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9th Class Swordmaster: Blade of Truth RAW novel - Chapter (93)
9클래스 소드 마스터 : 검의 구도자 9클래스 소드 마스터 – 검의 구도자-93화(93/497)
79. 생각지 못한 의혹
“연회는 어떠셨습니까.”
“훌륭했습니다. 남작님 덕분에 귀한 시간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하하하, 별말씀을. 카릴 님이라면 언제든 제가 자리를 마련해야지요.”
자랑스럽게 말하는 베릴과 달리 이스탄 왕국에 들어왔을 때 화려한 연회가 준비된 것에도 카릴은 이미 예상을 한 듯 보였다.
마법 연구회라는 명목하에 베릴은 자신의 제자들과 더불어 왕국에 닿은 연줄들을 모두 초대했다.
그중에는 응하지 않은 자들도 더러 있었지만 카릴이 그에게 건네줬던 명단의 대부분이 와 있었다.
퇴물로 취급받던 그가 의외로 영향력이 있었던 것일까?
연회에 참가한 귀족들마저도 의외의 사람들이 같은 자리에 있다는 생각에 스스로도 놀란 표정이었다.
‘초대장 안에 속성석을 동봉한 게 효과가 있었군. 특별히 그쪽에게만 보낸다는 문구가 알아서 비밀을 유지해 주니 편하고.’
카릴은 테라스에 나와 바람을 쐬면서 베릴에게 말했다.
“오늘 모임에 대한 건 곧 국왕께도 보고될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다른 왕국들까지 소문이 쫙 퍼지겠지요.”
베릴은 흐뭇한 표정을 지으면서 말했다.
“이제 삼국 모두가 카릴 님을 뵙기 위해 안달이 날 겁니다. 대륙에 이름이 쫙 퍼지겠지요.”
그는 그렇게 말하면서 은근슬쩍 자신도 그 이름 아래 있기를 기대했다.
“제대로 된 거래는 아마 내일이어야겠지요. 예상보다 과음을 하게 된 것 같아서……. 나머지는 남작께 맡겨도 괜찮겠습니까.”
귀찮으니 비켜달라는 말을 돌려서 말한 것이지만 베릴에겐 그저 듣기 좋은 말이 아닐 수 없었다.
“하하하, 걱정 마십시오. 제가 연회 끝까지 남아 저들 중에 쓸 만한 자들을 추슬러서 내일 카릴 님께 따로 보내겠습니다.”
“거듭 감사드립니다.”
“이스탄 왕국뿐만 아니라 삼국의 나머지 두 왕국까지 걱정 마십시오. 제가 또……. 그쪽과도 심심치 않은 연관이 있어서 말입니다.”
베릴 남작은 그렇게 말하면서 새끼손가락을 펼쳐 보였다.
‘아직도 그녀들과 연락이 되는 건가. 어떤 면에선 대단한 노인네야. 이 꼴이 되었는데도 여태껏 정신 못 차리니 말이야. 아닌가? 반대로 대단한 건가. 여태 연락을 하고 있는 것이.’
그런 그를 보며 카릴은 낮게 웃었다.
“믿고 있습니다.”
베릴은 오늘의 결과에 든든한 듯 어깨를 쫙 펴고서 연회장 안으로 들어갔다.
시시한 시간.
이런 곳에 있는 것보다 검을 한 번 더 휘두르는 것이 백번 더 나아 보이지만 카릴이 이곳에 온 이유는 단순히 귀족들과의 친분을 쌓기 위함이 아니었다.
연회장 안에는 베일로 얼굴을 가린 두샬라가 연신 그들과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속성석 장사는 어차피 그녀에게 맡기기로 했으니까 딱히 내가 할 것도 없다. 그건 그렇고 음지에만 있었지만 양지도 잘 어울리는군.’
베릴 남작만큼은 아니지만 그녀 역시 삼국의 귀족들과 연이 있었기에 이미 많은 계약을 이곳에서 성사시키고 있었다.
“하하하, 아름다우십니다.”
“감춰진 미모가 궁금하군요. 언제 시간이 되신다면 다음에 저와…….”
“암시장에 대한 얘기는 많이 들었습니다. 언제 초대를 해주실 수 있으십니까?”
두샬라를 둘러싼 젊은 귀족들은 검은 드레스로는 감출 수 없는 그녀의 풍만한 몸매에 감탄을 금치 못하며 말을 걸었다.
카릴은 그 모습을 보며 피식 웃었다.
‘눈 깜빡 안 하고 여기 있는 사람들을 몰살시킬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여자라는 걸 알아도 저렇게 히죽히죽 웃을 수 있을지 궁금하네.’
애초에 속성석 장사는 삼국을 편하게 움직이기 위한 핑계에 불과했다.
카릴은 연회장 안에 있는 사람들을 쓱 훑어봤다.
그의 진짜 목적.
우든 클라우드의 끄나풀.
