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Academy’s Time Stop Player RAW novel - Chapter (2)
ⓒ 애모르
“시발.”
처음 거울을 봤을 때는 어이가 없어서 실소가 터져 나왔다.
은발의 머릿결에 날카로운 붉은 눈동자와 젊어진 얼굴.
웬 이국적인 면상이 거울에 비쳤기 때문이었다.
동시에 망막에 비치는 상태창이 어디서 많이 본 상태창이었다.
이름 : XXX
레벨 : 1
직업 : XX 칭호 : 없음 명성 : 0
생명력 : 10 마력 : 0 힘 : 5 민첩 : 5
체력 : 10 방어력 : 0 마법 저항 : 999(Max) 정신력 : 999(Max)
스킬(skill) : [시간 정지](SSS) [지고한 불굴](SS) {상시 발동 중}
로키아 아카데미의 영웅담.
내가 1년 동안 즐겨하던 로아영의 상태창이었다.
“에라이!”
누가 상상했겠는가.
소설 속에나 흔히 벌어지는 일이 자신에게 벌어질 줄은.
“어이가 없네··········.”
내 미간이 서서히 좁혀진다.
처음에는 미친 줄 알았지만, 서서히 현실임을 자각하고 말았다.
그렇다. 나는 게임 속으로 들어온 것이다.
그것도 내가 즐겨하던 게임에 엑스트라로.
“하··········.”
하준의 얼굴에 그늘이 지기 시작했다.
일단 누군가의 몸에 빙의된 건 확실했다.
아까부터 동기화라고 적힌 창의 로딩이 99%에 달하고 있었으니.
그리고 마지막 1%를 넘었을 때, 하준의 몸에 변화가 일어났다.
“응?”
머리색이 검게 변하며 눈동자의 붉은빛이 서서히 사라지기 시작했다.
인상은 크게 변하지 않았지만 일단 눈에 띄는 백은발과 눈동자는 사라졌다.
동시에 눈앞에 새로운 창이 떠올랐다.
[리베르 라필턴 필 에르만의 100% 동기화가 완료됐습니다.] [( ) 이름을 설정하십시오.]“리베르?”
리베르 라필턴 필 에르만.
분명 내가 잘 알고 있는 이름이었다.
멸문한 가문의 후계자.
그리고 내가 유일하게 엔딩을 보지 않고 삭제한 캐릭터의 이름이었다.
“근데 이건 또 뭐야?”
[( ) 이름을 설정하십시오.]동기화는 뭐고 이름은 뭐지?
설마 캐릭터 이름을 정하라는 건가?
게임에서도 분명 이런 시스템이 없었는데?
일단 나는 자신의 이름을 설정하기로 했다.
“김하준.”
[한 번 설정한 이름은 되돌릴 수 없습니다.] [설정하시겠습니까? (Yes/No)]“예.”
[이름 : 김하준.] [설정이 완료됐습니다.]이름 : 김하준
레벨 : 1
직업 : 백수 칭호 : 없음 명성 : 0
생명력 : 10 마력 : 0 힘 : 5 민첩 : 5
스킬(skill) : [시간 정지](SSS) [지고한 불굴](SS) {상시 발동 중}
이름을 설정하자 곧바로 변화가 일어났다.
원래 XX라고 적혀있던 이름과 직업 칸이 내 이름과 백수로 바뀐 것이다.
다만, 그것 이외에는 변화를 느끼지 못했다.
“하·······일단 보자. 여긴 어디지?”
하준이 본래 살던 집보다는 조금 더 넓은 평의 집이었다.
물론 동거하는 느낌은 들지 않았다.
화장실에 칫솔은 한 개였으니까.
그때 하준의 시선이 탁자 위의 무언가를 향했다.
편지였다. 그것도 왜인지 익숙한 문장이 새겨진 편지.
“아, 이거 설마········.”
곧바로 하준이 편지를 뜯으려는 순간.
눈앞의 새로운 창이 떠올랐다.
[메인 퀘스트]퀘스트 가능 캐릭터 : 김하준(리베르 라필턴 필 에르만)
설명 : 로키아 아카데미에 입학하십시오.
보상 : 100P
[※ 메인 퀘스트는 선택권이 주어지지 않습니다.] [※ 거절할 시 강제력이 발동합니다.]“아니, 이딴 스탯으로 아카데미를 어떻게 가라- 으아아악!!”
털썩-
강제력이란 게 뭔지 뼈저리게 느낀 하준이었다.
* * *
“257번 수험생 김하준 학생 맞습니까?”
“예.”
입시 시험 당일,
하준은 불만스럽게 꾸겨진 얼굴로 입시생 전용 버스에 올라탔다.
막상 꾸겨진 얼굴과 적나라하게 드러난 불만에 담당 교관은 미간을 찌푸리며 고개를 저을 뿐이었다.
‘쯧쯧, 무슨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시험 시작 전까지 저 상태면 글렀군.’
“기사님 이제 다 모였으니까 출발하셔도 됩니다.”
“아이고, 예. 알겠습니다.”
