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Academy's Underworld Player RAW novel - Chapter 135
135화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조심스레 미니맵을 살피던 나는 슬며시 입가를 끌어 올렸다.
“갔나?”
거의 1시간 가까이 밤이슬을 맞으며 기숙사 주변에서 은신해 있던 세니르.
대략 10분 전쯤 녀석의 위치를 알려 주는 점이 서서히 멀어져 갔던 터였다.
‘흐음…….’
그래도 혹시 모르니 10분 가까이 계속 자리를 지켰다.
그 이후에도 별다른 움직임이 없는 것을 보아 확실히 의심을 거둔 모양이었다.
나는 그제야 슬그머니 다시 이불을 걷고 나왔다.
뛰는 놈 위에 나는 놈이 있는 법.
나는 회심의 미소를 짓고는 다시금 월담 루트를 짰다.
‘좋아, 이번엔 실수 없이 확실하게…….’
첫 번째 트라이엔 미행이 붙을 거라곤 생각지 못한 탓에 별생각 없이 나갔지만…….
이번엔 무척 은밀한 루트로 최대한 신속하게 이동할 생각이었다.
‘예전에 도망 다니던 게 이렇게 도움이 되네.’
나는 실소를 흘리고는 본격적으로 사라질 준비를 했다.
그동안 이 아카데미에서 내가 개척한 그림자 루트가 적지 않은 상황.
그리고…….
그중에선 초창기에 한창 이리저리 도망 다닐 때 쓰던 비밀 루트도 있다.
츠츳, 츠츠츠츳.
나는 그 루트를 이용해 최대한 빠르게 아카데미 밖까지 나왔다.
그러곤 뒤도 돌아보지 않고 달리며 계속해서 그림자를 이용해 공간 이동을 했다.
그렇게 몇 번의 그림자 이동을 하자 순식간에 아카데미가 멀어졌다.
“후욱, 후우…….”
이렇게 짧은 시간, 폭발적으로 먼 거리를 이동한 건 처음이라 그런지 어느새 손바닥에 땀이 흥건했다.
그래도 적당히 의심을 지우고 추적을 떼 내는 데엔 성공한 듯했다.
깔끔해진 미니맵을 확인하자 그제야 입가에 절로 미소가 어렸다.
편-안.
“좋아, 이제야 한결 쾌적하구만.”
나는 한층 가뿐해진 마음으로 다시금 야행길에 나섰다.
* * *
“안녕, 슈란. 잘 있었냐?”
-푸릉, 푸르릉!!
어느덧 마구간에 들자 슈란이 날 무척 반갑게 맞아 주었다.
나는 잠시 녀석의 콧잔등을 쓰다듬으며 오랜만의 재회를 만끽했다.
뭐, 반가운 건 반가운 거고…….
사실 내 용건은 따로 있었다.
“미안, 근데 오늘은 널 보려고 온 게 아니야.”
왠지 당황한 모습의 슈란을 뒤로한 채 마구간 옆의 커다란 헛간으로 걸음을 옮겼다.
끼릭, 끼리릭.
나는 주인에게 받아 둔 열쇠를 이용해 헛간의 문을 열었다.
뭐, 그림자를 사용해도 되긴 했지만… 이번엔 나올 때 동행할 친구가 있었기에 어쩔 수 없었다.
이윽고 문을 열고 헛간 안으로 들어서자 익룡처럼 생긴 커다란 생명체가 날 보곤 아는 체를 했다.
-끼룩… 끼루룩!
날개를 살짝 퍼득거리며 온몸으로 반가움을 표하는 녀석의 모습.
아무래도 저놈 역시 전 주인보다는 도리어 나와의 비행을 잊지 못하는 모양이었다.
하긴, 뭐… 내가 비행 기술이 오지긴 했지.
“그래, 귀요미. 잘 있었니? 오늘도 잘 부탁해~”
내 말을 알아듣기라도 한 듯 녀석이 다시금 끼룩거리며 날개를 퍼득였다.
나는 잠시 그런 녀석을 보며 흐뭇한 미소를 머금었다.
이전에 리자드맨과의 전투에서 포획한 프테라노돈을 이곳의 마구간 주인에게 맡겨 놨던 터.
