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Academy’s Time Stop Player RAW novel - Chapter (149)
제150화
#149
-힘을 완전히 개화했군.
레아논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러나 레인은 그저 몸을 떤 채 조금도 움직일 수 없었다.
‘대체 저 마력은…….’
도저히 넘볼 수가 없는 벽이 느껴졌다.
아득하게 너무도 먼 벽이.
지금 소년에게서 느껴지는 아득한 존재감이 레인의 발을 옭아매고 있었다.
[레인.]그때 소년이 레인을 불렀다.
흠칫- 놀란 레인이 천천히 뒷걸음질 칠 때 하준이 그녀를 향해 경고했다.
[너는 마지막이다. 거기서 기다리고 있어라.]결코 어길 수 없는 경고가 들려왔다.
그의 말대로 자신이 조금이라도 도망치는 모습을 보인다면 죽을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으니.
“말도 안 돼…….”
곧이어 바헬르시아의 시선이 하준을 향했다.
그녀의 표정이 점차 굳어지기 시작했다.
동공은 크게 지진을 일으키고 있었으며 입술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는…… 그는 분명 죽었을 게 분명한데.
“호르톤…….”
어째서 죽은 그가 완연한 존재감을 내뿜고 있단 말인가.
하준은 천천히 발걸음을 옮겨 바헬르시아의 앞으로 다가갔다.
그녀에게 다가갈 때마다 하준의 표정이 점차 분노로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하준은 분노로 가득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네가 다섯 왕 중 한 명이냐.]그녀의 곁으로 점차 ‘죽음’이 다가오고 있었다.
[고작 그딴 힘으로-]하준이 내뿜는 마력이 주변에 치솟기 시작했다.
쿠쿠쿵!!
그녀가 만들어낸 공간이 하준의 마력에 뒤덮여 파쇄되어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다.
하준은 그녀를 바라보며 짓씹듯 말을 내뱉었다.
[왕을 자처하는 게 우습고 역겹군.]그러한 광경 속에서 그녀는 아주 조금도 반응할 수 없었다.
하준이 코앞에 왔음에도 자신이 만들어낸 영역이 소년의 마력에 뒤덮여 무너져 사라졌음에도 어떠한 반응도 할 수 없었다.
뼈에 아로새겨진 본능적인 공포가 그녀의 온몸에서 돋아나기 시작했다.
“큭!”
후웅!
결국 그녀의 선택은 도주였다.
절대 상대하여 이길 수 없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깨달은 것이다.
그녀는 곧바로 위로 날아올라 저 멀리 그가 닿지 않는 하늘로 도주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보다도 먼저.
투캉! 쿵!!
아주 한순간 반응할 새도 없이 위에서 아래로 내리찍는 둔탁한 무언가에 맞은 그녀가 그대로 아래로 추락하기 시작했다.
쿵!!
“크헉!”
[누가 도망치라 했나.]죽음의 기운이 다가온다.
자신의 온몸이 산산조각 나 파쇄되는 운명이 머릿속에 떠오른다.
후회되었다.
놈이 모습을 드러낸 순간 당황하는 것이 아닌 도망쳤어야 되는 것을.
털썩-
그녀가 천천히 하준을 향해 무릎을 꿇었다.
이길 수도 없고 도망가지도 못할 힘의 격차를 느끼며 그녀는 하준을 향해 머리를 조아렸다. 본능이 경고하고 있었다.
그에게서 벗어나지 못한다고.
“새로운 왕들의 왕이시여.”
과거 자신들의 왕의 힘을 이어받은 소년을 향해 고개를 조아리며 말을 이었다.
“저 요정왕 바헬르시아는 당신과 싸우고 싶지 않습니다.”
하준의 무심한 눈이 그녀를 향했다.
그 서늘한 침묵에 그녀가 말을 이었다.
“부디 자비를. 저의 만행을 용서하시고 당신의 곁에서 다른 왕들과 싸울 수 있는 기회를 주소서.”
하준의 대답이 들려오지 않았다.
조용한 적막 속에서 침묵이 이어져 내리자 바헬르시아는 긴장이 급박하게 온몸을 조여오기 시작했다.
그러한 침묵이 이어지던 순간.
[좋다.]하준이 대답했다.