곧 버스가 움직이고 하준은 턱을 괸 채 꾸겨진 인상으로 창문 밖을 멍하니 바라보기 시작했다. 솔직히 참 개거지 같은 시스템이었다. 강제력으로 주어진 몸을 찢어발기는 듯한 고통은 감히 충격적이라 혼절할 정도였다.
근데 보통 이런 일은 미친놈마냥 게임을 해야 신이나 뭐시기 같은 존재가 해주는 그런 거지 않나? 하준은 딱히 그렇게까지 미친놈처럼 게임을 하지 않았다.
오히려 안 했으면 안 했지. 가끔 시간 보내기용으로만 했을 수준이었다.
‘어휴········, 지금 와서 불만을 토해봐야 뭐하냐·········.’
이미 버스 안인데.
마치 과거 논산 훈련소에 가는 기분이었다.
그때도 지금처럼 기분이 더럽게 꿀꿀했는데.
“저기 수험생 무슨 문제 있습니까?”
하준은 고개를 들어 자신을 부른 사내의 얼굴을 바라봤다.
이 버스의 안전 담당 교관을 맡은 사내였다.
“아니요, 괜찮습니다.”
“흠··········.”
교관은 이내 마땅치 않은 한숨을 내쉬며 하준의 옆자리에 앉았다.
“학생. 내가 미안한데 살짝 오지랖을 부려도 될까?”
“아, 아니요. 상관없습니다.”
“혹시 최근에 뭐 안 좋은 일 있었어?”
안 좋은 일?
있기야 있었다.
진짜 앞뒤 개연성도 없이 자고 일어나니까 게임 속에 들어와 있었고 시스템이 악마새끼라는 거 정도? 더구나 구더기 같은 스탯으로 아카데미에 합격하라고 하니 하준이 안 좋을 래야 안 좋을 수 없었다. 다만, 그걸 어떻게 입 밖으로 꺼내겠냐.
나는 그냥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뭐, 딱히 이유를 물을 거 같지는 않았으니까.
“그래, 뭐 살다보면 안 좋은 일이 생길 수도 있지만, 지금은 감정을 잘 절제해야 해. 특히 너처럼 입시 시험을 보기 전이라면 더더욱.”
“아, 예.”
“그래. 지금에 너 같은 애들을 몇 명 봐왔는데 전부 떨어졌더라고. 그래도 뭐, 나는 솔직히 여기 있는 미래가 유망한 애들이 전부 안 떨어졌으면 좋겠어.”
그 말과 함께 방긋 웃는 교관이었다.
하준도 이내 표정을 풀고 고개를 숙이며 죄송하다고 사과했다.
솔직히 아까는 좀 그에게 너무 감정적으로 대한 거 같았으니까.
“뭐. 기분은 좀 괜찮고?”
“예. 괜찮습니다.”
“그래. 그렇다고 긴장은 하지 말고. 컨디션 불량으로 불합격하는 것보다 최선을 다하고 불합격하는 게 더 나아. 합격하면 더더욱 좋고.”
하준은 교관의 말에 수긍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살짝 꼰대 끼가 없지 않아 있는 교관이지만 전부 틀린 말은 아니었다.
지금 당장은 일어난 현상에 불만을 가지기 보다는 합격할 방법을 모색할 때였다.
만약 메인 퀘스트에 실패한다면 시스템이 무슨 짓거리를 벌일지 모르니 말이다.
“예. 좋은 말씀 감사-”
그때였다.
빠아아아앙―――――!!
기다란 터널을 지나가던 중 버스의 시끄러운 경적에 하준의 시선이 앞으로 향했다. 그리고 웬 검은색 후드를 뒤집어쓴 거한의 사내가 버스의 앞을 막아서고 있었다.
“이런 뭐야!!”
버스 기사가 고함을 치는 동시에.
끼이이익――――! 팡!
“으아악!!”
“어? 뭐야!? 뭔 일이야.”
곧바로 급브레이크를 밟은 기사지만 사내는 오히려 두 손으로 돌진해오는 버스를 여유롭게 막아서 들어 올리기 시작했다. 동시에 쿵! 하는 굉음과 함께 버스가 한 번 들썩이며 지면에 내리 앉았고 곧 사내는 여유로운 발걸음으로 버스의 옆으로 걸어와 버스의 철문을 종잇장처럼 잡아 뜯기 시작했다.
“헉!”
“이런 미친! 빌런이다! 다들 도망쳐!”
동시에 사태를 파악한 교관이 주먹을 휘둘러 빌런을 제압하려 했으나.
여유롭게 교관의 주먹을 잡아챈 빌런은 비릿한 웃음을 지으며 그대로 교관의 주먹을 뭉그러트리기 시작했다.
“끄아아아아악!!”
고통스러운 비명과 함께 털썩 주저앉은 교관이었다.
“끄으윽!!”
그러나 교관은 포기하지 않았다.
그대로 고개를 들어 다리에 힘을 주고 일어서려는 순간.
교관의 표정이 서서히 굳어지기 시작했다.