그에게 빈 헛간의 이용과 관리비를 대가로 돈을 두둑이 주니 이렇게 또 성심성의껏 녀석을 맡아 주었다.
언제든지 와서 이용해도 좋다는 첨언과 함께 이렇게 열쇠까지 내주며 말이었다.
‘뭐, 이 정도면 이제 여긴 내 전용 차고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구만.’
예전에 회사 다닐 땐 내 차 하나 없었는데…….
여기선 전용 차고와 함께 자가용 비행기까지 생겼으니 호사도 이런 호사가 없다.
나는 흐뭇한 미소와 함께 헛간의 문을 더욱 활짝 열어젖혔다.
드르르르륵.
헛간의 문을 완전히 열어젖힌 나는 얼른 다시 안으로 돌아와 프테라노돈에 올라탔다.
[‘프테라노돈’에 탑승하시겠습니까? Y/N]“가즈아!!”
내가 능숙하게 프테라노돈에 탑승하자 녀석이 호응이라도 하듯 날개를 펄럭이며 헛간 밖으로 나왔다.
펄럭!
이내 몇 번의 날갯짓과 함께 금세 몸이 붕 떠오르는 걸 느꼈다.
그리고…….
부유감과 함께 순식간에 프테라노돈이 점점 높게 날아올랐다.
“크으, 죽이는구만~”
처음 이 녀석을 탈 때도 느꼈지만 하늘을 나는 감각은 생각 이상으로 짜릿했다.
게임을 할 땐 그냥 마우스로 이동할 곳을 찍어 놓고는 라면을 먹거나 무심히 화면을 바라보는 게 전부였는데…….
실제로 탈것을 타고 하늘을 나는 그 감각은 감히 그것과 비교도 되지 않았다.
두근, 두근!
나는 심장이 빠르게 뛰는 걸 느끼며 한층 고삐를 힘 주어 잡았다.
-이히히히힝!!
그때였다.
대뜸 뒤편에서 울려 퍼지는 요란한 말의 울음소리에 무심코 뒤를 돌아보았다.
“……!?”
두그닥, 두그닥, 두그닥!!
“슈… 슈란?”
어느새 마구간을 박차고 나온 슈란이 날 따라 미친 듯이 달리고 있었다.
마치 오랜만에 만난 주인을 절대 놓칠 수 없다는 듯…….
날 향한 슈란의 질주는 절박하기 짝이 없었다.
“슈란…….”
그 모습을 보자 왠지 마음이 짠했다.
허나, 그렇다고 멀쩡한 비행기를 냅두고 차를 탈 수는 없는 노릇.
그것도 오늘처럼 먼 거리를 빠르게 다녀와야만 하는 상황에선 말이었다.
참고로 오늘의 목적지는 말을 타면 최소 3일 밤낮은 달려야 도착 가능한 거리였다.
게다가 아무리 중요한 일정이 끝났다고 해도 아직 방학을 한 건 아니라서 하루 이상 아카데미를 비울 순 없었다.
결국 프테라노돈이란 패가 있었기에 이번 외출도 감행할 수 있게 된 터.
“미안, 오늘은 어쩔 수 없다…….”
나는 열심히 날 쫓는 슈란을 뒤로한 채 눈물을 머금곤 한층 높게 날아올랐다.
비록 마음은 슈란과 함께 있었지만 몸은 솔직했으니까.
* * *
펄럭, 펄럭!
어느새 목적지에 도착한 나는 천천히 허공에서 활강하기 시작했다.
이윽고 프테라노돈이 미끄러지듯 바닥에 착지했다.
촤아아아악!
사방에서 물이 튀기며 넓은 늪지대가 날 맞아 주었다.
나는 가볍게 안장에서 폴짝 뛰어내렸다.
첨벙.
발목까지 찰랑이는 물과 끈적한 진흙의 감각.
그 눅눅함에 기분이 나빠질 만도 했지만 상관없었다.
이번에 새로 장만한 부츠가 제대로 그 빛을 발했기에…….
[늪지 영혼의 롱 체인 부츠 (희귀)]리자드맨을 이끌던 위대한 왕이 쓰던 부츠입니다.
한 땀, 한 땀 세심한 손길로 만든 디테일은 편안한 신축성과 가벼운 착용성을 모두 잡았습니다.
