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9th Class Swordmaster: Blade of Truth RAW novel - Chapter (62)
9클래스 소드 마스터 : 검의 구도자 9클래스 소드 마스터 – 검의 구도자-62화(62/497)
55. 나락 바위
“나락 바위라…….”
카릴은 쓴웃음을 지으면서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테이블 위에는 여기저기 복잡하게 메모가 되어 있는 지도가 놓여 있었다.
그동안 자리를 비운 만큼 그는 앞으로의 여정에 대해서 계획을 할 필요가 있었다.
그중에도 붉은색으로 동그랗게 쳐 있는 장소.
“오랜만에 듣는 이름이야.”
[너에게는 썩 유쾌하지 않은 장소겠지만 네 기분을 나쁘게 하기 위해 일부러 찾아가는 것은 아니다.]“알고 있어. 천 년이나 살았던 자가 고작 그런 유치한 짓을 할 리가 없다는 걸 알아.”
지도를 바라보며 카릴이 대답했다. 바르소 시라가 운영하는 가게에서 구입한 지도는 평범한 것과는 조금 달랐다.
일반적으로 유통되는 지도는 남쪽에 위치한 이스트리아 삼국까지 표시되어 있다.
하지만 삼국보다 더 밑에 대륙의 진짜 남부 지역이 있었다.
북부의 왕국들은 자신들과 전혀 다른 부족 형태의 세력을 일구고 있는 그들을 가리켜 야만족이라 불렀다.
‘멸족의 위기에 있는 북부의 이민족과 달리 남부의 야만족은 그 세력이 각각 나누어져 있다 하더라도 강력하다.’
그중에서도 특출나게 강한 세력을 가진 부족.
그것이 한때 카릴의 동료였던 밀리아나의 디곤 부족이었다.
알른 자비우스가 말했던 나락 바위는 바로 이 남부에 위치해 있었다.
[평생 남부의 야만족과 북부의 왕국이 합쳐질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 못 했는데. 네가 전생의 마지막을 남부에서 끝냈다는 것에 솔직히 좀 놀라웠지.]“인류가 멸망하기 직전의 위기에 놓여 있는데 북부와 남부를 나눌 처지가 아니지.”
카릴은 잠시 숨을 고르면서 말했다.
“나락 바위를 가는 것은 큰 문제가 되는 건 아니야. 어차피 남부를 얻기 위해선 거쳐야 할 관문이니까.”
그는 지도 위에 동그란 원 주위에 또 다른 작은 원들을 가리켰다.
“나락 바위를 수호하는 5대 일가는 밀리아나의 디곤을 제외하고 가장 세력이 큰 권세니까. 그들을 내 편으로 끌어들이면 디곤을 움직이기도 쉽지.”
[설마……. 그놈들 아직도 그 전설을 믿고 있는 거냐.]“그때도 있었나 보지?”
[정령의 힘이 약해진 지가 언제인데……. 나락 바위에 정령왕이 존재한다는 허황된 믿음이 천 년이나 이어지다니. 이래서 미개한 야만족들이란…….]알른 자비우스는 고개를 저으면서 낮은 한숨을 내쉬었다.
“미개한 야만족이라……. 지금 북부 이민족의 몸에 기생해서 살고 있는 게 누군지 모르겠는데.”
[……하, 하하. 북부랑 남부랑은 완전히 다르지. 절대로 그런 의미가 아닐세.]“농담이야.”
카릴의 한 마디에 알른은 없는 심장이 벌렁거리는 기분이었다.
“정령왕이 있든 없든 그게 중요한 건 아니야. 다만 5대 일가의 부족들은 나락 바위 정상에 오른 자만이 자신들을 통치할 수 있다는 전설을 믿으니까.”
[그곳을 네가 오를 거고?]“그래.”
알른 자비우스는 씨익 웃었다.
[어쩐지 너랑은 합이 잘 맞는 것 같군. 백금룡의 레어를 가야 하는 목적도 그렇고 말이야. 네가 나락 바위의 정상을 오르는 거라면 내가 도움을 줄 수 있지.]“도움?”
[그곳에 숨겨진 비밀이 하나 있거든.]카릴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네 혈맥을 뚫을 수 있는 방법이 있다.]“……!!”
생각지도 못한 그의 말에 친우의 죽음을 얘기할 때에도 평정심을 유지하던 그의 얼굴에 감정을 숨기지 못했다.
“그게 정말이야?”
“어떻게?”
[사실 5대 일가의 야만족들이 나락 바위가 사라진 정령왕의 무덤이라고 숭배하고 있지만 완전히 틀린 말은 아니야. 대륙에서 가장 정령의 힘이 강한 곳이 그곳이니까.]“으음…….”
[너도 알다시피 이제 정령은 거의 보기 힘들다. 마도 시대 때에도 중급 정령과 계약을 한 정령술사들도 좀처럼 보기 어려웠으니까.]“그렇지.”
