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9th Class Swordmaster: Blade of Truth RAW novel - Chapter (73)
9클래스 소드 마스터 : 검의 구도자 9클래스 소드 마스터 – 검의 구도자-73화(73/497)
62. 에이단의 고민
동방국.
제국과 공국 그리고 삼국 등 다양한 왕국과 이민족들이 살고 있는 대륙에서 배를 타고 동쪽으로 수십 일을 건너가야 도착할 수 있는 작은 섬.
그곳은 마력에 관하여 대륙에서는 볼 수 없는 특이한 술법들을 볼 수 있다고 알려져 있다.
특히.
섬의 주인이라 불리는 단체.
암연(黯然).
동방 섬은 가문도 성주도 없음에도 불구하고 섬의 주인은 오직 암연을 계승하는 자에게 주어진다.
일인전승(一人傳承)의 전통은 동방 섬의 명예이자 자존심이었다.
암연의 주인은 온갖 술법에 능통하며 소드 마스터와 대마법사에 견주어도 손색이 없다, 라는 것이 세간의 평이었으나 동방 섬의 주인을 본 사람은 수십 년 동안 아무도 없었다.
에이단 하밀은 한 가지 명을 받고 섬에서 벗어나 대륙으로 오게 되었다.
‘2황자인 올리번이 황제로 추대될 수 있도록 도와라.’
처음 명을 받았을 때만 하더라도 재상의 추대를 받고 있는 1황자와는 달리 이렇다 할 입지도 제대로 없는 그를 어떻게 황제로 추대할 수 있는가 에이단은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러나 그가 동방 섬에서 비밀리에 제국에 도착했을 때 놀랍게도 대륙최강검이라 불리는 소드 마스터 크웰 맥거번이 2황자인 올리번의 편에 서겠다고 공표하는 사건이 있었다.
어떤 이유인지는 아직도 모른다.
하지만 분명 한 것은 이미 섬과 황자 간의 계약이 끝났다는 것이며 자신은 그저 명령에 따라 올리번 슈테안을 보필하면 된다는 것이다.
자신은 2황자와 그 어떤 연결점도.
친분도.
충성심도 없었지만 말이다.
‘암연 출신자는 그 어떤 의문도 가지지 않으며 오직 주인의 명령에 따라야 한다.’
에이단 하밀은 단 한 번도 그에 대한 의심을 하지 않았다.
어떤 소년을 만나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
원초적일지 모르지만 그가 카릴에게서 느끼는 가장 큰 고민은 우습게도 카릴이란 사람 그 자체였다.
‘동방 섬은 제국과 상관없지만 어쨌든 올리번 슈테안을 지지하기로 결정을 내렸다. 그건 곧 주인께서 생각하시길 그 역시 충분히 가치 있는 자라는 의미.’
에이단은 마차에 실은 잘린 쌍두수리의 머리에 아무렇지 않게 기대어 눈을 감고 있는 카릴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잘도 아직 피가 마르지 않은 머리 위에서 태연하게 잔다니까.’
대담하다고 해야 할지 무덤덤하다고 해야 할지…….
도무지 12살의 꼬마라고는 상상이 가지 않는 그의 행동에 에이단은 때론 카릴의 나이를 잊게 되는 기분이었다.
‘나는……. 어째서 자꾸 실수를 반복하는 거지.’
그는 이마를 짚었다.
“하아…….”
오랜만에 피를 봐서일까.
마굴에서 쌍두수리의 목을 베고 난 뒤 뭔가 기억이 나간 사람처럼 자신의 신분을 망각한 채 카릴에게 따지듯 말해버렸다.
‘지금까지도 눈 가리고 아웅 하는 식이었다지만 이렇게 되어버리면 이제 그마저도 물 건너갔군.’
카릴은 이미 자신이 동방 섬 출신이라는 것을 알고서 미하일에게 마력변형을 가르치라고 했으니까.
‘주크……. 그녀의 정체까지 그럼 알고 있을까.’
모르긴 몰라도 타투르의 여관에서 아주 잠깐 느꼈던 살기를 생각하면 장담할 수 없었다.
‘미치겠군…….’
타투르를 떠난 뒤부터 여태 한 번도 그녀에게 소식을 전하지 않았다.
지금쯤이면 더 이상 자신의 보고를 기다리지 않고 그녀 역시 독자적으로 움직일 것이다.
‘어쩌면 나에 대한 보고까지 들어갔을지도 모르겠군.’
“왜 그러십니까? 마굴에서 나오고 난 뒤부터 안색이 안 좋아 보이세요.”
마차 안의 침묵이 싫은 듯 미하일이 마부석에 함께 앉아 있는 그에게 말을 건넸다.
“미하일.”
“네?”
“넌 나를 어떻게 생각하지?”
“그게 무슨……?”
“그냥. 교도 용병단에서 지금까지 네가 본 내가 어떤가 해서. 평범했나?”
