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Academy's Underworld Player RAW novel - Chapter 101
101화
“정말 수고했어요, 다들…….”
뒤늦게 정신을 차린 아실리 총장이 얼른 입을 열었다.
생각 이상으로 큰 성과에 기뻐하면서도 한편으론 꽤 복잡해 보이는 얼굴이었다.
“정말이지 믿기지가 않는군요. 물론 기이한 몬스터가 출몰하기 시작했다는 얘기는 들었지만 설마 그 정도로 심각한 상황일 줄은…….”
“네, 뭔가 심상치 않은 일이 벌어지는 건 확실한 것 같습니다. 자세한 얘긴 정식 보고 때 좀 더 면밀히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총장이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안 그래도 복잡해 보였던 그녀의 얼굴에 한층 근심이 어렸다.
허나, 금세 이를 털어 내고는 가볍게 미소를 보였다.
“그럼 들어가서 좀 쉬도록 해요. 제 권한으로 이번 임무 수행을 나간 조원들은 오늘 하루, 수업에서 열외시키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
총장의 배려에 감사를 표하며 고개를 숙이려던 순간.
대뜸 슈란이 보무도 당당하게 앞으로 나섰다.
“아니요! 전 수업에 참여하도록 하겠습니다.”
“……?”
이내 사람들의 시선이 하나둘 그쪽으로 향했다.
“생도의 본분은 수업입니다! 고된 임무에서 막 복귀했다고는 하나, 단 하루도 허투루 보내지 말아야 할 황립 아카데미의 생도가 아닙니까? 전 기꺼이 제 의무를 다하고 싶습니다!”
“…….”
나는 잠시 벙찐 얼굴로 슈란을 빤히 바라보았다.
“야… 너 왜 오버해?”
허나, 그녀는 눈 하나 꿈뻑 않고 사뭇 비장한 얼굴로 총장을 똑바로 응시할 뿐이었다.
“재밌네요. 슈란 생도에게 이런 말을 들을 줄이야…….”
아실리 총장이 살풋 미소를 흘리고는 나를 힐끗 보았다.
“왠지 강준식 생도가 생각나는 말투인데요?”
“…….”
나는 잠시 할 말을 잃은 채 자리에 우두커니 서 있어야만 했다.
‘뭐지? 쟤가 진짜 미쳤나……?’
어쩌면 총장 말대로 기를 쓰고 날 따라 하고 싶어 하는지도 몰랐다.
어쨌든 이번 원정의 결과로 누가 제일 앞서 있는지는 다들 확실히 체감했을 테니까…….
전에 루안도 비슷한 경우가 있지 않았는가?
“저도 하겠습니다.”
이내 카엘도 질세라 조용히 앞으로 나섰다.
“…….”
다들 아카데미에 복귀하자마자 다시금 수련에 불이 붙은 모양새였다.
물론 그 의욕에 불을 붙인 건 나였다.
‘역시 저것들, 내 눈치 보는 거 맞다니까.’
내가 예전에 저렇게 역한 말투로 총장이나 교수들한테 알랑방귀를 뀔 땐 다들 비웃더니…….
역시 결과가 모든 걸 말해 주는 법인가 보다.
다들 이번 임무에서 격차를 느끼고 나니 너도나도 어설프게 날 따라 하는 걸 보면 말이었다.
한편 세니르는 아무래도 상관없다는 듯 무심한 눈길로 이쪽을 응시하고 있었다.
이내 여기저기서 생도들이 다시금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와, 그 빡센 임무를 성공한 것도 모자라 복귀 당일에 수업 열외를 마다해?”
“하아, 이게 학내 최상위권 수준인가……?”
“왠지 부끄럽네. 난 저들보다 한참 수준 떨어지는데도 맨날 뺄 생각만 하는데…….”
그렇게 생도들이 저마다 감탄과 자기반성을 거듭하던 와중.
아실리 총장이 한 차례 우리 조원들을 훑고는 다시금 날 바라보았다.
어느새 입가엔 더없이 흐뭇한 미소를 띤 채로.
“역시… 이건 미리 합의된 사항이겠죠? 뭐, 알겠습니다. 강준식 생도라면 그럴 줄 알았…….”
“아닙니다.”
“네?”
“전 모르는 일이에요.”
내가 단칼에 부정하자 아실리 총장이 벙찐 얼굴로 두 눈을 끔뻑였다.
