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9th Class Swordmaster: Blade of Truth RAW novel - Chapter (85)
9클래스 소드 마스터 : 검의 구도자 9클래스 소드 마스터 – 검의 구도자-85화(85/497)
71. 나락 바위 전투 (2)
“이걸로……. 된 건가.”
연두색 갑옷으로 수를 놓았던 나락 바위는 이제 핏물로 뒤덮여 붉게 변해 있었다.
“생각보다 별다른 저항 없이 물러간 것 같은데요. 그나저나 서펀트의 무용이 엄청나네요.”
그렇게 말하면서도 미하일은 다리에 힘이 빠졌는지 주저앉고 말았다.
그는 수십 명의 기사를 순식간에 즉사시킨 녀석을 힐끔 바라보며 말했다.
[이놈이 내가 만든 파수병이 저 멍청한 괴물보다 더 많은 기사를 짓이겨 버렸는데 왜 한마디도 안 하는 거야?]알른은 미하일의 주변을 맴돌면서 기분 나쁘다는 듯 말했다.
카릴은 그런 그를 보며 가볍게 웃었다.
“나르일은 호락호락한 인물이 아니야. 이단섬멸령이 내려진 마당에 제국 친위기사단이 야만족에게 패배를 했다는 게 알려지면 어떻게 되겠어. 어쩌면 포기하지 않았을 거야.”
꿀꺽-
너무나도 아무렇지 않게 말하는 바람에 마치 남의 일을 얘기하는 것 같이 들렸다.
“나락 바위 위에 있던 기사들의 수는 50명이 채 되지 않았어. 카일라 창이 봤던 수보다 적어. 아마 4대 일가를 치기 위해 병력을 밑에 대기 시켜놨던 거겠지.”
“그럼…….”
“다시 공격을 해 올 거란 말인가요?”
“가능성이 완전히 없는 건 아니지. 아니면 나머지 다른 야만족들을 습격할 수도 있고.”
[잘됐네. 이참에 다시 쓸어버려. 너에게 옛정이라고 해봐야 저치에겐 아직 겪지 못한 미래일 뿐이야.]“…….”
카릴은 얼음 발톱을 검집에 넣고서는 비전의 샘을 막고 있는 파수병을 바라봤다.
“그전에 이곳에서의 일을 끝내야겠지.”
[내 말은 듣는 시늉도 없군.]알른은 낮은 한숨을 내쉬고는 어깨를 으쓱했다.
[크우우우…….]마치 그의 말을 알아듣는 것처럼 파수병의 가슴에서 옅은 보랏빛이 흘러나왔다.
카릴의 말에 사람들은 긴장된 표정으로 서로를 바라봤다.
급습이 통한 것처럼 보였지만 사실 카릴이 기사들을 제압한 것 이외에 나머지 사람들은 단 한 명도 죽이지 못했다.
베이칸과 키누 무카리는 그들과의 검을 맞대 본 뒤에 그들과 자신들의 실력 차이를 절실히 느낄 수 있었다.
‘저런 자들이 한 둘이 아니다. 저들을 상대로 정말로 중앙 진출이 가능할까…….’
‘내 힘이 어디까지 닿을 수 있을지 의문이로군. 이대로는 안 돼. 더 강해져야 한다.’
부족 내의 최고의 전사라 칭해졌던 두 사람이었기 때문에 더더욱 고민에 빠지기 충분했다.
하지만 카릴은 그들의 마음을 이미 예상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 역시 똑같았으니까.
신탁이 내려지고 어째서 이민족이었던 자신이 선택을 받았는지는 모르지만 제국인들 사이에서 그는 존재를 증명해야 했다.
마력을 쓰는 자들보다 더 뛰어난 실력.
비등한 것으로는 부족하다.
압도적으로 그들을 찍어 누르며 자신의 태생에 그 어떤 말도 꺼내지 못하게 해야 했다.
뼈를 깎는 고통.
남들의 몇 배는 되었을 훈련.
카릴의 검에 대한 자질은 마력의 유무를 떠나 월등했지만 베이칸과 키누 무카리 역시 대전사의 칭호에 어울릴 만큼 뛰어난 자들이었다.
