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Absolute on the Tennis Court RAW novel - Chapter 143
테니스 코트 위의 절대자 143화
2016 윔블던 (21) – 압박감에 관하여
현시대를 살아가는 테니스 선수 중, Big 3의 테니스에서 영감(靈感)을 받지 않은 남자는 없다.
여기에서 한 가지 흥미로운 사실은 세 사람의 스타일과 장단점이 모두 다르다는 것인데, 그래서 보통 자신이 추구하는 테니스와 흡사한 선수를 롤모델로 삼았다.
그중에서도 스티브 존슨은 현대 테니스의 ‘이상적인 모범’으로 평가받는 노박 조코비치를 따랐다.
넓은 코트 커버와 안정적인 스트로크를 바탕으로, 특별하게 강한 샷 없이도 세계 최고가 되었다.
스티브 존슨에게 노박 조코비치는 사기적인 선수였고, 그래서 그의 장점을 닮고자 오랜 시간 큰 노력을 기울여 왔다.
나이가 들면서는 테니스를 이해하는 부분 역시 좋아졌고, 투어 경험이 많아지면서 적절히 체력을 분배하는 방법에도 조금이지만 눈을 떴다고 생각했다.
젊음의 패기에는 노련함과 경험으로.
이것이 스티브 존슨의 계획이었다.
하지만.
“OUT!!”
“챌린지를 부탁합니다!”
.
【“Mr. 존슨. 아웃 여부에 관한 챌린지입니다.”】
짝.
짝.
짝.
【“게임, 우주. 네 번째 게임.”】
미국 캘리포니아 오렌지 카운티에서 태어난 26살의 테니스 선수는 오히려 수(手)싸움에서 밀리고 있음을 느꼈다.
게다가 코트의 분위기도 자신에게 호의적이지 않았다.
마치, 패하기 위해 이곳에 있는 것 같았다.
.
.
▷ SET 2
6 3 : 신우주
2 1 : 스티브 존슨
(앤드류 캐슬) – BBC 코멘테이터
“너무나도 당연하다는 듯 경쟁자들을 제압해 나가고 있다는 사실이 놀랍습니다. 물론 이번 매치는 끝나지 않았지만, 앞서 나가고 있다는 게 전혀 어색하지 않습니다. 이 어린 친구의 테니스가 윔블던 초반보다 지금이 더 안정적이라고 느끼는 건 저뿐일까요?”
.
신우주와 마찬가지로, 스티브 존슨도 본격적인 윔블던이 시작되기 전에 센터 코트를 방문했다.
처음 윔블던에 참여했던 건 2013년이었지만, 그땐 지금보다 정책이 더 까다로워 매치가 없으면 출입할 수 없었다.
떨리는 마음으로 입장했을 때, 스티브 존슨은 가볍게 감탄했다.
“와우.”
라고.
잔디로 가득 뒤덮인 코트.
그 위에 그어진 흰 줄은 어딘지 모르게 경건해 보였다.
이런 분위기에 압도되어, 멋지다는 가벼운 말 한마디를 꺼내기조차 쉽지 않았다.
그저 많은 이들이 그러하듯, 스티브 존슨도 이러한 부분 때문에 이곳이 ‘테니스계의 대성당’으로 불린다고 생각하며 감탄한 채 밖으로 빠져나왔다.
하지만 지금 이곳은 불구덩이가 됐다.
마치, 지옥에 있는 기분이 들었다.
“으아-!”
탕!
.
“와아아-!!”
“휘—익!”
도저히 받을 수 없는 각도로 날아온 신우주의 백핸드가 득점으로 이어진 순간, 뜨겁게 달아오르는 센터 코트는 꼭 입을 벌리고 불구덩이로 자신을 빨아들이는 것처럼 느껴졌다.
압박감에 서서히 무너지기 시작한 스티브 존슨.
그는 허무하게, 다시 포인트를 내어준다.
【“게임, 우주. 다섯 번째 게임.”】
.
(트레이시 오스틴) – BBC 해설
“정말 놀랍게도, 두 사람 사이에는 몇 단계의 격차가 있는 것처럼 느껴지네요. 당신의 말대로 이 소년의 테니스가 성장한 게 느껴집니다. 잔디코트를 마침내 편안하게 느끼기 시작한 것 같아요. 매치를 풀어나가는 요령이 정말 대단합니다.”