나는 주저 없이 발을 뺐다.
“쟤들이 독단적으로 결정한 거예요. 전 빠지겠습니다.”
“……!?”
슈란과 카엘도 미처 예상치 못했는지 놀란 눈으로 날 빤히 바라보았다.
‘아마 다들 내가 말하기 전에 먼저 선수 쳤다고 생각했겠지…….’
이제 저 녀석들도 내 패턴은 훤히 꿰고 있을 테니까.
허나, 지금은 상황이 좀 다르다.
예전과는 달리 이제 나도 목표로 했던 최소한의 성장은 이뤘으니까…….
게다가 얻을 거 다 얻고 막 복귀한 상황에서 굳이 그렇게까지 오버하고 싶지는 않다.
안 그래도 빡세게 구르다 이제 막 복귀한 참인데, 수업은 개뿔…….
어제 과음까지 해서 피곤해 죽겠는데 말이야.
“야… 너 진짜 안 할 거야?”
슈란이 당황한 어조로 물었다.
나는 주저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어, 피곤해. 난 쉴래.”
“…….”
순간 말문이 막혔는지 슈란은 잠시 멍한 눈길로 날 빤히 바라보았다.
내가 나설 줄 알고 얼른 선수를 쳤지만 내가 발을 빼 버리자 뭔가 붕 떠버린 상황이 된 것.
게다가 총장은 물론 모두의 앞에서 이토록 패기롭게 나선 상황이 아닌가?
나와는 달리 저들은 이제 발을 뺄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그때였다.
“저도 안 할래요.”
이제껏 조용히 있던 세니르도 툭 내뱉었다.
그녀는 내내 어찌 되든 상관없다는 태도였지만… 내가 안 한다고 하니 그녀도 마음이 변한 모양.
뭐, 어차피 저 녀석은 고대 유물과 이와 관련이 있는 나 정도밖에는 관심이 없으니 그럴 법도 했다.
잠시 상황을 살피던 아실리 총장이 입을 열었다.
“뭐, 좋아요. 그럼 강준식 생도와 세니르 생도는 좀 피곤한 것 같으니 두 사람만 열외시키는 것으로 하죠.
“…….”
잠시 넋이 나간 듯 자리에 멍하니 서 있던 카엘과 슈란.
‘사실 저도 피곤해요!’라고 말하고 싶은 기색이 역력했다.
총장이 빙긋 웃으며 그런 두 사람의 어깨를 짚었다.
“두 사람 다 의욕이 넘쳐 보기 좋네요. 역시 황립 아카데미의 미래가 밝아요.”
“…….”
허나, 슈란과 카엘의 표정은 밝지 못했다.
나는 그런 두 사람을 보며 피식 미소를 흘렸다.
“멋있네. 열심히 해~”
“…….”
나는 망연자실한 두 사람을 뒤로한 채 여유로이 기숙사로 향했다.
* * *
-???…….
막 잠에서 깬 나는 그림자를 빠는 삼룡이를 한동안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맛있냐?”
-쯔읍, ??…….
많이 배고팠는지 삼룡이는 별 대답 없이 그림자를 세차게 빠는 데 여념이 없었다.
잠시 그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던 나는 픽 코웃음을 흘리곤 다시금 베개 위로 고개를 떨궜다.
기숙사로 돌아오자마자 2시간은 정신없이 잔 것 같다.
내 아무리 그믐달 이슬의 효과로 활력이 넘치는 몸이 됐다지만…….
적잖이 여독이 쌓인 상황에서 밤새 음주까지 했으니 피로할 만도 했다.
뭐, 그래도 슈란과 카엘만 할까?
지금쯤 신나게 구르다 녹초가 되어 기숙사로 돌아오고 있을 녀석들을 생각하니 입가에 절로 미소가 고였다.
나는 다시금 퀘스트 로그를 불러와 찬찬히 내용을 확인했다.
아깐 경황이 없어 미처 자세히 볼 여유가 없었기에.