‘많이 고민하고 생각해라. 너희들 역시 강해질 수 있다. 마력이 없어도 더 뛰어난 전사가 되는 건 불가능한 일이 아니니까.’
실제로 자신이 그렇게 했으니까.
카릴은 두 사람을 비롯해 이민족과 야만족의 힘이 제국과 붙어도 결코 약하지 않음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너 역시.’
그는 고개를 천천히 돌렸다.
자신의 앞에 두건으로 얼굴을 가리고 있는 한 사람.
‘하시르.’
그가 손을 뻗자 활을 겨눈 채 비전의 샘 주위에 포진되어 있던 병력은 마치 처음부터 없었던 것처럼 자취를 감추었다.
카릴조차 기척을 느끼기 어려울 정도였다.
‘역시 늑여우 부족답군.’
“당신인가, 우리에게 그 마법사를 보낸 게.”
“마법사?”
“모른 척하지 마. 자신의 이름을 톰슨이라고 하던데.”
“아……. 그가 직접 움직였군. 역시 경험이 있어서 그런지 눈치가 빨라.”
그의 말에 카릴은 가벼운 탄성을 질렀다.
혹시나 했지만 역시 톰슨은 길드에서 잔뼈가 굵은 남자였다.
‘성과를 보여야 한다는 생각을 했나 보군. 뭐, 확실하게 해준 덕분에 알맞은 타이밍에 와줬으니 나로서는 다행이지.’
카릴은 하시르를 향해 말했다.
“맞아. 내가 그를 북부로 보냈었다. 당신도 알다시피 지금 북부는 이단섬멸령이 내려져 멸족의 위기에 놓여 있으니까.”
“잘도 도망치라고 말했더군. 북부인은 죽었으면 죽었지 도망치지 않는다는 걸 알 텐데.”
“왔잖아. 남부로.”
대수롭지 않은 듯한 그의 말에 하시르의 눈썹이 씰룩거렸다.
두건을 끄르자 자황색의 눈동자가 번뜩였다.
미하일과 에이단은 특이한 그 색을 신기한 듯 쳐다봤다.
‘특이한 색이네. 이민족들을 구분하는 가장 큰 차이점이 바로 저 눈동자 색이라고 하던데……. 북부의 이민족들은 눈동자 색이 검다고 알고 있었는데 모두 그런 건 아닌가 보네.’
에이단의 시선을 느낀 하시르가 살짝 그를 노려보듯 바라보자 황급히 시선을 돌렸다.
“보아하니 이곳의 우두머리가 당신인 것 같은데. 한 가지 더 묻지. 그럼 길에 해 놓은 표식도 당신이 한 건가?”
“맞아.”
카릴의 대답을 듣는 순간 하시르의 손이 빠르게 올라갔다.
착……!! 차차착—!!!
그러자 순식간에 어둠 속에서 화살들이 카릴을 겨누었다.
언제 뽑았는지 알 수 없을 정도로 빠른 속도로 하시르의 양 손등에는 세 개의 날카로운 돋아 나 있는 탈론(Talon)이 뽑혀 있었다.
“제국인이 어째서 이민족의 방식을 알고 있는 거지. 네 정체가 뭐냐.”
자신을 겨누고 있는 수십 개의 화살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카릴은 말했다.
“시체 거미를 쓰는 표식이 꼭 북부인의 것이라고 하면 곤란하지. 남부에서부터 쓰던 거니까. 북부인이 이민족이라고 불린 이유는 남부를 떠나 북부에 정착했기 때문이란 건 당신도 잘 알 텐데.”
“당연히 문제가 되지. 넌 남부인도 북부인도 아닌 제국인이니까.”
하시르의 말에 카릴은 쓴웃음을 지었다.
그토록 얻고 싶었던 마력이었으나 그 덕분에 자신은 오히려 같은 북부인에게 제국인이라는 말을 듣게 되었으니 말이다.
