사람은 대륙에도 몇 되지 않았는데 그중에서 저런 대규모 이동 마법진을 쓸 수 있는 마법사는 단 한 명뿐이었다.
“도대체 무슨 생각인 거냐. 파렐 안으로 들어가겠다니. 이제 겨우 그때의 끔찍한 과거에서 조금 벗어나기 시작했는데 또 저곳으로 가겠다고?”
대도서관에 틀어박혀 살던 나인 다르혼은 창백하다고 느껴질 정도로 하얀 얼굴로 그를 노려보며 말했다.
“자신들의 터전이나 신경 쓸 일이지 북부까지 어쩐 일이야. 다들 한가한가 보지?”
“모른 척하지 마십시오. 이게 단순한 일이 아니잖습니까. 게다가 신살의 10인만 소집하시다니요. 비록 저희의 힘은 미약하지만, 그래도 주군의 곁을 지킨 것은 누구보다 오래되었습니다.”
“베이칸의 말이 맞습니다. 저희는 주군의 결정에 언제나 따르겠지만 인사도 없이 떠나시다니요.”
키누 무카리는 서운한 듯 말했다.
“떠나긴 뭘 떠나. 잠깐 다녀오는 건데. 말했잖아. 별것도 아닌 일에 호들갑 떨지 말라고. 인사조차 필요 없는 간단한 일이야.”
카릴의 말에 사람들은 그럴 줄 알았다는 표정으로 쓴웃음을 지었다.
“신살의 10인이 아니더라도 주군을 생각하는 자들이 이렇게 많다는 것을 알아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고 다들 맡은 일이나 충실히 해. 너희는 내가 아니라 너희를 따르는 자들을 돌보는 것이 이제 해야 할 일이다.”
카릴은 천년 빙동의 입구에서 부하들을 향해 말했다.
“믿고 다녀와도 되겠지?”
와아아아아아아아—!!!
와아아아아—!!
병사들의 환호성이 그의 물음에 대답을 대신했고 카릴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주군을 걱정하는 부하들이라……. 겉치레가 아닌 걸 봐서는 꽤 훌륭한 수장이었나 본데?”
“나는 내 세계가 가장 중요하다.”
“……?”
“그 세계 안에는 당연히 저들도 포함되어 있다. 나는 완벽하지 않기에 모든 이를 살릴 수는 없었지만 내가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 내 주위를 지키고자 했다. 그리고 적어도 그것이 진심임을 저들은 알고 있는 것이지.”
“뭐, 주군으로서의 훌륭한 마음가짐이로군. 그걸 자기 입으로 자랑하는 것은 좀 우스워 보이지만 말이야.”
검귀는 카릴을 향해 피식 웃었다.
“그 진심은 여전히 유효하다. 그렇기에 나는 저들을 지키는 데에 있어서 한 치의 망설임도 없다. 블레이더의 이름을 들먹였지만 솔직히 나는 여전히 널 믿지 않아.”
“그렇다면 어떻게 날 돕기 위해 함께 파렐 안으로 들어가려 결정한 거지?”
검귀의 물음에 카릴은 냉소를 지었다.
“널 돕기 위해 온 게 아냐.”
“흠……?”
“네가 신살을 행하는 자일지 아니면 신의 끄나풀일지는 아직 확인된 바가 없으니까. 만일에 하나 널 죽여야 할 상황이 왔을 때를 대비해서 이 세계에서 가장 피해가 없는 전장을 골랐을 뿐이다. 파렐 안이라면 세계가 붕괴해도 상관없을 테니까.”
“하하하. 그 짧은 순간에 그런 결정을 내리다니. 역시……. 신살을 이룬 자다운걸.”
“물론이지. 너는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전생의 마지막 기억을 가지고 거래를 하려 하는 모양이지만 그 기억의 유무를 떠나 내 강함은 변하지 않는 사실이니까.”
“자신 있나 보지?”
“너 하나쯤은.”
“그 말을 들으니 든든하군. 파렐의 마지막 층에 잠들어 있는 괴물을 잡아야 하는데 말이야.”
하지만 검귀는 카릴의 도발에도 유연한 모습으로 답했다. 오히려 그의 대답이 마음에 든다는 반응이었다.
[쉽게 걸려들지 않는군. 보이는 것과 달리 확실히 속을 읽을 수 없는 자야.]라미느는 검귀를 살피며 조심스럽게 말했다.
[흐음……. 이럴 때 마스터 키(Master Key)라도 쓸 수 있다면 좋으련만 대전쟁 이후 그들 역시 율라와 함께 사라졌으니 아쉬울 따름이로군.]그는 함께 있을 때는 티격태격했지만 막상 푸른 뱀의 빈자리가 아쉬운 듯 말했다.
‘당연히 쉬운 상대가 아니겠지. 카이에 에시르의 동료라면 다른 차원이긴 하지만 훨씬 더 이전에 신살을 이룬 자일 테니 말이야.’
