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9th Class Swordmaster: Blade of Truth RAW novel - Chapter (97)
9클래스 소드 마스터 : 검의 구도자 9클래스 소드 마스터 – 검의 구도자-97화(97/497)
83. 지겨운 일
“일이 이렇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죄송합니다, 카릴 님. 주교께서 반대하실 줄은…….”
“아닙니다. 주교의 말씀도 일리가 있습니다. 속세의 상인과 거래를 하는 것은 교단과 어울리지 않겠지요.”
카릴은 에이단이 준 자료를 읽고 난 뒤에 어떻게 다시 조이 요한셀을 만나야 할까 고민했다.
하지만 의외로 일은 쉽게 풀렸다.
당사자가 직접 자신을 찾아왔기 때문이었다.
‘속이 탔겠지. 교단은 필요 없다지만 네가 황제의 사람이라면 넌 내가 필요할 테니까.’
카릴은 자신을 찾아온 그와 함께 정원을 거닐고 있었다.
새벽이 다 된 늦은 밤에 사람들의 눈을 피해 남자 둘이서 산책을 하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꿍꿍이가 있어 보이는 모습이었지만 그들의 대화는 여전히 평범했다.
“주교의 반응은 솔직히 저도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고위 사제분들도 마광산을 보유한 길드와 손을 잡는 것을 환영했습니다만…….”
“교단에서 주교의 명령은 절대적이죠.”
“며칠 시간을 주신다면 다른 사제분들과 함께 주교님을 다시 한번 설득해 보겠습니다.”
조이 요한셀이 카릴에게 먼저 제안을 했다.
어차피 교단에 머무르며 우든 클라우드의 관계자를 찾고자 했던 카릴로서는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아 참……. 거래는 그렇다 쳐도 한 가지 말씀드릴 게 있습니다. 경황이 없어 말씀을 드리지 못했네요. 조이 경께서 주교님께 전해 주시면 감사드리겠습니다.”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카릴은 조이 요한셀에게 먼저 말했다.
“삼국 아래에 있는 오래된 유적 하나가 있습니다. 혹시 들어 보셨는지 모르겠습니다. 예전 마광산 채굴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그곳을 발견했지만 눈에 띄는 것은 없어 내버려 두었죠.”
“…….”
“아시다시피 유적은 위험하지만 그 대신 얻을 수 있는 유물의 가치는 헤아릴 수 없습니다. 솔직히 욕심이 났습니다. 타투르에는 목숨을 내놓고 사는 자들이 모인 곳인지라 반년 전 탐사를 하기로 결정했고요.”
“네? 반년 전이라구요?”
조이 요한셀은 놀란 표정을 감추지 않았다.
“네. 반년 전이요.”
“허……. 음…….”
물론.
거짓말이었다.
애초에 유적을 발견한 적도 없거니와 마광산과 유적의 거리도 멀었다.
다만 카릴은 알른 자비우스의 기억 속에 유적의 비밀을 끄집어내어 말할 뿐이었다.
‘죽었다 깨어나도 첩자는 못할 양반이군.’
그의 표정을 보면서 카릴은 조이 요한셀의 생각을 쉽게 읽을 수 있었다.
혹여나 자신이 유적에서 얻은 유물이 그저 빈껍데기에 불과하고 알맹이는 이미 빼앗긴 게 아닐까 하는 생각.
‘아냐, 그럴 리 없어. 보고를 받고 내려갔을 때 봉인은 풀리지 않은 상태였다. 다른 유적을 말하는 거겠지.’
하지만 조이 요한셀 역시 경험이 있는 터라 쉽사리 카릴의 미끼를 물진 않았다.
그러나 이미 그 찰나의 심경만으로도 카릴은 그의 생각을 흔들기 충분했다고 여겼다.
“용 살해자(Dragon Slayer).”
카릴은 고삐를 늦추지 않았다.
이왕 흔들 거라면 확실하게 자신이 가진 패를 보여 주는 게 나았으니까.
“여담입니다만 온갖 사람들이 모이는 타투르인지라 마침 고대어를 조금 알고 있는 추방 사제가 있어서 유적에서 얻은 유물들을 완벽하지는 않지만 조금 살펴볼 수 있었습니다.”
“…….”
