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9th Class Swordmaster: Blade of Truth RAW novel - Chapter (92)
9클래스 소드 마스터 : 검의 구도자 9클래스 소드 마스터 – 검의 구도자-92화(92/497)
78. 아케인 블레이드(Arcane Blade)
파앗!! 파아앙—!!
콰그긍……!!
1년 가까이 사용되지 않은 타투르의 투기장에서 오랜만에 파공음이 들렸다.
새파란 한기를 머금고 있는 검날이 어둠 속에서 베어질 때마다 새하얀 호를 그렸다.
“흡……!!”
내지른 검의 궤도가 순식간에 바뀌었다.
공중으로 던진 검이 하늘 위에서 빙그르르 회전하는 순간 합장을 하듯 손바닥을 펼쳐 있는 힘껏 부딪혔다.
파아앙……!!
조금 전 검격의 소리보다 더 강렬한 폭음이 손바닥 사이에서 터져 나왔다.
그 순간.
카릴의 몸이 충격에 휘청거렸다.
“큭!!”
고통과 함께 그의 주위로 고리와 같은 수십 개의 파장이 발아래에서 지면을 타고 물결처럼 밀려 났다.
지직……! 지지지직……!!
파장의 고리 끝에서 전격이 번뜩였다.
고리 위로 솟아오르는 구체들이 일제히 나선으로 회전을 하다가 카릴을 향해 쏟아졌다.
그 순간.
떨어진 얼음 발톱을 쥔 카릴의 검이 보이지 않는 속도로 움직였다.
파바방-!! 팡! 팡!
단 한 호흡으로 이어지는 검격이 전방위로 자신을 공격하려던 전격들을 모두 쳐내버린 것이다.
맹렬함을 품고 있지만 정교함을 머금고 있는 검술.
“후…….”
바닥에 검을 찍어 누르며 카릴은 참았던 숨을 드디어 토해냈다.
‘마법이란 가면 갈수록 익히는 것이 어렵구나.’
그는 얼얼한 손바닥을 펼쳐 보며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보통 사람들이 본다면 마법을 훈련하는데 어째서 검을 휘두르는지 의아해할 것이다.
카릴은 일반적인 마법사와는 그 수련법이 반대가 되어야 했다.
마력을 쌓는 것이 아닌 쌓인 마력혈의 마력을 밖으로 배출해야 하는 것.
그로 인해 그가 가장 먼저 해야 할 것은 이제 막 뚫린 2개의 새 혈맥에 마력을 순환시키는 일이었다.
‘이런 식으로 쓸 수 있는 마력량을 늘리는 건 알른의 사고가 아니면 불가능한 거겠지.’
급격한 육체 운동으로 활동량을 늘려 혈류의 흐름을 빠르게 하여 그 안에 마력을 스며들게 한다.
마력의 한계가 있는 마법사들은 금방 고갈이 되어버릴 테니 자살 행위와도 같은 일이었다.
오로지 카릴을 위한 훈련법.
알른 자비우스가 사라지기 전 그에게 남긴 마지막 안배와 같은 것이었다.
‘당신은 언제부터 그런 마음을 먹고 있었지? 정말 알다가도 모를 사람이야. 설마 이것조차 당신이 생각하는 나르 디 마우그를 만나기 위한 안배인가.’
카릴은 지금이라도 그의 목소리가 들릴 것 같은 기분에 쓴웃음을 지었다.
‘확실히 알른 자비우스의 비전술은 대단해. 실제로 그가 창안한 마법들이 내 머릿속에 있지만 모두 쓸 수 없을 정도니까.’
카릴의 창안한 극의검술, 칼네레의 무색기검 그리고 알른 자비우스의 비전술까지.
모두가 세기의 기술들이라 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고민도 있었다.
‘조언자가 아쉽군.’
인정하고 싶진 않지만 카릴은 자신의 지식은 있되 지혜가 없다.
머리로 알고 있다 하더라도 그것을 성공시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조금 전에도 비전력을 응축시키는 데 실수가 있었으니까. 방법이 훈련뿐이라는 건 알지만…….’
카릴은 얼얼한 손을 털어 내며 생각했다.
‘미하일의 재능은 뛰어나지만 아직은 초심자다. 만약 이런 상태에서 한두 해가 지난 뒤에 만났더라면 도움이 되겠지만…….’
