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9th Class Swordmaster: Blade of Truth RAW novel - Chapter (74)
9클래스 소드 마스터 : 검의 구도자 9클래스 소드 마스터 – 검의 구도자-74화(74/497)
63. 황궁에서의 움직임
“명성이 자자한 교도 용병단의 고든 파비안을 이렇게 뵙게 되다니. 실로 영광이오.”
구슬이 굴러가는 듯한 경쾌한 목소리가 황궁 안에 울려 퍼졌다.
“…….”
거대한 체구에서 무거운 시선이 1황자 루온을 내리깔 듯 내려다봤다.
“흠.”
고든은 눈앞에 황자를 대수롭지 않다는 듯 하품을 하며 지나쳤다.
매끈한 루온의 얼굴이 사정없이 구겨졌지만 그런 그를 황급히 재상인 브린 이니크가 만류했다.
‘교도 용병단의 힘은 저희들에게 무척이나 중요합니다.’
알고 있다는 듯 입맛을 다시며 루온은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한 번의 친분으로 날뛰는 괴물 같은 그들을 얻을 수 있으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저까짓 녀석들이 대단해 봐야 일개 용병단. 황궁에 온 것도 원하는 게 분명 있을 터. 그걸 만족시켜 주기만 하면 돼.’
지금껏 황권의 우위는 제1황자에 있는 것은 틀림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크웰 맥거번 제2황자인 올리번의 편에 서는 순간 사태가 이상하게 흘렀다.
대륙최강검.
그 이름이 가지는 영향력은 생각보다 컸다.
‘무력으로 크웰 경을 상대할 수 있는 자들 중 자유로이 움직일 수 있는 자는 결국 고든 파비안뿐.’
재상은 어째서 황제가 자신에게도 비밀로 하고 교도 용병단을 부른 것인지 궁금했지만 이번 기회를 결코 놓치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황도에 들린 것은 그저 황제 폐하와 수십 년간 거래를 해왔기 때문이다. 근래에 건강이 좋지 않다는 소문이 있던데 그 이유를 알겠군.”
고든은 루온을 가리키며 말했다.
“제이건, 함선의 창고 안에 오우거의 피가 있지?”
“네. 아마 세 통 정도 있을 겁니다.”
“한 통을 꺼내서 폐하께 드려라. 골치가 아프실 테니. 두통에도 좋지만 오래오래 사셔야 하지 않겠냐.”
“알겠습니다.”
그의 말에 루온은 얼굴은 더더욱 구겨졌다.
태어나서 이런 대우는 처음이었다.
게다가 장소도 자신의 터전이 아닌 황궁 한가운데에서 버젓이 자신을 무시했으니까.
“허허……. 단장께선 여전하시외다.”
그때였다.
복도의 끝에서 들리는 낮은 목소리.
왜소한 체구에 로브를 입고 있는 한 노인이 천천히 걸어와 그에게 가볍게 인사했다.
“궁정마법사 카딘 경이로군. 아직 신에게 가지 않는 걸 보니 내가 전에 드린 드레이크의 뇌수가 잘 맞나 보군.”
고든은 피식 웃으며 그에게 말했다.
“그거 사실 정력에도 좋은데. 좀 아깝게 되었어.”
저속한 농담에도 불구하고 카딘 루에르는 아무렇지 않게 그 말을 넘겼다.
루온 황자와 재상 브린 이니크는 지금껏 중립을 지켜 온 궁정마법사의 등장에 긴장하지 않을 수 없었다.
‘뭐지? 아조르에 간다던 양반이 언제 돌아온 거야. 귀신같이 소문을 듣고 이동마법이라도 쓴 건가. 이래서 마법사들은…….’
재상의 눈을 흘기며 카딘은 덥수룩하게 자란 수염을 쓸어내리며 말했다.
“클클……. 뇌수는 마법 연구를 위해 잘 썼소이다. 황궁에 온 것이 얼마 만이오. 차나 한잔하는 게 어떻소.”
“차는 개뿔. 술이라면 모를까. 하지만 여기서 술을 마시면 속이 뒤집어질 것 같으니 나는 함선으로 돌아가서 마시겠어.”
재상과 궁정마법사 그리고 황자까지.
단 한 명만 있어도 고개를 조아릴 수밖에 없는 신분들 앞에서도 그는 여전히 당당했다.
“카미주산 적포도주가 들어왔는데 말이오.”
고든은 그의 말에 입맛을 다셨다.
“그거 맛있지. 내 함선으로 몇 통 보내주면 되겠군. 어차피 마법사들은 술맛도 모르니까.”
다시 한번의 거절.