(앤드류 캐슬)
“이번 세트에서도 지금까지 그런 부분을 느끼게 만드는 장면이 많이 나왔습니다. 이 드롭 샷을 좀 보세요. 상대의 서브를 완벽하게 무력화했습니다. 반대로 자신의 서브 게임은 확실하게 가져가고 있습니다. 속도는 평소보다 빠르지 않지만, 존슨의 반응이 좋지 않다는 것을 파악한 영리한 대처입니다.”
.
신우주가 지금까지 보여준 모습은 변덕이 심하고 입맛도 까탈스러운 윔블던의 오랜 팬들의 마음마저 휘어잡고 있었다.
그들은 신우주의 드롭 샷에서 로저 페더러의 흔적을 찾았고, 받기 어렵다고 생각한 볼을 기어코 넘겨내어 마침내 득점까지 만드는 모습에선 꼭 라파엘 나달을 보는 착각을 느꼈다.
또 각도 깊은 한 손 백핸드는 스탠 바브린카의 것을 쏙 빼닮았는데, 동작은 마치 리샤르 가스케를 보는 것처럼 부드러우면서도 우아했다.
물론 종종 미숙한 부분을 드러내고 실수도 있긴 했지만, 거기에 크게 영향을 받지 않는 의연함도 보여줬다.
과연 신우주는 누구를 닮았을까?
매치를 지켜보고 있는 팬들은 각자, 머릿속으로 본인만의 생각을 만들어 나가고 있다.
【“Game For Set, 우주. 두 번째 세트. 6-1”】
“휘이이익!!”
연이은 우승 후보의 탈락으로 그 어느 때보다 남은 참가자들의 우승 확률이 높아진 지금, 8강 진출까지 단 하나의 세트만을 남긴 소년은 윔블던의 스타로 자리매김했다.
오후 12시 59분.
매치는 채 1시간이 지나지 않았다.
* * *
타앙-!!
“예!”
“와-!!”
짝짝짝짝짝
.
【“게임, 존슨. 열 번째 게임.”】
.
.
▷ SET 3
6 6 5 : 신우주
2 1 5 : 스티브 존슨
세 번째 세트가 시작되고부터, 상대가 매우 강하게 포핸드를 시도했다.
그리고 그것 때문에, 매치가 까다로워졌다.
처음부터 이랬다면 훨씬 힘들었을 거다.
어째서 인제 와서야 이런 위력적인 무기를 보여주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서비스 게임을 계속 지켜 나가다 보면 결국엔 매치를 가져갈 수 있을 거로 생각하고 있다.
일단, 이번 서브 게임에 집중한다.
【“열한 번째 게임, 서브, 우주.”】
“후우-”
첫 번째 세트 도중 서브의 속도를 약간 줄이고 랠리에서 네트 클리어런스에 변화를 주었던 게 효과를 보고 있다.
네트 클리어런스란, 샷이 네트를 넘는 높이다.
클리어런스가 높으면 높게 통과하는 거고.
클리어런스가 낮으면은 그 반대가 된다.
테니스의 걸음마 단계를 지나고 가장 먼저 배웠던 것이 이 네트 클리어런스인데, 테니스를 전술적으로 복잡하게 만드는 주요 원인 정도라고 생각하면 된다.
클리어런스의 높낮이에 따라 바운딩이 달라지기 때문에, 샷을 보낸 이후 내 의도대로 매치를 끌어나가기 쉬워진다.
오늘의 경우, 나는 클리어런스를 낮췄다.
조금 더 도전적인 샷을 했단 뜻이다.
네트에 바짝 붙여야 했으니까.
통, 통, 통.
통, 통, 통.
“으아-!!”
타앙-!
.
탕.
센터서비스라인을 향해 보냈던 서브를 상대가 백핸드로 밀어내며 리턴을 보내왔다.
방향은 정면.
센터마크 쪽이다.
서브 이후 재빨리 콘티넨털에서 세미-웨스턴으로 그립을 바꾼 나는 물러나 있던 장소에서 포핸드 샷을 시도했다.
마찬가지로, 낮은 네트 클리어런스 샷이다.
방향은 내 기준 왼쪽 앨리(Alley)라인.
상대를 구석으로 밀어 넣을 생각이다.
목적은 어프로치(Approach)다.
탕!
적당히 잘 꺾인 샷이 라인 안쪽에 떨어지고, 발 빠르게 움직였던 상대는 약간 불편해 보이는 자세로 포핸드를 가져갔다.
하지만 자세가 나빴던 만큼 샷의 길이 조절까진 완벽하게 가져가지 못했는데, 다소 짧게 떨어지는 볼을 확인하며 앞쪽으로 한두 걸음 나아갔다.
이번에 그립은 풀-웨스턴이다.
