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9th Class Swordmaster: Blade of Truth RAW novel - Chapter (52)
9클래스 소드 마스터 : 검의 구도자 9클래스 소드 마스터 – 검의 구도자-52화(52/497)
45. 최종전 (2)
익스퍼트 경연이 열리는 경기장.
“…….”
대기실은 전과 달리 조용했다.
카릴은 낮은 하품과 함께 나른한 얼굴로 좌우로 목을 꺾으며 몸을 풀었다.
대기실 밖에 경기장의 관객석에서 일어나고 있을 소란에 관해서는 관심이 없다는 표정으로 말이다.
“이게…… 뭐야?”
공장의 게시판에서부터 경기장 입구에 안내문까지 갑작스러운 공고에 관람객들은 저마다 어리둥절할 뿐이었다.
“갑자기 결승이라니?”
“이런 식으로 운영하는 게 어디 있어? 내 티켓값 돌려달라고!”
사람들은 저마다 소리쳤다.
티켓값은 사실 중요한 게 아니었다.
자신이 건 선수들의 출전 포기로 잃을 돈이 더 컸으니까.
한둘이라면 이해된다.
익스퍼트 경연에서는 가끔 우승 후보들도 아무런 이유 없이 출전을 포기하는 경우가 있었으니까.
그게 주최 측의 뒷공작이라는 걸 알지 못하는 관객들은 그저 마법사들 특유의 괴팍함이라고 생각했지만 어쨌든 그런 일이 비일비재했다.
하지만 지금은 그 정도 수준이 아니었다.
어제 처음 열린 경기였다.
그런데 십수 명의 출전자가 한꺼번에 포기 선언을 내버린 것이었다.
게다가 이유도 알 수 없다.
그들 모두가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자취를 감추었기 때문이었다.
남은 사람은 고작 단둘뿐이었다.
“잘해 보자.”
“아, 네…… 네넵.”
대기실에 카릴과 함께 앉아 있는 마법사는 그의 말에 자신도 모르게 어깨를 부르르 떨었다.
남자는 조용히 왼팔을 잡았다.
로브에 그려진 여명회의 문양을 가리려고 노력했지만 한 손으로 감출 수 있을 만한 크기가 아니었다.
괜히 카릴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으려고 필사적인 모습이었다.
‘제길…….’
어젯밤에 벌어진 일.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었으며 알려져서는 절대로 안 되는 사건이었다.
하지만 그는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눈앞의 소년이 자신보다 수십 년을 더 오래 마법을 수련한 상급 마법사를 찍어 눌렀던 것을.
‘스승님도 이긴 녀석을 무슨 수로…….’
남자는 당장에라도 도망치고 싶은 마음이었다.
* * *
와아아아아—!!!
와아아—!!
경기장의 문이 열리자 관객들의 환호성이 들렸다.
시시할 정도로 빠르게 끝난 첫 경기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관객들은 두 사람을 향해 소리쳤다.
“이왕 이렇게 된 거 화끈하게 보여 달라고!!”
“여명회의 자존심!! 자켄!!”
“듣도 보도 못한 녀석에게 지지 마라!”
그들의 환호성은 대부분 로브를 입고 있는 남자를 향해 있었다.
그럴 수밖에.
출신을 알 수 없는 제국의 아이보다 마법회의 마법사의 편을 드는 것이 아조르의 사람들에겐 당연한 일이었다.
‘내가 이민족이라고는 상상도 못 하겠지.’
대륙을 다 뒤져도 그에 대해서 알 방법은 없었다.
애초에 이단섬멸령이 내려진 지금 크웰이 이민족인 그를 데려온 것 자체가 비밀이었기도 하지만 마법으로 머리 색과 눈동자 색을 바꾸었다.
마법을 쓰는 이민족?
그런 의심을 할 수 있는 사람은 절대로 없었다.
‘그래도 다행이라고 생각해라. 너희들의 말을 빌리자면 이민족에게 졌다는 것까지 알게 되면 정말 수치스러워 고개를 들지 못할 테니까.’
카릴은 천천히 스태프를 고쳐 쥐었다.
톰슨이 쓰던 지팡이는 낡았지만 제법 손때가 묻은 쓸만한 것이었다.
‘부숴 먹긴 아까운 물건이네.’
부웅-
그는 생각과 달리 마치 창을 잡은 것처럼 크게 한 바퀴 머리 위로 원을 그리며 스태프를 돌렸다.
‘마법이라…….’
어차피 그가 쓸 수 있는 마법은 버프(Buff) 계열의 보조 마법을 제외하고는 손에 꼽혔다.
하지만 그는 재밌는 생각을 했다.