“그 사제가 말하길 유적 안에 있던 유물은 고대에 존재했다던 마도기병(魔道騎兵)의 설계도라더군요.”
카릴은 아무것도 모른 척 말했다.
“마도기병이라면 그 골렘을 말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제가 알기로 아직까지 운용되는 골렘이 공국에 남아 있다던데…….”
“그렇다고 하더군요.”
“저희 같은 무지들이 봐야 소용없는 일인지라……. 사제의 말로는 2권의 책으로 되어 있다더군요. 아쉽게도 한 권밖에 저희는 찾지 못했지만 말입니다.”
묘한 웃음을 지으며 카릴은 말했다.
조금 전은 거짓말이었지만 지금의 말은 틀린 말은 아니었다.
정말로 그 유적 안에는 아슈칼론의 설계도가 숨겨져 있었으니까.
그리고 그 책은 분명 상, 하로 나누어져 있다.
골렘(Golem)이라 부리는 작동 인형은 마도 시대를 대표하는 유물이었다.
영혼 대신에 시동석의 마력으로 움직이는 녀석들은 교도 용병단의 비공정과 같은 원리였지만
지금도 유적 안에는 여전히 작동하는 골렘이 발견되기도 했으니까.
‘하지만 아슈칼론은 특별하지.’
제작자 볼프강 슈마르는 마도 시대에 수많은 골렘을 만든 창조자였다. 하지만 인간인 그는 태생적으로 뛰어난 제작자인 드워프들의 벽을 넘지 못했다.
알른 자비우스와도 잘 알고 있던 그는 말년에 새로운 골렘 하나를 설계했다.
그는 뮤르가(家)의 역작이라고 불리는 골렘, 엔더러스를 뛰어넘을 마도기병을 만들고자 했었다.
‘그리고 성공했지.’
기동력에부터 파괴력, 유지 시간 등등…….
이론상으로 완벽했다.
하지만 그의 설계는 결국 이론에서 그쳤을 뿐 실행되지 못했다.
‘골렘을 움직이게 하는 시동석. 그의 설계대로라면 교도 용병단의 비공정을 움직이는 시동석 정도의 엄청난 크기가 들어가야 한다는 거지.’
결국.
마도 시대에도 시동석을 구하지 찾지 못해 폐기 된 계획이었으니 지금은 당연히 불가능한 일이었다.
‘게다가 네가 가지고 있는 책은 설계도의 하권. 주로 시동석에 대한 내용이라 상권이 없으면 무슨 말인지 알 수도 없고.’
카릴은 알른의 기억 속에서 상권의 행방을 찾았다.
고서가 잠들어 있는 위치가 무척이나 생각지 못한 곳이라 흥미로웠지만 실현할 수도 없는 골렘을 부활시키고자 시간을 낭비할 생각은 없었다.
‘뭐……. 볼프강 슈마르와 같은 천재가 또 나타난다면 모르지만. 정말 그런 자가 나타나면 마도기병을 만들 수도 있겠지.’
골렘의 위력은 누구보다 카릴이 잘 알고 있었다.
제국이 공국을 침공했을 때 적에 남아 있던 골렘 중에 몇 기를 운용하던 마공학자들에 의해 큰 피해를 입기도 했었으니까.
“마도기병이라……. 놀라운 걸 찾으셨군요.”
고서의 뜻도 아직 해석을 하지 못한 조이 요한셀이 이 정도로 자세히 알 수 있을 리 없었다.
그랬다면 애초에 유적의 유물을 그런 식으로 방치하진 않았을 테니까.
“예전부터 교단이 유물의 복원 사업을 하고 있다는 것을 들었습니다. 도움이 되실지 몰라 말씀드립니다.”
“그렇습니까……?”
“혹시 모르죠. 정말 골렘 제작에 성공하게 될 수 있다면 교단의 위상은 지금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오르지 않겠습니까.”
‘당신의 입장에선 황제의 위상을 뜻하겠지만.’
조이 요한셀은 카릴의 말에 짐짓 아무렇지 않은 척 말했다.
“흥미로운 이야기네요. 내일 아침 교단에 보고를 올려보겠습니다. 만약 그게 사실이라면 마광석과 별개로 카릴 님을 찾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저는 꼭 주교와 직접 거래를 하지 않아도 좋습니다. 상인은 그저 이윤이 남는 장사를 하면 되니까요.”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교단의 물자는 주교가 관리하는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조이 경께서 뜻이 맞는 고위 사제님들을 설득해 주시면 좋을 듯싶은데……. 들어가는 자원이야 타투르에서 충원을 하겠습니다.”
