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Academy's Underworld Player RAW novel - Chapter 1
1화
“또 자체 야근이야?”
모두가 떠난 텅 빈 사무실.
놓고 간 게 있는지 다시 사무실로 돌아온 심 과장이 날 보곤 헛웃음을 흘렸다.
“아. 네, 뭐…….”
막 편의점에서 사 온 샌드위치로 저녁을 때우던 나는 멋쩍은 얼굴로 뒷머리를 긁적였다.
“너도 참 별종이다. 남들은 1분이라도 빨리 퇴근하려고 난리인데…….”
“제가 좋아서 하는 건데요, 뭐.”
나는 어색한 얼굴로 모니터에 시선을 고정한 채 애꿎은 마우스만 딸칵거렸다.
‘아, 중요한 순간인데…….’
몰라보게 성장한 주인공이 악명 높은 블랙 드래곤의 숨통을 끊는 순간이었다.
기획하던 게임이 드디어 엔딩에 거의 다다른 순간.
몰입이 깨져 버린 나는 얼른 꾸역꾸역 샌드위치를 씹어 삼켰다.
이럴 때 빨리 먹어 버려야지.
책상 서랍에서 서류철을 챙긴 심 과장이 내 옆을 스쳐 지나갔다.
“그럼 수고.”
“네, 들어가세요.”
나는 황급히 자리에서 일어나 인사를 했다.
잠시 날 힐끔 바라본 심 과장이 툭 내뱉었다.
“적당히 힘 좀 빼고 살아, 임마.”
“네?”
“너무 열심히 하지 말라고.”
나는 영문 모를 표정으로 두 눈을 끔뻑였다.
상사가 부하 직원에게 열심히 하지 말라니…….
심 과장은 내 책상 위의 모니터와 먹다 남은 샌드위치를 힐끔 바라보았다.
“들뜬 건 알겠는데… 일에 너무 애정을 쏟으면 상처받을 일이 생기기 마련이야.”
“…….”
나는 고개를 갸웃하며 심 과장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왠지 그의 희미한 얼굴 주름이 유난히 눈에 띄었다.
툭툭.
심 과장이 굳어 있던 내 어깨를 가볍게 두드려 주었다.
뒤늦게 정신을 차린 내가 서둘러 다시 인사를 했다.
“들어가세요.”
심 과장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서류를 든 손을 가볍게 흔들어 보였다.
“…….”
나는 한동안 심 과장이 떠난 사무실의 출입구를 빤히 바라보았다.
이내 어깨를 으쓱하고는 다시 자리에 앉아 일을 시작했다.
한데, 영 아까만큼 집중이 되질 않았다.
-들뜬 건 알겠는데… 일에 너무 애정을 쏟으면 상처받을 일이 생기기 마련이야.
어쩐지 그가 남기고 간 말이 자꾸만 머릿속에 맴돌았다.
“에이, 몰라!”
왠지 답답해진 기분에 머리를 마구 헤집었다.
그러곤 다시금 두 눈을 부리부리하게 뜬 채 모니터에 집중했다.
누가 뭐래도 난 이게 좋다.
한 땀, 한 땀 나의 세계와 이야기를 만드는 일.
그리고 그것을 사람들에게 선보일 순간을 상상하는 것…….
‘그냥 좋으면 열심히 하는 거지 뭐 그리 복잡해?’
난 그런 생각을 하며 분주히 키보드를 두드렸다.
어느덧 모니터의 화면 안에선 주인공이 부활한 블랙 드래곤을 향해 재차 검을 움켜쥐고 있었다.
* * *
“네?”
“두 번 말해야 해? 스토리 싹 다 밀어 버리고 단순화시키라고.”
“대체 왜…….”
멍한 얼굴로 서 있던 내 모습에 윤 부장이 버럭 소리쳤다.
“왜긴 왜야, 이 새끼야!? 요즘 세상에 누가 게임 할 때 스토리를 봐? 어차피 이딴 거 다 스킵하는 거 몰라?”
“그, 그래도…….”
