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9th Class Swordmaster: Blade of Truth RAW novel - Chapter (96)
9클래스 소드 마스터 : 검의 구도자 9클래스 소드 마스터 – 검의 구도자-96화(96/497)
82. 내가 놓친 것
“자네가 카릴인가.”
자신을 부르는 낮은 목소리에 카릴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생의 처음이었다.
카릴은 보름 가까이 마차를 타고 이동해서 도착한 이곳을 바라보며 신기한 듯 눈을 반짝였다.
“조이 요한셀 경과 함께 왔다지.”
“네. 사제님께서 마법진을 사용할 수 있게 배려를 해주셔서 편히 교황님을 뵐 수 있게 되었습니다.”
카릴은 차분한 어조로 말했다.
무릎을 꿇은 자세부터 말투까지 법도에 어긋나지 않는 완벽한 예법이었다.
‘전생에 배운 것이 이렇게 쓰일 줄이야.’
크웰 맥거번에게 이끌려 처음 저택에 왔을 때 배웠던 기억이 떠올라 그는 쓴웃음을 지었다.
‘란돌…….’
저택을 떠올렸기 때문일까.
카릴은 나락 바위에서 만났던 자신의 양형제를 떠올렸다.
“타투르의 카릴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회상은 잠시뿐.
카릴은 주교에게 자신의 이름을 다시 한번 각인시키듯 말했다.
우우우웅…….
바람이 부는 소리가 마치 살아 있는 존재의 울음소리처럼 들렸다.
교단의 성지, 헤임(Heim)에 도착한 카릴은 은빛으로 가득한 도시를 보며 감탄을 금치 못했다.
마치,
제국의 건축 양식보다 몇 세대를 뛰어넘은 것 같은 수려한 건물들.
신탁을 받고 선택받은 자가 되어 타락과의 전투에 섰지만 실제로 교단의 주교를 마주한 적도 제대로 교단을 살펴본 적도 없었다.
‘그저 올리번의 명을 수행할 뿐.’
카릴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이런 곳이 있었군.’
뿐만 아니라 교단의 성지는 대륙인들에게도 베일에 감춰진 곳이었다.
‘생각해 보면 조이 요한셀이 이토록 쉽게 나를 교단에 들여보내 준 이유는 속성석의 가치가 그만큼 매력적이라거나 혹은 모든 이에게 열려 있다는 교단의 가르침을 이행하기 위함.’
그것도 아니라면 카릴이 내뱉었던 삼국의 멸망을 그 역시 바라지 않기 때문일지 모른다.
‘그가 유적에서 건진 고서를 생각하면 마지막이 가장 확률이 높겠지. 아직 조사를 해야 할 것들이 많으니까.’
뿐만 아니라 유적의 조사와 관련해서 삼국 귀족의 자제들이 관련되어 있을 가능성이 컸다.
‘제법 머리를 썼군. 약소국인 자신들이 제국과 공국의 틈바구니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한 선택치곤 말이야.’
제국과 공국.
대륙에서 쌍벽을 이루는 거대한 세력이었지만 어떤 의미에서 그들을 뛰어넘는 힘을 가진 유일한 존재가 바로 교단이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교단을 자신의 편으로 끌어들이려고 하는 건가.’
하지만 아쉽게도 그들의 계획은 실패로 돌아가게 된다.
‘황제가 이곳으로 오기 때문이지.’
카릴은 고개를 들어 교단의 궁을 훑었다.
높은 천장.
그리고 수십 미터 위에 있는 작은 창들을 통해 빛이 들어와 건물 안은 어둡지 않았지만 어느 것 하나 제대로 밖을 비추는 것이 없었다.
마치, 이곳의 위치를 감추기 위해 설계되어 있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아직까진 황제가 이곳에 오지 않았다. 주교나 몇몇 고위 사제들은 소식을 알고 있을지 모르지만…….’
적어도 유적을 발견하고 조사한 조이 요한셀은 오랫동안 교단을 비웠기 때문에 제국에 대한 소식을 듣지 못했다.
‘그를 만난 게 다행이야. 마법진으로 이동한 덕분에 황제보다 빨리 교단에 올 수 있었던 것도 있지만 그보다 같은 맥락으로 삼국에 발견된 유적을 위해 나를 교단에 초대한 것이겠지. 단순한 호의만은 아니겠지만 덕을 봤군.’
대륙을 관통하는 이동 마법을 쓰면 확실히 시간도 단축되고 피로감도 줄었다.
다만,
반대로 목적지로의 루트를 알 수 없다는 단점도 있었다.
‘흐음…….’
그러나 마법진으로 이동하여 제대로 위치를 감지하기 어려웠지만 카릴은 감각적으로 이곳이 어딘지 추측할 수 있었다.
‘아주 잠깐이지만 도착하고 나서 이동 마법진의 빛이 사라졌을 때 보였던 산은 분명 마론 협곡이었어.’
대륙에 비슷한 지형이야 많을 수 있겠지만 카릴은 그곳을 확신할 수 있었다.
