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9th Class Swordmaster: Blade of Truth RAW novel - Chapter (89)
9클래스 소드 마스터 : 검의 구도자 9클래스 소드 마스터 – 검의 구도자-89화(89/497)
75. 중앙으로
“저 사람인가…….”
“나락 바위의 정상에서 우레군주의 힘을 얻었다는 자가?”
“생각보다 왜소하군.”
카릴은 자신을 향한 여러 눈빛을 바라보며 하시르에게 말했다.
“우레군주의 힘이라니?”
“뭐, 다들 궁금해하는 것 같아서 조금 귀띔을 했을 뿐입니다.”
하시르는 아무렇지 않은 척 말했지만 여우 같은 그의 행동에 카릴은 낮게 웃을 수밖에 없었다.
무슨 짓을 했는지 뻔했다.
마력을 가진 제국인들이라 할지라도 천 년 전 비전력에 대해서는 알지 못할 것이다.
하물며 마력이 없는 남부인들이라면 오죽하겠는가.
눈치 빠른 하시르는 늑여우들을 풀어 창 일가를 찾는 와중에 만난 남부인들에게 슬며시 나락 바위에서의 일을 퍼뜨렸다.
“그저 사실만. 하늘에서 떨어진 보랏빛 낙뢰가 카릴 님의 힘이라고 말했을 뿐입니다.”
입에서 입으로.
창 일가의 비밀 장소에 모인 4대 일가의 사람들은 정령왕의 무덤에서 선택받은 자가 누구인지 궁금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게다가 저건 각왕(覺王)의 증표잖아.”
“구릉의 주인이 길들일 수 있는 생물이었던가? 정말로 대초원의 4부족이 그의 밑으로 들어갔다는 걸 인정하지 않을 수 없겠군…….”
낮은 탄식도 들렸다.
5대 일가 중 우두머리라 할 수 있는 툴루 창이 카릴의 옆에 서 있는 것만 봐도 이견은 없었다.
“이야기는 들었을 것이다. 그리고 현재 창 일가의 상황도 그리고 나에 대해서도.”
카릴은 고개를 돌렸다.
그러고는 서 있는 사람들 중에 숯을 바른 것 같이 전신에 검은 문신을 한 남자를 향해 말했다.
“자네가 타샤이 족장이겠지? 이름이 뭐지?”
“라군이오.”
남자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디곤 일족에 대한 보고를 해보게. 아마 타샤이 부족이 아무것도 안 하고 빈손으로 오진 않았을 테지.”
라군의 눈동자가 가볍게 흔들렸다.
짧은 사이에 많은 업적을 일궈냈다지만 여전히 그들의 눈엔 어린아이로 보일 뿐이었다.
마치 5대 일가를 잘 알고 있는 투로 말하는 카릴의 모습에서 라군은 흥미가 일었다.
5대 일가 중에서도 숲의 일족이라고 불리는 타샤이 부족은 은신에 뛰어난 남부에서 가장 은밀한 부족이었기 때문이다.
라군은 잠시 뜸을 들이다 입을 열었다.
“창 일가가 습격을 받았다는 보고를 받는 순간 몇몇 일족을 디곤과 이매 부족으로 보냈습니다.”
“뭐? 우리 일족에게?”
이매 부족의 수장인 둔카이는 라군의 말에 굵은 눈썹을 씰룩거렸다.
산림의 능선에 사는 그들은 다른 부족에 비해 덩치가 크고 완력이 세기로 유명했다.
특히.
부족장인 둔카이는 세워 놓은 막사가 작아 허리를 굽히고 있을 정도였다.
“별다른 의미는 없다. 창 일가를 습격할 만만 전투력을 가진 부족은 이 둘뿐이니까.”
“흥…….”
둔카이는 팔짱을 낀 채 헛기침을 했지만 딱히 라군의 설명이 싫지만은 않은 듯 보였다.
“그래서? 내린 결론은?”
“보시는 바와 같이 창 일가를 습격한 것은 예상치 못한 제국 기사였고 그들이 디곤의 영토를 가로질러 온 것 맞습니다.”
“역시……. 디곤이 제국과 결탁했나?”
“빌어먹을……! 남부의 패자라는 이름이 아깝군! 자신의 안방을 휘젓도록 그냥 문을 열어줬다고?”
“믿을 수가 없군.”
라군의 말에 부족장들은 저마다 한마디씩 했다. 카릴은 그런 그들을 향해 손을 들었다.
“다들 진정하게. 계속 말해봐. 디곤이 아무런 이유 없이 남부의 문을 열어 줄 리가 없어. 그들이 원하는 바가 있을 텐데.”