카릴은 고개를 끄덕였다.
[용마력은 일반적인 마력과는 전혀 다르다. 7인의 원로회 중에서도 그 힘을 제대로 받아들인 사람은 나뿐이었으니까.]알른 자비우스는 자부심 가득한 목소리로 말했다.
[용마력은 마력이란 이름을 가지고 있지만 오히려 정령력과 비슷하다고 할 수 있다. 마법과 정령 둘 다 속성을 가지고 있지만 다른 것처럼 말이야.]“그럼 어떻게 해야 하지?”
[내가 전에 청린에 관해서 얘기한 것 기억하나?]“물론. 그걸 어떻게 잊을 수 있겠어. 그 비싼 청린을 아무렇지 않게 태워 먹었는데.”
회색교장 안에서 얼음 발톱을 꺼내기 전에 던져 버렸던 구슬을 떠올리며 카릴은 아쉬운 듯 입맛을 다셨다.
[껄껄……. 녀석아, 내가 있는데 고작 그게 아까우냐. 지금 우리가 나락 바위에 가는 이유가 바로 그 청린을 얻기 위해서인데.]“청린을 얻기 위해서라고?”
[그래. 전에 내가 청린이 광물이 아니라 비전의 샘에서 만들어진 이끼가 굳어진 거라고 했잖아. 그 비전의 샘이 바로 나락 바위에 있다.]꿀꺽-
카릴은 자신도 모르게 그의 말에 마른침을 삼키고 말았다. 전생에서는 제조법도, 구할 수 있는 방법도 알려지지 않은 청린(靑燐)은 그저 왕과 몇 안 되는 고위 귀족의 가문에 전해지는 무구에만 남아 있을 정도로 귀한 것이었다.
[청린으로 만들어진 무구가 타락에 큰 효과가 있는 이유가 무엇인지 아느냐. 내 생각엔 청린이 정령의 힘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정령이라…….”
[그래, 드래곤이 우리에게 마력과 마법을 가르쳐 주면서 명했던 것이 비전의 샘을 관리하는 일이었다. 그 관리자가 나였고 수십 년을 그곳에 있으면서 한 가지 깨달은 바가 있었지.]“용마력이 정령력과 관련이 있다는 것?”
알른 자비우스는 카릴의 말에 흐뭇한 표정을 지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바로 맞췄다. 인간계에 살고 있는 동물이지만 드래곤은 본질적으론 정령계에 속하는 존재다. 비전의 샘의 샘물은 용마력을 강력하게 만들어주기에 드래곤들에겐 아주 중요한 장소였다. 사라져가는 정령력을 가지고 있는 유일한 곳인 셈이지.]“그곳에서 내 용마력 역시 안정화시킬 수 있다는 말이군.”
[바로 그거지. 게다가 마침 비전의 샘도 나락 바위의 정상에 있으니 일석이조가 아니겠느냐.]카릴은 주먹을 쥔 손에 힘을 주었다.
천재일우의 기회.
아인헤리에서 용의 심장을 얻고 난 뒤 마력을 쓸 수 있게 되었지만 마력을 증강 시킬 수 있는 혈맥을 뚫는 방법을 찾지 못한 채 정체되어 있던 그에겐 더할 나위 없는 기회였다.
[거봐라. 나를 회색교장에서 빠져나올 수 있도록 도와준 것이 얼마나 네게 이득이 되는지 이제 알겠지?]카릴은 그의 말에 피식 웃었다.
“인정해. 내가 당신과 계약을 한 일은 잘한 거 같아. 하지만 그게 끝은 아닐 것 같은데?”
[……뭐?]“나르 디 마우그와의 만남을 천 년이나 참아 왔던 당신이야. 그런 사람이 내 용마력을 증가시키기 위한 이유만으로 경로를 바꾼다고?”
[하여간……. 선의를 의심으로 보기는.]알른 자비우스는 못마땅하다는 듯 말했지만 카릴은 슬쩍 눈치를 주면서 고개를 까닥였다.
어떤 말을 해도 이해해 주겠다는 허락의 의미였다.
[크크…….]잠시 뜸을 들이던 그는 결국 카릴을 바라보며 멋쩍은 듯 웃었다.
[네놈에겐 뭘 숨기질 못하는군. 가끔 어린 모습에 속는다니까.]“나락 바위를 가는 것이 나에게 충분히 이득이라는 걸 납득했으니 당신 목적도 알아야 도와주지. 안 그래?”
[그 말은 이득이 되지 않으면 거절할 수도 있다는 말로 들리는데.]“잘 알아들었네. 무엇이든 날 속여서 몰래 할 거라면 나중에 오히려 더 손해일걸.”
팔짱을 낀 채로 의자에 몸을 기대며 카릴은 다시 한번 고개를 끄덕였다.
능청스러운 그의 말에 알른은 결국 못 이기는 척 대답했다.
