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Academy's Underworld Player RAW novel - Chapter 107
107화
“슈란 클라리네스 생도.”
이윽고 에드윈 교수가 낮게 깔린 음성으로 슈란을 불렀다.
슈란은 대답도 없이 그를 힐끔 바라보았다.
“슈란 생도 역시 강준식 생도처럼… 다른 생도에게 스크롤의 시연 기회를 양보하겠다는 겁니까?”
이내 슈란이 스윽 고개를 돌려 나를 일견했다.
어느덧 날 향한 그녀의 눈빛이 얼음장같이 차가웠다.
“…….”
그동안 슈란이 내게 퍽 거칠게 대하긴 했지만…….
그래도 저토록 진지한 모습은 별로 보지 못했다.
이내 고개를 돌린 슈란이 무심한 어조로 대꾸했다.
“아니요, 그냥 귀찮아진 것뿐입니다.”
“…….”
그녀의 대답에 잠시 굳어 있던 생도들이 술렁이기 시작했다.
“뭐야… 방금 들었어?”
“웃겨, 완전 지 맘대로네.”
“하… 아주 인생 혼자 사는구만.”
“냅둬, 쟤 싸가지 없는 게 어디 하루 이틀이냐?”
“쯧쯧, 누구랑 비교된다, 진짜.”
내가 시연권을 양보했을 때와는 확연히 다른 분위기였다.
그도 그럴 것이, 나와는 달리 굉장히 오만불손한 태도를 보이지 않았는가?
다른 생도들로선 빈정이 상할 수밖에 없는 태도.
그래서인지 다들 대놓고 숙덕거렸다.
더는 슈란의 눈치도 보지 않는 모습.
그만큼 아카데미 내에서 그녀의 입지가 예전 같지 않다는 것이었다.
‘뭐야, 갑자기 왜 저러는데…….’
사실 이번에도 어줍잖게 날 따라 하려는 건 줄 알았다.
한데, 보아하니 그것도 아닌 모양.
“진짜 왕재수네. 완전 비호감…….”
어느덧 슈란을 비난하는 목소리가 점점 노골적으로 커져 갔다.
첫 번째 실기시험을 비롯해 그동안 그녀에게 억눌린 게 있어서인지 다들 이때다 싶은 분위기.
허나, 주변의 싸늘한 반응에도 슈란은 눈 하나 꿈뻑하지 않았다.
되려 픽 코웃음을 흘리곤 생도들을 향해 조용히 읊조렸다.
“종알종알 시끄럽네. 불만 있으면 내 앞에서 직접 말하든가.”
“…….”
그 한마디에 다들 굳게 입을 다물어 버렸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그래도 그 드센 성정만큼은 여전해 보였다.
잠시 그런 슈란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에드윈 교수가 툭 내뱉었다.
“알겠습니다. 일단 스크롤의 시연 기회는 다음 순번의 생도에게 넘기도록 하죠. 그리고… 슈란 생도는 수업 끝나고 교수실로 따라오도록.”
에드윈 교수도 적잖이 화가 난 모양이었다.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정식으로 권한을 양도할 것을 건의한 나와는 다르게 그저 귀찮다고 실습을 거부해 버린 것에 불과했으니까.
‘하아… 이거, 또 불안한데…….’
나는 싸늘한 기운을 폴폴 흩날리는 슈란의 뒷모습을 보며 가볍게 미간을 짓눌렀다.
이미 루안을 한 번 보내 버린 전적이 있는 나로서는 우려가 들 수밖에 없는 상황.
‘진짜 다들 왜 이러지? 내가… 주인공들 흑화시키는 기운이라도 있나?’
잠시 그런 생각마저 들 정도였다.
나는 조용히 턱을 쓸며 생각에 잠겼다.
‘이렇다면 계획을 좀 수정해야만 할 것 같은데…….’
원래 그녀의 고고한 자존심을 완전히 부숴 버리려고 했다.