자신의 경기를 보러 온 관객들을 위한 퍼포먼스는 아니었지만 마법 대결을 보기 위해 온 것이라면 이번엔 제대로 마법을 보여주겠다고.
[시작—!!!]사회자의 외침과 동시에 자켄은 카릴을 바라보며 자신도 모르게 움찔거렸다.
하지만 첫 경기 때처럼 달려올 것이라고 생각했던 그는 카릴이 물끄러미 기다리자 황급히 주문을 외웠다.
자켄의 스태프 위로 순식간에 두 개의 마법진이 겹쳐졌고 세 번째가 생성되었다.
“…….”
그 역시 여명회의 유능한 마법사였다.
우승이 확정된 경기라고는 하지만 경험을 쌓고 인정을 받을 수 있는 수준이 아니라면 출전도 하지 않았을 것이다.
우우웅……!!
4번째 마법진이 완성되었다.
서클의 개수가 곧 클래스를 나타내는 것.
‘나쁘지 않군.’
빠른 속도로 4클래스의 마법을 영창 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그의 실력을 알 수 있었다.
‘신탁 전쟁 당시에도 이 정도로 마법을 영창 할 수 있는 마법사도 얼마 안 되었으니까.’
안타까웠다.
신탁이 내려지기 전.
제국을 통합하기 위한 올리번이 일으킨 400일간의 대륙 전쟁에서 공국과 삼국 그리고 다른 소도시들은 막대한 피해를 입었다.
병사가 죽고 군대가 사라졌으며 그와 함께 전쟁과는 무관했던 마법사들 역시 이슬로 사라졌다.
‘후회해도 늦은 법이지.’
대륙에 모든 곳에 자신의 깃발을 세운 올리번.
그것은 인간으로서 할 수 있는 절정의 목표를 달성한 것과도 같을 것이다.
하지만 인간의 일 따윈 하찮다고 말하는 것처럼 신은 신탁을 내렸다.
‘인간계의 존재가 아닌 적.’
신을 믿는 이들에게.
아이러니하게도 신은 인간계의 목적을 달성한 우리에게 더 한 과제를 내주었다.
빠득-
카릴은 자신도 모르게 대전이라는 것조차 잊고 이를 갈았다.
그의 모습에 자켄이 움찔거렸다.
“……후.”
솔직히 저 정도의 마법사도 아쉬운 상황이었다.
하지만 올리번을 탓하진 않는다.
대륙을 통합하지 않았더라면 중구난방으로 오히려 더 빠르게 인류는 무너졌을 테니까.
‘그렇다고 우릴 죽이려고 했던 녀석의 행위까지 인정하겠다는 것은 아니지.’
카릴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그렇기 때문에 이번엔 자신이 바꾸려고 한다.
죽음으로부터 그의 미래와 전쟁으로 사라져간 눈앞의 저런 이들까지.
역적이 될지 영웅이 될지…….
그건 후세가 판단할 일이었다.
“염지(炎指).”
자켄이 4클래스의 마법이 완성되었을 때 카릴은 기초 마법 하나를 시전했을 뿐이다.
‘4클래스의 콜드 스피어(Clod Spear).’
마법을 쓸 수는 없지만 눈앞의 마법이 무엇인지는 정확히 알고 있다.
마법에 대한 지식은 없어도 지겨울 정도로 많은 마법을 봤으니까.
탁-
카릴은 반대쪽 손을 튕겼다.
그러나 그의 손바닥에서 무언가가 일렁거렸다.
“흐아압……!!”
자켄이 있는 힘껏 두 팔을 들어 올렸다.
그의 머리 위로 생성된 다섯 개의 얼음 창이 카릴을 향해 쏟아지려 했다.
“어, 억?!”
그때였다.
긴장을 하고 있었기 때문일까.
쓸데없이 힘이 들어간 자켄이 카릴을 향해 자세를 잡는 순간 그의 발밑에 질펀한 기름과 함께 뒤로 자빠지고 말았다.
덩달아 그가 만든 얼음 창들이 목표를 잃고 허망하게 허공으로 흩어지고 말았다.
쾅……! 콰쾅……! 콰가강!!
제대로 날지도 못한 창들이 상공에서 바닥으로 떨어지며 산산조각이 나버렸다.
그 모습을 본 사람들은 어처구니가 없었다.
‘1클래스의 그리스(Grease) 마법?!’
확실히 존재하는 마법이긴 하다.
하지만 지면에 마법 기름을 형성해서 닿은 물체를 미끄러지게 만드는 마법은 대부분 무거운 물건을 옮기거나 할 때 사용되는 저클래스의 마법이라고 인지할 뿐 마법사들은 공격 마법으로 생각하지 않았다.
‘화려하고 강한 마법만이 공격이란 말에 어울린다고 마법사들은 생각하니까.’
