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Academy’s Time Stop Player RAW novel - Chapter (147)
제148화
#147
꿀꺽-
그녀를 본 순간, 리암의 이마에 식은땀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긴장에 마른침이 꿀꺽- 목을 타고 넘어갔다.
리암은 손을 뻗었고 미르테인이 날아와 손에 안착한 순간 천천히 그녀의 곁으로 다가갔다.
그대로 그녀의 목을 향해 미르테인의 창날을 들이댔다.
그럼에도 꿈쩍도 하지 않는 레인.
완전히 기절했다는 말이었다.
만약 기회가 있다면 지금뿐.
다만, 쉽사리 창을 쥔 손이 움직이지 않았다.
“하……, 생각보다 어리네.”
리암은 잠시 한숨을 내쉬고 창을 거두었다.
그리고 기절한 레인의 얼굴을 살폈다.
몇 번 만나본 얼굴이었지만 이렇게 가까이 그녀의 얼굴을 본 적은 없어서 몰랐다.
퀭하게 늘어난 다크 서클.
피곤한 얼굴.
그리고 예상보다 또래로 보이는 앳된 소녀의 얼굴을 하고 있었다.
보면 볼수록 자신과 나이 차이가 그리 많이 나는 거처럼 보이지 않았다.
“협회에 넘기는 게 낫겠지. 미르테인.”
-왜 그러지?
“게이트를 열어줘. 히어로 협회로.”
-못 연다.
“……어? 왜?”
리암이 당황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런 리암의 얼굴 앞에 두둥실 떠오르는 어떠한 링이 있었다.
미르테인에 붙어 있던 게이트를 여는 링.
그것에 옅은 금이 가 있었다.
“이런…….”
리암의 표정이 팍 일그러졌다.
* * *
-얘야…….
창문을 통해 옅은 바람이 흐르는 병실.
그 병실의 침대에 누운 온몸에 상흔이 가득한 노인이 있었다.
그는 자신의 팔에 매달려 눈물을 글썽이는 꼬맹이를 안쓰러운 눈으로 바라본다.
-너무 슬퍼하지 말거라.
노인은 그러한 꼬맹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안심 시킨다.
레인은 조금 뒤, 멀찍이 떨어진 장소에서 그 광경을 바라본다.
그리고 미간을 서서히 좁히다 힘없이 고개를 아래로 숙인다.
익숙한 광경이다.
그립고 잊으려야 잊을 수가 없는 광경.
그러나 이제는 사라진 과거의 추억.
레인은 앞으로 걸어 나갔다.
노인의 얼굴을 가까이서 보기 위해 조금 더 한 발자국 나아갔다.
그렇게 노인이 누운 병상의 앞에 섰을 때, 그녀는 씁쓸한 눈으로 노인을 내려다봤다.
전대 미르테인의 주인이자 자신의 할아버지.
그 그리운 얼굴을 잠시 바라보다 한숨을 내쉰다.
“하…….”
그녀는 할아버지를 향해 손을 뻗었다.
그러나 그녀의 손은 그저 투과할 뿐이었다.
자신도 알고 있다.
이게 어디까지나 꿈이라는 걸.
다만, 행복한 꿈이 아닌 지독한 꿈이다.
“…….”
레인의 시선이 자신과 나란히 옆에 선 꼬맹이를 향했다.
아니, 더 정확히 과거의 자신을 향했다.
그리고 그녀의 나약한 모습에 아니, 과거의 나약한 자신에 으득- 이를 간다.
그녀는 힘이 없는 어린 자신을 경멸했다.
-레인.
할아버지가 자신을 불렀다.
물론 자신이 아닌 과거의 자신을.
어린 자신이 똘망똘망한 눈으로 할아버지를 올려다봤다.
그가 말했다.
-미르테인을 부탁한다.
그 말을 마지막으로 그녀는 눈을 떴다.
* * *
언제나 그 마지막 순간에 끊어지는 꿈.
이제는 익숙하다 못해 진절머리가 난다.
이 꿈을 꾸고 난 이후에는 더럽게 머리가 아팠으니.
레인은 지끈거리는 머리를 쥐며 천천히 허리를 일으켰다.
그리고 주위를 둘러봤다.
웬 습한 공기가 가득한 동굴이었다.
“일어났냐?”
“……?!”
순간 레인은 벌떡 일어나 자세를 취했다.
그녀의 눈매가 서서히 얇아졌고 바위에 걸터앉은 리암을 노려봤다.
리암 마르텔.
그가 피곤한 인상으로 레인을 바라보고 있었다.
“너…….”
“잠깐 휴전하자.”
“뭔 개소리냐.”
“참 나 기껏 살려줬더니.”
리암은 답답하다는 듯이 한숨을 내쉬었다.
레인은 그런 리암을 경계하며 물었다.