“어? 또 토 다네? 어디 해 보자 이거야?”
“…….”
그의 호통에 나는 망연히 서 있어야만 했다.
어느덧 윤 부장이 그런 내게 다가와 조용히 어깨동무를 했다.
“강 대리… 혹시 자네, 이런 말 들어 봤어?”
“무슨…….”
“게임의 스토리는 포르노의 그것과 같다. 있으면 좋지만 없어도 그만이다.”
“…….”
“잘 들어. 내가 자네한테 기획 총괄 맡긴 건 자네가 잘나서가 아니야. 어차피 이건 누구든 할 수 있는 일이라고.”
“그냥 적당히 게이머에 뒈질 몬스터랑 빌런 좀 만들어 주고, 또 적당히 가슴 큰 미녀 히로인 좀 만들어 주고… 뭐 이 정도만 해도 끝이야. 어차피 게임의 완성은 경쟁과 현질이니까.”
“알아들어? 어차피 다 게임으로 포장한 도박장이라고! 알 만한 사람이 아마추어같이 왜 그래?”
그의 말에도 나는 여전히 이 상황을 받아들이지 못한 채 우두커니 서 있었다.
윤 부장은 그런 날 보곤 가볍게 코웃음을 흘렸다.
“알겠어? 당장 싹 밀어 버리고 단순화시켜! 과금하기 좋게.”
그 말을 끝으로 윤 부장은 내 두꺼운 기획안을 쓰레기통으로 던져 넣었다.
“캬, 다시 생각해도 명언이다! 확실히 이쪽 업계에선 존 카멕이 현자라니까.”
그 말을 끝으로 윤 부장이 자리를 떴다.
나는 쓰레기통 속의 기획안에 멍하니 시선을 둔 채 한동안 자리를 뜨지 못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문득 시선이 느껴져 조용히 고개를 들었다.
어느덧 저편의 책상에서 심 과장이 날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일에 너무 애정을 쏟으면 상처받을 일이 생기기 마련이야.
뒤늦게 심 과장의 조언이 떠올랐다.
순간, 나도 모르게 픽 코웃음이 나왔다.
‘이런 말이었구나…….’
그제야 그가 했던 말이 조금 이해가 갔다.
* * *
북북, 찌이이익!
나는 집에 들어오자마자 기획서를 북북 찢어 버렸다.
그러곤 한동안 조각난 종잇조각에 망연히 시선을 두었다.
그동안 이 게임에 대한 내 애정과 열정이 총망라되어 있는 스토리북과 기획서.
그것이 한낱 휴지 조각이 되어 버리고 만 것.
‘근데… 난 이걸 왜 굳이 쓰레기통에서 주워 왔지?’
원래 그냥 가려고 했지만…….
왠지 쓰레기통에 처박혀 있던 기획서가 자꾸만 눈에 밟히고 불편했다.
‘미련이 남은 거겠지…….’
그런 생각이 들자 더욱 짜증이 났다.
깔끔하게 체념하지 못하는, 바보 같은 내 모습이.
뭐, 그럴 수밖에.
그동안 얼마나 이 기획서에 애정을 쏟아부었던가?
거의 영혼을 갈아 넣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찌익, 찍!
분풀이라도 하듯 남은 종이도 갈기갈기 찢어 버렸다.
그러곤 머그컵을 반쯤 채운 소주를 단숨에 들이켰다.
벌컥, 벌컥.
단숨에 가슴이 뜨겁고 홧홧해졌다.
나는 손등으로 입가를 슥 닦고는 낡은 모니터를 노려보았다.
평소라면 집에 들어오자마자 기분 좋게 맥주를 들이켜며 드라마나 웹소설 같은 걸 봤겠지만…….
지금은 그것마저 다 싫었다.
다시금 머그컵에 소주를 따라 원샷을 했다.
그러곤 한동안 모니터를 노려보았다.
얼마나 그렇게 모니터와 눈싸움을 했을까?
나는 얼른 마우스를 잡곤 기획서 파일을 불러왔다.