“허허……. 알겠소. 그러지.”
카딘 루에르는 이 이상은 의미가 없다는 것을 아는지 발을 뺐다.
구태여 자존심마저 버릴 필요는 없으니까.
“그 뒤에 있는 애송이는 뭐지? 새로 뽑은 제자라도 되는 건가?”
“크웰 경의 아들이오. 최근에 루레인 공국의 첩자가 제국에서 일을 벌인 사건이 있었소외다. 그때 뛰어난 기질을 보인 아이라네. 황궁에 보고를 위해 왔다 눈에 띄어 조금 가르치고 있소.”
말끔하게 생긴 외모는 마법사들이 풍기는 이미지에 어울렸지만 고든의 눈엔 그 소년의 나이는 비록 어려도 마법사를 하기엔 좀 더 날카롭게 느껴졌다.
“티렌 맥거번입니다.”
‘크웰의 양자로군. 그럼 그렇지.’
이름을 듣자마자 고든은 피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표정을 보아하니 재상도 몰랐던 눈친데. 역시, 너구리 같은 늙은이야.’
“네 녀석이 크웰의 아들이로군. 여기저기에서 양자를 들여 벌써 수십이라던데. 그중에 한 놈인가.”
“둘째입니다. 그리고 아버님께서는 여기저기에서 받아들이시진 않습니다. 저희 형제는 모두 다섯입니다.”
“재미없는 놈이로군.”
고든은 다른 사람들과 달리 흔들림 없이 대답하는 티렌을 바라보며 입맛을 다셨다.
‘탑에 틀어박혀 마법서나 읽을 녀석은 아니겠군.’
“참, 그건 그렇고 지나가다 보니 아조르에 재밌는 소문이 있던데? 마법회 나부랭이들도 공략하지 못한 회색교장이 깨졌다면서.”
“…….”
돌아선 카딘의 발걸음이 멈췄다.
‘회색교장? 7인의 원로회의 무덤이 있던 그곳 말인가. 그가 황급히 황궁을 나갔던 이유가 그거였군.’
재상은 고개를 끄덕였다.
“회색교장의 봉인이 풀린 것은 맞으나 그자 역시 아조르 마법 경연에 우승을 한 인재이외다. 아직은 자유 마법사이지만 재능이 뛰어나니 언젠가 제국을 위해 싸우게 되겠지요.”
“그런가? 그 녀석의 이름은 아나?”
“카릴이라고 하외다.”
“……!!”
그 순간.
줄곧 차분한 얼굴을 유지하던 티렌의 눈썹이 씰룩거렸다. 다른 사람은 느끼지 못했지만 그 찰나의 변화를 고든은 놓치지 않고 물었다.
“어이, 애송이. 아는 놈이냐?”
“아닙니다.”
“흐음.”
“그저 흔한 이름이지요. 대륙에 카릴이란 이름을 가진 사람은 많습니다.”
카딘은 차분히 말했다.
그의 말에 이내 곧 평정심을 되찾은 티렌에 고든은 살짝 그를 흘겨봤다.
“뭐, 나도 재밌는 일이 있긴 했었는데……. 당신 이야기를 들으니 굳이 할 필요는 없을 것 같군.”
‘카릴이라……. 설마 그 꼬마 놈은 아니겠지. 녀석은 타고난 무골(武骨)에다가 마력을 쓰는 것도 익숙지 않았으니까. 고작 몇 달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마법사의 반열에? 말도 안 되는 일이지.’
고든은 궁정마법사의 입에서 카릴 이란 이름이 나왔을 때 속으로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럼, 이만.”
카딘 루에르는 다시 한번 턱을 쓸며 조용히 물러서자 그의 뒤를 티렌이 따랐다.
턱-
두 사람이 사라지자 고든은 흥미롭다는 듯 팔을 들어 루온의 어깨 위에 팔을 얹었다.
“……!?”
“애송아, 용병이 어째서 용병인 줄 아느냐.”
자신을 짓누르는 무게에 루온의 몸이 휘청거렸다.
무례하기 짝이 없는 행동임에도 불구하고 그를 막을 자는 없었다.
“너 늙은이 봤지? 어디에 붙는 게 이익일지 갖은 경우의 수를 다 가지고 있는 것을. 단순히 돈으로만 움직이는 게 아니다. 이익이 있어야 하는 것이지. 때론 이런 큰 판에서는 물질보다 더 큰 것 말이야.”
“…….”
“먹음직스러운 제안을 가져온다면 나는 제3황자의 편에도 들 수 있다. 그게 용병이다.”
그는 아무렇지 않게 말했지만 그 말은 새로운 파국을 만들어 낼지도 모르는 것이었다.