그는 자신의 기억 속의 위대한 마법사들을 떠올렸다.
가장 처음 머릿속에 떠오르는 사람은 단연 슈프림, 세리카 로렌이었다.
‘세삼 세리카 로렌의 대단함을 느끼는군. 주점의 부엌데기였던 그녀는 스승도 없이 스스로 마력을 깨우쳤으니까.’
어쩌면 제대로 된 스승이 없었기 때문에 틀에 박히지 않고 슈프림이란 새로운 마법사의 장을 열었을 수도 있다.
‘그다음은 역시 세르가겠지.’
제국 7강.
카릴의 기억 속에 가장 위대한 부흥기를 이끌었던 일곱 중 한 명.
하지만 카릴은 고개를 저었다.
카이에 에시르의 재림이라고까지 불렸던 위대한 마법사인 것은 확실하지만 그와 인연이 생기긴 힘들 것 같았다.
세리카 로렌이 천재라면 세르가는 만들어진 영재였다. 이미 궁정마법사인 카딘 루에르가 설립한 제국의 마법 아카데미 소속으로 그의 가르침을 받고 있을 것이다.
“세상에 천재들이 참 많아.”
티렌 맥거번, 세리카 로렌, 미하일, 세르가…….
카릴은 검을 잡으면서 중얼거렸다.
“지금 내 머리로는 결국 해답은 검일뿐이군.”
우습게도 그 수많은 천재처럼 그 역시 검의 천재라는 것을 카릴은 잊은 듯 말했다.
‘비전력을 검에 담는 것.’
지금까지 카릴이 사용했던 마나 블레이드는 마력 그 자체를 담은 오러 블레이드였다.
하지만 비전력은 그런 마력의 질을 한 단계 더 올릴 수 있게 해주었다.
‘이제 준비도 어느 정도 끝났다. 진실을 알기 위해선 힘이 필요한 법.’
대륙을 통합하는 것만큼 그에게 있어서 중요한 것은 백금룡의 레어를 공략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 이것부터 완성해야겠지.’
카릴은 낮은 숨을 토해내며 보랏빛이 감도는 검기를 바라보며 생각했다.
‘아케인 블레이드(Arcane Blade).’
생각이 마무리되어 갈 때쯤.
저 멀리 투기장의 문 앞에 수안이 황급히 달려오고 있었다.
“마스터!”
투기장 안으로 들어온 그는 두부가 잘리듯 여기저기 베어진 바닥을 보며 잠시 놀란 표정을 지었지만 이내 곧 품 안에 있던 쪽지를 그에게 건넸다.
“베릴 남작의 전갈입니다.”
카릴은 쪽지의 내용을 살폈다.
“으음.”
그러고는 만족스러운 듯 옅은 미소를 띠우며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연회가 준비되었습니다.]짧은 한 문장에 불과했지만 카릴의 머릿속엔 이미 숱한 가능성과 계획이 잡혔다.
‘생각했던 것보다 일 처리가 빠른데. 욕심이 많은 만큼 일 처리는 확실하군. 나로서는 좋은 일이지만 말이야.’
그가 타투르로 돌아온 지 이제 한 달이 지났다.
‘확실히 썩어도 준치군. 퇴물로 치부 받아도 이 정도 인맥을 가지고 있으니 말이야. 과연 그가 어떻게 사람들을 구워삶았을지 궁금한데.’
자신만만하게 말했던 베릴의 모습이 스치듯 떠올랐다. 그러고는 곧 그 얼굴이 구겨질 것을 생각하며 카릴은 옅은 웃음을 지었다.
‘움직일 때가 왔다.’
화르르륵……!!
그의 손에 들린 쪽지가 순식간에 불타며 사라졌다. 그러고는 낮은 미소와 함께 수안의 어깨를 가볍게 치면서 말했다.
“가자.”
* * *
“오랜만이야.”
“개뿔. 실없는 소리 할 거면 사라져.”
“……성깔은 여전하고.”
포나인의 요란한 강물 소리 때문에 집중하지 않으면 두 사람의 대화를 들리지 않았다.
아니, 애초에 이런 강물 아래로 사람이 올 일도 없었기에 에이단은 마음 편하게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
“주크.”
눈앞에 있는 작은 소녀.
