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Academy’s Time Stop Player RAW novel - Chapter (191)
제191화
#190
하준의 눈살이 절로 찌푸려졌다.
기분 나쁜 감각이었다.
심상 속에 존재하는 뼈의 주인들, 모든 망령들이 자신을 향해 원념을 쏟아붓는 듯한 느낌이었다.
그 속에 치미는 분노와 원망이 자신을 향하는 것이 아니라는 건 알겠으나, 그들이 자신들을 대신해 복수해 달라는 듯이 끈적하게 달라붙는 듯한 감각이었다.
하준은 지금까지 심상 속 세계에 존재하는 그들의 목소리를 들어본 적이 없었다.
[이제 너는 그들의 주인이다.]그때 레아논이 하준을 주시하며 말했다.
그는 마치 자신이 모르는 것을 이미 알고 있다는 듯이 하준을 향해 입을 열었다.
[그들이 원하는 것을 네가 들어줘야 할 거다, 네가 그들의 ‘왕’이라면.]그는 그 마지막 말을 남긴 채 날개를 펼쳐 뒤돌아 떠났다.
하준은 잠시 찌푸린 눈살로 그를 바라보다 자리를 떠날 뿐이었다.
* * *
그날 밤.
일레인과 리안이 떠나 조용한 집 침대에 걸터앉은 하준은 일레인과 통화를 나누고 있었다.
-오빠, 괜찮아?
“그래……, 너는?”
-나는 오빠 덕분에 리안 언니랑 대피해서 괜찮은데……, 오빠, 너무 무리하지는 마. 알겠지? 힘들 거 같으면 꼭 도망쳐.
그 말에 하준은 저도 모르게 피식- 웃었다.
“그래.”
-그럼 나중에 또 연락할게, 오빠 조심해.
뚝-
그 말을 남긴 채 전화가 끊기고 조용한 집 안에 정적이 찾아왔다.
시간은 이미 늦은 밤 10시였다.
협회의 요원을 포함한 많은 영웅이 차원 던전에 대비하고 있었지만, 협회장은 그 과정에서만큼은 하준의 도움을 바라지 않았다.
편히 쉴 수 있을 만큼 쉬어두는 게 낫다고 했나?
그 역시 이번 사태에서 가장 크게 고생할 사람이 자신이라는 걸 알기에 말한 배려였다.
하준은 그 배려를 순순히 받았다.
그래서 다른 영웅들이 대비 준비를 하고 있을 때 이렇게 집에서 홀로 쉴 수 있는 거지만.
“쩝- 잘까…….”
하준은 침대에 풀썩- 누웠다.
곧 하준의 시야에 시스템의 카운트 다운이 보였다.
[33 : 24 : 22]시스템에서 알려진 시간은 천천히 흐르고 있었다.
어떻게 보면 이제 남은 시간은 이틀이었다.
이틀 뒤, 숫자가 0 이 되며 차원 던전의 게이트가 열릴 것이다.
물론 그리 여유롭지는 않지만, 하루 정도는 여유를 즐길 시간은 충분했다.
하준은 내일을 생각해 눈을 감았다.
그때였다.
“…….”
이상을 눈치챈 하준이 살며시 눈을 떴다.
눈을 뜬 하준은 주변을 둘러보았다.
어느 순간 푹신한 침대에서 뼈가 가득한 공간으로 변해 있었다.
잠시 누운 채 고개만을 돌려 주변을 살피던 하준은 곧 주위에서 예의의 망령들이 원성을 내뱉는 소리가 들려왔다.
-우어어어어.
원한이 가득한 그들의 아우성에 하준은 인상을 찌푸리며 혀를 찼다.
그들이 무엇을 말하는 것인지 알 수 없지만 그들의 감정만큼은 뚜렷하게 전해져 왔으니 말이다.
원망과 증오심.
원망이 가득한 원성이 정확히 무엇을 말하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들이 자신에게 무언가를 원한다는 것은 확실히 알 수 있었다.
푸사삭!
곧 그들의 손이 지면 위로 솟아올라 하준을 사로잡았다.
마치 자신들의 한을 풀어 달라는 듯이 누워 있는 하준의 온몸을 옭아매 갔다.
하준은 짜증스럽게 표정을 구기며 놈들의 손을 뿌리치고 자리에 일어서려 했다.
그럼에도 손들은 계속해서 솟아올라 하준의 온몸을 뒤덮기 시작했다.
그때였다.
망령들의 손이 하준의 얼굴을 뒤덮어 가린 순간.
눈이 가려져 보이지 않는 무저갱 속에서 망령들이 어떠한 장면을 보여주기 시작했다.
‘여긴…….’
주위의 공간이 뚜렷하게 보였다.
핏빛으로 물들었으며 뇌운이 몰아치는 하늘.
그 하늘 아래에 수많은 시체들이 산처럼 가득 쌓여있었다.