에이단은 스스로도 우스꽝스러운 질문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의외로 진지하게 미하일은 고민을 하는 듯 말했다.
“평범하지 않죠. 솔직히 카릴 님도 대단하지만 제게 있어 마법 스승이라고 할 수 있는 사람은 에이단 씨인 걸요.”
“뭐? 내가 왜?”
“마력변형을 가르쳐 주신 것도 그렇고……. 풍 마법을 익히는데 이해하기 어려운 공식들도 도와주셨잖아요.”
‘……그건 네가 뛰어나서 알려주지 않은 부분까지 깨우쳐서 익혀 버린 거잖아. 게다가 마법 공식이야 며칠만 지나도 이해했을걸.’
에이단은 진실을 말하고 싶었지만 꾹 참았다.
“그런데 이번에 마굴에서 싸우는 걸 보니 마법뿐만 아니라 검술도 엄청난 걸 알았으니까요.”
미하일은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다.
“게다가 카릴 님하고 같이 계신 분이 평범할 리가 없다는 느낌이랄까요? 솔직히 마굴에서 싸우는 모습을 보고 역시나 하고 생각했어요.”
“……그런가.”
너무나도 당연하게 말하는 미하일의 모습에 에이단은 지금껏 오히려 숨기려고 했던 것이 우습게 생각되었다.
“에라이.”
그는 고삐를 미하일에게 넘기면서 마부석의 등받이에 기대었다.
“나도 모르겠다.”
“네?”
“아냐. 아무것도.”
이제 와서는 어째서 이런 고민을 하는 것인지 이유를 찾는 것조차 우스운 기분이었다.
스르륵-
그때였다.
마부석 뒤에 천막이 걷히자 에이단은 흠칫 놀라며 뒤를 바라봤다.
“이, 일어나셨습니까?”
눈을 비비며 피곤한 듯 기지개를 피는 카릴은 고개를 끄덕이며 주위를 바라봤다.
“도착했군.”
저 멀리 보이는 천막들.
“네?”
눈이 좋은 에이단조차 눈에 들어오는 것은 드넓은 지평선일 뿐이었다.
“보이는 게 아냐. 위치를 아는 것일 뿐.”
“그렇군요.”
에이단은 이제 포기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끈질긴 녀석……. 마차 안에서까지 환영 공간을 만들어서 수련하는 놈이 어디 있냐?]카릴은 귓가에 들리는 알른의 목소리에 가볍게 웃고 말았다.
‘마굴에서 둘의 모습을 보니 나도 모르게 피가 끓었나 보지. 갈 길이 멀어.’
“으흠.”
그는 저 멀리 주시하며 나지막하게 말했다.
“대초원의 주인을 가릴 회담의 장소.”
투(鬪) 부족의 마을, 아탕카.
* * *
쿵-
“…….”
사람들의 시선이 쌍두수리의 머리로 쏠렸다. 카릴은 수군거리는 그들의 웅성거림을 즐기는 듯 팔짱을 낀 채로 말했다.
“당신이 족장인 투난인가.”
말과는 달리 카릴은 마치 오래된 친우를 부르는 것 같이 친근하게 말했다.
“이건 부족을 방문하기 위한 선물이다.”
“건방지고 무례한 선물이로군.”
미하일과 에이단은 긴장된 얼굴로 두 사람의 대화를 들었다.
‘단장님을 보는 것 같은 느낌이네.’
‘마을 사람들도 하나같이 고수. 육체의 능력만 봐서는 암연의 수제자들에 버금갈 정도야.’
부족의 입구에서부터 막사 안쪽까지 자신들을 바라보던 사람들에게서 느껴지는 위압감.
하지만 그 위압감을 우습게 짓눌러 버릴 정도로 족장에게서 풍기는 아우라는 차원이 달랐다.
“흐음.”
구릿빛을 넘어 새카맣게 탄 피부와 터질 것 같은 근육 그리고 부리부리한 눈매는 당장에라도 자리를 박차 세 사람을 집어삼킬 것 같았다.
꿀꺽-
두 사람은 자신도 모르게 족장의 말 한 마디 한 마디에 마른침을 삼켰다.
“마음에 드는군.”
그러나 그들의 걱정과 달리 쌍두수리의 잘린 목에서 눈알을 뽑아내며 씨익 웃었다.
와드득.
커다란 눈알을 그대로 씹어 먹자 미하일은 차마 똑바로 보지 못하겠다는 듯 헛구역질을 하며 고개를 돌렸다.
“마굴의 주인은 대초원의 부족들도 건드리지 않는 것인데 이걸 잡은 용사가 누구지?”
“지금 당신을 보고 토하고 있는 저 녀석.”
“뭐? 나랑 장난하나?”
“설마. 여기까지 와서 미쳤다고 거짓말을 하겠어. 아니면 당신들이 자랑하는 전사들도 하지 못한 일을 저기 비실거리는 녀석이 해서 기분이 나쁜가?”