여동생이라고 소개했지만 실상은 자신보다 나이가 많은 동방국의 선배이기도 했다.
“내 이름 함부로 입에 담지 마. 그 녀석을 따라 남부까지 내려갔다가 오더니 암연의 규칙까지 모두 잊어버렸어? 다시 생각나게 해줄까?”
외모는 기껏해야 10대로 보였지만 표독스럽게 말하는 그녀의 말투는 성인도 따라 하기 힘든 것이었다.
“어디까지 보고를 했지?”
“그런 내가 왜 네게 얘기해야 하지? 네가 제국인에게 꼬리를 흔드는 개가 되었다는 걸 얘기했는지 물어보는 건가?”
“…….”
에이단은 비수 같은 주크의 말에 쓴웃음을 지었다.
“행동을 똑바로 해. 우린 명령을 완수하지 못했어. 주인님께선 분명 2황자가 황제에 추대될 수 있도록 도우라고 했어.”
“알고 있어.”
“그와 동시에 목표물의 제거까지.”
“그래.”
“네가 뭐 하나 이룬 게 있나?”
주크는 창백한 얼굴로 그에게 말했다.
“이대로면 우리가 죽을지도 몰라. 주인님은 쓸모없는 가지는 쳐내시는 분이니까.”
그녀는 더 이상 에이단을 볼 필요 없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돌렸다.
“아조르의 마법 경연에서 우승자인 카릴과 동명이인이 아니라 같은 사람이지? 검술뿐만 아니라 마법까지……. 솔직히 믿기 어려운 게 사실이야.”
그녀는 발걸음을 잠시 멈추었다.
“카릴이란 자를 주시할 필요가 있다. 현재 타투르의 주인이자 마법사급의 마력을 가지고 있을 것으로 추정. 내가 올린 보고야.”
“…….”
“현재는 빠른 속도로 이민족을 흡수 중. 현재 왕국급의 병력과 전투력을 보유했을 가능성이 농후. 그리고 이게 지금 돌아가면 추가로 올릴 보고였다.”
주크는 목소리에 힘을 주었다.
“그런데 꼴을 보니 하나 더 추가해야겠어. 그 핵심 멤버 중에 에이단 하밀이 있음이라고 말이야.”
“주크!”
“함부로 이름 부르지 말라고 했지. 명령을 받고 움직이는 게 우리들 만이라고 생각해? 타투르 내에서도 또 누가 있을지 몰라. 이미 넌 배신자로 낙인 찍혔을지도 모른다고!!”
그 순간.
주크 디 홀드의 목소리가 커졌다.
냉정함을 유지하려고 했던 그녀가 결국 폭발하고 만 것이다.
“그는 크게 될 사람이야.”
“미친…….”
에이단의 대답에 기가 차다는 표정으로 주크는 말했다.
“진짜 암연을 적으로 돌리겠다는 말이네? 타투르 안엔 동방국의 배신자들만 있나 보군. 부디 지령이 내려지지 않기만을 바라. 명령이 내려오자마자 내가 네 목을 베어버릴 테니까.”
“네 말이 맞다.”
“……!!!”
그때였다.
대답은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들렸다.
“에이단, 베릴에게서 연락이 왔다. 모두 모였는데 너만 오지 않아서 찾고 있다고.”
갑작스럽게 들리는 목소리에 주크는 황급히 고개를 돌렸다.
“품 안에 넣은 손은 도로 빼는 게 좋을 거야.”
그러나 목소리는 다시금 뒤에서 들렸다.
옷 안에 단검의 손잡이를 쥐고 있는 손등을 꾹 누르는 손가락.
기척도 느끼지 못했는데 자신이 몸을 돌리는 순간 목소리의 주인은 더 빠르게 뒤로 숨은 것이다.
‘젠장…….’
주크의 얼굴이 구겨졌다.
속삭이듯 들리는 목소리는 너무나도 귀에 익은 목소리였기 때문이다.
“남매끼리의 싸움 치고는 격하네. 목을 베고 말고까지 갈 필욘 없잖아”
에이단은 주크를 감싸고 있는 그를 바라보며 난색을 표했다.
“카…… 카릴 님.”
투기장에 있을 그가 이곳에 나타나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운이 좋은 건지 나쁜 건지 모르겠지만 보고를 받고 돌아가는 길에 목소리가 들려서 말이야. 수안은 먼저 돌려보냈으니 안심해.”