[메인 퀘스트. ‘아카데미 첫 임무 수행’을 클리어했습니다!] [퀘스트 보상- 32,000EXP 경험치 획득] [아카데미 내 명성도가 상승합니다!] [고배점의 평가 점수 획득이 예정되어 있습니다.] [‘아실리 총장’의 절대적인 신뢰를 얻었습니다.] [축하합니다! 주요 캐릭터에 유의미한 영향을 끼쳤습니다. ‘행사한 영향력- 1,600’] [게임의 스토리가 중폭 변화할 수 있습니다.] [보상으로 1,600GP를 획득합니다.]흡족한 눈길로 퀘스트창을 훑던 나는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앞으로 많이 바빠지겠네…….’
이미 테네브리아의 활동이 생각 이상으로 가속화된 상황이란 걸 두 눈으로 확인한 터.
물론 이번에 소환 의식을 저지하며 한 차례 브레이크를 걸긴 했지만…….
이미 한 번 발동이 걸린 놈들이 그것으로 얌전해지리란 기대를 하긴 어려웠다.
어쩌면 자극을 받아 더욱 설치게 될지도 모를 일.
그래서 큰 임무를 하나 마친 나는 오늘까지 푹 쉬며 재충전을 했다.
앞으로 더욱 바쁘게 해야 할 일이 많았기에…….
‘후우, 이제 다시 시작해야지.’
휴식은 하루면 족했다.
어제에 이어 충분히 먹고 마시고 수면까지 취하지 않았는가?
물론 예전엔 휴식이 사치라 여긴 적도 있었지만…….
이제 내 능력치가 어느 정도 궤도에 오른 이상 휴식도 중요했다.
-들뜬 건 알겠는데… 일에 너무 애정을 쏟으면 상처받을 일이 생기기 마련이야.
나는 심 과장의 그 말을 다시금 마음에 되새겼다.
‘같은 실수를 하면 안 되겠지.’
열심히 하되 이럴 때일수록 더욱 차분하게…….
번아웃이 오지 않도록 한 템포 쉬고 갈 수 있는 여유.
확실히 그땐 너무 일에만 빠져 사느라 내 상황을 객관적으로 돌아볼 여유가 없었다.
‘좀 더 미리 상사들과 소통도 하고, 찬찬히 설득을 하는 밑 작업도 필요했는데…….’
그땐 무작정 회사를 원망하며 술만 퍼마셨지만…….
돌이켜 보니 내 시야가 너무 좁아져 있던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저 내 일만 죽어라 열심히 하면 될 거라고 단순하게 생각한 것.
게다가 밤낮으로 일에 진기를 쏟은 탓에 잘 쉬지도 못했고, 그렇게 피로가 쌓여 올바른 판단을 내리지 못했다.
‘확실히 좀 더 멀리 내다보고 냉정히 판단할 여유도 필요해.’
지금 생각하니 그때의 실패가 이곳에서의 나를 한층 강하게 만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 그런 부분이 내가 보유한 강점 중 하나가 아닐까?
‘아직은 미성숙한 이곳의 주인공들과는 다른 나만의 강점…….’
나는 다시금 슈란과 카엘을 떠올리며 픽 미소를 흘렸다.
처음엔 그렇게 무서워 보였던 주인공들도 이젠 그저 귀엽기만 했다.
‘뭐, 이번에 약속도 했으니 제대로 한 번 키워 봐야지.’
어쩌면 이제야 플레이어의 마음으로 돌아가는 것이었다.
드디어 게임처럼 내 주인공들을 본격적으로 키우게 됐으니까…….
-끼이잉… 그륵… 그르륵…….
어느덧 배를 채운 삼룡이가 작게 트림을 했다.
나는 잠시 그 모습을 보며 입가에 옅은 미소를 머금었다.
‘참, 그러고 보니… 루안은 좀 나아졌으려나?’
뒤늦게 떠오른 루안의 안부에 잠시 생각에 잠겼다.
문득 핏발 선 눈으로 날 노려보던 녀석의 눈빛이 떠올랐다.
-내가… 널 죽일 테다. 언젠가는 꼭. 반드시…….
“…….”
왠지 녀석을 생각하자 다시금 마음 한편이 심란해졌다.
과연 녀석이 앞으로 다시 재기할 수 있을까?
마나도 못 쓰는 최악의 몸이 되어 버렸는데 말이다.
‘아니, 애초에 이 아카데미에 남아 있을 수는 있나……?’
거기까지 생각이 닿자 한층 생각이 복잡해졌다.
어찌 보면 녀석이 이 아카데미에 입학한 것도 아실리 총장 때문이 아닌가?
