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9th Class Swordmaster: Blade of Truth RAW novel - Chapter (67)
9클래스 소드 마스터 : 검의 구도자 9클래스 소드 마스터 – 검의 구도자-67화(67/497)
59. 비궁족 (1)
산세가 험한 대륙의 북부에 살고 있는 이민족은 기술이 발달되어 있지 않은 대신 채집과 산악술에 특화되어 있었다.
그에 비해 남부는 일대의 대부분이 광활한 대초원으로 되어 있었기 때문에 기마술이 발달했다.
그중에서도 카릴의 목표인 남부의 비궁족(飛弓族)은 눈여겨볼 만한 자들이었다.
‘뛰어난 기마술은 물론이거니와 대초원의 삶을 지냈던 그들은 태생적으로 눈이 좋고 그로 인해 궁술 역시 뛰어나다.’
비궁족의 사람은 100야드 밖의 목표도 오차 없이 맞출 수 있다고 전해질 정도였으니 말이다.
하지만 카릴이 비궁족을 향하는 것은 단순히 그들의 궁술 때문이 아니었다.
대초원(大草原).
그 누구도 건들지 않은 대륙의 유일한 땅이 그곳에 있기 때문이었다.
“제국인으로 보이는데. 여기까지 찾아오다니. 제정신인 건 아닌 것 같은데.”
낮은 목소리가 들렸다.
하지만 그의 말보다 카릴은 감회가 새롭다는 표정으로 앉아 있는 천막을 훑었다.
아니,
천막이라고 불러도 되나 싶을 정도로 그 규모가 어마어마했다. 막사 안에는 수백 명이 함께 살고 있었으니까.
“와……. 저 남부는 처음인데. 이런 곳도 있네요.”
“그러게요. 이거, 긴장되네.”
미하일과 에이단의 소곤거림이 들렸다. 긴장이 역력한 두 사람과 달리 카릴의 모습은 담담했다.
비궁족의 수장인 스완 무카리는 그런 눈앞의 소년을 신기한 듯 바라봤다.
“후우…….”
그는 들고 있는 기다랗고 얇은 파이프를 있는 힘껏 빨고 내뱉었다.
새하얀 연기가 구름처럼 흩어졌다.
코끝에서 서늘하게 느껴지는 냉기가 있었다.
파이프에서 흘러나오는 차가운 연기.
그리고 천막 안에는 보글보글 끓는 냄비 안에 정체불명의 액체를 보며 말했다.
‘주술이군.’
제국의 마법과 달리 남부의 일족들은 주술을 쓴다.
자연적이라는 것은 두 힘 모두 같지만, 마법은 즉각적인 반면 주술은 단시간에 효과를 발휘하는 것이 아닌 염(念)적인 힘에 가까웠다.
‘북부의 이민족 중에도 주술을 쓰는 자들이 있지만 남부에 비할 바는 못 되지.’
카릴은 족장의 파이프를 유심히 바라보며 생각했다.
“타투르라……. 들어 본 적이 있는 도시야. 대륙의 왕국들 사이에 껴있는 자유도시.”
“맞소.”
“제국이나 공국의 쓰레기였다면 들을 필요도 없이 목을 벴겠지만.”
카릴은 살기등등한 그의 모습에 낮게 웃었다.
일흔은 족히 넘을 것 같은 노인에게서 아직까지 이 정도의 투기가 느껴지다니 무인으로서 놀라울 따름이었다.
노려보는 그와 달리 카릴은 재회가 기쁜 듯 스완 무카리를 바라봤다.
카릴은 그를 잘 알고 있다.
전생(前生)에서 북부의 이민족들과 달리 남부는 제국에 의한 피해가 거의 없었다.
왕국 간의 대륙 전쟁에서도 그들은 살아남았으며 오히려 디곤이라는 일족 아래 하나로 뭉쳤으니까.
그 선봉대를 바로 비궁족이 맡았기 때문이다.