후드에 가려진 사내의 얼굴을 보았기 때문이다.
“완력가··········.”
A급 빌런 완력가.
교관이 사내의 정체를 알아챈 순간.
적의를 보내던 눈은 서서히 죽어갔고 힘을 주던 다리가 풀려 그대로 뒤로 털썩- 주저앉아버렸다. 공포에 다리가 부들부들 떨렸고 그런 교관을 내려다보던 완력가는 그저 히죽 비릿한 웃음을 지을 뿐이었다.
그리고 교관의 말을 들은 입시생들은.
“와, 완력가다!!”
“꺄아아아악!!”
“아, 안돼! 죽기 싫어!!”
아비규환으로 변하는 버스 안이었다.
사람의 몸을 종잇장처럼 찢어버리는 머리통을 과일처럼 터트려버리는 완력가의 악명은 유명하기로 소문났으니 말이다.
“조용히 해라. 움직이는 놈들은 전부 죽이겠다.”
곧 완력가의 입에서 무겁게 가라앉은 서늘한 소리가 흘러나왔다.
입시생들의 몸이 공포로 굳어가기 시작했다.
그 누구도 입을 열거나 움직이는 입시생은 없었다.
완력가의 말이 이어졌다.
“이주아라는 놈이 여기 있나?”
그 한마디에 하준의 미간이 짜증나게 좁혀지기 시작했다.
‘에라이! 운도 더럽게 없네.’
이주아.
플레이어블 캐릭터는 아니지만, 게임 프롤로그에서 스치듯 지나가는 조연의 이름이었다. 현 아카데미 생도회장의 동생이자 이씨 가문의 막내딸.
본래의 정사대로라면 이주아는 이곳에서 죽는다.
그리고 여기 버스 안의 입시생들 또한 모조리 학살당한다.
하준은 고개를 돌려 맨 뒷자리에서 오들오들 떨고 있는 한 여학생을 발견할 수 있었다. 허리까지 내려오는 긴 장발에 조각 같은 미인상.
아마 저놈이 이주아겠지.
“쯧-”
하준이 짜증스럽게 혀를 차는 순간.
완력가의 시선이 하준을 향하기 시작했다.
“너는 뭐냐?”
완력가가 물었다.
이 상황이 두렵지 않은 것인지 묻는 모양새였다.
다만, 하준 또한 의문이었다.
반쯤 반파된 버스와 난데없이 튀어나온 A급 빌런과 쓰러진 교관.
그런 아수라장에서도 하준의 감정은 어느 때보다 차분했다.
동요가 일어나지 않았다.
오히려 녀석이 등장한 순간부터 차분한 표정으로 해결 방법을 모색하고 있었으니까.
‘이건··········아마 이거 때문이겠지?’
[지고한 불굴]내면의 정신력이 강골 해집니다. 어떠한 동요도 사라지며 침착함을 유지합니다. 끝없는 집중력과 끈기가 인간의 격을 넘어섭니다.
정신 계열 마법에 면역됩니다.
어쩐지 처음 이 세계에 왔을 때 당황보다는 짜증이 솟구쳤다.
퀘스트를 받았을 때도 동요보다는 귀찮음이 더 컸으니.
이 스킬 하나가 내 인격에 무슨 문제를 일으킨 것이 분명했다.
“흠··········, 일단 너는 나중에.”
곧이어 완력가의 시선이 맨 뒷자리에 오들오들 떨고 있는 이주아를 향했다.
녀석이 발걸음을 옮겨 이주아를 향하려는 순간.
하준이 일어섰다.
아니, 일어설 수밖에 없었다.
망막에 떠오른 새로운 퀘스트 창 때문에.
[메인 퀘스트]퀘스트 가능 캐릭터 : 김하준(리베르 라필턴 필 에르만)
설명 : A급 빌런 완력가를 처치하십시오.
보상 : 250P
‘시발! 사탄도 고개를 저을 새끼.’
그렇게 하준이 불만스럽게 시스템을 뇌까리는 순간.
완력가의 눈이 희번뜩 떠졌다.
그는 상황 자체가 이해가 안 된다는 듯이 하준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뭐 하는 거지? 설마 막으려는 건가? 나를? 네놈이?”
하준은 대답 없이 완력가를 노려보기 시작했다.
그러나 완력가의 입에서 호쾌한 비웃음이 터져 나왔다.
“크하하하하하! 이거 미친놈이 따로 없구만. 크하하하하하!”
녀석의 비웃음도 어느 정도 이해가 간다.
나 또한 내가 미친 짓을 하고 있다는 걸 잘 알고 있으니까.
하지만 그렇다고 아예 가능성이 없다는 말은 아니었다.
‘처음 써보지만·········.’
현재 해결할 방법은 이것밖에 없으니까.
“크하하하하하!!”
하준은 호쾌하게 비웃는 녀석의 면상에다.
“정지.”
시간 정지 스킬을 발동했다.
그리고 정지가 풀린 순간.
“크하하하- 크헤엑! 쿨럭 커어헉!!”
녀석은 피를 토하며 앞으로 고꾸라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