그 대답을 들은 그녀가 살 수 있다는 희망에 고개를 든 순간.
후우웅!!
어느 순간 거대하게 크기를 키운 마하라즈.
그 망치가 황금의 마력을 뿜어내며 위로 들어 올려져 있었다.
그 광경에 그녀의 표정이 한순간 희망을 잃은 듯 허망하게 가라앉았을 때 하준이 그녀를 향해 담담히 말했다.
[한번 막아 봐라. 그럼 생각해 볼 테니.]“크윽!”
그녀가 으득- 이를 갈았다.
몸을 일으킨 바헬르시아가 분노한 듯 마력을 퍼트리며 하준을 향해 포효하듯 소리치기 시작했다.
“이 나를 우롱하는 것이냐!!”
그녀가 하준을 향해 양손을 뻗었다.
양손에서 무수한 줄기들이 솟아나 하준을 향해 쇄도하기 시작했다.
그러한 상황 속에서 하준은 그대로 마력을 담은 마하라즈를 그녀에게 휘둘렀다.
파아앙!!
망치에 닿은 줄기들이 황금의 마력에 서서히 파쇄되어 흩어진다.
파앙! 쿠쿠쿵!!
“크흑!!”
허황하게 사라진 줄기들 다음으로 망치가 향하는 것은 바헬르시아의 몸이었다.
그녀는 양손을 뻗어 그 거대한 망치를 막아냈으나 황금의 마력에 닿은 손이 점차 분쇄되어 흩어지기 시작했다.
“끄아아악!!”
바헬르시아가 고통에 찬 비명을 내질렀고 그녀의 몸이 점차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다.
그 마지막 순간 그녀가 악에 찬 눈동자로 하준을 노려보며 저주하듯 소리치기 시작했다.
“다른 왕들이! 네놈을 가만두지 않을 것이다!”
[나쁘지 않군.]그러한 저주에도 하준은 그저 그녀를 비웃듯 거칠게 한쪽 입꼬리를 올릴 뿐이었다.
[네놈의 죽음이 다른 왕들에게 경고가 되겠지.]“끄허억…….”
그녀의 마지막 순간을 알리듯 고요한 단말마가 들려왔다.
몸 전체가 갈라져 나가며 마지막으로 남은 그녀의 눈동자는 공포에 질린 듯 하준을 바라보고 있었다. 하준은 고요히 재가 되어 사라져 가는 그녀를 바라보다 한마디를 내뱉고 뒤돌아섰다.
[없는 것만도 못한 힘이군.]* * *
하준은 마력을 풀었다.
곧이어 찾아오는 괴리감에 한숨을 내쉬었다.
피곤하고 권태로워지는 기분.
더더욱 이 힘을 사용하는 중에 왕이라는 놈을 만난 순간 하준도 형용할 수 없는 역겨움과 분노가 치솟았다.
자칫하면 감정 조절을 하지 못할 정도로 눈이 돌아갈 기분이었으나 어떻게든 정신을 꽉 잡았다.
아무래도 이게 필라텐이 말한 힘의 위험성인 모양이다.
“후…….”
어쨌든 그건 그거고 일단 남은 일을 처리하기 위해 하준은 레인을 향해 다가갔다.
그대로 마력을 끌어모으며 황금의 마력을 몸에 두른 하준이 레인의 앞에 다가가 말했다.
[내가 분명 리암의 곁에 다가가지 말라 했을 텐데.]그 말에 레인은 조용히 눈을 감았다.
마치 자신의 미래를 예상하듯 운명을 받아들이듯.
그러한 태도에 하준은 망치를 들어 올렸다.
[네가 선택한 거다.]그렇게 레인을 향해 망치를 내리치려는 순간.
“자, 잠깐만 하준아!”
[…….]갑작스럽게 레인의 앞을 막아선 리암이었다.
그 모습에 어처구니가 없어 헛웃음을 흘린 하준이었다.
하준은 리암을 향해 말했다.
[하루 같이 있자 정이라도 들었냐?]“잠깐 시간을 줘.”
리암은 정직한 눈동자로 하준을 바라보며 설득하기 시작했다.
그러한 리암을 하준은 그저 노려볼 뿐이었다.
그러다 천천히 하준은 망치를 내려놓았다.