‘황제였던 올리번이 남부를 치려고 했지만 실패했지. 그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이 비궁족 때문.’
카릴은 고개를 돌렸다.
스완 무카리의 뒤에 서 있는 건장한 남자는 무표정한 얼굴이었지만 카릴이 들어 온 이후부터 지금까지 옅은 투기를 계속해서 뿜어내고 있었다.
갈무리 된 투기를 유지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 비궁족이 강한 이유는 바로 저 남자 때문이지. 실력은 큐란보다 상위. 아마도 친위기사들도 쉽사리 이기긴 어렵겠지.’
소드 마스터 다음으로 대륙에서 가장 강력하다고 알려져 있는 제국의 친위기사.
그들과 동급이라는 것은 마스터의 반열에 오르기에 충분한 자질을 가진 자라는 것을 의미하기도 했다.
남자의 이름은 키누 무카리.
비궁족 제일의 활이라는 별칭을 가지고 있는 스완 무카리의 아들이었다.
“당신들이라 할지라도 우리에겐 크게 다르지 않다. 여기까지 찾아온 이유를 말해라.”
카릴은 단단한 중저음의 목소리에 고개를 끄덕였다.
“거래를 하고 싶소.”
“거래? 북부와 남부는 서로 관여하지 않는다는 게 불문율일 텐데. 고작 한낱 도시의 영주가 대륙의 규율을 깨뜨리면 다른 왕국들이 가만히 있지 않을 텐데.”
“불문율이 된 건 북부가 남부에 관심을 가지지 않았기 때문일 뿐. 디곤을 제외한 나머지 일족들은 제국이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정벌할 수 있다는 걸 잘 알 텐데.”
“뭐?”
“이단섬멸령으로 인해 북부에 시선이 기울어져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해. 아니었다면 제국은 남부 정벌을 통한 영토 확장을 꾀했을 테니까.”
카릴은 거침없이 말했다.
키누 무카리는 그의 말에 인상을 굳혔지만 이렇다 할 반박은 하지 못했다.
사실이었으니까.
그들은 눈치를 보고 있었다.
북부 이민족의 명운에 따라 남부의 대처도 달라질 것이다.
‘올리번이 황제에 즉위하고 대륙을 정벌하는 과정에서 남부는 디곤의 밀리아나를 주축으로 빠르게 뭉쳤다. 하지만 그 이유는 충성심이 아닌 오로지 생존을 위함.’
그 말은 곧.
아직은 남부의 일족들이 모두 제각각이라는 뜻이었다.
‘남부 일대에서 주목해야 할 부족이라 하면 디곤을 제외하면 나락 바위 쪽에 있는 창 일가(一家)를 주축으로 하고 있는 5대 부족이지만 여길 얻기 위해서는 그 이전에 비궁족을 먼저 꺾어야 한다.’
대초원의 경계에 살고 있는 비궁족은 말 그대로 남부 세력에 방파제 같은 역할이었다.
‘제국을 견제하고 타투르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남부의 세력이 필요하다. 그러기 위해선 밀리아나보다 내가 먼저 대초원의 주인이 돼야 한다.’
카릴은 눈빛을 빛냈다.
“제국인은 남부의 명운까지 신경을 쓸 만큼 우리가 가소로워 보이나 보지? 북부의 이민족을 죽이는 자가 바로 너희들이면서.”
“우리는 제국과는 다른 노선을 걸을 것이다. 알다시피 타투르엔 이민족을 비롯해 제국을 피해 달아난 노예들까지 살고 있다.”
카릴은 키누의 말에 가볍게 어깨를 으쓱했다.
“그래서?”
“남부의 일족들까지도 우리는 포용할 여지가 있다는 뜻이다.”
“…….”
너무나도 당당하게 말하는 그의 모습에 키누는 어처구니가 없었다.
“포용? 미친……. 기껏해야 작은 도시 하나 가지고 있는 당신이 대초원의 주인인 우리를? 말도 안 되는 소리를 지껄이는군.”