거기서 있었던 격전을 절대로 잊지 못하기 때문이다.
‘마론 협곡……. 첫째인 마르트 맥거번이 마족에게 심장이 꿰뚫렸던 곳이니까.’
육안으로 그곳이 보인다는 것은 제국과 그리 멀지 않다는 것을 뜻했다.
‘협곡이 보이는 위치는 북동쪽. 그렇다면 헤임의 위치는 제국에서 조금 아래일 가능성이 높겠지.’
카릴은 주교 이외에 나머지 사람들에게 가볍게 인사를 하면서 생각했다.
그들 한 명 한 명이 부드럽게 카릴의 인사를 받아주었다.
‘그렇다면 공국과는 거리가 꽤 떨어져 있는데……. 초기 교단의 창립 일원 루레인가의 사람들이 많아서 공국과 가깝게 성지를 지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닌가 보네.’
주교는 천천히 카릴에게 말했다.
“속성석을 채광할 수 있는 마광산을 소유하고 있다고 조이 경에게 들었네만.”
“그렇습니다. 아직 부족하지만 교단에 힘이 될 수 있도록 지원코자 이렇게 실례를 무릅쓰고 왔습니다.”
“무릇 교단은 오직 율라의 힘만을 믿는 사람들일세. 마력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나 그대의 제안은 마음만 받도록 하지.”
주교의 목소리에는 힘이 있었다.
마법적인 것이 아닌 신성한 힘이 담긴 그의 목소리를 들을 때마다 어쩐지 카릴은 가슴이 답답해지는 기분이었다.
“교단은 여행자에게 언제나 잠자리를 제공할 의무가 있다네. 이곳을 찾은 그대 역시 우리의 인연이니 편히 쉬다 가게.”
배려 있는 말이었지만 주교는 손을 들어 올림으로써 더 이상 카릴과의 거래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 않겠다는 거절의 의사를 표했다.
‘뭐……. 상관없겠지.’
애당초 속성석의 거래는 교단에 오기 위한 미끼에 불과했으니까.
뿐만 아니라 주교가 그와의 거래를 거절함으로써 교단에겐 속성석의 가치가 그다지 높지 않다는 것도 알 수 있었다.
‘하지만 필요 없다면 필요하게 만들어야지.’
카릴은 낮게 웃었다.
“계시는 동안 이 아이가 카릴 님의 수발을 들 것입니다.”
카릴의 옆에 있던 사제가 수련생인 듯 보이는 아이 한 명을 인사시켰다.
“고작 상인에 불과한 저에게 시종은 필요 없습니다. 그저 며칠만 묵었다가 돌아가겠습니다.”
“교단의 규율입니다. 심려치 마십시오.”
“…….”
사제의 말에 꾸벅 인사를 하는 아이는 카릴의 또래와 비슷해 보였다.
그 아이를 보고 있자니 어쩐지 저택에서 자신을 도왔던 루벤이 생각났다.
“호의에 감사드립니다.”
카릴은 굳이 거절을 하는 것도 좋지 않다고 생각했다.
‘감시를 붙이기 위함이겠지만.’
어차피 자신의 눈과 귀는 따로 있었다. 지금도 어딘가 교단을 조사하고 있을 터였으니까.
“그럼…….”
카릴은 주교에게 다시 한번 인사를 하고는 천천히 홀을 빠져나왔다.
‘어쩌면 주교를 비롯하여 교단의 고위 관계자들은 오히려 루레인가와 연관이 없을 가능성도 있겠는걸.’
교단은 몰라도 우든 클라우드라면 속성석을 원했을 테니까.
‘일단 에이단을 만나야겠군.’
* * *
역사적으로 교단은 마도 시대 때부터 존재했으니 제국보다 더 오래된 유일한 단체였다.
빛의 신 율라를 모시는 교단은 입단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들의 마력은 평범한 5대 속성이 아닌 신성력이라고 불리는 특수한 성질을 띤다고 알려져 있다.
‘알른 자비우스가 내게 말했던 마법의 5대 속성 이외에 2가지.’
빛과 어둠.
그 두 개의 힘이 알른은 율라의 것이라고 했었다.
교단은 두 가지 이면에서 극도로 빛에 치우쳐져 있는 단체였다.
‘신성력은 다른 마법보다도 탁월한 신체 복원 능력이 있어 회복계 마법에 월등한 효과를 가진다.’
당연한 말이지만 그렇기 때문에 교단은 많은 치유사를 배출했다.
조이 요한셀 역시 그중에 한 명이었다.
사제들은 육체를 단련시키기보다는 정신을 수행하는 자들이다.
물론,
신성 기사라고 불리며 교단 안에서도 전투를 위한 부류가 있긴 했지만 그들은 소수에 불과했다.
카릴이 알고 있는 사제들은 결코 유물과 유적 탐색에 적합한 자들이 아니었다.
‘지금의 일은 조이 요한셀의 독단인 건가.’
하지만 그럼 어째서 그는 자신을 데리고 온 걸까.