그러한 시체로 가득한 장소의 중심에 한 노장이 서 있었다.
노장의 온몸은 피로 물들어 있었으며 들고 있는 망치를 땅에 짚은 채 그저 굳건히 서 있을 뿐이었다.
또한 그러한 노장을 고요히 바라보는 다섯의 존재를 볼 수 있었다.
몇 명은 익숙한 얼굴이었다.
요정왕 바헬르시아, 수족의 왕 오르곤, 인간의 왕 자하르트.
그렇다면 나머지 두 명의 존재가 엘프의 왕 헤르모르스, 거인의 왕 기간트마키아드가 분명했다. 거인의 왕을 제외한 모든 왕이 만신창이인 모습을 하고 있을 때 거인의 왕이 입을 열었다.
[기분 나쁘구나, 호르톤.]거인의 왕 기간트마키아드가 노장을 내려다보았다.
그 얼굴은 일그러진 듯이 분노한 표정이었다.
[네놈은 죽음의 순간까지 무릎을 꿇지 않았구나.]그 말에 하준의 시선이 굳건히 서 있는 노장을 향했다.
그리고 하준은 거인의 왕이 말하는 뜻을 알 수 있었다.
굳건히 서 있는 노장의 몸에서 조금의 움직임도 보이지 않았다.
그가 이미 죽어 있다는 것을 하준은 눈치챌 수 있었다.
또한 죽음의 순간까지 노장의 뒷모습은 굳건하고 찬란했다.
그가 죽어 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생기가 가득한 모습이었으니 말이다.
[허나, 이제 마지막이다.]그때였다.
거인의 왕이 광기에 찬 미소를 지으며 거대한 아가리를 벌린 것은.
[네놈을 삼키면 나는 진정한 ‘신’이 될 수 있겠지.]그는 천천히 우악스럽게 노장을 향해 손을 뻗기 시작했다.
그렇게 그의 거대한 손이 노장을 향해 닿기 전.
어느 순간 시체의 산 중심에서 광란한 빛이 뻗어 나와 주변을 새하얗게 물들기 시작했다.
곧 하준의 시선이 이러한 빛을 뿜어낸 존재를 향했다.
그곳에는 익숙한 얼굴의 필라텐이 지팡이를 들어 하늘을 향해 뻗은 채 고고하게 왕들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쿵!
그것으로 기억은 끝이었다.
어느 순간 주변의 공간이 다시 새까맣게 물들며 기억이 끝난 것이다.
동시에 하준의 몸을 옭아매던 손들이 하준의 몸을 놓아주며 시야가 확보됐을 때, 나무로 이루어진 지팡이를 든 필라텐을 볼 수 있었다.
그녀는 씁쓸한 눈동자로 하준의 몸을 옭아맸던 뼈로 이루어진 손들을 바라보며 지팡이를 노면에 쿵! 하고 내리찍었다.
그와 동시에 그녀의 몸에서 새하얀 빛이 주변으로 퍼져나갔고 솟아오른 손들이 점차 땅속으로 기어들어 숨어들었다.
그녀는 숨어든 손들을 잠시 서글픈 눈으로 바라보다 입을 열었다.
[당신들의 마음은 이해합니다. 허나, 기다려주시길.]마치 숨어든 망령들을 향해 애도를 표하듯 눈을 감은 그녀는 잠시 뒤, 살며시 눈을 뜨며 하준을 바라봤다.
필라텐은 하준을 향해 천천히 다가가며 말했다.
[이해해주시길 바랍니다. 거인의 왕과의 전투가 가까워지니 그들 또한 주체할 수 없었던 모양입니다.]“……필라텐.”
하준은 잠시 그녀를 바라보았다.
묻고 싶은 것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레아논의 말은 너도 들었지?”
[……예, 들었습니다.]그 말과 함께 살며시 눈을 감은 그녀는 하준을 향해 정중히 몸을 숙이며 말을 이었다.
[그가 무엇을 말하는지 알고 있습니다.]“그게 뭐지?”
[그것은 ‘드워프의 기원’입니다.]그 말과 함께 천천히 고개를 들어 하준을 바라보는 필라텐이었다.
[왕이시여, 파쇄의 마력, 그 모든 것을 부수는 힘은 드워프의 본질에서 파생된 것입니다.]“……파생됐다고?”
[그것은 모든 드워프들이 오래도록 염원한 힘. 과거 저희들의 세계에서 드워프라는 나약한 종족이 생기고 1000년이라는 세월이 지나 한 명의 드워프가 탄생했지요. 드워프의 왕 호르톤. 드워프의 모든 것을 타고나 태어난 위대한 존재입니다.]그러나 곧 그 말을 한 필라텐의 고개가 힘없이 가라앉았다.
[그러나 결국 다른 왕들의 배신과 함께 거인의 왕에게 패배하여 눈을 감았지요.]“…….”
