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Academy’s Time Stop Player RAW novel - Chapter (173)
제173화
#172
레인의 미간이 점차 좁혀졌다.
그러나 곧 그녀의 표정이 서서히 풀리며 한숨을 내쉬더니 고개를 저을 뿐이었다.
“거절하지. 성가신 일에 관여하고 싶지 않아.”
그 말과 함께 다시 들고 있던 책을 펼친 레인이었다.
그 순간 레인의 머리 위로 거대한 눈동자가 공간을 찢고 모습을 드러냈다.
동시에 레인의 몸에서 가공할 마력이 기운이 흘러나오며 그녀의 눈동자가 용안으로 바뀌었다.
흑철로도 흡수가 불가능한 마력의 기운.
아마 그녀가 마음만 먹는다면 이러한 공간에서도 어렵지 않게 빠져나올 수 있었지만, 그렇지 않고 이곳에 얌전히 있다는 말은 정말로 관여되고 싶지 않다는 거겠지.
다만, 모습을 드러낸 레아논의 생각은 다른 모양이다.
어느 순간 레인의 입에서 그녀의 목소리가 아닌 레아논의 목소리가 흘러나와 하준을 바라보며 말했다.
[네가 왜 이곳을 찾아왔는지 알 거 같다. 새로운 왕이여.]하준과 시선을 마주한 레아논이 말을 이었다.
[다른 왕들이 움직인 모양이군.]그 말에 하준은 고개를 끄덕였다.
놈 또한 왕이라 불리는 녀석이니 아마 현재 일어나고 있는 사태를 어느 정도 짐작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렇기에 하준은 레인에게 도움을 요청한 것이고.
그러나 그러한 하준의 생각과 다르게 레아논은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허나, 지금 나의 힘으로는 놈들을 막을 수 없다.]“……왜지?”
[지금 내 힘은 봉인 당했다.]“봉인 당했다고?”
[그렇다.]그 말에 하준은 미간을 좁혔다.
어떤 이유로 봉인 당한 것일까?
확실히 왕이라 불리는 자들의 힘을 겪어본 하준으로서 놈들과 비교했을 때 지금의 레인은 약한 축에 속하기는 했다.
다시 말해 그녀의 도움을 받는 것을 포기해야 할 상황이었다.
[그러니 거래를 하지, 이레귤러.]그러한 생각에 잠기던 중.
갑작스럽게 레아논이 하준을 향해 말했다.
하준은 거래라는 말에 의아한 얼굴로 그를 향해 물었다.
“무슨 거래?”
[지금 이 힘을 봉인하고 있는 자가 있다. 네가 쓰러트려야 할 적이기도 하지.]“그게 누구지?”
[인간의 왕, 자하르트. 놈을 죽이면 너를 돕겠다.]그 말에 하준은 잠시 지그시 레아논을 바라봤다.
무언가를 깊이 고민하던 중이었다.
한 가지.
의심이 드는 점이 있었으니 말이다.
하준은 레아논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한 가지 물을 게 있어.”
[뭐지?]“너는 인간의 편이냐?”
지금까지 본 왕 중 몇 명을 제외하고는 인간의 편에 선 존재는 없었다.
그렇기에 하준은 레아논을 향해 질문했다.
적어도 그의 대답이 사실인지 거짓인지는 알 수 없지만, 자신의 편을 들려는 이유를 알고 싶었으니.
그리고 하준의 그러한 질문에 레아논이 입을 열었다.
[나는 인간의 편이 아니다.]너무도 솔직한 대답이었다.
하준의 미간이 점차 좁혀졌다.
그대로 마력을 내뿜으려는 순간, 놈의 말이 이어졌다.
[나는 방관하는 자다. 어디에도 편을 들 생각은 없지만, 인간을 헤치지 않겠다고 약속하지.]“이유는?”
[그녀가 원하지 않을 테니까.]“…….”
그 말에 하준은 잠시 레아논을 멍하니 바라봤다.
그 말에 어떠한 근거도 없었으나 왠지 모르게 믿음이 가는 말이었다.