‘보이는 자들 중에는 딱히 의심스러운 인물은 없어. 제국 전쟁이 시작되기 전에 우든 클라우드와 관련된 자가 누구인지 찾아낼 수 있으면 좋을 텐데.’
쉽진 않았다.
아조르에서 울카스 길드의 마스터이자 우든 클라우드의 일원이었던 바르고 시라.
그가 죽기 전에 토해냈던 정보는 하나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레디오스와 더글라스에게 연락을 전하는 줄기가 이스트리아 삼국에 있다.’
카릴은 자신의 기억 속에서 의심스러운 자들을 모두 베릴의 명단에 넣었다.
‘비록 제국에 의해 멸망했지만 이곳에서 쓸 만한 자들은 분명 있다.’
쓸 만하다는 것은 능력이 있다는 것.
우든 클라우드와의 결탁은 곧 왕가에 대한 배신이라고 할 수 있지만 그 능력을 어떻게 쓰느냐에 있어서 모두가 정도를 걷는 것은 아니다.
‘제국과 삼국의 전쟁에서 살아남은 생존자들이 우든 클라우드의 끄나풀일 가능성이 높다.’
그때까지만 하더라도 여전히 공국은 위세를 가지고 있었으니 쉽게 자신들의 수족을 죽일 리가 없다.
‘누굴까. 과연.’
그때였다.
테라스에 몸을 기대고 있던 카릴은 아래에 지나는 한 무리에 시선이 꽂혔다.
그의 눈동자가 가볍게 흔들렸다.
‘허……. 베릴 남작의 말이 맞을 때도 있군.’
카릴은 눈앞의 사내를 바라보며 나지막하게 웃었다.
‘찾을 수고를 덜었군.’
제 발로 오다니.
‘내가 왜 이 생각을 하지 못했지.’
아니.
할 수 없었던 것이다.
이 시기에 카릴은 크웰의 영지에서 벗어나지 않았었으니까. 제국의 사건도 제대로 알지 못하는 그가 저 멀리 삼국의 일까지 알 리가 없었다.
‘이자가 이곳에 있었구나.’
루레인 공국과 교단의 관계는 카릴도 알고 있었다.
바르고 시라를 심문했을 때에도 교단과의 거래 내역을 통해서 루레인가의 인원을 찾아내려 했었으니까.
‘처음에 바르고가 이스탄 왕국을 얘기했을 땐 좀 의아했는데……. 틀린 말이 아니었군.’
카릴은 그를 바라보며 생각했다.
‘일이 쉽게 풀릴지도 모르겠는데.’
흐릿하게만 보였던 우든 클라우드의 실세가 조금은 손에 잡힐 것 같은 기분이었다.
* * *
“돌아간다.”
“네? 하지만 아직 회군 명령이…….”
늑여우 부족의 터에 온 지 열흘 남짓이 지났을 때였다. 크웰 맥거번은 고심 끝에 내린 결정을 부관에게 말했다.
“북부 이민족들은 절대로 자신의 거점을 버리지 않는다.”
“하지만 기껏해야 미개한 이민족들입니다. 아직 절반가량의 이민족들이 살아 있습니다.”
부관의 말에 크웰은 고개를 저었다.
“이미 근 1년간의 북부행이었네. 병사들도 지쳐 있고 잠시 돌아가는 것이 나아.”
크웰은 덥수룩하게 자란 수염을 쓸면서 말했다.
상관의 명령은 절대적인 것.
특히 그 말이 크웰 맥거번이라면 두말할 것도 없는 일이었다.
부관은 고개를 끄덕이면서 말했다.
“알겠습니다. 기사단에게 회군 준비를 하라고 명하겠습니다.”
콰그그그그그……!!!
그때였다.
북부의 눈보라가 그들의 막사를 덮쳤다.
산사태라도 난 것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갑자기 쏟아지는 눈덩이에 병사들은 황급히 대피했다.
두드드…… 두드드드……!!
촤아아악—!!
그러나 휘몰아치던 눈보라가 약해졌음에도 불구하고 들려오는 굉음은 여전히 그대로였다.
“…….”
크웰은 상공을 올려다보았다.
마력이 담긴 푸른색 불꽃을 뿜어내고 있는 거대한 함선. 수로가 없는 이곳에 배가 다닐 리가 없었지만 상공에 떠 있는 배에겐 수로가 필요 없었다.
교도 용병단의 비공정.
“어째서 이곳에……?”
그의 옆에 서 있던 부관이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듯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털컥-
눈보라가 잠잠해지고 난 뒤에 비공정이 착륙하자 그 안에서 익숙한 얼굴이 크웰을 반겼다.
“여어, 아직 돌아가지 않았군. 다행이야. 아슬아슬했어.”
마치 오래된 친구에게 인사를 하는 것처럼 비공정에서 내린 고든이 크웰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북부의 찬 바람에도 불구하고 그는 방한복은커녕 얇고 낡은 망토만을 걸치고 있었다.
“이곳은 돈이 될 만한 냄새는 나지 않는데. 네가 웬일이지?”
