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Academy’s Time Stop Player RAW novel - Chapter (105)
하준의 말에 숙소의 분위기가 얼어붙었다.
“하, 하준 씨······.”
안나는 어버버 입을 벌리며 경악한 표정으로 하준을 바라봤다.
막상 하준은 안나의 반응을 신경 쓰지 않은 채 따분한 표정으로 헬란을 바라볼 뿐이었다. 이후 조용한 침묵이 이어진 뒤, 헬란은 그저 천천히 고개를 저으며 먼저 입을 열었다.
“복수라니, 당치도 않아.”
“그럼 찾아오신 이유는요?”
“네게 사과하러 왔단다.”
그 말과 함께 천천히 소파에서 일어서는 헬란이었다.
그녀는 하준을 바라보며 정중히 몸을 숙이며 사과했다.
“미안하구나.”
“······.”
“용서받기 위해 하는 사과가 아니란다. 그건 어디까지나 네 자유니까.”
“······.”
대영웅 중 한 명인 헬란 벨하르.
그녀의 사과는 굉장히 정중했다.
하준의 눈으로 봐도 그녀의 진심이 느껴졌으니.
하준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용서해 드릴게요.”
“······고맙구나.”
“어차피 가족하고 연도 끊으셨잖아요.”
그 말에 살짝 놀란 눈으로 하준을 바라보는 헬란이었다.
솔직히 말해 하준도 그녀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었다.
나 같아도 내 핏줄이 그딴 짓을 저지르면 호적을 팠을 테니까.
“네가 그 사실을 알 줄은 몰랐는데······, 어쨌든 고맙구나.”
“어차피 연도 끊은 가족이니, 헬란 님께 화낼 이유는 없으니까요.”
그 말에 헬란은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다만, 복잡함에 짓는 미소는 아니었다.
그녀의 올곧은 성품을 생각해보면 아마 죄책감에 짓는 씁쓸한 미소겠지.
사과를 한다 해도 이미 벌어진 일이니.
실제로 그녀는 하준을 바라보며 속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이런 착한 아이에게 몹쓸 일을 저질렀구나······.’
과거의 일을 생각하면 쉽게 용서할 수는 없을 터인데······.
그녀의 표정이 씁쓸하게 가라앉았다.
그리고 하준은 그런 그녀의 죄책감을 덜어드리고자 입을 열었다.
“근데 헬란 님을 용서한다는 거지, 월리엄을 용서한다는 건 아닌데요.”
그 말에 휘둥그레진 눈으로 하준을 바라보는 헬란이었다.
곧이어 말의 뜻을 이해한 그녀가 밝게 입꼬리를 올렸다.
“그렇구나. 내가 잠시 착각했었군.”
“제 마음대로 해도 되죠?”
“이미 가족과 연을 끊은 지 오래란다. 혹시 바라는 것이 있느냐.”
“도와줄 생각이에요?”
“말로는 진정한 사과를 전할 수 없으니 행동으로 보여줘야겠지.”
그 말에 하준은 씨익-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마침 찝찝한 부분이 있었는데 잘됐네.
“과거 사건과 연관된 놈들을 찾을 생각이었거든요. 그놈들을 찾아주세요. 그 뒤로는 어떻게 해야 할지 아시죠?”
“그래, 알겠다. 또 원하는 것이 있느냐?”
“월리엄과 로반. 그 두 놈은 일부러 살려뒀거든요. 물론 알고 계시겠지만 제 마음대로 할게요.”
“그래. 나를 포함해 다른 아이들에게도 알려두마.”
월리엄과 로반을 살려둔 이유는 간단했다.
일단 현시대에 그놈들의 부상을 치료할 방법은 다양하니 그때마다 찾아가서 팰 생각이었다. 복수할 때만큼은 아무리 나라도 의욕이 생기니.
* * *
-정말······, 네가 내 손자였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모르겠구나.
어느 부분에서 마음에 든 건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헬란은 그 말을 마지막으로 조용히 사라졌다.
말 그대로 그녀의 몸이 빛의 입자처럼 흩어지며 사라졌다.
물론 그녀의 어빌리티를 생각하면 이해가 되는 능력이지만.
이후 조용해진 숙소에서.
“······어?”
아까부터 멍한 표정을 짓고 있던 안나가 정신을 차리고 하준을 바라봤다.
마치 방금 전의 일들이 모두 꿈 같다고 생각하는 표정이었다.
“뭔가 오늘 아침부터 믿을 수 없는 일만 일어나는 거 같아요.”
헬란 벨하르.
과거 기사 왕이라는 이명을 지닌 영국의 대영웅.