하준은 고개를 끄덕이며 레아논을 향해 대답했다.
“인간의 왕을 죽이면 나를 도와.”
[약속하지.]그 대답을 들은 하준은 아무 말 없이 다시 방을 나올 뿐이었다.
그렇게 잠시 정적이 흘렀을 때.
다시 원래의 눈동자로 돌아온 레인인 인상을 찌푸리며 불만스럽게 레아논을 향해 말했다.
“뭘 멋대로 거래하는 거냐, 레아논.”
[레인, 너와 전혀 관계없는 얘기가 아니다.]“……무슨 말이지?”
[곧 전쟁이 시작될 거다.]“전쟁?”
레인이 미간을 찌푸리며 레아논을 바라봤다.
“왕이란 건 대체 뭐냐?”
[나와 비슷한 존재들을 일컫는다. 그 또한 왕이지.]그 말과 함께 문 너머로 사라진 하준을 바라보는 레아논이었다.
그러한 레아논의 대답에 레인이 입을 열었다.
“그러한 놈들이 전쟁을 일으킨다는 말이냐?”
[그렇다, 그리고 너 또한 그 전쟁에 휩쓸릴 수도 있다, 레인.]“그게 무슨 말이지?”
[전쟁이 시작되는 순간, 나를 봉인한 왕이 너를 죽일 수도 있다, 레인.]그 말에 진지한 표정으로 레아논을 바라보는 레인이었다.
그러한 레인을 향해 레아논의 말이 이어졌다.
[놈 또한 눈치챘을 것이다. 봉인의 약해졌다는 것을. 아마 조금이라도 있을 위협을 방지하기 위해 너를 죽이겠지.]“내가 죽으면 너는 어떻게 되지?”
[다시 이 공간 속에 영원히 갇히겠지.]그 말에 한숨을 내쉬는 레인이었다.
레인은 잠시 고개를 숙인 채 무언가를 생각하다 레아논을 향해 질문했다.
“……레아논.”
[왜 그러지?]“만약 봉인이 풀리면 너는 어떻게 할 생각이지?”
그 말에 레아논의 눈동자가 누그러졌다.
그의 울리는 듯한 목소리는 여전했으나 한층 누그러진 듯한 말투로 그녀에게 말했다.
[걱정하지 마라 레인. 봉인이 풀려도 네 곁을 떠날 생각은 없다.]그 말과 함께 찢어진 공간 사이로 마력이 흘러나왔다.
그 마력이 어느 순간 용의 손 형태를 띠며 다정히 그녀의 머리에 얹어졌다.
레아논이 그녀를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봉인이 풀려도 나는 네 곁을 지킬 것이다, 레인.]* * *
볼 일은 마친 하준은 협회장 안드로의 배려를 받아 게이트를 타고 다시 한국으로 돌아왔다. 어차피 쉬는 날이니 오랜만에 집으로 돌아갈까 생각하던 중 갑작스럽게 하준의 폰이 진동하기 시작했다.
하준은 그대로 휴대폰을 꺼내 전화를 받았다.
한국 영웅 협회의 협회장인 김정용의 전화였다.
“예, 무슨 일이세요?”
-그게 하준 생도님. 아무래도 급하게 보셔야 할 것이 있어…….
“봐야 할 거요?”
하준은 의아한 얼굴로 김정용을 향해 되물었다.
그러한 하준의 대답에 김정용이 다급히 입을 열었다.
“S급 빌런 카르톤. 그자가 다시 활동을 시작한 거 같습니다.”
* * *
협회장의 통화를 받은 하준은 일단 급하게 다시 한국 영웅 협회로 향했다.
협회장 김정용은 하준이 온 것을 확인한 뒤, 급하게 어떠한 영상을 보여주며 입을 열었다.
“불과 몇 시간 전. 일어났던 일입니다.”
그것은 한 길드의 내부 영상이었다.
대전을 대표하는 울프셔 길드의 본부 건물에서 일어난 사건.
CCTV에 고스란히 찍힌 그곳에는 어떠한 괴한이 길드 본부 건물에 들이닥쳐 영웅들을 상대로 학살을 일으키는 영상이 담겨 있었다.