“정황이 급박해 거기까지는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디곤에 있는 수하가 조사하는 중이니 시간이 걸리더라도 확인할 수 있을 겁니다.”
“디곤에 끄나풀이 있다고? 타샤이 녀석들 설마 우리 쪽에도 심어 놓은 건 아니겠지?”
“그럴 리가. 5대 일가 중에 가장 힘없는 엔라 부족은 우리도 관심 밖이다.”
“뭐, 뭐야?!”
“크크큭.”
엔라 부족의 족장은 라군에 말에 얼굴을 붉혔다. 둔카이와 툴루 창은 그 모습에 낮게 웃었다.
“디곤 일족이 강하다고 하지만 기사들이 물러간 이상 단독으로 5대 일가를 공격할 순 없을 것이다. 그동안 그대들이 해야 할 일이 있다.”
사태가 진정되자 카릴은 고심하고 있었던 말을 꺼냈다.
“그게 무엇입니까?”
“앞으로 디곤뿐만 아니라 언제든 제국이 다시 이곳을 침범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항상 염두에 둬야 한다. 그 말은 곧, 제국과의 전쟁을 대비해야 한다는 말이기도 하다.”
그의 말에 툴루 창을 비롯해 려기사단과 싸워 본 사람들의 낯빛이 어두웠다.
“승산이 없는 것은 아니다.”
스릉-
카릴은 품 안에서 작은 단검을 꺼냈다.
검집에서 꺼낸 아그넬이 그들의 앞에서 날카로운 예기를 뿜어냈다.
회색교장에서 타락을 베고 난 뒤.
신기하게도 아그넬의 검날은 연한 우윳빛으로 변해 있었다.
카릴은 있는 힘껏 단검을 중앙에 있는 화로에 박아 넣었다. 마치 두부가 잘리듯 아무런 반발도 없이 검날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깊숙이 박혔다.
“이 검은 청린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
“……!!”
부족장들은 카릴의 말에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설마……. 신의 광물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더 이상 구할 수 없다고 알려져 있는데…….”
“지금까진 그랬지. 하지만 이제부터는 다르다. 너희는 앞으로의 전쟁을 대비해 이 청린을 채취해야 한다.”
‘이것은 부족 간의 전쟁, 제국과의 전쟁을 넘어 타락과의 전쟁까지 대비하는 일이기도 하다.’
부족장들의 아그넬을 바라보던 떨리는 눈빛이 카릴을 향했다.
“이제 내가 비전의 샘을 다시 채울 것이니 그대들은 비밀리에 그곳에서 청린을 모아라.”
“하지만 저희는 이걸 재련할 방법이 없습니다.”
“그건 걱정 마라. 인간보다 훨씬 더 뛰어난 대장장이들이 타투르에 있으니.”
스윽-
카릴은 아그넬을 뽑으며 말했다.
“그대들은 나를 따르겠는가?”
꿀꺽-
목젖이 움직이는 소리가 크게 들릴 정도로 순간 카릴의 말에 정적이 흘렀다.
‘청린으로 무장한 병사…….’
‘그거라면…….’
카릴은 지금 그들의 머릿속에 떠오르는 생각이 무엇인지 짐작할 수 있었다.
또한 자신의 옆에 서 있는 하시르의 표정 역시 기대했던 대로였다.
“그래. 이것이 내가 그대들에게 줄 제국을 이길 힘이다.”
쿵!!
그때였다.
“이미 목숨을 빚졌습니다. 창 일가의 목숨은 당신의 것입니다. 나락의 주인이시여.”
그 정적을 깬 것은 툴루 창이었다.
“디곤 일족의 명이 있었지만 선대의 선대 그리고 그 선대의 선대부터 5대 일가는 나락 바위를 수호하는 임무를 맡았습니다. 정상의 그것이 정령왕의 무덤이든 비전의 샘이든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는 다른 족장들에게 들으라는 듯 무릎을 꿇고 포권을 취한 채로 목소리에 힘을 주었다.
“나락의 정상에서 힘을 얻은 당신은 저희들에게 힘을 증명한 것과 다름없습니다.”
툴루 창은 자신의 허리에 차고 있는 작은 송곳니 하나를 꺼냈다.
대초원의 부족들이 가지고 있던 각왕의 증표와 비슷하면서도 조금 달랐다.
“창 일가의 증표를 당신께 바칩니다.”
척-!! 처척–!!
그 순간.