[담금질 때문이다.]의미심장하게 말하는 알른의 말이었지만 카릴은 선뜻 이해가 가지 않는 듯 되물었다.
“담금질?”
[전에 내가 얼음 발톱을 드워프와 엘프의 합작이라고 했었지?]“블레이더란 단체를 말하는 건가? 7인의 원로회도 속해 있었다던.”
[맞아. 뭐, 그건 중요한 게 아니지만 어쨌든 블레이더가 만든 5개의 마법 무구는 모두 비전의 샘에서 탄생한 것들이다. 그렇기 때문에 정령의 힘을 가지고 있기도 하고.]“그런데?”
[비전의 샘의 샘물을 얼음 발톱에 먹이면 정령력이 강화된다. 정령이란 말 그대로 자연계에 존재하는 영혼과 같은 것. 정령력이 강화된 얼음 발톱이라면 내 영혼까지도 받아들일 수 있을 가능성이 있거든.]“설마……. 그 말은 당신이 검을 통해서 영체에서 실체화할 수 있다는 말인가?”
[그렇지. 물론, 네 마력이 필요하겠지만 말이야.]“재밌군.”
카릴은 알른 자비우스의 말에 묘한 웃음을 띠며 말했다. 예상과 다른 그의 반응에 오히려 의아한 것은 알른이었다.
“뭐, 망령 계열의 몬스터들 중에서도 이따금 실체화를 할 수 있는 녀석들이 있으니까. 크게 이상한 건 아니지. 물론, 실제로 보는 건 처음이지만.”
[그게 아닌 것 같은데.]알른 자비우스는 카릴을 흘겨보며 말했다.
[너야말로 내 말을 듣자마자 또 다른 꿍꿍이가 생긴 것 같아서 말이야.]“티 났나?”
[……하여간 방심할 수 없는 녀석이라니까.]카릴은 팔짱을 풀면서 가볍게 어깨를 으쓱했다.
“지금 당장 할 일은 아니야. 그냥 재밌는 생각이 들어서 말이지. 당신 말대로 비전의 샘의 샘물로 담금질한 무구를 매개로 영체를 실체화시킬 수 있다면…….”
[으흠?]“블레이더가 만든 마법 무구는 얼음 발톱 말고도 더 있다고 했지?”
[그렇지.]“5개의 무구 중에 이걸 제외하고도 불타는 징벌과 무한의 숨결은 전생에서도 봤던 거니까 구할 수 있고. 게다가 나머지 2개도 소실되었지만 당신이 있으니 운이 좋다면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르고.”
[……하고 싶은 말이 뭐야? 이젠 네가 그런 표정으로 말을 하면 겁부터 나는군.]카릴은 알른 자비우스의 말에 피식 웃었다.
“나머지 마법 무구를 찾아 그것들 역시 담금질을 해서 영체의 매개물로 쓰는 거다. 얼음 발톱이 가능하면 나머지도 가능하겠지.”
[이론상으론 가능한 일이다만 나 말고 영체가 또 있단 말이야?]“많지. 그것도 쓸 만한.”
[설마…….]알른 자비우스는 무언가 떠오른 듯 입을 다물지 못한 채 카릴을 바라봤다.
[미친놈.]그러고는 그의 말을 듣기도 전에 말했다.
[불사(不死)의 군단이라도 만들 생각이냐]“못할 것도 없지.”
[거긴 천 년 전 마도 시대에도 공략하지 못했던 곳이다. 인간이 발을 들여놓으면 안 되는 곳이라고.]“말했잖아. 지금이 아니라 나중이라고.”
알른 자비우스는 담담하게 말하는 카릴의 말에 질린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너 같은 독종은 처음 본다. 무슨 말만 하면 이용해 먹으려고 눈에 불을 켜니 말이야.]“크큭…….”
카릴은 그의 말에 웃었다.
북부의 이민족뿐만 아니라 대륙을 통일한 제국조차 넘볼 생각을 하지 못하고 거대한 장벽을 만들어 경계를 그은 금단의 땅.
죽은 자들이 사는 그곳엔 천 년이 넘는 세월 동안 공략하지 못한 하나의 던전이 있다.
망령의 성, 고스트 캐슬(Ghost Castle).
‘그곳의 성주(城主)인 리치(Lich), 자르카 호치. 그 녀석을 다룰 수 있게 되면 전쟁의 판도는 완전히 달라질 수 있다.’
새로운 목표가 하나 더 생겼다.
그리고 그 생각은 카릴을 흥분시켰다.
“알른, 환영 공간을 만들어. 가만히 있는 시간이 아까워. 나머지 훈련을 마무리해야겠어.”
[아무렴. 몸이 근질근질하겠지. 교장 때와는 다를 거야. 마력을 듬뿍 써서 만들 테니 나오는 괴물의 수도 장난이 아닐 거다.]카릴은 얼음 발톱을 쥐면서 나지막하게 말했다.
전생에서는 절대로 하지 못할 말.
“마력 따위 얼마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