외세의 침략에 가장 먼저 싸우는 자들인 만큼 그들의 신뢰를 받게 된다면 내부의 일족들을 대하는 것 역시 쉬운 일이었다.
하지만 반대로 생각하면.
비궁족만큼 다루기 어려운 일족도 없다는 의미가 된다.
“대초원을 가졌다고 하기엔 무리가 있을 텐데. 비궁족 이외에도 투족과 라후 그리고 리수 부족까지 초원에 있지 않은가.”
“……너.”
“게다가 제국이 북부를 정벌하고 나면 그 칼날은 남부를 향할 것이다.”
“헛소리를!!”
“진정하거라.”
으르렁거리듯 소리치는 키누를 막은 것은 족장인 스완이었다.
“당신 말대로 남부는 아직 부족 전쟁을 치르고 있는 중이나 제국에게 쉽사리 지진 않을 겁니다.”
스완은 다시 한번 천천히 파이프를 빨고서 내뱉으며 말했다.
“만일에 하나 제국이 칼날을 겨눈다면 남부는 하나가 되어 싸울 테니까.”
의지가 담긴 듯 노년의 눈빛이라고 할 수 없을 정도로 날카로운 날이 서 있었다.
“그렇겠지.”
카릴은 고개를 끄덕였다.
“또한 당혹스러운 말이긴 하나……. 거래라고 말씀을 하시지 않았습니까. 우리를 얻고자 한다면 당신이 내어 줄 것은 무엇입니까. 자칫 제 귀엔 협박으로 들리기도 하는데 말이죠.”
“아버님!! 지금 저딴 헛소리를 지껄이는 자의 말을 계속 들으실 생각입니까?”
키누의 외침과 달리 카릴은 스완의 말에 옅은 미소를 지었다.
“혈기왕성한 아들보단 그래도 연륜이 있는 족장이 좀 더 낫군. 부족 전쟁과 제국의 칼날은 결국 부수적인 것이니까.”
“…….”
순간,
스완 무카리의 눈빛이 흔들렸다.
대륙 남부는 대초원을 중심으로 그 주변은 사막으로 둘러싸여 있는 척박한 땅이었다.
땅 자체의 수분이 부족하고 이따금 내리는 스콜(Squall)은 식수로 사용하기에도 부족했다.
태생적인 식량난.
그건 수백 년 동안 누구도 해결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남부 일족의 대부분은 사냥을 통해 기본적인 식량을 구하고 남은 가죽과 뼈를 팔아 음식을 샀다.
남부의 일족을 눈엣가시처럼 여기는 제국과 공국이 그들과 거래를 할 일은 만무했다.
대륙에서 유일하게 그들과 거래를 하는 곳이 바로 타투르였던 것이다.
“나는 지금까지와의 타투르의 거래에 손을 댈 생각은 없다. 하지만 제국이 북부의 이민족을 정벌하고 난 다음에 눈을 돌리는 곳이 어딜까?”
“…….”
“공국과 삼국을 처리하기 위해서 그 교두보가 되는 곳이 바로 타투르일 터.”
카릴의 말에 막사 안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가 침묵했다.
“당신의 말대로 나는 거래를 하러 왔다. 거래란 말 그대로 서로에게 이득이 돼야 하는 법. 타투르가 존재해야 남부의 일족도 살 수 있고 남부의 힘이 있다면 제국 역시 타투르를 쉽사리 손 데지 못하겠지.”
“동맹을 맺자는 말이오?”
스완 무카리의 말에 카릴은 잠시 말을 멈추었다.
“조금 다르지. 거래라고 하지 않았나.”
“무슨 의민지…….”
“대초원을 노리는 나머지 부족들을 처리해 주겠다. 그 대신 너희는 나락 바위까지 가는 길을 터다오.”
여전히 스완은 가늠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조금 전의 자신들을 수하로 두겠다고 말했던 카릴의 의도를 아직 파악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조금 더 설명 필요하겠군. 나락 바위를 지키고 있는 창 일가를 비롯한 5대 일가를 만나게 해달라는 의미다.”