“우읍……. 비실이라뇨.”
족장은 못마땅한 눈으로 미하일을 바라봤다.
“우리가 마굴을 건드리지 않는 것은 하지 못해서가 아니라 안 하는 것이다.”
“그건 모르지. 대초원의 4부족 중에 그 누구도 마굴을 소탕한 적이 없으니까.”
“…….”
화를 돋우듯 카릴은 능숙하게 족장의 심기를 건드렸다.
‘불안한데. 당장에라도 한 판 붙으려는 사람 같잖아. 아무리 그래도 여긴 적진 한가운덴데…….’
에이단은 조심스럽게 품 안에 있는 단검에 손을 가져가며 만일의 사태를 대비했다.
“소문은 들었다. 비궁족과 결탁한 제국인이 있다고. 그게 너희들이란 것을 알겠다. 지금 우리들과 붙고자 쌍두수리의 목을 가져온 것인가?”
투난의 말에 카릴은 가볍게 웃으며 나머지 한쪽 눈까지 뽑아냈다.
미하일은 그 모습에 다시금 속이 뒤집히는 느낌이었지만 이번엔 간신히 올라오는 것을 참았다.
“아니. 그건 정말 선물이다.”
카릴은 아무렇지 않게 쌍두수리의 눈알을 잡은 손을 족장의 앞에 펼쳤다.
“쌍두수리가 정력에 좋다잖아. 투 부족의 족장이 영 요즘 밤에 시원찮다는 소문이 북부에까지 들려서 말이야.”
“이게……!!”
그 순간.
투난의 뒤에 서 있던 호위병이 인상을 구기며 달려들려 했다.
‘4부족을 통합하려는 게 아니라 다 죽여 버릴 생각으로 온 건가.’
에이단은 도무지 카릴의 생각을 읽을 수가 없었다.
“움직이지 마.”
그때였다.
움찔-
카릴의 말 한마디가 떨어지자마자 조금 전 호위병이 마치 굳어버린 것처럼 멈춰섰다.
“아무리 못 배운 야만족이라도 우두머리끼리의 대화에 부하가 끼어드는 게 아니다.”
스으응—
“…….”
언제 뽑은 것인지 알지 못했다.
단지 호위병의 목젖에 날카롭게 닿아 있는 얼음 발톱의 검날이 파르르 떨리고 있을 뿐이었다.
“목이 날아가기 싫으면.”
온몸에 소름이 돋는 기분을 느꼈다.
그 순간.
에이단 하밀은 깨달았다.
자신이 황자의 명령을 받고 수안 하자르를 도망치게 만든 범인을 조사하기 시작한 그때부터.
카릴이 타투르의 주인이 되었을 때도.
그리고 주크 디 홀드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위험을 감수하고 그의 앞에 다시 나타나 그를 따라온 것도.
모두 저것 때문이라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구나.’
에이단 하밀은 부족의 목에 아무렇지 않게 검을 겨누고 있는 그를 바라봤다.
“큭.”
얼음 발톱이 지그시 남자의 어깨를 누르자 그는 카릴의 힘을 이기지 못하고 인상을 구기며 천천히 무릎을 꿇었다.
“하……!!”
부족을 향해 오던 마차 안에서 카릴을 바라보며 들었던 의문.
그리고 자신이 카릴이란 소년에게 매료되어버렸다는 사실.
그 이유…….
태어날 때부터 명령을 수행하고 임무를 완성하도록 만들어진 자신과는 정반대의 삶.
패도의 길을 걷는 카릴의 모습.
그 모습은 언제나 웃고 있으며 자유분방한 가면 속에 감춰져 있는 자신의 굴레이자 꿈과 같은 것이었다.
“…….”
꽈악-
에이단은 자신도 모르게 주먹을 쥐고 말았다.
‘타투르 4인의 관리자, 교도 용병단 단장, 아조르의 영주……. 그리고 남부의 야만족까지.’
황자의 신분이 아닌 밑바닥에서 올라온 그는 단 한 번도 자신을 굽힌 적이 없었다.
평민은 평민의 삶이.
귀족에게 귀족의 삶이 정해져 있고 동방 섬의 살수로 태어난 자신은 오로지 사람을 죽이는 일만을 알아 왔다.
‘언제였지?’
그가 사람을 죽이지 않은 지가.
꿈에서라도 상상할 수 없는 자신의 모습을 너무나도 당연하게 만들어 놓았다.
마치.
신이 정해 놓은 운명을 거절(拒絶)하는 당당함.
“그렇군.”
“네?”
미하일은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리는 에이단을 바라봤다.
‘나는…….’
에이단 하밀은 태어나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절대로 담을 수 없는 생각을 하고 말았다.
그것은.
자신의 운명을 바꾸게 될 다짐.
‘명령이 아닌 내 의지로 주인을 정하고 싶었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