“여긴 어디지?”
“멸지.”
“……멸지?”
그 말과 함께 그녀가 주위를 둘러봤다.
확실히 느껴지는 마력 자체가 농후했다.
주변에 리암을 제외한 인적도 느껴지지 않았고.
그런 레인을 바라보며 리암이 말을 이었다.
“잠시 협력하자, 여기를 빠져나갈 동안.”
그 말에 레인은 비웃음으로 답하며 말했다.
“너를 죽이고 빠져나-”
-기다려라 레인.
그때 레인의 귓가에 용언이 울렸다.
레아논이 레인을 향해 말한 것이다.
레인은 언짢다는 듯이 퉁명스럽게 말했다.
‘뭐냐, 레아논.’
-이곳에서 내 마력을 사용하지 마라.
‘……왜지?’
그 물음에 레아논이 담담히 경고했다.
-죽을 수도 있다.
그 말에 순간 레인의 미간이 좁혀졌다.
레인은 레아논을 향해 물었다.
‘그게 뭔 개소리냐.’
-놈의 영역에 들어왔다.
‘놈?’
-나와 같은 왕의 이명을 받은 자다. 놈이 만약 내 마력을 느낀다면 찾아올 거다.
‘…….’
그 말에 레인은 잠시 고민하듯 미간을 찌푸렸다.
레아논은 자신에게 한 치의 거짓도 말한 적이 없다.
그렇다면 정말 이 멸지에 자신이 감당할 수 없는 괴물이 있다는 말이었다.
‘네 힘을 써도 그놈을 죽일 수 없나?’
-눈앞의 있는 남자와 협력해도 불가능할 거다.
그 말에 레인은 잠시 침묵했다.
그저 리암을 노려보며 무언가를 생각하다 천천히 입을 열었다.
“알겠다.”
“……?”
“이곳을 빠져나올 동안만 휴전하지.”
갑작스러운 동의에 리암은 벙찐 표정을 지었다.
그러다 나지막이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그럼 출발하자.”
* * *
터벅- 터벅-
거대한 나무가 들어선 우거진 숲.
그곳에 레인과 리암은 말없이 걷고 있었다.
그렇게 세 시간 정도 지났을 때 레인이 리암을 바라보며 퉁명스럽게 물었다.
“이봐, 길을 알고 가는 거냐?”
“너도 느껴지잖아.”
그 말과 함께 리암은 자신이 걸어왔던 뒤쪽을 가리켰다.
“저기 뒤쪽에 마력.”
“…….”
“설마 반대편이 길이겠어?”
하긴, 아까부터 느껴지는 농호한 마력이 레인의 뒤에서 풍겨 오고 있었다.
이 멸지에서 마력이 농후할수록 중심지에 가까운 말일 테니.
그러나 이해할 수 없는 점도 있었다.
“근데 왜 날아서 안 가지?”
그 말에 이번에는 리암이 하늘을 가리켰다.
거대한 나무의 가지들이 하늘을 가리고 있는 그곳.
리암이 말했다.
“저 위 나무에 가려서 안 보이지만 날아다니는 괴수들이 많더라고.”
“네 힘이라면 충분히 죽일 수 있을 텐데?”
그 말에 리암이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아니, 너무 많아서 끝도 없어. 이러다 도착하기 전에 마력이 고갈돼서 죽을걸.”
“조금 낮게 비행하면 되지 않나?”
“나뭇가지 사이에도 원숭이 같이 생긴 마수들이 많아. 그리고 우리가 언제 멸지를 빠져나올지도 모르는데, 그렇게 함부로 마력을 낭비할 수는 없잖아. 아니, 잠깐. 그러고 보니까 너도 하늘을 날 수 있지 않아?”
그 말에 레인은 고개를 저었다.
레인이 말했다.
“지금은 못 난다.”
“응? 왜?”
“사정이 있다.”
“참나…….”
리암은 어처구니없는 얼굴로 레인을 바라봤다.
물론 레인은 그저 담담한 표정으로 리암을 바라볼 뿐이었다.
“하……, 걷기나 하자.”
그 말과 함께 다시 먼저 앞장서 걷기 시작한 리암이었다.
레인 또한 다시 침묵한 채 리암을 뒤를 따를 뿐이었다.
* * *
“하……, 대체 어디까지 들어온 거야?”
8시간이 지났을 때 이미 해가 지며 어둑한 밤이 찾아왔다.
더 이상 걷는 건 무리라고 생각한 리암은 별수 없이 야숙을 할 수밖에 없었다.
“일단 오늘은 여기서 야숙하자.”
그 말에 레인은 수긍했고 리암은 곧바로 작업에 들어갔다.
리암은 거대한 나무의 밑을 파내어 잠시 야숙할 구덩이를 만들었다.