어쩌면 내가 그걸 다시 앗아 가게 된 것인지도 모른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하, 이것 참.”
이래저래 난감한 상황이었다.
어쩌다 보니 내가 만든 주인공 중 제일 아픈 손가락이 되어 버린 녀석…….
잠시 그렇게 상념에 젖어 있던 와중.
대뜸 벌컥 문이 열리며 우람한 체격의 사내가 들이쳤다.
한창 땀을 빼고 왔는지 아무렇게나 훌렁 탈의해 버린 상체에는 땀이 송골송골 맺혀 있었다.
“오우! 강준식, 네 이 녀석!! 왔으면 왔다고 형님한테 먼저 보고부터… 끄아악!!”
늘 그랬듯 헤드락을 걸기 위해 씨익 웃으며 다가오던 녀석이 삼룡이를 보곤 기함했다.
“제기랄!! 그 자식 좀 치우면 안 되겠냐!? 기절할 것 같다고……!!”
금세 얼굴이 창백해진 윌터가 애원하듯 말했다.
어느덧 구석으로 내뺀 녀석이 흔들리는 눈으로 연신 삼룡이의 눈치를 살폈다.
-끼잉? 끼이잉…….
그런 놈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삼룡이가 윌터를 향해 종종걸음쳤다.
“끄아악!! 가! 가라고……!! 저리 가, 이 새끼야!!”
그 우람한 몸으로 비비적거리며 최대한 구석에 틀어박힌 모습은 우스꽝스럽기까지 했다.
삼룡이는 오히려 그런 윌터의 격한 반응이 재미있는지 꼬리까지 살랑이며 놈의 발치에서 연신 얼굴을 부볐다.
허나, 발등에 녀석의 몸까지 닿자 윌터는 기절 직전이었다.
“흐어억! 허억!! 빨리 얘 좀 떼 줘… 강준식 이 새끼야!! 제발…….”
나는 옅은 한숨을 내쉬고는 삼룡이를 안아 들었다.
“우쭈쭈… 삼룡아. 저 형이 좀 야속하네. 너랑 놀기 싫은가 봐.”
-끼이이잉…….
조금 전까지만 해도 흥분하여 마구 살랑이던 녀석의 꼬리 세 개가 축 처졌다.
한편 구석에 몸을 바짝 밀착한 채 식은땀을 흘리던 윌터는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심지어 다리가 풀렸는지 자리에서 살짝 비틀거리기까지 했다.
“휴우우… 진짜 졸도할 뻔했네. 어쨌든 복귀 축하한다, 이 자식아…….”
“고맙다.”
뒤늦게 조금 정신을 차린 윌터가 기가 막힌단 표정을 지었다.
“참! 근데 이번에 또 너희 조만 임무 성공했다며? 좀 쉬엄쉬엄해, 이 자식아!!”
“뭐, 난 쉬엄쉬엄 대충 하는데… 어쩌다 보니 결과가 그렇게 되네.”
“…….”
잠시 날 흘겨보던 윌터가 혀를 내둘렀다.
“넌 어떻게 된 게 실패 한 번이 없냐? 진짜 얄밉네. 뭐, 주인공이라도 되냐?”
“됐어. 오버하지 말고 밥이나 먹으러 가자.”
손을 휘휘 내저으며 슬슬 자리를 뜨려고 하던 와중.
마도구를 통한 기숙사 스피커에서 안내 방송이 울렸다.
[1학년, 강준식 생도. 강준식 생도는 지금 즉시 총장실로 와 주시길 바랍니다. 다시 안내 드립니다. 강준식 생도…….]잠시 안내 방송을 묵묵히 경청하던 윌터가 헛웃음을 흘렸다.
“이제 아주 총장이 옆에 끼고 도는구나. 툭하면 불러 대네……. 거, 뒷배 든든한 거 보소.”
“흐음, 귀찮은데.”
“뭐?”
“휴우… 넌 나처럼 너무 눈에 띄지 마라. 겪어 보니 유명한 게 꼭 좋은 것만은 아니더라. 있는 듯 없는 듯 조용히 사는 게 최고야.”
“…….”
내가 머리를 벅벅 긁으며 나갈 채비를 하자 윌터가 날 흘겨보고는 툭 내뱉었다.
“저 새끼, 암만 봐도 갈수록 기만술이 느는 것 같단 말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