“사상자는 소속 길드의 최상급 영웅 1명과 상급 영웅 3명 그리고 부상자 57명입니다. 당시 테러 현장에 살아남은 영웅의 말을 들어 보니……, 분명 습격한 괴한이 S급 빌런 카르톤이라고…….”
그 말에 하준의 표정이 담담하게 굳어졌다.
하준은 협회장에게 시선을 옮기며 입을 열었다.
“이놈의 행방은요.”
“지금 사건이 일어난 길드에 협회의 요원을 파견하여 놈의 위치를 파악 중입니다. 다만, 도주 경로를 봤을 때 아무래도 이곳 서울을 향해 도주 중인 모양입니다.”
“그래요?”
대충 놈의 생각이 어느 정도 이해가 되었다.
협회장 김정용의 말대로 아마 놈은 자신이 있는 이곳을 향해 오는 중이겠지.
‘어디 숨어 있나 했더니.’
과거 하준의 힘이 약해 풀어줄 수밖에 없었던 빌런.
다만, 놈이 직접 찾아온다면 오히려 다행이었다.
굳이 찾을 수고는 덜었으니 말이다.
“하준 생도님.”
그때 김정용이 진지한 얼굴로 하준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해당 영상을 보셨듯이 카르톤, 그자의 힘이 예전과 비교해도 터무니없이 강해졌습니다. 아마 이번 테러도 힘을 시험해보기 위해 저지른 것이 분명합니다. 목표는 분명 하준 생도님이 분명하고요.”
“예,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그러니 부디 조심해주시기 바랍니다. 저희 협회도 최대한 지원을 아끼지 않겠습니다.”
그 말에 하준은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아마 더 이상의 테러는 저지르지 않을 것이다.
현재 놈의 목표가 확실한 이상 그대로 자신을 향해 찾아오지 않을까?
‘오늘은 쉬기 글렀나…….’
하준은 성가시다는 듯 인상을 꾸기며 일단 협회를 나오기로 했다.
뭐, 놈이 이곳을 향해 찾아오는 이상 하준은 그저 기다리기만 하면 될 뿐이니 말이다.
* * *
그날 밤, 이미 해가 진 늦은 저녁.
어느 건물의 옥상에서 바람을 쐬고 있던 하준은 멍하니 주변을 둘러보았다.
단순히 야경을 보기 위해서이기도 하고 이러한 사태에서 멀쩡히 집이나 아카데미의 기숙사로 돌아갈 수는 없는 상황이니 말이다.
놈의 목표가 자신인 이상 놈은 오늘 중, 혹은 내일 자신을 습격할 것이다.
혹은 테러 등등 뭐, 알 수 없는 방법으로 자신을 부를 수도 있겠지.
그렇다면 그동안 하준은 기다릴 뿐이었다.
그때였다.
위이잉- 위이잉-
그때 하준의 휴대폰에 진동이 울렸다.
하준은 그대로 휴대폰을 꺼내 자신에게 전화를 건 인물을 확인했다.
안나 엘리자베스 하르텔.
하긴, 이러한 사태에 그녀가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란 생각은 들긴 했다.
하준은 그대로 전화를 받으며 입을 열었다.
“왜?”
-하준 씨, 뉴스 보셨죠?
“……그래.”
-카르톤이 모습을 드러냈어요.
그녀가 진지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그녀의 목소리에 결연함이 담겨 있었다.
-아마 하준 씨를 찾아가겠죠.
카르톤의 성향을 어느 정도 파악하고 있는 안나이기에 안나는 카르톤의 다음 행동을 예상하고 있었다.
분명 그놈이 노리는 목표가 하준이라는 것을 확신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안나는 하준을 향해 전화해 그때 다짐한 자신의 진심을 전했다.
-하준 씨, 그때 약속 기억하죠?
하준은 당시 온천에서 안나와 한 약속을 떠올렸다.
누가 먼저 카르톤을 쓰러트리냐 했던 내기와도 같은 약속.