그러나 무슨 연유인지 그녀는 영국을 떠났다.
물론 그녀가 영국을 떠난 것은 안나가 태어나기도 전의 일이기에 그 이유를 알 수 없었지만, 어쨌든 영국의 대영웅을 만난 거 자체가 그녀로서는 믿기지 않았다. 마치 꿈을 꾸는 거 같은 상황이었다.
“다시 돌아온 걸까요?”
“아니, 볼 일 마치면 다시 떠나겠지.”
“그렇겠죠······.”
그 말에 안나는 아쉬운 듯 시무룩한 표정을 지었다.
“헬란 벨하르 님이 영국에 계신다면 든든할 텐데요······.”
“그것보다 아까 얘기 들었지?”
“그······, 두 사람 치료하면 다시 찾아오겠다고요?”
“어.”
막상 그 말에 안나는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음······, 애초에 치료가 불가능할 거 같은데요.”
“불가능하다고?”
“왜 당사자가 더 놀라세요? 그분들 팔과 다리뼈를 가루로 만들었으면서. 아마 그런 부상을 치료할 수 있는 사람은 제가 알기로는 전 세계에 3명 밖에 없을 거 같은데요?”
“누구?”
“설아 양이랑 최중원 현자님 그리고 이후에 현자가 될 저요.”
그 말에 하준은 무안하게 볼을 긁적였다.
그러면 계획이 어긋나는데······.
아니, 뭐······, 치료를 못 해도 딱히 상관은 없나?
원래는 치료하지 말라는 의미로 다시 찾아올 생각이었으니까.
“그것보다 이제 어떻게 하실 거예요?”
“뭐가?”
“뭐, 그냥 앞으로 계획이요. 보니까 잘 해결된 거 같고 편하게 놀다 가실래요?”
음······, 그럴까?
안나의 말대로 잘 해결된 거 같고 어차피 다음 주에 있을 멸지 공략을 생각하면 이번 주에 많이 놀아두는 게 좋을 거 같으니까.
“그러지 뭐.”
“그럼 일레인 양도 불러오세요. 그래도 같이 즐기는 게 낫잖아요. 혹시 뭐 드시고 싶은 거 있으세요?”
그 말에 하준은 생각했다.
영국에 오면 가장 먼저 먹어보고 싶은 음식을.
물론 한국에서도 만들어서 먹어볼 수 있지만 본토의 맛이 더 궁금하지 않겠는가.
하준은 나름대로 기대를 담아 안나에게 말했다.
“피쉬 앤 칩스?”
“······정말요?”
* * *
이후 일주일간 런던을 포함해 유명 관광지를 돌며 만족스럽게 즐겼다.
솔직히 너무 만족스럽게 관광해서 돌아가는 게 아쉬울 지경이었다.
그래도 멸지 던전 공략 일정이 잡힌 하루 전날은 나름의 준비를 해야 하니 토요일까지 밖에 놀 수 없었다.
그렇게 마지막 하준이 다시 한국으로 떠나기 전인 토요일 저녁.
선선한 바람이 부는 호텔의 밖에서 하준은 밤하늘을 올려다보며 바람을 쐬고 있었다.
“오빠.”
그때 하준의 옆으로 일레인이 다가왔다.
며칠 전만 해도 날카로웠던 인상이 지금은 순둥한 얼굴로 변해있었다.
마치 사진 속 어린 시절의 일레인처럼.
“무슨 생각해?”
“돌아가기 싫다는 생각.”
한국에 돌아가면 다시 미국의 멸지로 갈 준비를 해야 하고 또 던전을 공략해야 한다. 그 생각을 하니 자연스럽게 돌아가기 싫은 건 어쩔 수 없었다.
그냥 여기 짱박혀서 놀고 싶다고 해야 하나?
“그럼 더 있다 가면 되잖아?”
“일 때문에 가야 돼.”
“와······, 역시 이레귤러라서 엄청 바쁜가 보네.”
그 말과 함께 우물쭈물 손가락을 비비는 일레인이었다.
마치 하고 싶은 말이 있는데 쉽사리 입을 못 여는 거처럼.
그 답답한 모습에 하준이 먼저 입을 열었다.
“왜?”
“어? 그, 있잖아. 언제 또 올 거야?”
그 말에 하준은 의아한 얼굴로 일레인을 바라봤다.
아, 그러고 보니 아직 말을 안 했나?
“왜? 너는 계속 여기 있게?”
“어? 따라가도 돼?”
얘는 알고 있을까?
내 여동생인 게 알려지고 자기가 얼마나 위험해졌는지.
