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9th Class Swordmaster: Blade of Truth RAW novel - Chapter (495)
9클래스 소드 마스터 : 검의 구도자 9클래스 소드 마스터 – 검의 구도자-495화(495/497)
외전 8화
8. 친우(親友)
“그게 무슨 헛소리지?”
카릴은 검귀를 날카롭게 노려보며 말했다.
“내가 파렐의 마지막 층에서 널 만났다고?”
검귀는 그를 향해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거짓말이 아니다. 나는 분명 그 이야기를 파렐 안에 들어오기 전에도 했지. 뭐……. 솔직히 말해서 마력이 없는 상태에서 오직 검술만으로 파렐의 9층까지 오른 것도 엄청난 일이지. 마스터 키(Master Key)라 불리는 블레이더의 무구도 없이 말이야.”
그는 카릴의 강함을 칭찬했지만 결과적으로 자신의 도움이 없었더라면 재해 때와 마찬가지로 카릴이 마지막 층의 공략에 실패했을 것이라는 의미였다.
“당신, 파렐 안에서의 기억은 어디까지지?”
“……뭐?”
“잘 생각해 봐. 전생에 재해를 막는 데 실패하고 신탁을 이행함에서도 실패했다. 그런 당신이 파렐을 넘어 시간을 회귀했을 때 어째서 열 번째 신의 능력만 기억이 나지 않았을까. 기억 상실이란 것이 단순히 시간 역행의 대가일까?”
카릴은 검귀의 물음에 섣불리 대답을 하지 못했다.
“상실된 기억은 너무나도 자연스러워서 자신조차 인지하지 못한 부분일 수도 있지.”
쿠그그그그…….
무너지는 파렐 저편으로 공간이 일그러지며 눈보라가 내리치는 북부의 고원이 보였다. 저 밖으로 나가면 다시금 원래 있었던 자신의 세계로 돌아갈 수 있다.
“과거야 어쨌든 뭐가 중요하겠어. 현재를 살아가라. 그것이 당신이 추구하는 것이잖아. 꿈꾸던 미래를 현실로 만들었으니 펼쳐진 행복을 잡으면 되겠지.”
하지만 어쩐 일인지 검귀의 말이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잃어버렸다는 것조차 알지 못했던 자신의 과거의 기억을 알고 있는 자.
그것도 현생이 아닌 전생의 일이었다.
카릴은 과연 그 과거를 알게 되는 것이 지금의 자신에게 도움이 되는 일인지 두려웠다.
어쩌면 그로 인해서 자신이 이룬 평온이 깨질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판도라의 상자를 여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지.”
검귀는 그 모습을 보며 이해한다는 듯 살짝 입꼬리를 아래로 내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판도라?”
“별거 아냐. 내가 살던 곳의 신화야. 그녀가 온갖 불행이 담긴 상자를 여는 바람에 인간이 이토록 고난에 빠지게 되었다고 하거든.”
카릴은 그의 말에 살짝 인상을 찡그렸다.
“당신은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파렐의 마지막을 알게 되는 것이 불행하게 될 것이라는 뜻인가?”
“글쎄. 그게 불행이 될지 희망이 될지는 모르지. 그녀가 연 상자 속에도 희망은 남아 있었거든. 상자를 열든 열지 않든 결국 선택은 자신이 하는 거야.”
“…….”
검귀의 대답에 카릴은 낮은 한숨을 내쉬며 그를 바라봤다.
“말해다오.”
카릴은 마음을 굳힌 듯 담담한 목소리로 그에게 말했다.
“파렐의 마지막 층에서 있었던 일을.”
파앗–!!!
그 순간,
무너지던 파렐의 풍경이 사라지고 그의 주위에 어둠이 짙게 깔렸다.
스캉……!!
어둠 속에서 번뜩이는 섬광이 눈에 들어왔다. 익숙한 파공음에 카릴은 살짝 고개를 꺾으며 그 소리에 집중했다.
캉! 캉!! 카가가강……!!
[……나는 당신과 싸우고 싶지 않다.]날붙이가 부딪히는 굉음 속에서 여인의 목소리가 들렸다.
[여기까지 인간이 파렐을 오를 것만도 대단한 일. 너는 영웅으로 칭송받아도 마땅한 자이다.]<닥쳐.>
[신이 인간에게 어떤 짓들을 해왔는지 잘 알고 있다. 우리의 행위가 그대들을 고통스럽게 만든 것에 나는 마음이 아프지만 그렇다고 해서 열 번째 신인 내가 다른 신들을 질책할 수는 없는 법이야.]그녀의 말 속에서 어쩐지 안타까움이 느껴졌다.