조금 톱스핀을 주려고 한다.
탕!
다시 부지런히 반대편으로 뛰는 상대.
충분히 추격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예상한 대로, 받아칠 수 있을 것 같다.
탁, 탁, 탁.
.
탕!
그러나 이미 나는 네트 앞에 대기 중이었고, 강하게 넘어온 백핸드에 반응하여 왼쪽으로 몸을 돌리며 라켓을 앞으로 쭉 뻗었다.
마지막까지 볼에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라켓에 닿기 전, 약간의 회전을 준다.
탕.
.
“오오오오-!!”
“와아–!”
상대가 보낸 샷에 실린 힘을 그대로 흡수라도 한 것처럼, 내 라켓에 맞은 볼은 네트를 살짝 넘는 높이로 움직였다가 곧장 코트를 향해 떨어져 내렸다.
.
(앤드류 캐슬)
“Oh! It’s beautiful!”
.
【“피프틴, 러브.”】
오늘은 확실히 드롭 샷 감각이 살아 있다.
평소보다 더 세밀히 조절할 수 있다.
그리고 또 하나 기쁜 사실은 로저 페더러 선수가 내 오른쪽 무릎 아래를 공략한 방법을 찾았다는 부분이었다.
사실, 이게 제일 기분이 좋다.
꼭 보물을 발견한 느낌이다.
“으아-!!”
타앙-!
.
“폴트!!”
퍼스트 서브가 네트에 걸리고, 나는 숨을 한 번 크게 들이마시었다가 내쉬며 어깨에 들어간 힘을 뺐다.
세컨드 서브는 상대가 제법 날카롭게 반격을 하지만, 주도권을 쥐고 있는 상황에선 그걸 전부 받아치고 득점으로 이어나갈 수 있다고 믿고 있다.
상대도 내 테니스에 점차 적응한 것처럼, 나도 상대의 테니스가 어떤 형태인지를 좀 더 알게 됐다.
“으아-!!”
탕!
.
탕!
센터서비스라인으로 슬라이스(Slice)해 보낸 서브를 상대는 조금 강한 포핸드 리턴으로 받아냈다.
빠르면서도 길게 잘 떨어진 볼은 까다로운 위치에 떨어졌고, 뒤로 물러나느라 충분한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던 나는 주도권을 유지하기 위해 슬라이스를 택했다.
탕.
.
.
탕.
상대도 제법 슬라이스 샷을 즐겨서 구사했는데, 먼저 수세(守勢)에 몰리기 전에 공세(攻勢)로 전환하자는 생각을 했다.
탕.
네 번째 슬라이스를 보낸 후, 빠르게 그립을 세미 웨스턴으로 고쳐 잡으면서 공격할 준비를 마쳤다.
이번 샷에, 상대가 반격할 순 없을 거다.
그만큼 슬라이스가 잘 들어갔다.
탕.
깎아 만든 회전을 잔뜩 걸어 보내는 슬라이스 샷은 강하게 받아쳤을 때, 볼을 충분히 컨트롤할 수 없게 만든다.
내 소셜미디어에 찾아오는 어떤 분들은 DM으로 왜 느린 슬라이스가 왔을 때 바로 공격하지 않느냐고 묻기도 하는데, 섣불리 반격했다간 오히려 실점하고 말 것이다.
그래서 이런 슬라이스 랠리 도중에는 상대의 실수를 파악하는 눈과 볼을 라켓으로 컨트롤할 수 있는 능력. 마지막으로 두둑한 배짱이 필요하다고 배웠다.
지금은 상대의 슬라이스도 제법 잘 들어왔지만, 내 볼 컨트롤 능력을 믿어보려고 한다.
배짱 부분은 특별히 생각해 보지 않았지만, 에이스 코치님의 말론 [“세상 사람들 다 뚜까패고도 남을 수준.”]이라고 했다.
끝에, [“ㄹㅇ루다가.”]도 붙였지만.
어쨌든.
나는 포핸드를 보낼 준비를 전부 끝냈다.
목표는 명확하다.
낮은 네트 클리어런스.
방향은 상관없다.
그저.
탕!
회전을 최대한 덜 먹인 플랫(Flat) 포핸드를 강하게 보내, 최대한 상대와 가까운 곳에 떨어뜨리면 된다.
탕.
상대 라켓에 맞은 공이 엉뚱한 방향으로 튕겨 나가고, 득점을 확인한 나는 주먹을 불끈 쥐며 돌아섰다.
【“써티, 러브.”】
.