‘……목소리가 들렸다고? 그게 가능한 일이야?’
마을에서 한참 떨어진 곳이다.
‘주시하고 계셨군…….’
주크는 카릴의 말에 어이가 없다는 듯 생각했지만 에이단은 그다지 놀라지 않았다.
“뭘 어떻게 할 생각은 없어. 처음부터 너희가 암연 출신이라는 건 알고 있었으니까.”
“…….”
카릴은 품에 안고 있던 그녀를 놓아주며 말했다.
“주크, 네 말대로 너희 말고도 타투르엔 암연에서 뿌린 사람들은 있을 거다. 하지만 그건 반대로 타투르만이 아니라는 뜻도 되지.”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거지?”
카릴의 말에 그녀는 인상을 찡그렸다.
“자, 그럼 조금 더 생각해 볼까? 타투르에 너희 말고 또 그림자들이 있다면 2황자 쪽에는 더 있을 가능성이 높겠지? 그렇다면……. 꼭 2황자에게만 그림자가 붙었을까?”
그는 차가운 미소를 지었다.
“1황자 쪽에도 있을 가능성이 농후하지. 너희들의 주인은 제국의 황제가 누가 되느냐가 중요한 게 아닐걸. 그저 동방국과 연관이 되어 있는 자를 황제로 만들면 될 뿐일 테니.”
예상하지 못한 그의 말에 주크는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그렇다면 다른 사람이라도 동방국과 타산이 맞는 자가 권좌에 오르는 것이라면 네 주인도 상관없지 않을까.”
“너…….”
“그냥 이 말을 하려고 온 거야. 언제 배를 보내지. 그때 네가 동방국과의 만남을 주선해 주면 좋겠는데.”
“미친. 보고를 올리면 지금 당장에라도 제국에 반(反)하는 너희들을 막으라는 지령이 내려올걸.”
아무렇지 않게 대륙의 정점이 되겠다고 선언하는 그의 모습에 주크는 어이가 없다는 듯 바라봤다.
“안 그래. 네 주인은.”
그녀조차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동방국의 주인을 마치 잘 아는 것처럼 말했다.
“녀석은 고작 네게 날 죽이라고 명할 정도로 바보는 아니거든.”
“……뭐?”
“보고를 하던 주선을 하든 상관없지만. 에이단에게 함부로 검을 뽑을 생각은 마라.”
카릴은 입꼬리를 올렸다.
그러나 미소와는 반대로 그의 눈빛은 차가웠다.
“죽는다.”
꿀꺽-
주크 디 홀드는 자신도 모르게 식은땀이 주르륵 등을 타고 흐르는 걸 느꼈다.
도망을 치려고 발을 움직였지만 굳어버린 몸은 그마저도 할 수 없었다.
“…….”
카릴이 살기를 풀자 그제야 그녀는 흥건하게 맺힌 땀으로 축축해진 저릿저릿한 손에 주먹을 쥐었다.
“뭐, 내가 할 말은 여기까지. 에이단, 이스탄 왕국으로 갈 준비를 해라. 앞으로 바빠질 거야. 대화는 적당히 마무리해.”
그는 대충 손을 저으며 아무렇지 않은 듯 발걸음을 돌렸다.
그 모습에 에이단은 피식 웃고 말았다.
“뭐, 저런 사람이지. 주크, 조금 더 지켜보는 건 어때? 어쩌면 네 마음도 바뀔지도 몰라. 우리가 암연에 들어 왔을 때…….”
“……닥쳐.”
그녀는 에이단의 말을 잘랐다.
뭔가를 얘기하려던 그는 아쉬운 듯 어깨를 들썩였다. 그러고는 카릴의 뒤를 쫓으며 달렸다.
“같이 가시죠!!”
“대화는?”
에이단은 어쩐지 홀가분한 표정으로 그에게 말했다.
“다 했습니다. 이제 이스탄 왕국에 가셔선 뭘 하실 겁니까?”
“뭐 하긴. 알잖아?”
카릴은 아무렇지 않게 말했다.
“손안에 넣어야지. 모두.”
그 순간.
여전히 아무렇지 않은 담담한 표정의 그를 바라보며 주크는 자신도 모르게 몸을 부르르 떨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