습지에서 주로 생활하는 리자드맨을 위해 내장된 방수 효과는 그야말로 명품의 화룡점정(畵龍點睛).
더하여 습지에선 한층 민첩하게 움직일 수 있는 마법적 효과까지 내장되어 있는, 훌륭한 제품입니다.
‘물리 방어력 +120’
‘민첩 +7’
‘방수 효과 내장.’
‘습지에서 민첩 +4%.’
“거, 성능 확실하구만.”
정말로 부츠 안에 물 한 방울 새어 들어오지 않았다.
이렇게 편안한데 어찌 방수 기능까지 있는지 신기할 지경.
오히려 신발 관련 기술은 이쪽 세계가 더 좋은 게 아닐까 싶을 정도였다.
‘암만 생각해도 리자드맨 놈들이 종합 선물 세트였다니까…….’
이렇게 요긴한 전리품에 프테라노돈까지 얻었으니…….
다시 생각해도 놈들의 출장 뷔페가 참으로 고맙기 짝이 없었다.
나는 새 부츠에 깊은 만족감을 느끼며 슬슬 움직일 준비를 했다.
“여기서 얌전히 기다리고 있어. 알았지? 누가 까까 사 준다고 해도 따라가지 말고.”
-끼룩! 끼루룩!!
녀석, 대답도 참 야무지게 잘한다.
‘슈란아, 어쩌냐? 아무래도 네 입지가 점점 좁아지는 거 같은데…….’
삼룡이에 이어 프테라노돈까지…….
그러고 보면 슈란(말)이 초조해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나는 피식 웃고는 찰박거리며 늪지 안으로 몸을 들였다.
목적지는 미니맵에 뜬 황금색의 사각점…….
또 하나의 콜렉션이 될, 내 귀한 아티팩트가 잠들어 있는 곳이었다.
* * *
“허, 시발…….”
나는 늪지 나무의 뒤편에 은밀히 몸을 숨긴 채 저 너머의 광경을 빤히 주시했다.
그야말로 욕이 절로 나오는 광경이었다.
“오늘은 꼭 성공해야 한다! 죽고 싶지 않으면 다들 젖 먹던 힘까지 짜내라고!!”
쿵! 쿵!
웬 놈들이 공성추와 같은 통나무를 든 채 유적지의 입구를 두들기고 있었다.
나는 놈들의 행색을 보고는 저도 모르게 살며시 이마를 짚었다.
검은 로브와 팔뚝에 뱀 두 마리가 얽힌 불길한 모양의 문신.
‘테네브리아… 또 너냐?’
저 자식들… 이젠 하도 봐서 정이 들 지경이다.
안 그래도 미니맵 유적지의 주변에 이상하게 붉은 점이 몇 개 보여서 수상했던 차였는데…….
아니나 다를까, 여지없이 이 귀한 곳에 누추한 분들이 와 있던 것.
“닝기리, 대체 이게 며칠째야!? 처음 발견할 때만 해도 드디어 됐나 싶더니… 빌어먹을 놈의 유적지는 하나같이 뭐 이리 엿같이 만들어 놨는지 원. 카악, 퉤!!”
우두머리로 보이는 놈이 분통을 터뜨렸다.
아무래도 그동안 유적지의 입구를 열려고 꽤 애를 먹은 모양.
쿵! 쿵! 쿵!
그 와중에도 놈들은 지친 기색으로 돌문을 향해 연신 공성추를 두들기고 있었다.
보아하니 지금 쓰고 있는 공성추도 여기에 있는 나무를 베어서 깎아 만든 모양이었다.
하긴… 끈적하고 눅눅한 습지에서 쉬지도 못하고 저 지랄을 하려니 얼마나 고생스러웠겠는가?
“하아… 제발 나 좀 살려 주라, 이 새끼들아! 제크토 님이 곧 오신다고, 오늘까지는 반드시 끝내 놓으라고 했단 말이다!! 이거 그때까지 못 열면 느그들도 죽고 나도 죽어!! 알겠냐!?”
놈들의 말을 엿듣던 나는 순간 두 눈을 부릅떴다.
‘제크토……?’
그 녀석이라면… 분명히 기억하고 있었다.
해안 절벽의 동굴에서 삼룡이를 노렸던 놈.