내 특훈은 모든 걸 비워 내야만 어느 정도 배울 준비가 됐다고 할 수 있으니까.
하지만 그렇게 하기엔… 슈란의 연약한 자아를 둘러싼 자존심이 생각보다 더 단단했다.
“생각보다 수업이 지체되었군요. 자 다들 서두르지요! 바로 시연에 들어가겠습니다.”
교수의 힘찬 외침이 들려오는 가운데.
나는 한층 복잡한 눈빛으로 슈란의 뒷모습을 빤히 응시했다.
* * *
이른 새벽, 특수 훈련실.
한쪽에 위치한 체력 단련실에서 홀로 운동을 하는 생도가 있었다.
“후욱, 후우…….”
물구나무를 한 채 연신 두 팔을 굽혔다 펴기를 하는 슈란.
어느덧 그녀의 어깨에서 땀방울이 뚝뚝 떨어졌다.
꽤 오랜 시간 운동을 지속했지만 절묘한 균형 감각과 오랫동안 단련된 잔근육은 여전히 그녀를 꼿꼿이 버틸 수 있게끔 해 주었다.
“후우, 후우… 후우…….”
그녀의 몸이 오르내릴 때마다 곧게 뻗은 날개뼈와 단단한 승모근이 아름다운 굴곡을 그려 냈다.
어렸을 때부터 늘 하루도 빠짐없이 해 오던 것이지만…….
오늘은 평소보다 더 힘들어 보이는 기색이었다.
하지만 슈란은 늘 그랬듯 눈 하나 꿈뻑하지 않고 운동을 지속했다.
어차피 피할 방법은 없다.
매일 거듭되는 끝없는 수련과 필연적으로 이에 수반되는 가혹한 고통…….
그녀는 이 모든 것들을 이미 몸과 마음에 단단히 새겨 넣은 지 오래였다.
툭, 툭…….
어느덧 그녀의 상체에서 흘러내리는 땀방울 소리가 점점 잦아졌다.
허나, 슈란은 이를 악물고는 운동을 지속했다.
“후욱, 후우… 후우…….”
벌써 30분째 그 난이도 높은 과격한 운동을 하면서도 그녀는 호흡이 흐트러지거나 거칠어지지 않았다.
이는 기본적으로 근력이나 균형 감각뿐 아니라 격렬한 전투에서 제일 중요한 평상심(平常心)을 유지하는 훈련이기도 했다.
평상심과 냉정함.
제 아버지가 늘 강조했던 그것.
허나, 이미 십여 분 전부터 체력이 한계치에 달한 슈란이었다.
그리고…….
이쯤 되면 늘 그의 음성이 망령처럼 귓가에 울리는 듯했다.
-흐트러지지 마라. 호흡도, 자세도.
슈란은 이를 악물고는 계속해서 피치를 늦추지 않았다.
-오롯이 완전한 존재가 되어야 한다. 클라리네스라는 이름은 응당 그만한 무게를 지니고 있으니까.
늘 입버릇처럼 말하던 아버지의 음성.
그것이 끊임없이 그녀의 마음을 어지럽혔다.
그러던 와중.
대뜸 낯선 음성이 수면 위로 떠올랐다.
-아마 무의식적으로 가장 강한 사람이 너라고 생각한 모양이야.
“큭…….”
순간 자세가 흐트러진 슈란이 그대로 균형을 잃고 말았다.
“하아, 하아…….”
잠시 바닥에 쓰러진 채 심호흡을 하던 슈란.
그녀가 바닥에 널려 있던 운동 기구 하나를 신경질적으로 내던졌다.
챙강!
일순 쇳덩이가 부딪는 날카로운 소음이 훈련실의 적막을 깨뜨렸다.
슈란은 한동안 고개를 푹 숙인 채 두 손으로 땀에 젖은 붉은 머리칼을 꽉 움켜쥐었다.
이윽고…….