[언젠가 밝힐 날이 올 게다. 제국인으로서 북부와 남부를 통합하는 것. 그게 네가 노린 계획이지 않으냐. 그리고 나중에 짠하고 반전을 꾀하려고 말이야.]‘딱히 그런 건 아냐. 그냥 자유롭게 대륙을 돌아다니기 위함이지.’
[녀석…….]내색하진 않았지만 영혼으로 이어진 알른 자비우스는 카릴의 아쉬움을 느낄 수 있었다.
“북부인들이 과거 중앙을 가로질러 북상하던 때에 제국인들과 섞였던 적이 있지. 혼종이라고 불리지만 이민족과 제국인 사이에서의 자식들도 있고. 이제 이런 방식은 꼭 우리들…… 아니, 야만족의 전유물이라고 할 수 없어.”
카릴은 잠시 말을 고치면서 하시르에게 말했다.
미심쩍지만 그의 말에 하시르는 눈을 흘기며 말했다.
“그렇다면 그 전언은 어떻게 되지? 당신이 어째서 그 말을 알고 있는 거냔 말이다. 게다가……. 분명 그 마법사가 카릴이란 이름을 말했다. 북부의 검은눈 일족의 아이가 너와 어떤 관련이 있지?”
하시르에게서 그 이름이 나오자 사람들이 모두 카릴을 주목했다.
“어? 대장님 이름하고 똑같잖아요.”
“검은눈 일족이라면……. 그 대전사 칭호를 받았던 칼리악이 이끄는 부족이지 않습니까.”
“하지만 제국인들에게 패했다고 들었는데…….”
“…….”
저마다 한마디씩 하는 와중에 에이단만은 침묵하며 카릴의 얼굴을 살폈다.
“같은 이름이라 놀랍겠지. 자세한 설명을 해줄 순 없지만 나는 검은눈 일족과 관계가 있다. 카릴과 마찬가지로 같은 스승의 밑에서 컸으니까.”
“미친……. 네가 말하는 스승이 내가 아는 그 사람이라면 절대로 제국인을 받아들일 리가 없다. 아니, 애초에 검은 눈들에게 걸렸다면 일말의 여지없이 죽었을 텐데.”
“모르는 건 오히려 당신이야, 하시르.”
“……뭐?”
카릴은 낮은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검은눈 일족의 칼리악과 제국의 소드 마스터인 크웰 맥거번은 둘도 없는 친우였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서로의 입장은 다르지만, 검으로서 맺어졌다고 해야겠지.”
“그게 무슨…….”
“북부인들도 모르겠지만 칼리악은 제국인들과의 화평을 원했다. 하지만 황제는 그걸 받아들이지 않았지. 그로 인해서 크웰 역시 자신의 손으로 친우를 죽이게 되었지만…….”
너무나도 믿을 수 없는 이야기에 하시르의 얼굴이 구겨졌다.
“알려진 말과 달리 검은눈 일족은 함부로 제국인을 죽이지 않아. 다른 부족들에게 알릴 순 없지만 나를 거둬 준 것 역시 그러했고. 이것이 그 증거다.”
카릴은 품 안에 단검을 꺼냈다.
아그넬.
“칼리악이 죽기 전 내게 이걸 줬다. 그의 마지막 유지인 것이지.”
투박한 그 단검을 보자 하시르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웃기지 마. 이걸로는 믿을 수 없다. 네가 이걸 갈취한 것일지도 모르잖아?”
“이건 그저 부수적인 것일 뿐이다. 가장 확실한 증거는 이미 말했잖아. 네게 전한 말. 나의 스승인 알테만이 항상 했던 말이니까.”
“…….”
하시르는 할 말을 잃은 듯 카릴을 바라봤다.
“내가 북부인들 중 늑여우를 택한 이유도 알테만의 말이 있었기 때문이다. 직접 본 적은 없지만 당신도 스승님에게 신세를 졌다지.”
알른은 카릴의 모습에 키득키득 웃으면서 재밌다는 듯 말했다.
“나를 믿고 안 믿고는 당신 몫이지만 확실한 건 하나다. 내가 그에게 전언을 보냈고 당신은 그것을 듣고 이곳에 왔다. 내가 네 다른 부족도 아니고 당신에게 톰슨을 보낸 것 같나?”
