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Academy’s Time Stop Player RAW novel - Chapter (183)
제183화
#182
목이 떨어진 자하르트의 시선이 한시영을 향했다.
자신의 목을 벤 인간.
그러나…….
차갑게 내리 앉은 소년의 시선에는 어떠한 감정도 보이지 않았다.
[조금의 감정도 느껴지지 않는구나…….]분명 눈앞의 소년은 그 마을의 생존자임이 분명하나.
소년이 자신을 향한 원망, 분노라는 감정은 일절 보이지 않았다.
인간이라면 가지고 있으며 표출해야 할 감정일 터인데…….
[이곳에 남은 이유가 무엇이냐?]인간의 왕이 한시영을 향해 물었다.
그 물음에 잠깐의 정적이 흐른 후, 대답 대신 한시영이 그를 내려다보며 물었다.
“너는 분명 의도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게 무슨 뜻이지?”
자하르트는 분명 마을을 없앤 것을 의도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한시영의 물음에 자하르트는 솔직하게 대답했다.
[그저 운이 나빴을 뿐이지. 처음 내가 이 세계에 왔을 때 그곳에 마을이 있었을 뿐이다.]“…….”
[그 마을이 사라진 이후는 그저 그뿐이다. 나라는 재앙에 휩쓸렸을 뿐이지.]그저 우연이었다.
자신이 처음으로 이 세계에 발을 들였을 때 그곳에 마을이 있었고 공간을 넘어오면서 발생한 거대한 파괴의 현상은 마을 자체를 휩쓸어 버렸다.
그것이 사실이었고 그 마을이 사라진 이유였다.
그리고 대답을 들은 한시영에게는 말이 없었다.
그저 담담한 눈동자로 그를 내려다보며 주시할 뿐이었다.
그 속에는 여전히 분노라는 감정은 보이지 않았다.
그 모습에 마지막이라는 것을 알지만 호기심이 든 자하르트는 질문할 수밖에 없었다.
[이번에는 내 차례다. 왜 나를 원망하지 않지?]“…….”
[네게는 감정이 없는 것이냐? 네 부모도 내가 죽였을 것이 분명할 터인데.]적대는 하나 그 속에 비친 감정에는 원한이나 분노 따위는 없었다.
그러한 대답에도 한시영의 표정은 변하지 않았다.
일말의 감정도 비치지 않는 모습은 자하르트에게 있어 감정이 없는 인간처럼 보였다.
그러나 한시영의 다음 대답을 듣고 나서 그는 이해할 수 있었다.
“네게 원한 따위는 없다.”
[……왜지?]“나는 그저 네게 맞서서 검을 휘둘렀을 뿐이다.”
[……그런가.]그것을 본 자하르트의 얼굴이 마치 삶의 모든 것을 놓은 듯 가라앉았다.
그것이 대답이 되었다는 듯이.
[단순히 맞섰기에 검을 휘둘렀을 뿐이군. 그 누구라도.]그 대답을 들은 자하르트는 그것이 거짓말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눈앞의 이놈은 말 그대로 굳건했다.
마치 태산과도 같은 흔들리지 않는 정신을 가지고 있었다.
[‘성흔’이 왜 너를 선택했는지 알겠구나…….]후웅!
순간 한시영의 손에 새하얀 빛의 검이 찬란한 빛을 내며 발현되었다.
한시영은 담담한 표정과 함께 한 손으로 가볍게 검을 휘둘렀고.
스걱-
그의 머리가 반 토막이 나며 새하얀 빛을 내는 재가 되어 서서히 흩어져 사라지기 시작했다. 마지막으로 그는 어떠한 생각이 떠올랐다.
‘성흔의 기운이 이 세계에 존재할 리가 없을 터…….’
이곳은 또 다른 세계다.
전 세계의 전유물인 성흔의 기운이 존재할 리가 없었다.
그렇다면 한 가지.
성흔의 기운이 이 세계에 존재하는 이유는 한 가지뿐이었다.
‘나를 뒤 따라왔구나…….’
자신이 차원을 넘어 이곳에 왔을 때 마력을 포함한 많은 기운이 뒤따라왔다.
아마 성흔의 기운 또한 그 잔재 중 하나일 터.
‘결국…….’
자신을 죽일 존재를 자신이 만들었다는 사실을 깨달은 자하르트는 마지막 빛의 잔재가 되어 사라지기 직전 헛웃음을 흘리며 사라졌다.
“…….”
