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Academy’s Barbarian RAW novel - Chapter (391)
후일담: 노아 다르셴 (下)
5.
학생회장으로 당선된 날.
현 학생회의 인수인계와 함께 승리를 자축하는 뒤풀이 파티가 열렸다.
모두가 웃고 떠드는 분위기 속에서 정작 주인공인 노아는 떨떠름한 얼굴이었다.
‘……어쩌다가 이렇게 됐지?’
차기 학생회장이 된 건 좋다.
그녀가 바라던 바였으니까.
다만 문제는 홀로서기를 하겠다고 말한 주제에 모두의 도움을 받았다는 점이다. 모순적인 상황에 말없이 한숨을 내쉬던 무렵.
“노아 언니.”
노아에게 다가온 이가 있었다.
딜리아의 이복동생, 루디네 아르펜. 그녀는 문득 궁금하다는 듯 질문을 던졌다.
“임원은 어떻게 할 거예요?”
“으응? 임원?”
“네, 새로운 학생회가 출범하면 임원도 전부 교체되잖아요.”
생각해보니 그랬다.
다만 상황이 상황인지라 거기까지 생각해본 적은 없다. 잠시 고민하던 노아는 맞은편에서 게걸스럽게 밥을 먹는 울란을 바라봤다.
“울란.”
“음?”
“학생회에 들어올래요?”
“미안하지만 난 학업에 열중하고 싶다.”
“아하하, 그럴 줄 알았어요.”
노아는 어색하게 웃었다.
그러고 보니 울란은 최근 치른 중간고사를 망쳤다고 했다. 기말고사에서 만회하지 못하면 낙제점을 받을 수도 있다고.
그러니 학생회엔 들어올 수 없으리라.
‘울란이 안 들어온다면…….’
이벨라와 딜리아 역시 들어올 일이 없겠지.
그럼 임원은 누굴 뽑아야 할까?
답답한 마음에 재차 한숨을 내쉬던 때, 의외의 지원군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럼 오히려 학생회에 들어와야지.”
현 학생회의 부회장, 카밀라 타네시아.
이리스 세니오르의 소꿉친구인 그녀가 내뱉은 말에 울란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으음? 그게 무슨 소리지?”
“학생회 임원들한테는 가산점이 있거든.”
“가산점?”
“응, 모든 시험에 학생회 활동 점수가 추가로 붙거든. 그래서 다른 생도들보다 시험에서 좀 더 좋은 성적을 거둘 수 있어.”
“……!”
울란의 눈이 조금 커졌다.
그가 흔들리고 있다는 걸 알아차린 걸까?
카밀라는 재차 말을 보탰다.
“참고로 이 제도는 인수인계를 받는 시점부터 적용되니까, 2학기 기말고사에서도 가산점을 받을 수 있을 거야.”
거기까지 이야기를 들은 순간.
울란은 다시 노아를 바라봤다.
“노아.”
“네?”
“학생회에 들어가겠다.”
바라던 바가 이루어졌다.
“아, 덧붙여서 말하자면 부회장이 가장 가산점이 높아. 사실상 실무자니까 말이지.”
갑작스러운 태세 전환에 얼떨떨한 표정을 짓던 무렵, 카밀라가 설명을 덧붙였다. 그리고 노아는 이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울란, 부회장 할래요?”
“하겠다.”
단 몇 마디의 대화를 끝으로.
새로운 학생회의 부회장이 정해졌다.
한편 잠자코 이를 지켜보던 딜리아와 이벨라 역시 냉큼 발을 들이밀었다.
“그럼, 나도, 들어갈래.”
“나도 가만히 있을 순 없지.”
“페르티샤도 한자리 달라는데?”
함께 뒤풀이 파티에 참석한 심연의 정령 역시 페르티샤의 전언을 전했다. 그렇게 새로운 학생회의 임원은 순식간에 정해졌다.
“이걸로 끝난 거야?”
“음, 아직 서기 자리가 남네.”
학생회 임원은 회장을 포함해 총 여섯.
아직 한 자리가 빈다. 그래도 한 자리 정도면 백지상태일 때보다는 정하기가 쉬울 터.
노아는 마음이 조금 편해졌다.
“그럼 제가 들어가면 되겠네요.”
그러던 그때, 서기 자리를 희망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뒤늦게 파티에 참석한 청록색 머리카락의 미녀, 라우레아였다.
물론 그녀의 바람은 이뤄지지 않았지만.
“아뇨, 교수님은 학생회에 못 들어와요.”
“아니, 왜요?!”
“애당초 학생도 아니시잖아요.”
따지듯이 되묻는 라우레아를 향해 카밀라는 황당하다는 듯 대꾸했다. 그렇게 티격태격하던 때, 딜리아가 나직이 중얼거렸다.
“으음, 보통, 서기는, 1학년이, 맡는, 편이니까, 루디네를, 시키는 게, 어떨까?”
“어? 내, 내가?”
“응, 글씨도 예쁘게 쓰잖아.”
“아니, 그게 무슨 상관…….”