카릴은 라미느의 말에 여전히 경계를 늦추지 않은 상태로 검귀의 뒤를 따랐다.
“적어도 내가 어느 편에 서 있는 자인지 걱정할 필요는 없어. 나는 누구보다 이 세계의 안녕을 바라니까. 카이에 에시르……. 아니, 뉴트 브라이언이 남긴 마지막 작품이니 말이지.”
검귀는 파렐의 입구에 서서 옅은 미소를 지었다.
“자신의 세계로 돌아가지 못하고 이곳에서 생을 마감한 그의 외로운 죽음이 헛되지 않도록 말이지.”
우우우우우웅…….
그가 손을 들어 올리자 파렐이 반응을 하듯 빛이 나기 시작했다.
철컥-
즈이이이잉—!!
검귀의 손목에서 날카로운 팔찌 형태의 장치가 튀어나왔다. 그 안에는 에메랄드빛을 뿜어내는 파편이 박혀 있었고 천천히 태엽을 감듯 그의 손목에서 회전하기 시작했다.
파편의 개수는 언뜻 보이는 것만 하더라도 십수 개였다.
‘디멘션 스파이럴이 저렇게나 많이…….’
신의 힘을 쓰는 것이 얼마나 위험하고 큰 대가를 치러야 하는 것인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카릴이었기에 저토록 많은 파편을 가지고 있는 그의 모습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가지.”
검귀는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그그그그그긍…….
그 순간,
파렐의 문이 열렸다.
* * *
‘……야!!!’
귀를 찢을 것 같은 외침에 카릴은 깜짝 놀라며 주위를 바라봤다.
매캐한 화약 냄새.
머리가 울릴 정도의 폭음.
지독한 피비린내까지.
카릴은 생사를 넘나드는 전장의 한복판에 자신이 서 있음을 깨달았다.
스아아앙—!!
날카로운 파공음과 함께 그의 몸이 중심을 잃고 쓰러지며 비틀거렸다.
[케엑……! 케켁!!!]그와 동시에 검은 창이 그를 덮치려던 몬스터의 심장을 꿰뚫었다.
‘정신을 어디에다가 팔고 있는 거야! 죽고 싶어?!’
붉은색 머리카락의 다혈질적인 남자는 몬스터를 찌른 창을 뽑으며 소리쳤다.
‘집중해. 다음 웨이브가 온다. 그때도 이런 식이면 같이 일할 수 없어!’
[무, 무슨…….]신경질적인 그를 보며 카릴은 어이가 없다는 듯 말했다. 아니, 말하려 했다.
[……목소리가 나오질 않아?]하지만 겁을 먹은 듯 움츠러진 몸은 그의 의사와는 반대로 잔뜩 굳어 있었다.
‘우린 네 보모가 아니라고. 알겠어? 이 애송아!’
위협하듯 손을 들어 올리는 붉은 머리 남자의 모습에 카릴은 자신도 모르게 다시 한번 움찔거렸다.
‘힐페론!! 그만하게.’
그 순간 신랄하게 비난하는 남자를 막아서는 또 다른 사내. 그는 수안 하자르처럼 탄탄한 근육을 가진 거구의 남자였다.
‘쳇…….’
그의 중저음의 목소리가 내리깔리자 소리치던 붉은 머리의 남자는 입을 다물었다.
‘…….’
그들뿐만이 아니었다.
여기저기 몬스터와 싸우는 자들이 있었다. 카릴은 처음 보는 이들의 모습에 어리둥절할 뿐이었다.
“여긴…….”
영문을 알 수 없는 풍경에 카릴은 천천히 자신의 손을 들어 올렸다. 자신의 육체이건만 어색하고 불편한 기분을 감출 수가 없었다.
게다가 조금 전 몬스터의 공격을 피하지 못할 리가 없었다.
“이건…….”
그 순간, 카릴의 눈이 커졌다.
모든 게 낯설었지만 입고 있는 붉은빛을 띠는 갑옷만큼은 알아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바로, 검귀의 것이었다.
쉬이이이이익……!!!
그때였다.
마치 모래가 흩날리는 것처럼 주위의 풍경들이 가루가 되어 사라지며 부서지기 시작했다.
“……!!!!”
카릴은 풍경뿐만 아니라 자신의 몸도 함께 흩어지고 있음을 깨달았다.
시야는 검게 변했고 의식 역시 흐려지고 있었다.
그는 저 바닥 아래로 침전하는 것 같은 기분은 언젠가 경험해 봤던 것임을 깨달았다.
그것은 아인헤리에서 처음 용의 심장을 먹고 리세리아의 기억을 보았을 때와 같았다. 바로 기억의 파장 속에 스며들었을 때 일어나는 현상이었다.
“……헉!”
검은 시야를 뚫고 새하얀 빛이 쏟아졌고 카릴은 참았던 숨을 토해냈다.