잠시 그 모습을 조용히 지켜보고 있던 한시영은 그의 마지막으로 사라지는 모습을 지켜본 뒤, 뒤돌아서 자리를 떠났다.
* * *
“쿨럭!”
“괜찮으세요?”
한편 하준은 나머지 처리를 한시영에게 맡기고 검왕에게 돌아왔다.
내상을 입은 거 같기에 포션을 꺼내 그녀에게 건넸고 포션을 마신 그녀의 몸이 어느 정도 치료가 됐는지 아까보다 한층 편안한 숨소리를 내며 입을 열었다.
“고맙구나. 한데, 시영이는?”
“오고 있어요.”
“그 녀석은 어떻게 되었느냐?”
“죽였어요.”
그 대답에 그녀가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네게 또 도움을 받았구나.”
“마지막으로 죽인 건 한시영인데요.”
“그 아이가……?”
그 말에 살짝 놀란 표정을 짓는 검왕이었다.
그녀가 천천히 일어서 한시영을 찾으러 가려 할 때 타이밍 좋게 수풀을 헤치고 한시영이 모습을 드러냈다.
“…….”
“…….”
검왕과 한시영은 서로를 마주 보았고 잠시 조용한 정적이 흘렀다.
그 정적 이후, 검왕이 조용히 한시영을 향해 말했다.
“따라오거라. 보여주고 싶은 게 있단다.”
그 말에 한시영은 대답 없이 고개를 끄덕였고 검왕의 뒤를 따랐다.
* * *
30분 정도 걸었을까?
일출과 함께 주위의 밤이 지나고 해가 떠오르려 할 때.
검왕과 한시영 그리고 하준은 어떠한 장소에 도착했다.
산 정상의 넓은 평지.
그곳은 30 정도의 묘석이 깔린 무덤으로 보이는 장소였다.
잠시 묘지의 앞에 선 검왕은 씁쓸한 얼굴로 묘석을 내려다보며 입을 열었다.
“마을 사람들이란다. 유해를 전부 찾지 못했지만 그래도 남은 사람들이라도 정성스럽게 묻어 줬단다.”
“…….”
한시영은 아무 말 없이 그녀의 옆으로 다가갔다.
그녀가 바라보는 시선을 따라 한시영 또한 묘석을 바라봤다.
“네가 태어나기 오래전에 나는 이 마을 사람들에게 은혜를 입었단다. 좋은 사람들이었지…….”
15년 전, 차원 던전의 사태가 종결됐으나 아직 사람들의 목숨을 위협하는 던전과 마수가 들끓던 시기.
검왕이 현역으로 활동하던 시기이기도 했다.
“그곳은 내 보금자리이기도 했단다. 나도 몇십 년 간 마을의 인원으로 그곳에서 생활하였고, 내 마지막을 보낼 곳으로 안착할 생각이었단다.”
그녀에게 있어 그곳은 마지막 노후를 보낼 보금자리이기도 했다.
몇십 년 간 수많은 차원 던전을 돌며 전장에서 싸워왔고 마지막으로 그 마을에 안착해 평온한 삶을 보낼 생각이었으니.
그러나 그녀가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마을은 거대한 재앙에 휩쓸렸고 그 마을이었던 곳 중심에 한 남자가 서 있었다.
그것이 인생을 살며 두 번째로 겪은 가장 큰 절망이었다.
사방의 피가 낭자하고 죽을 각오로 남자와 싸웠다.
결국 그 남자가 도주하는 바람에 놓치고 말았지만 말이다.
검왕은 힘없는 발걸음으로 사라져버린 마을의 주변을 돌았다.
혹시나 마을의 생존자가 있을 것인가 하는 희망에 주위를 돌았고.
유일하게 살아남은 마을의 생존자를 찾을 수 있었다.
“네 부모가 목숨을 걸고 너를 지켜 주었기에 살 수 있었단다.”
그녀의 시선은 어느 묘에 닿아 있었다.
한시영은 그 묘를 향해 다가갔고 천천히 무릎을 꿇으며 묘를 바라봤다.
그 모습을 잠시 지켜보고 있던 검왕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미안하구나, 이제 알려줘서.”
“…….”
한시영은 대답 없이 잠시 그 묘를 바라봤다.
한시영의 얼굴은 옅은 쓸쓸함이 묻어나 가라앉아 있었다.
그러다 천천히 일어서 고개를 돌려 검왕을 바라보는 한시영이었다.
한시영이 그녀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지금에서야 알려주신 이유가 궁금합니다.”
그 목소리에는 어떠한 원망도 없이 정중함만이 묻어나 있었다.