(트레이시 오스틴)
“That’s good Forehand. 정말 좋은 포핸드였어요. 와우. 최소한 오늘 지금까지 이 소년이 보여주고 있는 모습은 어떠한 격을 느끼게 하는 그런 것들입니다. 스티브 존슨이 뭘 실수했나요? 지금 건 좋은 슬라이스였어요! 그런데 저걸 저런 식으로 받아치면, 할 말이 없어집니다. 말이 안 되는 일이예요.”
(앤드류 캐슬)
“만약 이번 매치가 끝나면 만 15세에 윔블던 8강에 오른 첫 번째 남자 선수가 됩니다. 오픈 시대 이전의 기록까지 포함하더라도 여전히 8강은 최연소 기록입니다.”
(트레이시 오스틴)
“어쩜 우리는, 역사를 보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네요. 매치가 거듭될수록, 이 소년은 강해지고 있습니다.”
.
이쯤에서 내가 낮은 클리어런스로 전략을 수정한 이유를 말하자면, 그건 상대의 타격 포인트 때문이다.
상대는 높은 볼과 몸에서 최대한 떨어진 위치에서 타격 지점을 잡았을 때 좋은 샷을 만들 수 있는데, 네트 클리어런스가 낮아지게 되면 샷을 거의 몸 근처에서 처리해야 한다.
이것을 피하려면 스스로 추가적인 스텝을 밟아서 그만큼의 공간을 확보하는 건데, 그걸 할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을 거다.
나도 그걸 할 수 없다.
그래서 페더러 선수에게 당했던 거다.
생각할수록 소름이 돋는다.
로저 페더러 선수는 매치 도중에 내가 낮은 포핸드를 처리할 때 메커니즘이 꼬이는 것을 알고, 네트 클리어런스를 조절하여 의도적으로 낮은 샷을 보냈다.
볼과 네트의 높이가 좁아지는 만큼 실수할 확률도 높아지고 또 내가 알아차릴 수도 있었을 텐데, 솔직히 이틀 전까지도 그런 부분을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
코치님들과 대화하던 중 안드레이 코치님이 가능성을 이야기했고, 대충 맞춰보니 그것이 맞아떨어졌다.
똑같은 동작.
똑같은 그립.
그런데, 클리어런스만 바꿀 수 있다고?
나중에 녹화해 둔 영상을 봐야 알겠지만, 매치가 끝나고 나를 보면 전략이 바뀐 순간부터 스트로크 자세가 분명히 평소와는 달라져 있을 것이다.
라켓을 휘두르면서 그것을 느끼고 있다.
상대도 이것을 눈치챘을까?
그건 내가 알 수 없다.
“후우-”
다시 머리를 비우고, 서브에 집중한다.
듀스(Deuce)코트.
평소라면 이 자리에서 몇 번은 더 슬라이스 서브를 집어 넣었을 것이다.
하지만 말했듯 상대는 타격점이 몸에서 멀어질수록 좋은 샷을 만들고, 밖으로 휘어져 나가는 볼은 상대에게 더 유리하다.
그래서 그냥 플랫이 낫다.
기교는 부릴 이유가 없다.
서브의 목적이 단순해진 순간부터, 나는 자연스럽게 그다음을 생각할 수 있게 되었다.
어떠한 방향으로 서브를 보냈을 때 상대가 대처할 몇 개의 장면이 자연스럽게 그려졌고, 거기에서 내가 빠르게 주도권을 잡아 나갈 수 있는 것들이 구분되었다.
머리를 비운다곤 했지만, 실은 공간을 만들어 이런 생각을 더 많이 할 장소를 만든다는 느낌이다.
꼭 불꽃놀이라도 터지는 것 같다.
이렇게나 많은 장면이 순식간이 떠오른 적이 있었던가?
전에는 한 번도 이러지 않았다.
통, 통, 통.
통, 통, 통.
볼을 튕기면서 방향성을 정했다.
“으아-!!”
타앙-!
.
탕.
직선으로 전해져 오는 리턴.
이것도 내 선택지에 있었다.
살짝 앞쪽으로 나아가며, 백핸드를 휘두를 준비를 한다.
하지만 내 선택은 또 드롭 샷이다.
탕.
한껏 깎아낸 슬라이스 샷이 두둥실 떠올라 코트를 넘어가고, 이후 곧장 네트를 향해 뛰기 시작한 나는 볼이 아닌 상대에게 시선을 고정하며 포지션을 잡았다.
이번에도 받아낼 수 있을까?
아마도 그럴 것 같다.
살짝 앨리(Alley)라인으로 휘었던 볼.