물론 아직 세간에 알려진 건 아니었다.
영국 영웅 협회장 루카스가 잘 조치해 줬으니 말이다.
다만, 빌런 연합에 알려지는 건 시간 문제라는 생각이 들었다.
적어도 그놈들 성격을 생각하면 내가 영국에서 날뛴 이유를 조사할 테니.
“당장은 안 되고 일 끝나면 다시 올게. 그때까지 준비해 놔.”
“어······.”
그리고 하준의 말에 잠시 멍한 표정으로 밤하늘을 바라보는 일레인이었다.
뭐라고 해야 할까?
기쁘긴 한데 조금 복잡하게 생각했다고 해야 할까?
뭐 오빠를 따라간다면 여러 가지 생각해야 할 게 많았지만, 일레인은 지금 느끼는 자신의 감정에 솔직해지기로 했다.
그렇게 흐뭇한 미소와 함께 하준을 바라보는 일레인이었다.
“한국어 공부해야겠네? 근데 우리 집은 어디야? 엄청 커?”
“······.”
그 말에 하준의 얼굴이 벙쪘다.
가장 중요한 걸 까먹고 있었다.
* * *
시간은 흘러 일요일.
미국 서부의 멸지의 경계선.
그곳에서 미국 히어로 협회의 요원으로 보이는 사람들과 이 경계선을 지키는 군인들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그리고 그 과정을 뒷짐을 진 채 지켜보고 있는 남자.
흰색의 턱수염과 깔끔한 포마드를 한 중년의 남자의 이름은 안드로 한스.
미국 히어로 협회의 협회장이었다.
그는 현재 분주하게 진행되고 있는 과정을 바라보다 고개를 돌려 자신의 옆에 서 있는 여인을 바라봤다.
은은하게 빛나는 새하얀 백발의 여인.
머리카락 색에 맞춰 흰색의 영웅 슈트를 착용한 그녀는 세계 랭킹 5위의 최상급 영웅 조아 엘리엇이었다.
“정말 괜찮으시겠습니까?”
안드로 한스는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그녀에게 물었다.
“굳이 이번 공략전에 참가할 필요는 없습니다. 무엇보다 조아 님의 목숨이 달린 일이지 않습니까?”
안드로 한스는 조아 엘리엇에게 예견된 미래를 들었다.
이번 던전 공략에서 그녀가 죽을 수도 있다는 예언.
그렇기에 그녀가 걱정되어 이번 던전 공략을 말렸지만 그녀의 선택을 꺾을 수 없었다.
“협회장님도 아시잖아요. 죽음에 대한 미래는 변하지 않는다고. 제가 던전의 공략을 피한다 해도 예견된 죽음은 변하지 않아요.”
“그렇다면-.”
“물론 지금까지 그런 줄 알았어요.”
“예?”
그 의미심장한 대답에 안드로 한스는 의아한 얼굴로 그녀를 바라봤다.
곧이어 그녀가 은은한 미소를 띠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조아가 말했다.
“솔직히 저도 믿기지 않아요. 설마 한 소년이 그 운명을 바꿀 정도의 거대한 힘을 가졌다고 말하면 믿으시겠나요?”
“설마 이레귤러를 말씀하시는 겁니까?”
“네.”
과거로부터 많은 사람의 미래를 예지한 조아였다.
그러나 그 예지한 미래의 공통점 중 하나가 이미 봐버린 미래.
정확히 죽음에 대한 미래는 피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그것은 어떻게 보면 운명이었다.
죽음을 막기 위해 미래를 바꿔도 그저 죽는 과정이 달라질 뿐 미래는 변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 죽음의 운명이 어느 순간 자신에게 찾아왔다.
자신의 미래를 예지한 것이다.
그러나 이번에 예지한 미래는 달랐다.
적어도 그녀에게는 선택할 수 있는 두 개의 길이 있었으니.
“협회장님은 아마 제 기분을 모르실 거예요. 사람 한 명이 운명을 바꿀 수 있다는 게 얼마나 대단한 일인지 모르겠죠.”
“그렇긴 합니다만······, 솔직히 아직 믿기지 않는군요. 정말로 미래가 변한 겁니까?”
그 말에 조아가 차분한 미소와 함께 고개를 끄덕였다.
“정해진 운명조차 어찌할 수 없는 힘을 가졌다면 가능하겠죠······. 아! 저기 오네요.”
곧이어 협회장과 조아 엘리엇의 앞에 게이트가 열렸다.
그곳에서 걸어 나오는 소년은 얼굴이 모자이크로 가려진, 황금의 망치를 든 소년이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