황권 다툼에서 밀린 제3황자 크로멘.
고작 7살밖에 안 되는 세상 물정 모르는 아이.
하지만 나이는 중요하지 않았다.
그의 말대로 자신과 올리번의 싸움에서 뜬금없이 교도 용병단의 칼날까지 막아야 한다면.
그 피해는 엄청날 것이다.
“하하. 단장, 농담이 지나치십니다.”
“글쎄. 그럴까.”
재상은 고든의 말을 무마하기 위해 억지로 웃었지만 그는 재밌다는 듯 묘한 웃음을 지었다.
“황제께서 나를 부른 게 어쩌면 이 말을 하게 하기 위함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드는군. 노쇠했다 하더라도 제국을 세운 남자다.”
그는 가볍게 그의 어깨를 두들기고는 말했다.
“또 보지.”
두 사람은 더 이상 아무런 말을 하지 못한 채 그저 고든의 뒷모습을 바라볼 뿐이었다.
* * *
“교도 용병단의 단장님이시죠.”
“오늘따라 나를 찾는 꼬마들이 굉장히 많군. 귀찮으니 예를 대할 때 가거라.”
“원하시면 3황자를 먼저 만나도 괜찮습니다. 기다리겠습니다.”
“…….”
황궁의 끝에서 밖을 나가기 직전.
고든은 자신을 붙잡는 흥미로운 소년을 바라봤다.
나이는 12살 남짓.
복도에서 그가 했던 말을 듣기라고 한 것일까.
그렇다면 당장에라도 죽일 수도 있겠지만 그는 눈앞의 소년을 바라보며 피식 웃었다.
“네가 올리번이로군.”
“반갑습니다.”
“자신이 있는 모습이로군. 건방진 네 형과는 또 다른 모습이지만 너 역시 시건방지구나.”
“모름지기 황제의 핏줄을 받았다면 그리한 것도 이상한 것이 아니죠. 칭찬으로 듣겠습니다.”
올리번은 고든의 앞에 서 있으면서도 능숙하게 말했다.
“크하하. 제이건, 방금 들었냐. 황자님께서 아주 재미있구나.”
“아, 네…….”
고든과 달리 복도에서부터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처럼 행동하는 그 때문에 부단장 제이건은 안절부절못한 채 말을 흘렸다.
“맛있는 차를 대접하겠습니다.”
“미친, 난 차 따윈 안 마셔. 술이라면 모를까. 하지만 궁정마법사 양반이 이미 좋은 술을 주었으니 그것이나 마시련다.”
“아쉽게도 제 나이가 어려 대작(對酌)은 불가하나 아마 술보다 더 맛있으실 겁니다.”
“…….”
고든은 올리번을 흥미롭게 바라봤다.
‘어디서 나오는 자신감이지. 서자 출신이라고 들었는데 아비의 피는 이쪽이 더 진한 것 같구나.’
흐르는 침묵.
“얼마나 맛있는지 한번 볼까.”
“네?”
그 순간.
제이건은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그가 알기로 고든 파비안이 평생 동안 스스로 차를 마신 적은 딱 한 번뿐이라고 알고 있었다.
바로.
현 황제 타이란 슈테안을 처음 알현했을 때.
* * *
“내 소식이 전해졌다는 건, 투 부족 이외에 다른 부족들도 이곳에 있다는 말이겠군. 어디 있지?”
카릴은 막사 안을 훑어봤다.
그러고는 마치 예상하고 있다는 듯 말했다.
“선택을 잘했어. 비궁족을 제외하고 나머지 세 부족이 이따금 회담을 여는 장소가 여기라고 들었거든.”
그의 말에 라후와 리수 부족의 족장들은 얼굴이 굳어졌다.
무리들 사이에 있는 둘을 바라보며 카릴은 낮게 웃었다.
“얼굴색이 변하는 걸 보니 당신들이군. 좀 치사하지 않아? 대초원의 주인을 두고 경합을 벌이는 세 부족이 내가 왔다고 이렇게 쪼르르 이곳에 모이고 말이야.”
카릴은 두 사람 중 왼쪽에 있는 남자를 가리키면서 말했다.
“물론, 라후 부족은 제외하지. 이미 권세가 경합에서 멀어졌으니까. 어디에라도 붙는 게 맞지.”
“네놈……!!”
그러자 오른쪽에 있는 남자가 으르렁거리듯 무거운 중저음으로 말했다.
“아, 저쪽이 아니고 그쪽인가? 뭐……. 리수 부족도 썩 나은 상황은 아니라고 들었는데.”
