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Academy’s Time Stop Player RAW novel - Chapter (163)
제163화
#162
‘근데 여기는 어디지?’
사람 한 명 보이지 않는 어둑한 밤이지만 왠지 모르게 한국이라는 느낌은 들지 않았다.
적어도 외국 느낌이 물씬 풍기는 거리였으니 말이다.
곧이어 하르나의 호기심이 할아버지를 향했다.
‘어디로 가는 걸까?’
하르나는 호기심 어린 얼굴로 할아버지의 뒤를 쫓았다.
대체 할아버지는 저 수상한 사람들을 데리고 어딜 가는 걸까?
그래도 오랜만에 보는 얼굴이라 기분이 좋았다.
요즘 통 연락이 없어 할아버지를 못 뵌 지 오래됐으니 말이다.
물론 이게 어디까지나 과거의 기억인 거 같기에 대화를 나눌 수는 없을 거 같지만.
‘여긴……?’
그렇게 할아버지의 뒤를 따라 걸으니 어느 주택 앞에 도착한 하르나였다.
잠시 의아한 얼굴로 할아버지를 바라보니 할아버지는 일행들과 함께 어떠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여기로군, 만물의 아이가 있는 곳이.”
만물의 아이?
하르나는 의아한 얼굴로 할아버지를 바라봤다.
만물의 아이가 뭘까?
지금 생각해보면 할아버지에 대해 모르는 게 많았다.
할아버지는 자신에 대해 잘 가르쳐주시지 않았으니 말이다.
하시는 일도 그리고 엄마, 아빠에 대해서도 알려준 적이 없었고…….
‘아!’
그때 무언가 떠오른 하르나였다.
신은 분명 자신의 소원을 이루어준다고 했다.
그러면 여기 어딘가에 엄마, 아빠가 있는 걸까?
그러한 생각이 들었을 때 하르나의 시선이 주택으로 향했다.
“…….”
잠시 기대에 부푼 눈으로 주택을 바라보는 하르나였다.
결국 참지 못한 하르나는 할아버지보다 먼저 주택의 안으로 들어갔다.
굳이 문을 열 필요는 없었다.
문은 그저 통과되며 마치 유령이 된 기분으로 주택 안을 드나들 수 있었으니까.
그렇게 주택 내부로 들어간 하르나는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그리고 볼 수 있었다.
“아…….”
자신과 비슷한 얼굴의 성숙한 여인과 한 사내가 보였다.
그리고 내가 있었다.
지금보다 엄청 어렸을 때의 자신.
해봐야 6, 7살 정도 돼 보이는 꼬맹이인 자신을 바라보며 하르나는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아빠, 엄마?”
그렇게 잠시 그 광경을 바라보다 하르나는 멍한 표정으로 두 분을 향해 다가갔다.
6년 전, 11살 때의 기억이 떠올랐다.
엄마와 아빠가 누군지 궁금하여 할아버지에게 했던 질문이었다.
엄마, 아빠가 보고 싶다고.
그러한 질문에 할아버지가 슬픔에 잠긴 듯한 목소리로 대답한 것이 떠올랐다.
아빠와 엄마는 피치 못할 사고로 이 세상에 없다고.
그러니 내가 대신해 그 몫을 다하겠다고.
그러한 할아버지의 배려가 담긴 말에도 어쩔 수 없이 부족함을 느꼈던 하르나였다.
하지만……, 하르나의 입꼬리가 천천히 올라갔다.
이제는 볼 수 없을 것이라 생각한 가족이 눈앞에 있었다.
물론 어디까지나 과거의 장면이기에 대화를 나누고 만질 수도 없으나 충분히 만족감을 느끼는 하르나였다.
그리고 가슴 속의 무언가가 간질거리는 정겨움이 들었다.
채워지지 않던 부족함이 가득 차오르는 느낌이었다.
하르나는 잠시 편안한 미소를 지으며 두 분을 바라봤다.
적어도 이 정겨움을 충분히 만족스러울 때까지 즐기기 위해.
그때였다.
엄마와 아빠의 시선이 자신을 향한 것은.
“……?”
그 순간 하르나의 눈동자가 크게 뜨였다.
설마 자신이 보이는 건가?
그러한 생각을 했을 때.
아빠가 자신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누구?”
“어, 어?”
그 물음에 하르나는 더없이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설마 진짜로 정말 자신이 보이는 걸까?
“그 아이로군, 만물의 아이가.”
그러한 생각을 했을 때 하르나의 뒤에서 익숙한 노인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 목소리에 하르나의 고개가 천천히 뒤로 돌아갔다.