“그들은 우리보다도 더 호전적인 자들이오.
“걱정 마라. 5대 일가를 한자리에 모이게만 해준다면 내가 너에게 그들을 다스리게 해줄 테니까.”
“…….”
스완 무카리는 너무나도 허무맹랑한 소리인지라 짐작이 가지 않았다.
대초원의 3부족을 처리하는 것만도 어려운 일이었다. 수십 년간 서로 싸워왔음에도 결말이 나지 않았는데 그것도 모자라 5대 일가까지.
그건,
남부 일대에 내로라하는 부족들을 모두 정복하겠다는 말이었다.
무모해 보이는 계획이었지만 카릴이 그리는 큰 그림에는 당연한 것이었다.
‘대초원의 4대 부족과 나락 바위의 5대 일가. 그 정도를 내 밑으로 두지 않는다면 밀리아나의 디곤을 굴복시킬 수 없다.’
용의 여제 밀리아나.
그녀는 전생에 있어 신탁을 이끌었던 카릴을 따랐던 10인의 기사 중 한 명이었다.
비록,
과거의 옛 동료였으나 지금은 아무런 접점도 없는 상황에서 그녀를 자신의 것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단 하나의 방법밖에 없었다.
힘(力).
압도적인 권세로 일족을 흡수하는 것밖에는 없었다.
‘그러기 위한 전제조건.’
카릴은 나르 디 마우그의 레어에 가기 전, 자신이 세운 커다란 그림의 한 조각을 완성하고자 했다.
“뭐, 말로 해서는 못 미덥겠지. 내가 나머지 3부족을 처리한 뒤에 대화를 계속하는 게 좋겠군.”
그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섰다.
하지만 나머지 두 사람.
미하일과 에이단은 어쩐 일인지 여전히 가만히 앉아 있었다.
“그리고…….”
쩌적- 쩌저적–!!
그때였다.
카릴의 주위에서 차가운 냉기가 뿜어져 나오며 그의 발아래에서부터 새하얀 서리가 얼기 시작했다.
서걱-
허리춤에 달려 있던 얼음 발톱이 날카롭게 뽑혔다.
반응할 수도 없는 속도에 키누 무카리는 카릴의 발검을 보고서도 움직이지 못했다.
“대초원의 주인이라는 이름을 달고자 한다면 명예롭게 행동해라.”
스완 무카리가 물고 있던 파이프가 잘려 바닥에 떨어졌다. 그제야 천막 안에 있던 비궁족 사람들이 카릴을 향해 활을 겨누었지만 이미 얼음 발톱은 스완의 목에 닿아 있었다.
“주술을 이런 식으로 쓰면 안 되지. 어디서 맡아 본 냄새라고 했더니 파이프에 든 건 서리뱀풀잎이군.”
“…….”
“주위의 냄비에 끓이고 있는 유카프액과 만나면 차갑게 변하면서 마비 효과가 있고 말이야.”
카릴은 잘린 파이프를 다시 한번 밟아 부러뜨렸다.
“그런데 내가 이 정도 독엔 아무렇지 않거든.”
용의 심장을 흡수한 카릴은 일반적인 마력이 아닌 용마력이 흐른다.
일반적으로 드래곤에겐 어떤 독도 통하지 않는다고 알려져 있다.
비록 혈맥이 제대로 뚫리지 않았다고는 하나 카릴의 용마력 역시 드래곤의 특성을 가지고 있었다.
“지금 당장 두 사람에게 해독제를 줘라.”
카릴은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나는 너희의 능력을 높이 산다. 하지만 허튼짓으로 내가 비궁족이 아닌 나머지 세 부족과 거래를 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게 하지 마라.”
그 순간,
스완 무카리는 자신도 모르게 마른침을 삼켰다.
“그러면 너희는 원하는 것을 얻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