[나 역시 다신의 한 명으로서 인간의 시선과 신의 잣대가 다른 것을 인정해야 하니까.]<마음대로 지껄여. 네가 싸우고 싶지 않든 좋든 나는 널 죽일 거니까.>
[…….]카릴은 그녀에게 대답을 하는 또 다른 목소리가 무척이나 익숙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생명을 관장하는 신. 비록 다른 신들에 비하여 그 힘은 미약하나 다른 의미로 인간에게 가장 강한 신이기도 하다. 그렇기에 열 번째의 자리를 내가 맡고 있는 것이기도 하지.]어둠 속에 로브를 쓰고 있는 여인은 한 남자를 바라보며 말했다.
[인간은 나를 죽일 수 없다.]<그건 해보지 않고선 모르는 일이지.>
그녀를 향해 날카롭게 말하는 남자의 얼굴엔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
카릴은 그를 바라봤다.
검은 눈과 흐트러진 검은 머리카락.
이렇다 할 장식도 없는 쥐고 있는 검의 날은 굳은 핏물로 무뎌질 대로 무뎌졌고 검날에는 그 어떤 마나 블레이드도 느껴지지 않았지만 뿜어져 나오는 예기만큼은 날카로웠다.
어둠 속에서 보이는 한 사람.
놀랍게도 그 얼굴은 바로 자신이었다.
그리고 깨달았다.
지금 저 광경이 바로 전생의 자신이 행했던 잃어버린 기억의 한 페이지라는 것을 말이다.
콰아아아앙—!!!
강렬한 폭음과 함께 컥! 하는 비명이 들렸다. 카릴은 자신도 모르게 전생의 자신을 바라보며 몸을 움찔거렸다.
두근……. 두근……. 두근…….
심장이 맹렬하게 뛰기 시작했다.
그것이 두려움이라는 것을 깨달았고 카릴은 그 두려움이 머리의 기억이 아니라 몸이 기억하고 있는 경험에서 오는 본능적인 두려움임을 깨달았다.
‘……내가?’
카릴은 자신이 신에게 공포를 느꼈다는 것에 어이가 없었다. 기억해 보면 대전쟁의 당시 열두 번째 신이라 불리는 락슈무는 아무런 힘도 없는 가장 유약한 존재였다.
그런 신에게 두려움을 느끼는 것도 모자라서 그에게 더 충격적으로 다가온 것은 정말로 자신이 락슈무와 싸웠는가 하는 것이다.
‘나는 당연히 파렐을 지나 시간을 회귀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지금 떠올려보면 파렐의 마지막을 어찌 넘어왔는지 기억이 나지 않아.’
<컥……. 커컥…….>
그때였다.
거친 신음과 함께 카릴은 락슈무의 발아래 쓰러진 자신의 모습을 보았다.
‘내가…….’
그 순간 그는 직감했다.
‘실패했다……?’
믿을 수 없는 광경에 카릴은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저었다. 그렇다면 그가 느꼈던 억겁의 시간들은 도대체 무엇이냔 말인가.
비록 마지막 층의 기억이 없다 한들 인내(忍耐)했던 그 셀 수 없는 오랜 시간을 분명 몸은 기억하고 있었다.
“파렐이 무너뜨려야 하는 존재임과 동시에 무너뜨려서는 안 되는 존재이기도 하다.”
검귀의 목소리가 들렸다.
지금 눈 앞에 펼쳐진 이 혼돈을 해명해 줄 수 있는 유일한 존재인 그를 향해 카릴이 고개를 돌렸다.
“이것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파렐과 신의 상관관계부터 알아야 할 거야.”
“신과 파렐의 관계? 신이 인간을 괴롭히기 위해 만든 것이 저 빌어먹을 탑이 아닌가?”
“흐음, 파렐이 빌어먹을 탑이라는 것은 맞지만 신이 만든 것은 틀렸어.”
“……뭐?”
검귀는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최상위 신이자 우리 세계를 관장했던 로드(Lord)가 죽기 전 그는 내게 말했지. 파렐은 자신이 만든 것이 아니라고 말이야.”
카릴의 얼굴이 굳어졌다.
“파렐은 처음부터 존재했고 앞으로도 존재할 것이다.”
검귀의 말이 공간을 울리는 것 같이 느껴졌다.
“우리는 지금까지 당연하게 여겼던 생각을 뒤집을 필요가 있어. 파렐의 각층은 신을 대변하는 재해들이 있다. 그렇기 때문에 신이 파렐을 만든 것이라 생각했지. 하지만 그 반대라면?”
꿀꺽-
카릴은 검귀의 말에 자신도 모르게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각층의 재해들이 있는 이유가 바로 파렐에서 신이 태어난 것이기 때문이라면…….”
“……말도 안 돼.”