나머지 4대 일가의 족장들도 일제히 툴루 창과 똑같이 무릎을 꿇고서 저마다의 증표를 카릴의 앞에 꺼내 놓았다.
“이매, 타샤이, 엔라, 부이족 역시 창 일가의 의견에 이견이 없습니다.”
염원하는 단 하나의 목표.
그것을 이룰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한 카릴과 5대 일가의 수장인 툴루 창의 충성만으로도 다른 설명을 필요 없었으니까.
카릴은 그런 그들을 바라보며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됐다. 이걸로 디곤 일족을 경계하면서도 나는 누구보다 강력한 무기를 얻을 수 있게 되었다.’
남부에서 해야 할 마지막 일을 끝냈다는 생각이 들자 카릴은 자신도 모르게 주먹을 쥔 손에 힘이 들어갔다.
“봉화를 피워라. 새로운 5대 일가의 수장의 탄생을 모든 일족에게 알려라.”
촤아악……!!
툴루 창의 외침과 함께 막사의 천막이 걷히자 멀게만 느껴졌던 그 앞에 대열을 지키던 병사들이 일제히 무릎을 꿇었다.
“장관이로군요.”
저 멀리 피어오르기 시작하는 봉화의 숫자가 하나둘 순식간에 늘어갔다.
아마 이곳에 모이지 않은 수백, 수천의 크고 작은 부락에 있는 5대 일가의 사람들이 봉화의 연기를 보며 눈앞의 병사들처럼 카릴에게 충성을 맹세하고 있을 것이다.
미하일은 자신도 모르게 감탄을 터뜨리며 말했다.
“고작 남부의 절반일 뿐이야.”
카릴은 저 멀리 제국이 있을 중앙을 주시하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하지만 그런 그를 바라보며 에이단은 낮은 목소리로 웃었다.
“글쎄요. 전 다른데요. 혼자서 제국도 하지 못한 남부의 절반을 정복하신 겁니다. 그 어떤 피도 흘리지 않고.”
그는 하시르를 바라봤다.
이단섬멸령을 내린 황제는 카릴과 마찬가지로 북부 정벌의 출사표를 던졌다.
크웰 맥거번의 청기사단이 지나간 자리는 오직 시체와 혈흔만이 남을 뿐이었으니까.
“맞습니다.”
하시르는 에이단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베이칸, 키누 무카리, 카일라 창, 하시르. 너희 넷은 지금부터 나와 함께 중앙으로 간다.”
“네? 저도요?”
“그래.”
호명된 네 사람 중 카일라는 예상치 못한 듯 깜짝 놀랐지만 이내 곧 두 손을 포개며 말했다.
“모시게 되어 영광입니다.”
“해야 할 일이 많을 것이다. 다들 각오하도록.”
“명심하겠습니다.”
“알겠습니다.”
충성을 맹세하는 그들의 모습에 에이단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고는 막사 밖의 부족원들을 가리켰다.
“대초원의 부족을 통합하실 때도 말씀드렸지만 저희가 이곳에 왔을 땐 겨우 3명이었습니다.”
그렇다.
고작 3명으로 일궈낸 일.
“하지만 보십시오. 수천의 병사가 지금 카릴 님의 앞에 있습니다.”
이어서 카릴이 호명한 네 사람을 바라보며 말했다.
“세 명이서 남부의 절반을 얻었으니 이제 그 두 배가 되는 전력이 돌아간다면 중앙마저 얻을 수 있지 않겠습니까.”
그의 한마디에 모두가 웃었다.
허무맹랑한 농담처럼 들리지만 그 농담마저 카릴이라면 현실로 이룰 수 있을 것 같은 묘한 고양감.
[크르르르르르……!!!]귀를 찢을 것 같은 괴수의 표호가 마치 출진을 알리는 나팔 소리처럼 나락 바위에 울렸다.
거대한 뱀과 같은 샌드 서펀트가 무리를 뚫고 튀어나와 카릴의 앞에 머리를 조아렸다.
녀석의 머리 위로 서슴없이 걸어 올라가자 서펀트는 천천히 고개를 들어 올렸다.
‘미래는 바뀌었다.’
그가 알고 있던 미래와 달라졌고 한 치 앞도 알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
하지만 전생과 다른 하나가 있다.
‘그러나 바뀌는 대로 놔두지 않을 것이다.’
그 소용돌이의 중앙에 자신이 있다는 것을 잘 알았으니까.
‘역사는 그들이 아닌 내가 쓴다.’
카릴은 말했다.
마력이 담긴 그의 목소리는 놀랍게도 사람들의 머릿속에 직접 울리는 것 같았다.
“중앙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