그것이 대답이라고 생각한 리암은 살짝 미소를 지으며 하준에게 감사 인사를 했다.
“고마워.”
그 말과 함께 리암은 고개를 돌려 레인의 앞에 섰다.
레인은 그런 리암을 기묘한 눈빛으로 바라볼 뿐이었다.
리암은 레인을 바라보며 말했다.
“어제부터 계속 생각했어.”
그 말과 함께 리암은 레인을 향해 미르테인을 내밀기 시작했다.
그 순간 하준과 레인의 눈동자가 크게 뜨였다.
하준이 거칠게 입술을 비틀며 리암의 행동을 막으려고 다가간 순간.
띵-
[● 리암 마르텔 (진행률 98%)]하준의 발걸음을 떠오른 시스템 창이 막아섰다.
잠시 시스템 창을 멍하니 바라보던 하준은 일단 리암의 행동을 지켜보기로 했다.
리암이 말을 이었다.
“하르슨 님하고 어떤 관계인지 말해 줄 수 있어?”
“……내 할아버지였다.”
“그래…… 그럼 약속해 줘.”
리암은 미르테인을 레인에게 건네며 입을 열었다.
“미르테인을 돌려줄게. 대신 빌런을 그만둬. 네 목적은 이거였잖아.”
“…….”
“약속해 줘.”
레인은 잠시 고개를 들어 리암의 눈동자를 마주 보았다.
올곧고 명백한 의지가 엿보이는 눈동자였다.
미국에서 가장 유명한 신화급 보구에 선택받은 소년.
리암의 재능이자 어릴 적부터 그를 미국의 신동이라고 불리게 만든 보구를 그는 가볍게 내려놓고 있었다.
“왜…….”
“미르테인이 특별한 거지, 내가 특별한 게 아니잖아. 그리고 미르테인이 내 장점도 아니고.”
한시영을 만나고, 그리고 다른 특별한 힘을 가진 아이들을 만나고 마지막으로 하준을 만났을 때 리암은 깨달을 수 있었다.
자신의 재능은 미르테인이 아니다.
물론 미르테인에게는 이미 허락을 받은 상태였다.
“미르테인, 너는 그걸로 괜찮나?”
레인이 미르테인을 향해 물었다.
그 물음에 미르테인은 한숨을 내쉬며 말할 뿐이었다.
-하…… 이 녀석의 선택을 강제할 수 없겠지. 네가 약속을 지킨다면 나도 별말 없이 따르겠다.
“……그런가.”
레인의 고개가 천천히 가라앉았다.
마치 과거를 회상하듯 눈을 감은 그녀는 이내 다시 미르테인을 바라보았다.
무언가를 결정한 눈빛으로 레인은 입을 열었다.
“미르테인.”
-뭐지?
“어제 말한 네 말은 모두 사실이겠지?”
-사실이다.
“그런가…….”
그 말을 마지막으로 레인은 리암을 마주 보며 가라앉은 투로 씁쓸히 말했다.
“……아니, 포기하겠다.”
그 말을 시작으로.
띵-
[● 리암 마르텔 (진행률 100%)]리암의 진행률이 100%를 달성했다.
순간 하준의 눈동자가 크게 뜨였고 레인에게 향했다.
레인은 그저 리암을 바라보며 초연히 대답할 뿐이었다.
“미르테인을 포기하겠다.”
“어……?”
리암은 잠시 벙찐 표정으로 레인을 바라봤다.
그러나 레인은 담담히 리암을 지나쳐 하준에게 다가갈 뿐이었다.
하준에게 다가간 레인은 두 손을 내밀며 입을 열었다.
“자수하겠다.”
“……리암을 죽일 생각은-”
“이제 없다. 포기했으니까. 그리고 할아버지가 저 녀석을 선택했으니까.”
그 물음에 레인은 씁쓸함이 묻은 대답으로 알렸다.
하준은 잠시 레인이 내민 두 손을 바라봤고 고개를 들어 레인의 얼굴을 살폈다.
여전히 담담한 표정을 짓고 있었지만 그 표정에서 왠지 모를 홀가분함이 느껴졌다.
‘이거 때문이었나?’
리암의 에피소드가 크게 변했다.