“딱 좋네. 이리스한테는 내가 말해둘게.”
성가신 일에 휘말리기가 싫어서일까?
카밀라는 딜리아의 제안을 받아들인 채 그대로 파티장을 나섰다. 이에 루디네는 당혹스러운 듯 딜리아를 바라봤다.
“이, 이렇게 결정해도 되는 거야?”
“딱히 문제없지 않아?”
“그래도 직권남용인 게…….”
“직권은 남용하라고 있는 거잖아?”
“……아니거든.”
루디네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다만 그녀의 뜻과는 상관없이 학생회의 임원은 이미 확정됐다. 아르센 아카데미 역사상 최강의 학생회가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6.
짧지 않은 시간이 지난 뒤.
뒤풀이 파티가 마무리될 무렵.
울란은 발코니에 앉은 채로 밤하늘을 올려봤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별안간 그를 찾는 목소리가 들렸다.
“울란, 여기 있었군요.”
노아의 목소리였다.
달빛에 비친 얼굴 너머로 옅은 미소가 맺혔다. 종종걸음으로 다가오는 그녀의 모습에 울란은 무뚝뚝한 투로 되물었다.
“내게 용무라도 있나?”
“네, 기회를 쓰기로 했거든요.”
그녀가 언급한 기회.
울란은 그게 무엇인지 알아차렸다.
저번에 들었기 때문이었다. 노아를 비롯한 다섯 명의 소녀들이 자신과 단둘이서 시간을 보내고자 협의를 했다는 걸.
“제가 바라는 건 거창한 게 아니에요. 그냥 울란과 함께 산책이나 하고 싶어서요.”
“알겠다. 어울려 주마.”
산책 정도야 어렵지 않지.
고개를 끄덕인 울란은 노아와 함께 파티장을 나섰다. 기회를 사용해서인지 다른 소녀들은 굳이 노아의 행동을 제지하지 않았다.
그렇게 학생회관을 벗어난 둘은 아카데미 주변을 거닐며 간단한 대화를 주고받았다.
대화의 주제는 다양했다.
아카데미에 대한 주제부터 학생회와 관련된 이야기까지. 이런저런 대화가 오가던 때, 노아가 뜸을 들이듯 입을 닫았다.
그로부터 얼마 후.
다시 입을 열었다. 원래 꺼내고자 했던 용무를 밖으로 꺼내기 위해서였다.
“울란, 혹시 아카데미를 졸업한 이후에 무엇을 할지 생각해본 적 있어요?”
“딱히 없다.”
곧바로 돌아온 답변.
뒤이어 울란이 질문했다.
“그러는 넌 어떻지?”
“저는 여기에 남을까 해요.”
“아카데미에?”
“네, 제가 이 세계에서 머물렀던 곳이라고는 초원과 아카데미가 전부니까요.”
노아가 어색하게 웃었다.
방금 대답처럼 그녀가 머물렀던 터전은 초원과 아르센 아카데미가 전부. 사막을 비롯해 다른 곳도 가보긴 했으나 잠시뿐이었다.
“저는 초원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아요. 그러니 차라리 대학원을 졸업하고 교수가 되는 건 어떨까 생각해봤죠.”
원래 세계에서 그녀는 학교를 썩 좋아하지 않았다. 오히려 싫어하는 편에 가까웠다. 반면 그때와 달리, 지금은 제법 익숙해졌다.
울란과 모두가 있어 준 덕분에.
그래서 아카데미에 남겠다는 진로도 진지하게 고민할 수 있게 됐다. 한편 노아의 대답에 울란은 고개를 주억거렸다.
“너와 어울리는군.”
“그런가요?”
“그래. 넌 가르치는 것에 익숙하니까.”
“헤헤, 왠지 좀 기쁘네요.”
뺨을 긁적이며 멋쩍게 웃는 노아.
그녀는 다시 말을 이어나갔다.
“물론 이건 현실적으로 고민해서 얻은 결론이고요. 진짜 소원은 따로 있어요.”
“뭐지?”
울란은 궁금하단 투로 되물었다.
다만 이번에는 곧장 대답이 돌아오지 않았다. 노아는 귀를 빨갛게 물들이고는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며 입을 열었다.
“시, 신부요!”
“신부?”
노아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귀를 물들였던 열기는 어느덧 얼굴까지 옮겨온 채였다. 한편 잠시 고민하던 울란은 나지막하게 중얼거렸다.
“교수가 되는 일보다 훨씬 쉽군.”
“저, 정말요?”
“그래. 라우레아한테 부탁해서 성국으로 가면 해결되는 문제 아닌가?”
“……네?”
멍하게 되묻는 노아.
잠시 후, 그녀는 뒤늦게 울란의 말뜻을 깨닫고는 얼굴을 와락 구겼다.
“우씨, 그 신부가 아니거든요!?”
“그러면?”
“제가 말한 신부는 우, 울란의 신부를 말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반려요!”
이제야 알게 된 노아의 이상적인 소원.
울란은 잠자코 입을 닫았다.