‘주교는 생각보다 나에게 관심이 없어. 하지만 그는 달랐어. 그렇다면 나에 대한 보고를 주교가 아닌 다른 사람에게 하려는 건가?’
카릴은 방으로 돌아와 탁자에 앉아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이상해.”
“네? 뭐 필요한 것이라도 있으신가요?”
문에 서 있던 수련생 아이는 카릴의 말에 깜짝 놀라며 되물었다.
그 모습마저 루벤과 비슷해서 카릴은 피식 웃었다.
“아니. 없으니 가봐. 필요한 게 있으면 부르도록 하지.”
“알겠습니다.”
꾸벅 인사를 하고 돌아서는 아이를 바라보며 그는 생각했다.
‘접점이 없단 말이지. 접점이. 교단, 우든 클라우드 그리고 조이 요한셀의 행보. 내가 놓치고 있는 게 있는 걸까.’
카릴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어떻게 생각해?”
커튼 뒤에 숨어 있던 에이단은 작은 문서 하나를 들고 있었다.
“여기 엄청 재밌는 곳이네요.”
“그건 뭐지?”
“교단의 기록들입니다. 전부는 아니지만 일부를 구할 수 있었거든요.”
자료를 받아 보고 난 다음 카릴은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그를 바라봤다.
“이걸 어디서 얻었어?”
“주크에게 들었습니다. 교단에 암연과 관련된 자가 있다고요. 마스터가 주교를 만나는 동안 다녀왔죠.”
“들키진 않았어?”
카릴은 대범한 그의 행동에 놀라며 말했다.
이제 에이단 하밀은 동방국 암연 소속이 아닌 자신의 수하였으니까.
“뭐……. 다른 곳이라면 모르겠지만 다행히 교단은 폐쇄적인 곳이라서요. 주크가 함구하고 있었던 터라 아직 보고가 올라가지 않았죠. 덕분에 잘 둘러댔습니다.”
에이단은 서류를 탁자 위에 놓으면서 말했다.
“들키면 목이 날아가겠지만. 왠지……. 여기 썩 기분 좋은 곳은 아니라서 말이죠. 저도 좀 궁금해졌거든요.”
“그렇지?”
“그래도 완벽한 자료는 아닐 겁니다. 암연은 동료라 할지라도 절대로 자신의 일을 다 공개하진 않으니까요.”
“보아하니 주크 디 홀드가 너보다 암연에서의 위치가 위인가 보군. 이거 그녀의 이름을 판 거지?”
“하하.”
에이단은 나지막하게 웃었다.
“이제는 무슨 말을 해도 놀라지 않으시겠어요. 설령 주크 디 홀드가 동생이 아니라 연상이라고 해도 말이죠.”
“응. 사실이잖아.”
“……네?”
농담처럼 툭 던진 그의 말에 아무렇지 않게 받는 카릴을 보며 그는 멍한 표정을 지었다.
‘생각했던 것 이상이야. 동방국이라……. 이제는 좀 주의를 해야겠는걸.’
자신이 상상한 것 이상으로 대륙에 깊게 관여하고 있었다. 베일에 싸인 교단에까지 첩자가 있다면 나머지 나라들은 말할 것도 없었다.
촤르륵—
카릴은 그가 건넨 기록을 펼쳤다.
‘이것 보게……?’
그 안에는 여러 내용이 빼곡하게 적혀 있었지만 그중에서도 에이단이 표시해둔 부분이 있었다.
‘미치겠군.’
그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확실히 교단은 단순한 곳이 아니었다.
물론,
교리를 공부하고 끊임없는 노력을 해야 하는 곳이기도 하지만 에이단이 제시한 자료는 그런 의미가 아니었다.
교단과 우든 클라우드 그리고 조이 요한셀이란 세 개의 점을 잇는 접점(接點).
“이거 확실해?”
“암연 사람이 조사한 겁니다.”
에이단은 확신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그의 말에 카릴은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놓친 게 이거였군.’
바로,
제국이었다.
물론 그 점을 생각하긴 했었다. 이후 만나게 될 황제와 조이 요한셀의 관계를 알고 있었으니까. 그러나 그 접점을 잇는 요소의 시간 순서를 잘못 생각한 것이었다.
‘황제가 우든 클라우드와 관련이 있었던 게 아니라 이미 조이 요한셀이 황제의 사람이었단 말이지.’
카릴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이거 일이 재밌게 흘러가는데…….”
교단이라는 베일에 싸인 이 비밀의 장소는 이미 제국과 우든 클라우드와의 피 터지는 머리싸움이 벌어지고 있는 전쟁터였다.
‘누가 교단을 손에 넣느냐……. 아직 우든 클라우드 쪽은 누구인지 알지 못한다. 그럼, 어디 나도 한번 이 판에 껴볼까.’
그는 눈빛을 빛냈다.
그는 오랜만에 품 안에 항상 가지고 다니던 작은 주머니를 꺼내었다.
카릴은 그 안에서 작은 청보석이 박힌 장신구를 꺼냈다.
에이단은 그게 무엇인지 잘 알고 있었다.
‘크웰 맥거번의 직속 인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