하준이 그녀를 향해 말했다.
“자신 있어?”
-…….
카르톤이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모르겠지만 하준으로서 단순히 죽여야 할 빌런일 뿐이었다.
다만, 안나는 다르겠지.
복수의 대상이자 오래도록 목표로 삼은 빌런이니.
그렇기에 하준은 그녀에게 물었다.
놈을 죽일 수 있냐고.
“그놈을 만나면 나는 바로 죽일 거야.”
-……알고 있어요. 그러니까 말할게요.
후우웅~
밤하늘 아래.
인근의 가장 높은 건물에 올라온 안나가 차가운 밤바람을 맞으며 고요한 눈동자로 주변을 내려다보며 말을 이었다.
“만약 제가 먼저 찾는다면 손대지 마세요.”
안나의 눈동자가 푸른색으로 일렁이며 크게 번뜩였다.
“그게 약속이니까.”
* * *
삑-
그 말을 마지막으로 안나와의 통화가 끊겼다.
일방적으로 자신의 말 만을 전하고 끊은 안나였지만 그러한 행동에 하준의 입가에 피식- 미소가 흘렀다.
“괜한 걱정이었나?”
● 안나 엘리자베스 하르텔 (75%)
하준의 눈앞에 오르고 있는 안나의 에피소드 진행률.
그리고 그녀의 각오가 담긴 말을 들어 보니 이번만큼은 양보할 생각이 없는 모양이다.
더구나 자신이 알고 있는 안나라면 분명 질 싸움 따위는 하지 않을 것이다.
아마 그녀 또한 생각하고 있는 계획이 있겠지.
“자, 그럼…….”
하준의 시선이 어느 한 방향을 향했다.
거대한 마력의 파장이 느껴지는 방향.
안나와 통화를 하던 중간부터 계속해서 그 존재를 숨길 생각 없이 위압적인 마력을 뿜어내는 초인.
그리고 그 마력에는 어떠한 살기가 담긴 의지가 전달되고 있었다.
[나는 여기 있다.]카르톤.
놈은 자신의 모습을 숨길 생각이 없었다.
살기가 가득 담긴 마력을 뿜어내는 것을 보면 누가 찾아와도 상관없다는 행동일 테니.
아마 협회장 김정용도 그리고 인근에 대기하고 있던 협회의 요원과 영웅들 또한 이러한 마력의 파장을 느꼈을 것이다.
그럼에도 놈은 그 거대한 마력을 숨길 생각이 없이 계속해서 내뿜고 있었다.
‘확실히 예전보다 강해졌나?’
뭐, 뿜어내는 마력만으로는 알 수 없지만 아마 복수만을 생각하며 이를 갈았을 것이다.
놈의 마력에 담긴 의지에서 느껴지는 감정, 정확히 분노와 살기라는 감정이 확실히 느껴지니 놈이 자신을 얼마나 애타게 찾고 있는지 알 거 같았으니 말이다.
하지만.
후웅!
아직 자신이 나설 때가 아니다.
겁도 없이 자신을 향해 찾아오라는 것도 마음에 안 들고.
하준은 황금의 마력을 뿜어내며 그대로 거대한 파장을 일으켰다.
거대하고도 찬란한 파장의 빛이 하준의 중심을 시작으로 전역으로 뻗어나가기 시작했다.
그러한 파장에 하준은 놈만이 알아들을 수 있는 위압적인 경고를 담았다.
[네 따위가 오라 마라 하지 마라.]그놈 따위가 감히 자신 보고 찾아오라는 것이 신경에 거슬렸다.
만약 이 마력을 알아차린다면 충분히 놈을 향한 경고가 될 것이다.
[죽여버리기 전에.]감정을 실은 마력의 파장.
하준 또한 놈을 향해 분노하며 거대한 살기를 마력에 실었다.
그리고 그 거대한 마력의 파장이 저 멀리 하준의 눈에도 보이지 않을 만큼 뻗어나갔을 때.
“…….”
아까부터 자신의 신경을 건드리던 카르톤의 마력이 한순간에 사그라들며 없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