“북부에 오래 있어서 그런가. 말투까지 차가워졌군. 우린 그래도 적은 아니잖아?”
“…….”
고든은 크웰의 어깨를 가볍게 두들겼다.
아무렇지 않게 기사의 몸에 손을 데는 것은 목숨을 내놓는 일이지만 이 자리에 있는 누구도 그에게 무례를 탓하지 못했다.
“그렇다고 동료도 아니지.”
크웰은 딱딱한 얼굴로 고든의 두꺼운 손을 털어 내면서 말했다.
“황궁에 다녀오는 길인데. 황제도 이제 나이를 먹었더군.”
“그런 얘길 하려고 이 먼 북부까지 왔을 리는 없을 테고. 무슨 바람이 분 거지?”
“한잔하지그래? 제국에서 가져온 술이 그득한데.”
고든의 말에 주위에 있던 기사들이 자신도 모르게 군침을 삼켰다.
북부의 혹독한 환경에서 식량도 부족한 판국에 술은 엄두도 못 낼 일이었으니까.
“제이건, 술통 몇 개를 풀어서 가져다줘라.”
“알겠습니다.”
그의 명령이 떨어지자 비공정 안에서 수십 통의 술병이 옮겨졌다.
“여기 온 이유라……. 내가 황궁에서 황제만 만난 게 아니거든. 귀엽게 자랐던데. 온실 속 화초라고 생각했는데 다들 송곳니를 품고 있어.”
고든은 막사의 문을 걷고서 크웰에게 말했다.
“누구의 사주를 받은 거지?”
“그게 중요한가? 누군지 알면 뭐가 달라지는데?”
펑-
그는 술통 하나를 열어 통째로 들이키고는 숨을 토해냈다.
“후아……!! 추위 속에서 먹으니 안주가 필요 없군.”
입가를 쓱 닦으면서 크웰의 앞에 술통을 내려놓은 고든은 말했다.
“회군을 일주일만 늦춰라. 기사들이 먹을 음식은 우리가 제공하지. 게다가 술도 말이야.”
“무슨 짓이지?”
돈에 움직이는 용병이 아무렇지 않게 먼저 자신의 물품을 제공하겠다?
크웰이 아니라 누구라도 그걸 단순한 호의라고 생각할 리가 없었다.
고든은 그런 그를 향해 의미심장하게 말했다.
“나와 함께 갈 곳이 있다.”
* * *
3년 내로 멸망하는 이스트리아 삼국(三國).
자신들의 미래를 알지 못한 채 흥겹게 연회를 즐기고 있는 이들 사이에서 우든 클라우드의 존재를 생각했을 때 카릴은 위화감을 느꼈다.
조금 전까지만 하더라도 말이다.
조이 요한셀.
특별히 주의 깊게 볼 사람은 아니었다.
게다가 그는 이스트리아 삼국의 생존자도 아니었으니까. 그를 처음 봤을 땐 신탁이 내려진 뒤, 전쟁의 막사 안에서였다.
치열한 전쟁은 수많은 부상자를 동반했다.
치유사는 언제나 부족했고 교단은 타락과 싸우는 이들을 위해 사제들을 지원했었다.
그는 파견된 수많은 사제 중의 한 명이었다.
“하하하, 좋은 소식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모두 여러분들의 덕분입니다.”
“별말씀을. 이게 다 율라(Yula)의 은총이지 않겠습니까.”
“돌아가게 되면 교단에 큰 기쁨이 일 것입니다. 한 달 내로 서둘러 준비해서 돌아가면 교주님께서도 여러분들의 노고를 잊지 않으실 겁니다.”
차분한 목소리가 정원에서 들렸다.
가느다란 실눈에 뚜렷한 이목구비는 아닌지라 스치고 지나가면 쉽게 눈에 띄는 외모는 아니었다.
‘딱히 특별함은 없었지만 뛰어난 치유 능력과 차분한 몸가짐은 사제라는 직업에 가장 충실한 사람이었지.’
그가 제국에 몸을 담은 건 신탁이 내려지기 이전.
올리번이 제국 전쟁을 일으키던 당시에 한 가지 인연으로 인해 제국으로 오게 되었다.
그리고 그 이후.
그는 자연스럽게 쭉 제국의 황실 주치의의 보좌로 있었다.
‘재상이나 궁정마법사 같은 쟁쟁한 자들이 있어서 존재감이 희박했지만…….’
말도 안 되는 일이고 상상도 해본 적 없는 일이지만 모든 정황이 그 믿을 수 없는 전제 조건을 둔다면 성립하게 된다.
‘아니, 지금 생각하면 충분히 가능성이 있다.’
재상이나 궁정마법사보다 훨씬 더 특이한 이력이 그에게 있었다.
바로.
한 달 뒤 황제가 요양을 위해 교단에 머물었던 시간 동안 그의 전임 치유사였다는 점이다.
순간.
카릴은 털이 곤두서는 듯한 오싹함을 느꼈다.
‘설마……. 황제가 우든 클라우드와 연관이 있는 건 아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