이내 1,800장에 달하는 상세 기획서가 좌르륵 펼쳐졌다.
방대한 스토리와 다양한 캐릭터.
각종 아이템과 수많은 던전.
메인 퀘스트를 포함한 각종 서브 퀘스트와 히든 피스.
게이머의 편의성을 위한 인터페이스 요소와 재미로 몰래 숨겨 놓은 이스터 에그까지…….
“…….”
잠시 그것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나는 어느새 미친 듯이 키보드를 두드리기 시작했다.
타다다다다!
작은 원룸의 어둠 속에서, 광기에 젖은 듯 내 눈빛이 번들거렸다.
‘뭐? 게임의 스토리가 포르노와 같다고?’
나는 이를 으득 물고는 생각했다.
좋아, 뭐 그럼… 포르노에서 좀비가 떼로 출현해도 상관없겠지?
뭣 하면 좀비랑 H씬을 찍을 수도 있을 테고 말이야.
어차피 현질에 가챠 시스템만 갖추면 그만이잖아. 안 그래?
뒤틀린 마음과 유치한 반감.
거기에 술기운까지 더해지자 그야말로 키보드를 두드리던 내 손은 폭주 기관차나 다름이 없었다.
‘원하는 대로 쓸모없는 스토리 따위… 아무렇게나 휘갈겨 주마.’
기획서 속의 스토리는 점점 더 막장으로 치닫기 시작했다.
결국 ‘아르웨이 전기’는 어이없는 결말을 맞이하고 말았다.
뜬금없이 좀비가 출몰해 인간은 물론 모든 종족이 싹 다 멸절하여 세계가 멸망해 버리는 것으로…….
딱히 이유는 없었다.
때마침 어제 좀비 영화를 봤던 것뿐.
만약 지구에 운석이 떨어지는 아포칼립스 영화를 봤다면 운석 엔딩이 나왔겠지.
그렇게 내가 만든 세계는 순식간에 엉망으로 망가져 버렸다.
홧김에 마구 두드린 몇 번의 키보드질만으로…….
나는 잠시 낡은 모니터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어느덧 입가에 허탈한 웃음이 번졌다.
왠지 모르게 가슴 한편이 헛헛한 기분…….
그 몹쓸 기분이 파문처럼 번져 나갔다.
사실 지금 이것조차 싹 다 밀어 버리고 다시 만들어야 할 잉여물에 불과했지만.
‘그래도, 그렇다고는 해도…….’
이렇게 내 손으로 직접 끝을 내고 싶었다.
끝을 내더라도 내 손으로 직접 말이었다.
왠지 그래야 마음속에서 완전히 떠나보낼 수 있을 것 같았기에…….
벌컥.
나는 남은 소주를 병째 들이켜 버렸다.
그러곤 한층 몽롱한 정신으로 눈앞의 모니터를 노려보았다.
어느덧 화면에 그득한 글자가 물기에 흐려져 어지럽게 뒤섞였다.
쿵!
취기에 잠시 고개를 까닥이던 나는 그대로 책상 위로 얼굴을 묻었다.
연신 깡소주를 들이켠 결과였다.
* * *
“어이, 거기 너!”
몽롱한 의식 속에서 낯선 목소리가 울렸다.
“근데 쟤 누구냐? 당최 이름을 모르겠네…….”
“어, 그게… 뭐더라?”
“뭐야? 니들도 몰라? 허, 참… 어떻게 입학한 지 한 달짼데 저놈 이름을 아는 생도가 하나도 없어?”
툭툭.
누군가 내 어깨를 두드리는 손길에 그제야 부스스한 몰골로 상체를 일으켰다.
그리고… 눈앞에 펼쳐진 생소한 광경에 나도 모르게 연신 두 눈을 끔뻑였다.
“……?”
석조 건축물의 교실.
여기저기 책상 앞에 앉은 학생들이 저마다 고개를 돌려 나를 힐끔거리고 있었다.
한데 하나같이 옷차림이 이상했다.
어딘가 이질감이 느껴지는 모습.