그리고 볼 수 있었다.
어느 순간 들어온 할아버지가 소름 끼칠 정도의 미소를 짓는 것을.
그의 손에 마력이 예열된 지팡이가 들린 것을.
“……어, 할아버지?”
할아버지의 몸에서 마력이 아우라 치며 그대로 지팡이를 땅에 내리친 것이다.
그리고 상황은 일어났다.
쿠쿠쿵!!
거대한 지진이 일어났다.
천장을 포함해 집안 온 벽이 금이 가기 시작하며 건물이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다.
* * *
그 시각.
숙소 침대에서 누워 있던 하준은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이건 또 뭐야?”
띵-
● 하르나 루엘 (75%)
들려온 알림 소리와 함께 하르나 루엘의 진행률이 빠르게 오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 하르나 루엘 (78%)
그것도 급속도로 너무도 빠르게 말이다.
무언가 이상함을 감지한 하준은 천천히 몸을 일으켜 침대에서 벗어났다.
진행률이 현재 진행형으로 오르고 있었다.
그렇다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 그녀에게 어떠한 일이 일어나고 있던 것이 분명했다.
‘필라텐, 하르나의 위치는?’
하준이 필라텐을 향해 물었다.
그 물음에 필라텐이 곧바로 대답했다.
-그녀의 위치를 찾았습니다, 왕이시여.
“어디지?”
-왕께서도 알고 있는 장소입니다. 과거 왕께서 죽인 제하르라는 노인의 집입니다.
그 말에 무언가 심상치 않은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것을 눈치챈 하준은 곧바로 시간 정지를 발동했다.
그대로 제하르의 집을 향해 빠르게 달려 나갔다.
* * *
“어째서…….”
하르나의 얼굴이 점차 허망하게 가라앉았다.
“어째서……, 할아버지가…….”
그녀의 눈동자에 옅은 이채가 사라졌다.
그녀의 시선이 할아버지를 향해 있었다.
무너진 주택의 중심에서 한 아이를 안고 있는 할아버지를.
세상에서 가장 기쁘다는 듯한 표정을 짓고 있었으나 하르나의 눈에는 그 미소가 소름 돋게 무서울 뿐이었다.
“거짓말이야.”
이러한 현실에 하르나는 고개를 저으며 부정했다.
전부 거짓일 것이다.
이게 사실일 리가 없다.
그 신인지 뭔지 하는 것이 자신한테 허상을 보여주는 것이다.
하르나는 그리 믿고 의심하지 않았다.
그녀의 목소리가 들리기 전까지.
-부정하지 마.
“…….”
-세뇌는 이미 풀렸어. 너는 이미 알고 있을 거야.
그 말과 함께 다시 장소가 이동됐다.
백화점처럼 보이는 장소.
많은 사람들이 주변에 쓰러져 기절해 있었으며, 그들 사이에 가쁜 숨을 몰아쉬는 할아버지가 바닥에 쓰러져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그리고 그러한 할아버지의 앞에 망치를 든 하준이 할아버지를 고요히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러나 막상 할아버지는 분을 못 이긴 듯 분노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 표정은 난생처음 본 할아버지의 표독스러운 표정이었다.
-네놈도 ‘만물의 아이’를 원하는 것일 테지!
그때 할아버지가 하준을 향해 소리쳤다.
그리고 할아버지의 말이 들려올 때마다 하르나의 얼굴이 점차 굳어져 갔다.
-그 아이는 내 것이다! 그 누구도 가져가지 못한다!
그 목소리가 들려올 때마다 하르나의 감정이 떨려왔다.
믿기지 않는 말이 할아버지의 입에서 계속해서 쏟아져 나왔다.
-그 아이의 가족이 되기 위해 10년을 버텨왔다. 네놈은 자격이 없어!
왜 그 일상들을 버텨왔다고 말하는 것일까?
자신에게는 더없이 소중한 추억들인데…….
그 무엇보다 진귀한…….
툭- 투툭-
그녀의 눈가의 눈물이 맺혔다.
볼을 타고 흘러내리는 눈물이 바닥에 떨어져 내렸다.
곧이어 그녀의 몸에서 마력과 다른 이질적인 기운이 흘러내렸다.
툭- 후우웅!
볼을 타고 흘러내린 눈물방울이 지면에 떨어진 순간, 고요한 호수에 파문을 일으키듯 거대한 파장이 바닥을 요동쳤다.
기억의 파편들이 쩌저적- 갈라지며 유리 조각처럼 사방으로 흩어졌다.