“신을 비롯해서 정령과 타락까지 균열에서 태어난 존재라는 대목이 이 세계의 문헌에도 남아 있을 거야. 그럼 과연 그 균열이란 무엇일까. 그것은 일종의 경계의 갈라짐이나 틈.”
검귀는 두 손바닥을 서로 마주 보게 펼쳐서는 포개었다. 합장을 하듯 포개어진 손바닥이 길게 수직으로 세워졌다.
마치, 탑처럼.
“균열의 경계를 시각화한 구조물. 그것이 바로 파렐이다. 이곳에는 혼돈과 질서가 공존하기에 신이 말하는 규율이 엉클어진 상태로 존재한다. 그 혼돈으로 인해 앞으로 흐르는 시간이 뒤로 되감아질 수도 있는 이유지.”
“그게……. 파렐이 시간 회귀를 할 수 있게 하는 이유란 말인가?”
“맞아. 파렐은 곧 균열의 형상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파렐이 무너지는 순간 그 균열이 세계를 덮친다. 우리 세계에서는 그것을 가리켜 써드 드림(Third Dream)이라 말하지만……. 세계가 다른 당신과는 상관없는 일이야.”
검귀는 가볍게 어깨를 으쓱했다.
“다만 확실한 것은 균열이 세계를 덮치게 되면 걷잡을 수 없는 붕괴가 일어난다. 당신이 마지막 층의 공략을 실패한 것은 어쩌면 불행 중 다행일지도 몰라.”
“말도 안 돼. 파렐을 무너뜨리면 세계의 균열이 생긴다고? 우리는 이미 파렐을 무너뜨렸고 대륙엔 그 어떤 위협도 없다.”
“그건 신살이 선행되었기 때문이다. 좋은 의미로 당신의 계획이 들어맞은 거지.”
“……내가 만약 파렐부터 무너뜨렸다면 세계가 멸망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렇지 않았잖아.”
카릴이 인상을 찡그리며 그를 바라봤다.
“물론 균열이 멸망을 뜻하진 않아. 써드 드림을 겪은 우리들은 결국 살아남았으니까. 단지 더 힘든 길을 걷게 되겠지만 말이야.”
“……이보다 더 고된 길이라고? 미쳤군.”
카이에 에시르의 유언에서 카릴은 자신들보다 먼저 신살에 그들이 성공했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그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를 가늠할 수 있었다.
“그렇다면 마지막 층에서 패배한 내가 어떻게 시간을 회귀할 수 있었지? 당신 말대로라면 나는 실패했는데.”
그의 물음에 검귀는 옅은 미소를 지었다.
“파렐의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존재는 오직 신뿐이다. 그리고 신의 증거는 당신도 알다시피 디멘션 스파이럴이라 불리는 파편.”
우우우웅…….
검귀가 펼친 손바닥에 힘을 주자 그의 팔목 주위에 에메랄드빛 보석들이 나타났다.
“당신은 신의 영역에 머물러 있는 자로군……. 그렇다면 당신이 전생의 파렐을 간섭해서 나를 살렸다는 말인가.”
“그래.”
“어째서? 결국 나는 실패했다. 실패자를 살려봐야 똑같은 패배의 미래를 되풀이할 뿐인데.”
“솔직히 말해서 내가 살리려고 했던 자는 당신이 아냐. 이민족으로 검술 하나만으로 극의의 도달한 것은 대단한 일이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했으니까.”
카릴이 그를 바라봤다.
“시간을 회귀한다는 것은 단순히 시간을 돌리는 것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야. 당신도 그런 생각을 해봤겠지. 당신의 회귀를 혹여 신이 알 수 있는 것은 아닐까 하고 말이야.”
확실히 그랬다.
카릴은 항상 의문을 가졌었다.
자신의 회귀를 정말로 신이 알지 못하는가에 대한 의문 말이다.
“시간을 회귀하기 위해서는 결국 그것을 알아차리지 못하게 신을 속여야 하는 일이기도 하다. 그렇기에 나의 힘으로도 많은 것에 관여하는 것은 어려운 일. 미래를 바꾸기 위해서는 더 확실한 가능성을 가진 자를 뽑아야 했지. 하지만 내가 선택한 그자가 부탁했거든. 자신이 아니라 당신을 회귀시켜달라고.”
“그게 누구지?”
“그렇게 물어도 표정을 보아하니 당신도 어느 정도는 눈치를 챈 모양인데. 지금 머릿속에 떠오르는 사람 말이야.”
“설마…….”
카릴은 검귀가 처음 모습을 드러냈을 때 찾던 한 인물을 떠올렸다. 그의 눈동자가 불안하게 떨렸다.
“너……. 여기에 있냐.”
천년 빙동을 향하던 그 순간부터 어딘지 모르게 가슴 한편에 머물러 있던 이상함.
“올리번.”
그는 나지막한 목소리로 그 이름을 불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