흡사 중세 시대의 그것과도 비슷하달까?
“여기가… 어디?”
황당함이 어린 내 목소리에 눈앞의 연로한 사내가 내 뒤통수를 쳤다.
“악!”
그 생생한 감촉에 나도 모르게 뒷머리를 감싸 쥐었다.
이내 여기저기서 킥킥거리는 소리가 울렸다.
“이놈이 아주 그냥 정신줄을 놓고 졸고 있구나! 감히 이 중요한 메트니 제국 역사학 수업 시간에 말이야!”
“네?”
나는 입을 반쯤 벌린 채 눈앞의 교수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메트니… 제국이라고?’
순간 내 귀를 의심했다.
메트니는 내가 만든 세계관의 주요 무대 중 하나였으니까.
이내 그가 노기를 띤 표정으로 내 귀를 잡아당겼다.
“앗, 아아! 왜 이러세요? 아파, 아파요!!”
내 처량한 외침에도 교수는 거침없이 날 교단 앞으로 끌고 갔다.
“그래, 너 잘 걸렸다! 자신이 있으니까 그리 대놓고 졸았겠지?”
어느덧 칠판 앞까지 끌려간 나는 얼얼한 귀를 어루만지며 다시금 주변을 살펴보았다.
앞으로 나오자 주변의 광경이 한층 확연히 눈에 들어왔다.
한데 날 바라보던 몇몇 학생에게서 왠지 모를 익숙함이 느껴졌다.
나는 떨리는 눈길로 그들의 면면을 훑어보았다.
제일 먼저 시야에 들어온 녀석은…….
마치 일진마냥 제일 뒷자리에 삐딱하게 앉아 있는 체격 좋은 놈.
모를 수가 없었다.
특이한 오드 아이와 팔뚝의 위협적인 문신은 내가 직접 만들어 준 설정이었으니까…….
카엘 데로트.
몰락한 귀족 가문의 마지막 혈통.
그뿐만이 아니었다.
반대로 제일 앞자리에 반듯한 자세로 앉아 있는 놈.
화려한 금발과 베일 듯 서늘한 붉은 눈동자.
아르웨이 대륙에서도 흔치 않은 적안(赤眼)이라는 설정.
100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한 천재 캐릭터.
루안 엘시르.
아르웨이 전기.
이 게임의 주요 캐릭터들이었다.
‘마, 말도 안 돼…….’
나는 한동안 굳은 채 자리에 멍하니 서 있어야만 했다.
마치 잃어버린 자식들을 눈앞에서 마주한 부모처럼…….
‘설마…….’
내가 또 다른 주연 캐릭터를 찾기 위해 서둘러 고개를 돌리려던 순간.
뒤편에서 교수가 한껏 고함을 내질렀다.
“뭐 하냐, 이 녀석아! 내 말이 말 같지 않은 게냐!?”
“네에……?”
뒤늦게 정신을 차린 내가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보았다.
이내 그가 두 눈을 부라리며 칠판을 탕탕 쳤다.
“……?”
어느덧 다시 칠판으로 옮겨 간 내 시야에 낯선 문자가 보였다.
‘아니, 대체 이게 무슨 외계어야?’
당황한 내 모습에 교수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코웃음을 흘렸다.
“역시 전혀 모르겠다는 표정이구나. 그렇지?”
그때였다.
“어?”
[‘전지자(全知者)의 눈’이 활성화됩니다.] [다음은 제국력 463년부터 467년까지 발발한 장미 전쟁에 대한 서술이다. 이 전쟁의 배경과 그 의의에 대해 서술하시오.]순간 낯선 메시지와 함께 칠판에 새겨진 문자가 고스란히 해석되었다.
그리고… 이에 대한 답안이 그 밑에 홀로그램처럼 떠올랐다.
이내 멍청한 얼굴로 서 있던 날 향해 교수가 싸늘한 어조로 읊조렸다.
“더 볼 것도 없군. 자네 이름이 뭐라고…….”
그때였다.
멍한 눈길로 칠판을 바라보던 나는 조용히 입을 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