“손님에 대한 예우는 여기까지다. 더 이상 분란을 일으킬 거라면 썩 꺼져라. 그렇지 않으면 네 목을 막사의 지붕 위에 걸어 놓을 테니. 남부인은 제국인을 반기지 않는다.”
“그런 나와 비궁족은 거래를 했다.”
“그놈들은 남부의 자존심을 버리고 살기 위해 대륙과 거래를 하는 놈들이다.”
투난은 카릴의 말을 끊으며 소리쳤다.
우레와 같은 그의 노성에 미하일과 에이단은 자신도 모르게 몸을 움찔거렸다.
“그건 당신들도 마찬가지 아닌가? 마굴에서 나오는 마물의 시체를 팔아 연명하잖아. 내가 타투르의 주인이라는 것도 들었는지 모르겠네.”
“큭…….”
“암시장과 거래하는 건 비단 비궁족만이 아니야. 마물의 시체를 사는 괴상한 놈이 누가 있겠어? 제국의 정신 나간 귀족들이나 하는 짓이지.”
“비궁족을 협박한 것처럼 타투르와의 거래를 가지고 우릴 협박할 생각인가?”
라후 부족의 족장이 카릴에게 물었다.
세 부족 중에 가장 마물 사냥에 기대는 크기가 큰 만큼 암시장과의 거래는 절대적인 것이었다.
“남부의 자존심 운운하는 것 치곤 반응이 너무 즉각적인데.”
“…….”
카릴의 말에 족장은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돌렸지만 이미 사태의 심각성에 대해서는 충분히 보여주는 반응이었다.
“비궁족에게도 말했지만 그런 치졸한 짓으로 당신들과 거래를 할 생각은 없다. 서로 간의 신뢰가 있어야 하지 않겠어?”
“그럼?”
“남부의 부족들 중 특히나 대초원의 부족들이 가지는 가장 큰 문제점이 식량이란 걸 알고 있다.”
“…….”
“내게 힘을 빌려준다면 새로운 땅을 가질 수 있도록 해주겠다. 물론, 농사를 지을 수 있는 땅으로. 뿐만 아니라 농사법과 필요한 농기구들 역시.”
카릴의 말에 족장은 인상을 찡그렸다.
“남부에 남아 있는 땅이 있을까? 나락 바위에 있는 5대 일가는 물론이거니와 디곤 일족을 건드리는 건 자살 행위다.”
“대초원에서 가장 용맹하다는 투 부족의 족장도 두려운 게 있긴 있나 보군. 걱정 마라. 언젠가 그 둘도 정리를 하겠지만 남부인들끼리 싸우라는 의미는 아니다.”
“그럼……?”
모두의 시선이 카릴에게 쏠렸다.
마치 기다렸다는 듯 그는 천천히 한 글자 한 글자에 힘을 주며 말했다.
“중앙 진출(中央 進出).”
“……!!”
그 순간 세 명의 족장의 눈이 흔들렸다.
“남부를 벗어나 위를 향해 보는 건 어때. 그렇다면 내가 너희들에게 제국이 가진 땅의 1/5을 주겠다. 물론, 남부의 당신들 땅 역시 그대로 유지될 것이고.”
에이단은 그의 말에 자신도 모르게 무릎을 탁 치고 싶은 생각이었다.
‘비궁족에겐 대초원을 주겠다고 거래를 하고 나머지 세 부족에겐 제국의 땅이라…….’
말도 안 되는 얘기라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거야말로 명안이군.’
서로 간에 원하는 것을 충족시킬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기도 했으니까.
그리고 실제로도 그렇게 생각했다.
중앙 진출은 대초원의 부족들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생각해 본 일이자 염원하는 꿈이었기 때문이다.
“제국 땅의 1/5을 주겠다고? 그 말은 제국을 치겠다는 말인가.”
하지만 명안임과 동시에 허무맹랑한 소리이기도 했다. 세 명의 족장들은 12살의 꼬마가 하는 소리에 쉽사리 넘어가지 않았다.
“그렇다.”
“미친…….”
“대초원이 나에게 힘을 실어 준다면 그다음은 5대 일가까지도 가능하겠지.”
“디곤은?”
“그쪽은 따로 생각해둔 것이 있지만 당신들의 대답을 듣지 않은 상황에서 얘기해 줄 수는 없을 것 같은데.”
카릴은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당신이 그만한 능력이 있는지 어떻게 증명할 것이지?”
“남부에 왔으면 남부의 규율을 따라야지. 당신들이 힘의 증명을 하기 위해 하는 것이 있잖아?”
그 순간.
족장을 비롯한 부족원들의 얼굴이 굳어졌다.
“대수렵(大狩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