“으음.”
카릴은 조이 요한셀의 안색을 살폈다.
‘그렇게 되면 당신 말고 제국의 편에 선 자가 누구인지도 알 수 있겠지.’
“알겠습니다. 제가 한번 사제님들께도 언질을 줘보지요.”
“감사합니다.”
뒤돌아가는 그의 발걸음이 어쩐지 조금 속도가 빨라진 듯 보였다.
유적의 유물을 복원하는 것은 사실상 도박에 가까운 일이기도 했다.
하지만 복원만 가능하다면 그 가치는 어마어마했다.
공국의 골렘도 그렇거니와 제국 황가의 무구들까지 어떤 유물은 기사단 하나의 가치를 가지기도 했으니까.
‘에이단.’
카릴은 목소리를 내지 않고 입 모양만으로 말했다.
어딘가 어둠 속에 숨어서 자신을 주시하고 있을 그에게 명령을 내렸다.
‘저 녀석을 따라가. 누군가에게 연락을 취하는지 알아내.’
대답 대신.
정원의 풀잎이 바람과 반대 방향으로 가볍게 흔들렸다.
“흠.”
정원에 홀로 남은 카릴은 낮은 한숨을 내쉬면서 하늘을 바라봤다.
‘내가 이렇게 약은 녀석이었나.’
그는 자신도 모르게 쓴웃음을 지었다.
‘역시나 머리를 쓰는 일은 귀찮아. 그냥 쓸어버리는 게 적성에 맞겠지만…….’
우우우웅…….
허리에 매고 있는 검이 어쩐지 우는 것처럼 낮은 떨림을 토해내고 있었다.
‘하지만 얄팍한 머리를 굴리는 녀석들에게 수 싸움을 지는 것도 싫거든.’
십수 년은 그들보다 전장을 굴렀던 자신이었다.
‘열심히 고민해 봐라, 조이 요한셀.’
카릴은 조용했던 성도 안에서 이제부터 많은 일이 일어날 것이라는 걸 즐기는 듯 웃으며 걸음을 옮겼다.
* * *
[조이 요한셀, 17세. 부모를 알 수 없는 고아, 지학의 나이가 갓 넘었을 때 교단에 입단. 후원자는 알 수 없으나 그의 입단을 받아들인 사제는 제1급 사제 유린 휴가르. 그의 밑에서 5년간 가르침을 받고 정식 사제로 입관. 이후 현재까지 포교 활동을 위해 교단을 떠남.] [2년에 한 번씩 귀환하여 보고를 올리는 데 주로 유적의 위치에 대한 보고이며 돌아왔을 때 매번 유린 휴가르를 따로 만남.]에이단이 보낸 서류에서 조이 요한셀에 대한 것은 어찌 보면 크게 이상한 일은 없었다.
교단에서 그 말고도 유적 발굴을 하는 사제들은 있었으니까.
하지만 카릴이 그의 자료를 보고 교단이 아닌 황제의 사람이라는 직감한 것은 그의 후원자인 유린 휴가르 때문이었다.
‘유린 휴가르……. 유린 휴가르, 라……. 그 이름을 여기서 볼 줄이야. 솔직히 그가 교단의 사제를 하고 있는 것 자체가 웃긴 노릇이군.’
카릴은 보고서에 적힌 이름을 되뇌며 기억을 더듬었다.
전장의 광인(狂人), 유린 휴가르.
제국의 기수로서 가장 많은 삼국 장군의 목을 치고 그의 어깨에 피가 마를 날이 없었다고 전해졌던 대장수인 그가 지금 교단에 있었다.
그것도 1급 사제라는 최상등급의 사제라는 걸 보고서 카릴은 헛웃음이 났다.
‘도대체 얼마나 오래전부터 교단에 자신의 사람들을 심어 놓은 것일까.’
그에게 있어서 황제란 이단섬멸령 이외에 큰 존재감은 없었다.
올리번이 황위에 오르고 난 뒤부터 그의 삶에 제국이란 존재가 들어왔었으니까.
카릴에게 황제란.