“…….”
“다른 외골수들과 달리 북부의 이민족 중 늑여우만큼은 내 전언에 머리를 굴릴 거라고 생각했거든.”
확신에 찬 목소리로 말하는 카릴과 달리 하시르의 눈빛엔 여전히 의혹이 가득했다.
‘눈보라를 피하기 위해선 우레 아래 서라. 확실히 알테만 님께서 버릇처럼 하셨던 말이다. 그분께선 북부의 냉기보다 남부의 열사가 차라리 더 그립다고 하시면서 종종 나락 바위에 대한 얘기를 했었다.’
다른 것들은 차치하고서라도 적어도 북부 이민족들의 대스승이라 불리는 알테만에 대한 일화를 알고 있다는 것은 무시 못 할 일이었다.
“언젠가 진실을 알게 되었을 때 너는 내 전언을 따랐다는 것에 감사할 것이다. 그것도 아주 많이.”
카릴은 가볍게 하시르의 어깨를 두들기며 느긋한 표정으로 말했다.
“여기까지 온 김에 조금 더 날 따라와 봐. 그때 돌아간다 하더라도 늦지 않으니까.”
“…….”
그의 모습에 베이칸과 키누 무카리는 예상했다는 듯 서로를 바라보며 피식 웃었다.
자신들이 카릴을 따르는 이유.
이민족이든 야만족이든 아니 종족의 구분을 떠나 그저 한 명의 사람으로 대하는 그의 태도가 가장 컸기 때문이다.
“베이칸, 너희들은 카일라 창이 말했던 비밀 장소로 가 있어. 이곳의 지리는 그들이 더 잘 알고 있을 테니 합류하고 난 뒤에 기사단의 움직임이 포착되면 내게 알려줘.”
“알겠습니다.”
“나는 이곳에 남겠다.”
하산을 준비하는 다른 사람들과 달리 하시르는 두건으로 얼굴을 다시 가리며 카릴에게 말했다.
“좋을 대로. 하지만 나중에 내려가려면 길을 찾기 힘들 텐데.”
“그 여자가 내려갈 때 사람들을 붙여뒀다. 지형은 이미 파악했어.”
그의 말에 카릴을 입꼬리를 올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혼란스러웠던 순간에도 만일을 대비해 하시르는 병력의 일부를 빼 카일라 창까지 견제를 했단 말이었다.
“철두철미한데. 과연 늑여우답군. 잘됐네. 이따가 길 안내는 당신께 맡기면 되겠어.”
“…….”
[좋아. 드디어 우리 차롄가.]알른 자비우스는 기다렸다는 듯 기지개를 피면서 말했다.
[간단해. 파수병의 가슴에 있는 핵이 보이느냐.]‘응. 저거로군.’
샘 앞에 서 있는 거대한 파수병에서 흘러나오는 보랏빛.
그건 비전술사라 불리던 알른 자비우스의 정수가 집약되어 있는 것이었다.
[저걸 뽑아 네 마력혈에 흡수시키면 막혔던 혈맥 중 일부가 뚫릴 거다. 드래곤의 방식보다는 못 하겠지만 효과는 분명해.]‘확실해?’
[이놈아, 7인의 원로회의 말을 믿지 못하고 토를 다는 녀석은 네 녀석이 유일할 거다.]한 대 쥐어박고 싶다는 얼굴로 알른이 카릴에게 말했다.
[심혈을 기울여서 만든 녀석이다. 솔직히 이런 식으로 부숴버리는 게 아깝긴 하지만…… 별수 있겠느냐. 지금은 네 녀석이 저놈보다 더 중요한데.]‘쑥스러운 말을 잘도 하네. 그쪽이야말로 배우를 해도 되겠어.’
[시끄럽다. 이 녀석아.]우우우우…….
자신을 바라보는 카릴의 눈빛에 마치 파수병은 겁을 먹은 듯 낮은 기계음을 토해냈다.
“그럼…….”
카릴은 천천히 마력을 끌어 올리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잘 먹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