파낸 나무 조각들로 불을 피운 뒤, 아까 전 잡은 마수 한 마리를 해체에 요령 있게 나무 꼬치에 끼워 고기를 구웠다.
그러한 적막 속.
고기가 다 구워진 것을 확인한 리암은 레인을 향해 꼬치 하나를 내밀었다.
“자, 먹어.”
“…….”
레인은 별 말없이 리암이 건넨 꼬치를 받았다.
곧이어 리암이 주머니를 뒤적이더니 웬 열매 몇 개를 꺼내며 레인에게 건넸다.
“이건 뭐지?”
“너 잠들어 있는 동안 근처에서 따 놓은 거. 먹을 수 있는 열매야. 책에서 봤거든.”
“……의외로 박식하군.”
그 말에 왠지 모르게 긴장이 풀린 리암의 입꼬리가 슬쩍 올라갔다.
그 모습을 잠시 바라보던 레인은 고기를 한 입 먹은 뒤, 다시 열매를 먹었다.
그리고 열매를 먹은 순간 레인의 표정이 찡그려졌다.
“더럽게 맛없다. 열매에서 썩은 오줌 맛이 난다.”
“상한 거 아니니까 그냥 먹어둬. 과즙이 많은 열매라서 물을 대신해 수분을 보충해줄 수 있을 테니까.”
“…….”
그에 별 말없이 열매를 먹은 레인이었다.
잠시 식사를 끝낸 뒤.
또다시 고요한 침묵이 찾아왔다.
리암은 그저 나뭇가지로 모닥불을 뒤적였고, 레인은 그저 멍하니 그런 리암을 바라볼 뿐이었다. 그때 부담스러운 시선을 이기지 못한 리암이 결국 레인을 바라보며 먼저 입을 열었다.
“왜 미르테인을 노리는 거야?”
“…….”
그 말에 레인의 눈썹이 살짝 꿈틀거렸다.
리암을 바라보고 있던 레인의 미간이 서서히 좁혀졌다.
레인은 리암을 노려보며 말했다.
“그걸 말해주면 미르테인을 넘길 거냐?”
“그건 얘 입장도 들어봐야 하는데.”
“…….”
이후 어색한 침묵이 찾아왔다.
생각난 게 이 얘기밖에 없어서 꺼낸 건데 아무래도 그녀의 심기를 조금 건든 모양이다. 리암은 대화를 포기하고 그냥 일찍 잠들려 했다.
그때 대화를 끝냈다고 생각한 레인이 리암을 향해 질문했다.
“미르테인의 전 주인이 말했다. 미르테인을 맡겨 달라고.”
“전 주인? 설마 대영웅 하르슨 마르커스 님?”
하르슨 마르커스.
과거 미국의 대영웅 중 한 명이시며 멸지 바운더리 등급의 던전 브레이크를 막아내고 치명상을 입어 운명하신 대영웅.
10년 전에 얘기지만 워낙 유명한 얘기라 리암은 알고 있었다.
“그분이랑 무슨 사이야?”
“네가 알 거 없다.”
“…….”
그 물음에 퉁명스럽게 대답하는 레인이었다.
리암은 잠시 할 말을 잃고 다시 무안하게 모닥불을 뒤적였다.
그리고 어떠한 생각이 들었다.
미르테인의 전 주인이신 하르슨 님이 그녀에게 맡겼다면 미르테인을 넘겨야 하는 거 아닌가?
그게 도의일 테니까.
그러한 고민을 하고 있을 때 레인이 리암을 바라보며 말했다.
“리암 마르텔.”
“……응?”
“네가 미르테인을 선택한 거냐.”
그 의아한 말에 고개를 갸웃한 리암이었다.
그런 리암을 여전히 담담한 표정으로 바라보던 레인은 천천히 다음 말을 이었다.
“아니면 미르테인이 너를 선택한 거냐.”
“…….”
“말해라. 나도 대답했으니.”
그 말에 리암은 순간 복잡한 표정을 지었다.
리암은 과거 미르테인과의 첫 만남을 떠올렸다.
-이게 신화급 보구란 말이지?
우월한 재능을 가졌다고 착각했을 당시.
그 누구도 자신 아래에 있다고 생각 부끄러운 과거의 자신을.
확실히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과거의 어린 자신은 오만했다고.
그리고 그때 당시 미르테인을 쥐며 자신이 한 말을 똑똑히 기억하고 있던 리암이었다.
-좋아.
어린 애의 순진무구한 미소를 지으며 그리 말한 자신을 떠올린다.
그리고 그러한 과거의 기억을 떠올린 순간 그제야 그녀가 묻는 말의 의미를 알아차린 리암이었다.
확실히…… 미르테인이 자신을 선택한 것이 아니었다.
-이제부터 내가 네 주인이야.
자신이 미르테인을 선택한 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