그저 지병으로 사라지기 전에 다음 세대에게 자신이 이루었던 제국을 물려주는 역할에 불과했었다.
‘그런데…….’
얼마 남지 않은 목숨을 놓지 않고서 끝까지 권력을 포기하지 않았다.
‘타이란 슈테안, 당신은 참으로 욕심이 많은 자로구나. 자식들에게 지금까지 황위를 물려주지 않은 이유도 이 때문이겠지.’
어쩌면 황제인 그가 마지막으로 기댈 곳이 교단이었던 걸지도.
‘황제가 죽고 난 뒤, 올리번은 황제가 심어 놓았던 모든 사람을 제국으로 불렀다. 그중에 한 명이 유린 휴가르였고 동시에 조이 요한셀도 있는 거지.’
아무렇지 않게 생각했던 역사의 조연들조차 이런 식으로 퍼즐이 맞춰지고 있었다.
시간을 역행해 왔지만 카릴은 신이 아니다.
그가 태어나기 이전의 역사도 알지 못하거니와 그가 경험하지 못했던 일들 역시 당연히 알 수가 없었다.
하지만 새로이 알게 되는 이런 작은 차이를 통해 자신이 알고 있는 역사에 빗대어 더 큰 변화를 줄 수 있을 것이라고 확신했다.
그 미래가 자신이 알고 겪었던 전생의 것보다 더 나은 것이길 바랄 뿐이었다.
“…….”
카릴은 벽에 세워 놓은 검을 바라보며 입맛을 다셨다.
“역시 성격에 안 맞아.”
이마를 짚으며 낮은 한숨을 내쉬고는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오직 자신만을 생각하는 강함이 곧 질서가 되고 명분이 되었던 과거가 조금 그리워지는 밤이었다.
* * *
얼마 지나지 않아 교단은 소란스러워졌다.
카릴은 기다렸던 일이 벌어진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비밀리에 교단으로 온 마차 한 대.
호위도 없고 이렇다 할 꾸밈도 없는 것이었지만 마부석에 앉아 있는 자도 마차 안에 있던 사내도 범상치 않은 기를 뿜어내고 있었다.
히이이잉—!!
마차가 멈추고 안에서 내려오는 한 남자.
굽은 허리와 퀭한 눈동자엔 힘이 없어 보였으며 검버섯이 끼어 있는 피부는 생기를 잃었다.
하지만 교단의 사제들이 황급히 나와 그 미라 같은 노인을 맞이했다.
“…….”
그중에는 조이 요한셀도 그의 후원자이자 며칠 전 자신과 독대를 했던 유린 휴가르도 보였다.
‘실제로 보는 건 처음인가.’
창문 밖으로 얼굴을 내려 보던 카릴은 전생에서도 만나지 못했던 그의 이름을 낮게 불렀다.
“타이란 슈테안.”
주름에 가렸음에도 올리번과 닮은 눈매가 어쩐지 거슬리면서도 눈길이 갔다.
에이단은 팔짱을 낀 채로 벽에 기대어 말했다.
“정말 하실 생각이십니까?”
“며칠 동안 조사를 했었잖아. 그리고 네 말대로 조이 요한셀이 지금껏 유적을 탐사했던 이유가 황제 때문이라는 것도 알았고.”
카릴의 말에 에이단은 어깨를 으쓱했다.
“확실히 새벽마다 그가 전서구를 날리긴 했지만 그 새들의 목적지가 꼭 제국이라는 보장도 없는데요. 게다가 설마 교단이 모를 리도 없고요.”
“제국 맞아. 정확히는 저자고.”
“허…….”
확신에 찬 그의 말에 에이단은 살짝 인상을 찡그렸다.
“내가 시킨 대로 했지?”
“네. 분부하신 대로 이틀 전에 조이 요한셀의 방에 마스터께서 주신 인장을 놔뒀습니다. 확인한 것까지 제가 봤는데 별로 반응이 없던데요?”
“반응은 지금으로 충분해. 며칠 전까지만 하더라도 나와 그렇게 대화를 하던 자가 그저께부터 얼굴도 보이지 않잖아.”
카릴은 낮게 웃었다.
그러고는 창문에 기대어 턱을 괸 채로 나른한 목소리로 말했다.
“슬슬 지겨운 이 짓거리도 끝날 때가 됐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