그제야 깨달아서였다. 노아 역시 자신에게 마음을 고백한 소녀 중 하나라는 걸.
“만약 그렇게 될 수 있으면 아카데미의 교수 말고 그냥 울란이랑 같이 대륙 이곳저곳을 떠돌면서 여행을 하고 싶어요. 초원을 떠나 아카데미로 올 때처럼요.”
노아는 배시시 웃었다.
단지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다는 것처럼. 그러다가 다시 의식이 현실로 돌아온 듯 화들짝 정신을 차린 얼굴로 말했다.
“어, 어쨌든! 울란한테는 다시 한번 제대로 말해두고 싶었어요. 그때를 제외하곤 따로 말한 적이 없었던 거 같아서요.”
“그렇군.”
울란은 순순히 긍정했다.
이러한 반응에 노아는 안도하듯 웃으며 당당히 가슴을 폈다. 그러고는 왼쪽 가슴에 손을 얹은 채 말했다.
“또 따지고 보면 제가 다른 애들보다는 반려 경쟁에서 유리한 면이 많으니까요.”
“왜 그렇게 생각하지?”
“울란이 섣불리 연애를 시작하지 못하는 이유 말이에요. 그건 다른 애들이 지난 삶의 동료라서 그런 거잖아요?”
정확하다.
울란은 고개를 끄덕였다.
“반면 저는 달라요. 울란의 지난 삶에 존재하지 않았으니까요. 그러니 동료가 아니라 당연히 여자로 보이겠죠?”
선언하듯 자신만만한 한마디.
반면 울란은 미묘한 반응이었다.
“딱히 그렇지만도 않다만.”
“으엥?!”
노아의 표정이 무너졌다.
예상이 빗나가서 당황한 듯 또렷하던 눈빛이 황망하게 움직였다. 잠시 후, 가까스로 평정심을 되찾은 그녀가 되물었다.
“그, 그럼 절 어떻게 생각하는데요?!”
“으음, 굳이 말하자면…….”
울란은 고민하며 말끝을 흐렸다.
노아는 잔뜩 긴장한 얼굴로 울란의 대답을 기다렸다. 그가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건 처음 듣는지라 떨렸기 때문이다.
잠시 후, 그의 답변이 돌아왔다.
“걸어 다니는 백과사전 같다고 생각한다.”
“아예 사람 취급도 안 해주는 거예요!?”
황당한 얼굴로 따지듯 소리치는 노아.
그 모습에 울란은 풀썩 웃음을 터뜨렸다.
한동안 씩씩거리는 노아를 달래주던 때, 가까스로 진정된 그녀가 한숨을 내쉬었다.
“휴, 사실 이것 말고도 할 말이 있어요.”
“어떤 할 말?”
“요즘 울란은 울란답지가 않아요.”
“갑자기 무슨 소리지?”
“생각이 너무 많다고 할까요? 원작, 그러니까 지난 삶의 울란은 일단 무엇이든 생각 없이 저지르고 봤잖아요.”
무식하고 단순하며 과감하다.
지난 삶의 울란은 생각이라는 행위 자체를 한 적이 없다. 언제나 몸이 앞섰고 만사에 대해 일단 행동으로 옮기고 봤다.
“아마 지난 삶의 울란이었다면 졸업 후 진로에 대해서도, 그리고 모두의 고백에 대해서도 이렇게 오래 고민하지 않았을 거예요.”
“그건…….”
차마 부정할 수 없다.
노아는 지난 삶의 자신에 대해 가장 잘 알고 있는 존재였으니. 말문이 막힌 울란이 입을 닫자 노아가 다시 말을 걸어왔다.
“단순하게 생각해요.”
부드럽게 속삭이듯 들려온 한마디.
노아는 솔직한 미소와 함께 말했다.
“딱히 모두를 배려하지 않아도 되니까 울란의 마음이 가는 대로 움직여요. 그러는 편이 저를 포함한 모두에게도 더 좋으니까요.”
애당초 노아는 그런 울란을 좋아했다.
과감하고 결단력이 있으며, 매사에 고민이라고는 없이 단순명쾌한 존재. 아마 다른 애들도 다들 노아와 비슷한 마음이리라.
진심 어린 전언이 통한 걸까?
자리에 멈춰 한동안 우두커니 있던 울란의 입가에 미소가 피어났다. 고민의 흔적이 모두 사라진, 후련한 웃음이었다.
“고맙다. 덕분에 마음이 편해졌어.”
“그렇다니 다행이네요.”
노아가 뒷짐을 진 채로 배시시 웃었다.
얼마 후, 둘은 다시 걸음을 옮겼다. 다양한 대화를 주고받으며 밤은 점점 깊어졌다.
그렇게 울란의 고민이 해결된 이후.
시간은 화살처럼 빠르게 흘러갔다.
계절이 바뀌기를 몇 차례.
수많은 추억이 겹쳐 쌓이길 반복하던 무렵. 절대 오지 않을 것만 같던 순간이 도래했다.
바로 울란의 졸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