텅 빈 훈련실에 나지막한 그녀의 음성이 울렸다.
“병신 같은 년…….”
진한 자책감이 어린 음성.
그만큼 그동안 잘 쌓아 올린 것들이 한 번에 망가져 버린 기분이었다.
‘이게 다 그 자식 때문이야…….’
슈란은 이를 으득 물고는 주먹을 꾹 말아 쥐었다.
어딘가 이상한 이름.
도무지 예측이 안 되는 기묘한 행각.
더없이 수상한 능력.
이 모든 것들이 언제부턴가 그녀의 마음을 엉망으로 흐트러뜨리고 있었다.
오랜 시간 단련해 온 단단한 평상심에 금이 가기 시작한 것.
“정신 차려, 슈란.”
그녀가 나지막이 입술을 달싹였다.
아무리 생각해도 어느샌가 마음이 엉망으로 풀어져 버린 건 그 녀석 탓이었다.
하지만…….
이번 임무 수행으로 철저히 깨닫고 말았다.
필기뿐 아니라 그 모든 부분에서 철저히 그놈의 아래에 있었다는 걸…….
심지어 그렇게 오랫동안 날카롭게 벼려 오던 정신력까지 엉망으로 망가져 버리고 말았다.
마기 때문에 순식간에 폭주해 버리는 강렬한 충동을 미처 억누르지 못한 것.
‘정작 그 녀석은 꿈쩍도 안 했는데 말이야…….’
그래서일까?
어느덧 저도 모르게 그 빌어먹을 녀석의 우스꽝스러운 화법을 따라 해 버리기까지 했다.
어느샌가 마음이 조급해지기 시작한 것.
‘내가… 이 클라리네스의 슈란이… 다른 놈의 뒤를 보고 쫓다니…….’
뒤늦게 이를 깨달은 슈란은 한동안 깊은 자괴감에서 헤어나올 길이 없었다.
이제야 자신의 처지를 제대로 자각해 버리고 만 것.
지금 본인이 얼마나 형편없는 모습인지를 말이었다.
-명심하고 또 명심하거라. 클라리네스는 오롯이 완전한 존재가 되어야 한다는 걸.
늘 당부하던 아버지의 무심한 음성.
그것이 다시금 귓가에 맴도는 듯했다.
어느덧 슈란이 꾹 말아 쥔 손을 파르르 떨었다.
“빌어먹을…….”
이내 슈란이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곤 한쪽에 내던진 운동 기구를 다시 주워들었다.
“후우, 후우…….”
그렇게 천천히 단전의 마나를 정돈하고, 다음 단련을 시작했다.
이미 체력은 탈진 상태였지만… 이제부터가 본격적인 시작이었다.
끊임없이 제 한계를 갱신하며 완벽을 추구하는 것.
그것이 클라리네스가의 훈련이었으니까.
* * *
“후우…….”
개인 체력 단련을 모두 소화한 슈란은 기진하여 걸음을 옮겼다.
체력은 물론 티끌만 한 마나까지 모두 소진해 버린 상황.
늘 하던 개인 훈련이었지만…….
최근 들어 조금 풀어져서 그런지 그 강도가 평소와는 달리 미적지근했다.
그래도 오늘은 확실히 마음을 다잡고 다시 수련에 임해서 그런지 홀가분한 기분이었다.
모든 게 다시 제자리로 돌아온 느낌이랄까?
고되지만 무척 익숙한 바로 그 자리.
‘휴, 내가 어쩌다 그런 모질이들이랑 어울려서…….’
슈란은 코웃음을 흘리곤 샤워실로 향했다.
잠시 본분을 잊고 그들과 어울렸던 시간은 잠시간의 일탈로 치부하기로 하며…….
탁! 탁!
그때였다.
슈란이 저도 모르게 자리에 우뚝 멈춰 섰다.
막 지나치려 하던 훈련장에서 익숙한 소리가 들려왔기에.
‘화살… 소리?’