“깨어났나? 생각보다 빠른걸.”
귓가에 울리는 목소리에 카릴은 고개를 돌렸다. 조금 전 전장의 풍경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몬스터들과 싸우던 사람들 역시 존재하지 않았다.
“여긴…….”
카릴은 모닥불을 피우고 그 앞에 앉아 있는 검귀를 바라봤다. 정확히는 그가 입고 있는 갑옷이었다.
검은 갑옷과 붉은빛.
외형의 변화는 있지만 확실히 조금 전 자신이 입고 있었던 갑옷과 닮았다는 것을 카릴은 알 수 있었다.
“파렐 14층.”
“14층? 1층이 아니라?”
“시간 낭비하고 싶지 않거든. 평범한 자가 파렐의 문을 연다면 1층에서부터 올라가게 되겠지만 나는 좀 달라서 말이야.”
검귀는 자신의 손목에 달려 있는 신의 파편을 보이며 카릴에게 말했다.
“태엽을 빨리 감는 것처럼 하위의 층을 건너뛰었지. 파렐을 공략한 자만이 가능한 방법이긴 하지만……. 시간을 역행하는 회귀와는 또 반대로 시간의 축이 어긋나는 것이라 나름의 대가를 치러야 하지.”
그는 쓰러져 있던 카릴을 가리키며 말했다.
“조금 더 안정을 취하는 게 좋을 거야.”
“꿈인지는 모르겠지만 이상한 광경을 봤다. 마물들은 분명 타락(墮落)이었으나 그것과 싸우는 병사들의 모습은 우리 세계와는 달랐다.”
“흐음, 그래?”
“힐페론. 아마 그 사내의 이름 같던데……. 일행인 듯한 자들이 그를 그리 부르더군. 뭔가 알고 있는 게 있나?”
“아무래도 층에 남아 있는 기억이 당신과 동조를 한 모양이로군. 당신이 들어갔다 온 것은 내 기억이다. 그런데 14층의 기억이라면……. 하필이면 꼴사나운 걸 보여줬겠군.”
카릴의 말에 그는 쓴웃음을 지었다.
“그럼 그가 당신이었나?”
“맞아. 이 파렐은 내가 살던 세계에 있던 것이니까. 그곳의 기억이 잔재하고 있지. 우리 역시 파렐을 공략했으니 말이야.”
“카이에 에시르의 유언을 봤지만 솔직히 타 차원의 존재에 대해서 반신반의했는데 직접 눈으로 보니 이제야 실감이 되는군.”
확실히 달랐다.
병사들이 두르고 있는 갑옷들은 그의 세계에 있는 무구라기 보다는 오히려 기계에 가까웠고 마도공학과는 분명 차이가 있었다.
“신력을 가진 지금과는 많이 다르던데.”
“약했지?”
“한숨이 나올 정도로.”
“크큭…….”
카릴의 말에 검귀는 쓴웃음을 지었다.
“인간은 누구나 약했을 때가 있으니까. 안 그래? 그 당시 나는 강함보단 약함에 더 가까운 자였고 그때의 나의 세계는 당신의 전생만큼 별 볼 일 없는 미약한 힘까지 모두 동원해야 할 정도로 사투를 벌여야 할 때였지.”
타닥…… 타닥…….
검귀는 마치 그 기억을 잊어버리려는 듯 타고 있는 모닥불을 들쑤시며 낮게 말했다.
“파렐을 공략하기 위해 인류는 싸울 수 있는 자를 모두 끌어모았다. 물론, 패배했지만.”
“패배? 하지만…….”
카이에 에시르의 유언에 의하면 그들의 세계는 자신보다 더 빨리 신살을 이루었다.
뿐만 아니라 파렐이 이곳에 있다는 것은 그의 세계엔 이제 신도 파렐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했으니 그것은 패배가 아니라 명백한 승리일 터.
카릴은 그의 말에 불현듯 한 가지 가능성을 떠올랐다.
“설마 당신도 회귀자인가?”
“글쎄. 내가 가진 시간 축은 이미 바뀔 때로 바뀌고 어긋나서 단순한 회귀자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검귀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러면 그게 내가 떠올리지 못하는 마지막 층의 기억과도 관련도 있는 건가?”
“잡담은 여기까지. 검을 들어. 마물들이다.”
그는 대답 대신 옆에 세워 둔 대검을 움켜잡았다.
“…….”
대답을 회피하는 그를 보며 살짝 인상을 찡그렸다.
콰앙–!!!
검귀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카릴은 결국 고개를 젓고는 아그넬을 뽑아 신경질적으로 어둠을 향해 힘껏 던졌다.
[케엑……!! 켁!!!] [카아아악……!]타락이 내지르는 비명이 여기저기에서 터져 나왔다.
“약자는 뒤로 가 있어.”
카릴은 놀리듯 그에게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