원래라면 리암 에피소드의 마지막은 레인이 미국의 히어로 협회를 습격해 큰 인명 피해를 일으켜 리암과 대치하는 과정에서 죽는 것이 본래의 엔딩이었다.
그러나 미래가 변했다.
레인이 최종 목표인 미르테인을 포기한다는 선택지로.
그 이유는 무엇보다 하준이 잘 알고 있었다.
아마 자신의 행적이 에피소드에 무언가 큰 변화를 일으킨 거겠지.
하준은 과거 시스템이 레인을 죽이는 것을 막은 이유를 그제야 알 거 같았다.
메인 빌런 스스로가 목표를 포기함으로써 엔딩이 막을 내렸으니.
하준은 레인이 내민 손을 바라봤다.
그러다 다시 고개를 들어 레인을 바라보며 말했다.
“수갑 없으니까 알아서 따라와.”
더 이상 리암을 죽일 생각이 없는 녀석을 하준도 굳이 죽일 생각은 들지 않았다.
적어도 스스로 죄를 인정하고 자수를 하니 마지막으로 걷는 자유를 줄 생각이었다.
* * *
멸지 인근에 대기하고 있던 요원의 게이트를 타고 다시 협회로 돌아온 셋이었다.
게이트 너머에서는 미국 히어로 협회장 안드로와 조아 엘리엇 그리고 요원들이 대기하고 있었다.
“아, 이런…… 빨리 응급실로!”
대기하고 있던 요원 몇 명이 리암을 향해 빠르게 달려 나갔다.
피가 흥건히 묻은 모습이 딱 보아도 그리 좋지 못한 상태였으니 말이다.
다만, 보이는 모습과 달리 크게 상처를 입지는 않았다.
게이트 너머로 가는 도중에 하준이 넘긴 이상한 포션으로 상처를 치료했기 때문이었다.
리암은 다가오는 요원들에게 손사래를 치며 다친 곳이 없다고 괜찮다고 말했다.
“괜찮아요. 그것보다…….”
곧이어 리암과 하준의 시선이 뒤에 얌전히 서 있는 레인을 향했다.
둘의 시선을 따라 조아와 안드로 또한 그녀를 바라봤고 하준이 둘의 의문에 덤덤히 대답했다.
“자수한데요.”
“자수…… 말입니까?”
잠시 믿기지 않는 눈으로 레인을 바라보는 안드로였다.
그런 안드로의 앞에 레인이 다가갔다.
그대로 담담한 표정으로 두 손을 내미는 레인이었다.
그 모습에 잠시 복잡한 표정으로 레인을 바라보는 안드로였다.
안드로는 그녀에게 무어라 입을 열고 싶었지만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그저 옆으로 다가온 요원 한 명이 흑철로 이루어진 수갑을 조용히 그녀의 손목에 채울 뿐이었다.
“……가지.”
안드로는 씁쓸함이 묻어난 말투로 레인을 향해 말했다.
레인은 별말 없이 양쪽에 요원을 끼고 협회장의 뒤를 따를 뿐이었다.
그렇게 잠시 협회의 건물로 들어갔을 때 조용히 앞장서서 걷고 있던 안드로가 뒤돌아보지 않은 채 레인에게 씁쓸한 어조로 물었다.
“레인. 아직도 내가 원망스럽나?”
“…….”
레인은 협회장의 등을 바라봤다.
과거와 달리 이제는 나이가 들어 위축된 어깨와 희게 물든 머리를 바라봤다.
그 물음에 레인은 조용히 그를 바라보며 과거를 되새겼다.
과거 자신의 할아버지에게 바운더리 던전의 브레이크를 막아 달라고 부탁했던 남자를.
할아버지의 유품인 미르테인을 이름 모를 소년에게 넘긴 협회장을.
그리고 모든 친족을 잃은 자신의 유일한 아버지가 되어 주었던 그를.
“그래.”
레인은 대답했다.
일말의 고민 없이 나온 대답에 안드로의 고개가 점차 아래로 숙여졌다.
그때 레인이 다음 말을 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상관없다.”
그 말에 한순간 안드로는 흔들리는 눈동자로 천천히 고개를 돌려 레인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레인은 여전히 무덤덤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러나 그 표정 속에서 협회장은 왠지 모르게 응어리가 사라진 듯한 편안한 마음을 느낄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