뒤늦게 사실을 알려준 그녀를 원망하는 것이 아닌 단순히 그 이유가 궁금하여 질문한 말이었으니. 그 질문을 들은 검왕은 한시영을 마주 보지 못한 채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다.
“나는 네가 평범한 삶을 보내길 원했단다.”
마을 사람들을 죽인 원흉이 있다는 사실도 모른 채.
그저 다른 아이들과 같은 평범한 생활을 하기를 원했다.
친구를 많이 사귀고 사회에 적응하며 평범하나 행복한 삶을 보내길 원했다.
“네가 이 사실을 알면 복수에 사로잡혔겠지.”
그 젊은 나이에 복수에 사로잡혀 인생을 허비하게 만들고 싶지 않았다.
복수는 오랜 세월을 살아 삶에 미련이 없는 자신이 하면 충분할 테니.
그러나…….
그 말에 한시영은 고개를 저었다.
그녀의 말을 부정하듯 고개를 저으며 말을 이었다.
“그 사실을 알게 되어도 저는 달라지지 않았을 겁니다.”
그 순간.
검왕의 눈동자가 크게 뜨였다.
고개를 천천히 든 검왕은 눈앞에 자신을 주시하는 한시영을 바라봤다.
그리고 항상 담담한 표정을 짓던 한시영의 입은 옅은 미소를 보이고 있었다.
“이 길은 제가 선택한 겁니다.”
한시영이 말했다.
그러한 사실을 알게 되었다 하여도 자신은 복수에 사로잡히지 않았을 것이다.
너무 늦게 알려주었다 하여도 스승님을 원망하지 않았으며, 그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하여도 자신의 길은 달라지지 않았을 것이다.
자신이 확고히 정해둔 목표와 꿈은 변하지 않을 테니.
“저는 스승님께 인정받고 싶었습니다.”
스승님을 뛰어넘을 정도로 강해지고 싶었다.
그것이 목표였고 지금도 달라지지 않았다.
자신의 꿈은 스승님에게 인정받음으로써 완성되기에.
그로 인하여 스승님 또한 자신을 바라보며 안심할 수 있을 테니.
“저는…….”
과거 차원 던전으로부터 세상을 구한 대영웅들이 그러했듯이 자신 또한 영웅이 되고 싶었다. 지금도 그들을 동경하고 있으며 존경하였고 자신의 될 가장 큰 목표였다.
자신을 키워낸 스승님이 그러한 대영웅이기에 이루고 싶은 꿈.
“누군가를 지키는 영웅이 되고 싶습니다.”
영웅이 되어 사람들을 안심시킬 수 있는 존재가 되고 싶었다.
그것이 한시영이 이루고 싶었던 꿈이었다.
“……시영아.”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던 검왕은 깨달았다.
이 아이가 무엇보다 바라고 있던 사실을 들었을 때, 검왕은 비로소 알 수 있었다.
과거에 사로잡혀 있던 것은 자신이었다는 사실을.
“너는…….”
어릴 적의 그 아이가 아닌 자신의 꿈을 향해 똑바로 나아가는 소년을 바라본다.
검왕은 그제야 한시영을 똑바로 마주 볼 수 있었다.
소년은 성장하였고 자신은 그저 과거에 사로잡혀 있을 뿐이었다.
“그렇구나…….”
누군가를 지키고 싶은 영웅.
검왕은 어렴풋이 한시영의 꿈에 자신도 포함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내가 무어라 해도 너는 영웅이 될 생각이었구나.”
“…….”
그 말에 한시영은 대답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검왕은 한시영을 향해 다가갔다.
허리에 찬 자신의 검을 들며 한시영에게 다가간 그녀는 손을 뻗어 한시영의 손을 어루만졌다.
“많이 노력해왔구나…….”
많은 노력의 흔적이 보였다.
굳은살이 박인 손을 보면 그간 이 아이가 행해온 노력이 어느 정도인지 알 수 있었다.
그녀는 살포시 어루만지던 한시영의 손에 자신의 검을 갖다 대며 한시영의 손에 살포시 쥐여주었다.
그녀는 씁쓸한 미소를 보이며 한시영을 바라보고 있을 때, 한시영의 눈동자는 크게 뜨였다.
“이건…….”
“이제 내게 필요 없는 검이란다.”
그녀가 다정한 미소를 보이며 말을 이었다.
“너를 믿어보마, 시영아.”
그 미소는 마치 삶의 무게를 놓아 안심한 듯한 편안한 미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