공간의 잔해가 무지갯빛을 내며 주변에 흘러내렸다.
오직 적막만이 가득한 백색의 공간이 다시 모습을 드러냈을 때, 그녀의 몸에서 고요히 마력과 다른 이질적인 기운이 뿜어져 나왔다.
그녀는 마치 모든 것을 초탈한 듯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기억났어…….”
어릴 적, 사라졌던 떠올릴 수 없었던 기억을 그녀는 되새긴다.
가장 소중했던 부모님의 기억.
행복했던 어린 시절의 기억을 떠올리며 그녀의 고개가 천천히 가라앉았다.
-모든 게 사실이야. 나는 거짓을 들어줄 수 없으니까.
소망.
사람들이 신에게 바라는 구원.
그러한 마음과 믿음이 모여져 탄생한 것이 자신이다.
사람들이 원하는 소망에 거짓을 들어줄 수 없으니.
그렇기에 신은 바란다.
그녀가 무엇을 알고 싶어 하는지, 무엇을 원하고 이루고 싶어 하는지.
신은 그런 하르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나는 네가 원하는 걸 이루어줄 수 있어.
“내가……, 원하는 거?”
-맞아. 원하는 걸 말해.
그 말에 하르나의 표정이 점차 아래로 가라앉았다.
마음이 괴롭다.
마치 익사할 것같이 끔찍하게 아파 왔다.
그러한 혼란스러운 감정 속에서 떠오르는 감정이 하나 있었다.
“복수하고 싶어.”
-…….
하르나의 말이 고요히 공간에 울려 퍼졌다.
그 말과 함께 그녀의 몸에서 피어오르는 기운이 거세게 요동친다.
“내게 이런 짓을 벌인 사람들한테 복수하고 싶어.”
하르나의 눈동자가 무지개색으로 일렁이기 시작했다.
오직 그녀만이 사용할 수 있는 룬어의 마력.
그러한 하르나의 모습을 바라보며 신이 가라앉은 어조로 입을 열었다.
-도와줄게.
그 말과 함께 그녀가 천천히 하르나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
-네가 원하는 복수도 그리고 소원도. 나는 그러기 위해서 탄생한 존재야.
신의 근원은 그러한 존재니까.
사람들의 소망을 소원을 이루어주는 존재니까.
그러한 것이 자신의 ‘근원’이며, 믿음으로서 자신의 존재가 인정받으니.
자신이 이 세계의 유일한 신이 되기 위해서.
* * *
“여긴가?”
하준이 제하르가 살고 있던 주택에 도착했을 때 그녀의 기운이 강하게 느껴지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마력.
아니, 마력이라고 볼 수 없는 이질적인 기운.
룬어의 기운.
하준은 곧바로 주택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거실로 들어갔을 때 가라앉은 얼굴로 눈물을 흘리는 하르나를 볼 수 있었다.
하준은 그러한 하르나를 향해 다가갔다.
그리고 하준의 인기척을 느낀 하르나가 천천히 하준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하르나는 소매로 흐르는 눈물을 닦고 천천히 하준의 곁으로 다가갔다.
그대로 얼굴을 가슴에 파묻으며 하준의 허리를 잡고 끌어안는 하르나였다.
“고마워.”
“…….”
하르나는 하준의 가슴에 얼굴을 파묻은 상태로 감사 인사를 전했다.
그리고 꽈악 끌어안은 손이 파르르 떨리고 있다는 것을 하준은 알 수 있었다.
하르나는 살짝 고개만 들어 하준을 바라봤다.
눈물 자국에 엉망이 된 얼굴.
처음에는 무엇에 대한 고마움인지 하준은 알 수 없었지만, 다음에 이어진 그녀의 말에 하준은 그 감사에 대한 이유를 알 수 있었다.
“할아버지를 막아줘서.”
“너…….”
그 말에 하준의 표정이 점차 굳어졌다.
지금 이 순간, 그녀가 사실을 알아차렸다는 걸 눈치챘으니.
“하지만 너하고는 상관없는 일이야…….”
그 말과 함께 그녀의 몸이 서서히 옅어져 갔다.
몸 전체가 서서히 빛의 입자로 변하며 사라지기 시작했다.
그녀가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머뭇거리는 입술로 마지막 말을 전할 뿐이었다.
“고마웠어.”
서글프게 떨려오는 그녀의 목소리.
마치 메아리처럼 귓가에 맴도는 그 목소리를 마지막으로 그녀의 몸이 입자로 흩어지며 모습을 감추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