하준은 잠시 담담히 그녀를 바라봤다.
곧 그녀를 멍하니 주시하던 하준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왜 이제 알려주는 거지?”
지금까지 그 힘을 숨겨왔던 이유에 대해 물었다.
그리고 그 물음에 필라텐은 순순히 대답해주었다.
[100년 전, 이 세계로 넘어와 많은 인간을 만나왔습니다. 당신과 같이 호르톤의 뜻을 따라 강인한 힘을 가진 인간에게 이 마하라즈를 넘겨왔지요. 하지만 결국 마하라즈를 이은 그들은 파쇄의 힘을 이어받지도 못한 채 배신한 엘프의 왕에게 혹은 파쇄의 마력을 감당하지 못하여 모두 목숨을 잃었습니다…….]그 말에 하준은 처음 필라텐을 만났을 때를 떠올렸다.
아무래도 자신이 처음은 아닌 모양이었다.
하긴, 그때 당시 하준의 신체 만을 보면 필라텐이 그리 발광한 것도 어느 정도 이해는 갔다.
[희생해간 모든 이에게 이 힘의 존재를 알려줄 수는 없었습니다. 거인의 왕은 무엇보다 이 힘을 원했습니다. 거인의 왕에게 집어 삼켜진 순간, 그 힘은 거인의 왕에게 넘어가기 때문이지요. 파쇄의 힘조차 사용하지 못한 그들에게 알려줄 수는 없었습니다.]수많은 마하라즈의 계승자가 본연의 힘을 계승하지도 못한 채 엘프의 왕에게 죽어 나갔다. 그렇기에 필라텐은 찾고 있었다.
100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음에도 이 힘을 온전히 이어받을 자격이 있는 인간을.
그녀는 살며시 다정한 미소를 지으며 하준을 바라봤다.
홀로 파쇄의 마력을 개화한 인간.
그를 바라보며 필라텐이 말했다.
[허나, 저의 새로운 왕께서는 자격이 있습니다.]“…….”
[당신은 왕의 힘을 계승한 유일한 인간입니다.]그 말과 동시에 다시 지면에서 무수한 손들이 솟아올라 하준을 향해 서서히 뻗어왔다.
그러나 필라텐은 이번에는 그들을 말리지 않았다.
하준 또한 뒤에서 뻗어오는 손들을 향해 일절 시선을 주지 않았다.
그저 눈앞의 필라텐을 담담히 바라볼 뿐이었다.
[이 힘을 계승하기 위해서는 그들에게도 인정을 받아야 합니다.]“나는 이미 심상 세계의 주인이 된 게 아니었나?”
[마하라즈를 계승한 심상 세계의 주인은 당신이나-]곧 필라텐의 시선이 하준을 향해 뻗어오는 무수한 손들을 향했다.
필라텐은 그 손들을 향해 시선을 거두지 않은 채 말을 이었다.
[그들은 아직 왕, 호르톤을 잊지 못한 망자들입니다.]그 말에 하준은 이해할 수 있었다.
이 심상 세계에 존재하는 이 뼈들의 주인은 아직 자신을 왕으로 인정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그저 자신과 협력하는 존재라고 알고 있던 것이다.
자신이 그들을 대신하여 그들의 왕을 죽음에 이르게 한 다른 왕들은 죽여주길 바랄 뿐이었다. 말 그대로 원한을 품은 망자들일 뿐이었다.
그리고……, 그 뜻을 알아챈 하준은 분노하여 얼굴을 일그러트렸다.
어느 순간 하준의 손에 마하라즈가 쥐어져 있었다.
“꺼져라.”
후웅!!
그 말과 함께 거대하게 크기를 키운 마하라즈가 하준을 향해 뻗어오던 손들을 모두 휩쓸었다. 휩쓸린 뼈들 사이에서 망령들의 원한에 찬 원성들이 잦아들고 고요함이 찾아왔다.
하준을 향해 손을 뻗은 망자들이 침묵했고 필라텐은 그 과정을 고요히 침묵한 채 지켜보았다. 그러나 그녀의 눈동자가 크게 떨려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왜 왕께서 분노한 것인지 그녀는 잠시 이해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이어지는 말에 그녀는 그리고 망자들이 왕께 행한 무례를 이해할 수 있었다.
“저놈들이 뭘 원하는지는 알겠어.”
하준은 그들이 원하는 대로 일단 거인의 왕을 죽여줄 생각이었다.
결코 그들을 위해서가 아니었다.
당연히 현 사태를 생각해보면 놈들이 세계를 위협하고 있으니 말이다.
그러나 망자들의 감정 속에서 어떠한 욕망을 깨달아 화가 났다.
다름 아닌 이 심상 세계에 존재하는 망자들이 자신을 이용하려는 감정을 말이다.
하준은 뒤돌아서 그들을 향해 거칠고 고요한 분노가 담긴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