저걸 크로스로 처리하는 건 힘들다.
만약 상대가 지금 내 드롭 샷을 크로스로 받아쳐 득점을 만든다면, 그건 어쩔 수 없는 부분이니 손바닥으로 라켓을 두드려 감탄할 준비도 되어 있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면.
지금은 직선이다.
탕.
.
탕.
가까스로 받아낸 상대의 샷에, 나는 곧바로 팔을 움직여서 넓게 펼쳐진 공간에 떨어뜨렸다.
굳이 멀리 보내지 않아도 된다.
가운데여도 충분했다.
“오오오-!!”
“와아아아-!!”
짝짝짝짝짝-
볼이 코트에 떨어진 순간, 센터 코트는 강하게 떨렸다.
* * *
【“게임, 세트, 매치, 우주….”】
.
.
▷ GAME SET(16강)
6 6 7 : 신우주
2 1 5 : 스티브 존슨
윔블던의 역사가 새롭게 쓰인 순간,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TNU는 서로를 얼싸안으면서 기쁨을 나눴다.
물론 그 직후엔 신우주를 가리키며 환호성을 내질렀고, 맞은편 로열 박스에 앉은 소년의 부모도 감격을 숨기지 못하며 연신 손바닥을 두들기고 있었다.
그런 감정이 지나가고 난 뒤, 머리를 쓸어올리는 안드레이 시미치는 참아왔던 생각을 담은 숨을 길게 내쉬었다.
‘성장했어. 그것도 몇 단계나.’
지난 부산 오픈 존 밀먼과의 매치 때, 안드레이 시미치는 실시간으로 성장하는 소년의 모습을 보았다.
처음엔 수준 높은 상대가 보여주는 빠른 랠리 속도에 적응하지 못하여 연이은 실점을 했지만, 소년이 가진 연산 속도가 그것을 따라잡은 이후에는 비약적으로 발전한 모습을 보여줬다.
그리고 이번 윔블던에서는 그때와 같은 모습이 아닌, 무언가를 골똘히 생각한 끝에 깨우쳐 껍데기를 깼다는 느낌을 줬다.
과연 이번엔 어디까지 올라갈 것인가?
부산 오픈 이전과 이후 소년의 테니스는 확실히 바뀌었고, 그때부터 시작된 성장세는 앤디 머리와의 매치에서 정점을 이뤘다.
그런 이후엔 비슷한 느낌으로 유지되고 있었는데, 최대 1년은 필요할 거란 예상을 보란 듯이 깨뜨리고 불과 보름 만에 본인의 한계를 스스로 늘렸다.
“진짜….”
“응?”
“해낼지도 모르겠네요.”
“그건 너무 과한 생각이야.”
“하지만, 윔블던 8강이잖아요. 안 그래요?”
“….”
신우주에게서 눈을 떼지 못하는 필리프 라지치가 윔블던 우승이란 단어를 머리에 떠올리는 사이, 너무 많은 걸 바란다고 생각한 안드레이는 동료들을 진정시켰다.
주위에서 호들갑을 떨어 좋을 건 없다.
확실히 이런 면에선 에이스 조이스가 믿음직했다
피트 샘프러스와 함께한 경험 때문일 거다.
“너희가 설치면, 뽕알이가 압박감을 받을걸?”
“….”
“….”
“어차피 너희들이 난리를 떨지 않아도, 세상에서 온통 그 이야기를 할 거란 말이야. 윔블던 8강이라고. 그게 무슨 말인지 알아? 세계에서 제일 쌈빡한 테니스 대회에서 최고 8명 안에 들었단 거라고. 그러니까 그냥 쿨하게 있으라고. 느낌 알잖아.”
에이스 조이스가 TNU의 들뜬 분위기를 정돈하는 사이, 벌써 세 번째 승자 인터뷰 준비를 끝낸 신우주가 마이크 앞에 섰다.
관중석에선 여전히 역사를 만든 신우주를 향해 환호성과 박수를 보내고 있었고, 환하게 웃는 소년이 손을 흔들어 화답하자 데시벨은 순식간에 치솟았다.
이에, 인터뷰 어로 나선 애너벨 크로프트(Annabel Croft)가 놀라며 소년에게로 다가섰다.
“와-우. 정말 엄청난 인기입니다.”
“…감사합니다.”
“당신은 지금 역사적인 주인공이 되었습니다. 불과 15세에 윔블던 8강에 오른 최초의 남자 선수가 된 거죠. 신사 숙녀 여러분, 다시 한번 큰 박수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