테네브리아의 간부 중 하나.
아직도 그때 놈에게 제대로 빅엿을 먹이고 나왔던 기억이 있는데…….
여기서 또 이렇게 보게 되니 너무 반가워서 눈물이 다 날 지경이었다.
‘그래, 그렇단 말이지.’
그땐 내가 아직 성장이 부족했고, 워낙 상황도 급박했던 터라 그저 빅엿을 물려주고 나온 정도에 그쳤지만…….
이제는 아니었다.
나는 한쪽 입가를 끌어 올리고는 주먹을 꾹 말아 쥐었다.
‘이번엔 슈퍼 그레이트 빅엿을 목구멍에 처넣어 주마.’
목구멍이 콱 막혀 죽어 버릴 정도로 말이지.
이참에 삼룡이 어미의 복수도 해야 하지 않겠는가?
“일단, 그 전에…….”
어쨌든 이곳에 온 주목적은 잊지 말아야 할 터.
어느덧 내 신형이 그림자 속으로 은밀히 녹아들었다.
목적지는 유적지의 입구 안쪽.
석문 안의 그림자도 범위 내에 있었기에 충분히 이동이 가능했다.
츠츠츠츠츳.
어느덧 유적지의 석문 안쪽에서 다시금 내 신형이 천천히 솟아올랐다.
문 안쪽에 걸린 작은 마도구에서 희미한 빛을 발하고 있었다.
쿵! 쿵!! 쾅!!
한편 문 바깥에선 여전히 공성추 소리가 요란히 울려 댔다.
조급함이 여실히 느껴질 정도로 급박해 보이는 소리…….
허나, 내겐 그것이 마치 천상의 노래처럼 감미롭게 들렸다.
‘그래, 느그들은 거기서 실컷 뺑이나 치고 있어라.’
형은 그동안 여기서 착실히 다 털어먹고 있을 테니까.
뭐, 어차피 꼬라지를 보니 운 좋게 이곳에 들어온다고 해도 안에서 한참을 헤매다 결국 망령이 될 듯했다.
‘여긴 그렇게 쉽게 공략되는 곳이 아니란다, 이 모지리들아…….’
샅샅이 맵을 훑는 걸 좋아하는 고인물들을 위해 숨겨 둔 비밀 콘텐츠인데 오죽할까?
나는 픽 웃고는 물이 찰박이는 유적지 안으로 여유로이 걸음을 옮겼다.
* * *
파앗!
인벤토리의 랜턴을 켠 나는 조심스럽게 다시 걸음을 옮겼다.
유적지 안으로 한층 깊게 들어오자 완전히 어두워졌기에 어쩔 수 없었다.
찰박, 찰박.
랜턴이 흔들릴 때마다 수면에 비친 내 그림자도 불안하게 이리저리 흔들렸다.
작은 불빛에 의지한 채 바닥에 물이 찬 미궁을 거닐다 보니 흡사 1인칭 공포 게임을 하는 기분이었다.
허나, 앞으로 나아가는 내 발걸음은 거침이 없었다.
어차피 이곳의 구조와 출몰하는 몬스터는 머릿속에 꿰고 있었으니까.
무엇보다 미니맵이란 나침반이 있으니 더더욱 거칠 것이 없었다.
“드디어 나왔군.”
이윽고 눈앞에 네 개의 입구가 모습을 드러냈다.
역시 미궁의 기본은 다양한 선택지의 길.
플레이어에게 엄청난 선택 장애와 스트레스를 주는 요소 중 하나였다.
“흐음…….”
잠시 턱을 쓸며 고민하는 척을 하던 나는 조용히 발걸음을 뗐다.
사실 고민할 것도 없었다.
어차피 난 이미 이 문제의 답안을 알고 있었기에…….
찰박, 찰박.
마침내 목적지를 향해 선 나는 주저 없이 그 안으로 몸을 들였다.
츠츠츠츠츳.
이내 내 신형이 서서히 어둠 속에 녹아들었다.
네 개의 입구, 그 어디도 아닌…….
그 옆면의 벽에 비스듬히 진 그림자 속으로.
오직 나만이 들어갈 수 있는 히든 플레이스…….
두근! 두근!
어느덧 내 심장이 보다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