카릴은 시원하게 자빠진 자켄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마법회의 고위 마법사들도 절대 상상하지 못할 것이다.
신탁이 내려진 후에 가장 많이 사용된 범용 공격 마법 중 하나가 바로 이 그리스였으니까.
‘정확히는 이 마법의 연계기지만.’
카릴은 조금 전 시전해뒀던 염지를 쓰러진 자켄의 발아래로 떨어뜨렸다.
화르르륵……!!!
그 순간.
기름에 불을 붙인 것처럼 자켄의 발아래에 뿌려진 마법 위로 순식간에 화염이 솟구쳤다.
고작 손가락 마디만 한 불꽃이 거대한 화마가 되어 그를 덮치려 했다.
“우악, 우아아악—!!”
그 모습에 자켄은 화들짝 놀라며 엉금엉금 도망치려 했다.
“마법사의 반열에 오르는 4클래스라면 너도 2클래스까지는 무영창으로 가능할 텐데.”
물론,
클래스에 도달하지 못한 카릴의 경우는 염지와 그리스 두 가지 마법을 동시에 시전 한 것이지만 말이다.
“겉으로는 저렇게 보여도 결국은 둘 다 마법. 게다가 둘 다 1클래스 마법이라면 차라리 도망치기보다 2클래스의 매직 실드(Magic Shield)로 방어하면 될 텐데.”
거대한 화마(火魔)에 도망을 치려던 자켄은 차분한 카릴의 말에 그제야 아차 싶었다.
“뭐야. 이 정돈가.”
뒤늦은 깨달음은 소용없었다.
카릴은 들고 있던 스태프가 마치 몽둥이처럼 엎어져 있는 자켄의 엉덩이를 쿡쿡 찔렀다.
“이익……!!”
굴욕적인 모습이 아닐 수 없었다.
카릴이 강하게 손을 뻗자 그가 만든 바람이 조금 전 그리스 위에 피어올랐던 불꽃을 꺼뜨려 버렸다.
그의 실력이라면 풍압만으로도 충분히 마법을 파훼할 수 있을 테지만 그가 사용한 것은 매직 실드.
마법으로 화염을 가두고 그대로 압축을 해서 단번에 불을 꺼뜨린 것이다.
‘매직 실드로 불을 끈다고?’
‘마법을 저런 식으로 사용할 수도 있구나.’
‘저런 발상을 어떻게 한 거지? 마법회의 스승님들조차 언급하지 않은 방식이다.’
관객들 사이에 섞여 있는 마법사들은 카릴의 모습에 혀를 내두르고 말았다.
반박의 여지가 없는 패배였다.
남자는 억울하다는 듯 소리쳤다.
“이건 마법사들의 대결이 아니다!! 인정할 수 없어……!!!”
악에 받친 듯한 외침.
“신성한 마법사의 결투를 모독하는 행위다!!”
어쩌면 이 한마디의 용기를 내기 위해 그는 엄청나게 고민을 했을지 모른다.
“이 와중에 소리치다니. 뒷공작이나 하려는 녀석보단 근성이 있군.”
그 모습을 바라보며 카릴은 처음으로 아조르에서 진짜 웃음을 지었다.
“근데.”
촤르륵—!!
그는 품 안에서 아그넬을 뽑았다.
손바닥 위에서 날을 번뜩이며 회전하던 단검을 움켜쥐고 카릴은 있는 힘껏 바닥에 내리꽂았다.
쓰러진 자켄의 뺨에 종이 한 장 차이로 단검이 박히자 차가운 예기가 섬뜩하게 느껴졌다.
“난 내가 마법사라고 얘기한 적 없는데.”
“……뭐?”
“그런 건 너나 해.”
툭-
“명예랑 목숨 중에 뭐가 더 중요하지?”
카릴은 의문 가득한 그의 얼굴을 가볍게 두들겼다.
“전쟁은 널 기다려주지 않아.”
그 말이 무슨 말인지 지금은 이해 가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더 이상의 이의를 제기하면 가만히 두지 않겠다는 뜻만큼은 그에게 전해졌을 것이다.
“결국 죽으면 끝이야.”
아무리 저급한 마법이라 할 지리라도 목숨을 앗아 갈 수 있는 것은 매한가지였다.
카릴의 말이 마치 비수처럼 자켄의 가슴에 박혔다.
[스, 승자는……!! 울카스 길드의 카릴!!!]사회자의 외침과 함께 카릴은 바닥에 꽂힌 단검을 뽑아 품 안에 다시 집어넣었다.
“…….”
무대를 걸어 내려가는 그의 뒷모습을 보며 자켄은 그제야 자신의 바지가 축축하게 젖어 있다는 걸 깨달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