그대로 자리에 굳어 버린 슈란.
그녀는 잠시 제 귀를 의심해야만 했다.
‘설마…….’
서둘러 고개를 돌려 소리의 진원지를 확인했다.
“……!?”
순간 슈란이 저도 모르게 두 눈을 부릅떴다.
탁! 탁! 탁!
커다란 활을 떠난 화살이 연이어 허수아비의 머리에 정확히 박혔다.
슈란은 한동안 자리에 우두커니 선 채 활을 든 생도의 뒷모습을 망연히 바라보았다.
‘대체 언제…….’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분명 특수 훈련실 내에서 그 누구의 기척도 느낄 수 없었으니까.
아무리 수련에 전념하고 있었다고는 하나…….
이렇게 한 공간을 점유하고 있으면서 그의 존재를 내내 알아채지 못했다는 건 꽤 심각한 일이었다.
그가 은밀하게 제 뒤통수에 화살을 쏘아 날려도 손도 쓰지 못하고 당해 버릴 수 있다는 게 아닌가?
슈란이 꽤 큰 충격을 받은 채 우두커니 서 있던 와중…….
뒤늦게 기척을 느낀 강준식이 뒤를 돌아보았다.
“여어~ 왔어?”
그가 아무렇지 않게 활짝 웃으며 손을 흔들어 보였다.
“오늘 훈련은 좀 빡세게 했나 보네? 크으… 역시 슈란이구만.”
“…….”
잠시 멍하니 서 있던 슈란의 표정이 험하게 일그러졌다.
그러곤 이를 으득 물고는 종종걸음쳤다.
“어? 야, 어디 가!? 저 싸가지 봐라… 친구끼리 쌩까냐?”
우뚝.
순간 다시 자리에 멈칫한 슈란.
이내 그녀가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다시 눈이 마주치자 강준식이 생긋 웃고는 태평하게 두 손을 흔들어 보였다.
“수고했어. 가더라도 인사는 하고 가야지~ 안 그래?”
“…….”
이내 슈란이 저도 모르게 주먹을 꾹 움켜쥐었다.
그러곤 한층 노기를 띤 음성으로 나직이 읊조렸다.
“누가… 네 친구냐?”
“응?”
“누가 네 친구냐고, 이 새끼야…….”
퉁명스레 쏘아붙이는 슈란의 서늘한 음성.
이내 강준식이 짐짓 슬픈 표정을 지어 보였다.
“와, 나 상처받았어……. 그 위험한 임무 수행지에서 생사고락을 함께한 전우끼리… 그렇게 말하면 영 서운한데?”
“…….”
잠시 강준식을 매섭게 쏘아보던 슈란.
이내 그를 무시하곤 다시금 성큼성큼 걸음을 옮겼다.
“슈란!”
재차 그녀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지만 슈란은 멈추지 않았다.
“활 고맙다. 덕분에 잘 쓰고 있어!”
우뚝.
순간 다시 자리에 멈춘 슈란이 그를 일견했다.
그는 어느덧 제가 준 활을 번쩍 든 채 요란하게 흔들어 보이고 있었다.
제법 자랑스러운 보물이라도 되는 듯이…….
“…….”
잠시 입술을 꾹 다문 채 그 광경을 응시하던 슈란.
그녀가 짧게 툭 내뱉었다.
“재수 없는 새끼…….”
그러곤 다시금 특수 훈련실 밖으로 걸음을 옮겼다.
강준식은 그런 슈란의 뒷모습을 보며 연신 싱글거렸다.
‘그래. 뭐, 이래야 하드 난이도의 슈란답지…….’
진즉에 호락호락하지 않으리란 생각은 했다.
주인공 3인방 중에 제일 진행이 어려운 캐릭터가 아닌가?
한동안 싸늘한 슈란의 뒷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던 강준식.
그의 입가엔 어느덧 긴 호선이 그려졌다.
“어차피… 오래는 못 버틸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