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Academy's Underworld Player RAW novel - Chapter 146
146화
어느덧 지하에서 빠져나온 황제와 나는 황궁의 무기고 안에 들어섰다.
“여긴 황실의 무기고라네. 비록 지하 서고만큼은 아니지만… 그래도 내로라하는 제국의 온갖 명품이 이곳에서 주인을 기다리고 있지.”
과연 황궁이 보유한 무기고답게 상당한 규모를 자랑했다.
무려 3층에 달하는 건물 하나를 통째로 무기고로 사용하고 있었으니까.
“오래전 전쟁 영웅이 쓰던 명검부터 제테르 가에서 개발한 최신 경량화 기술을 덧입힌 장창까지… 비록 고유의 속성이 부여된 전설적인 무기까진 아니지만 어지간한 건 대륙 어디에서도 보기 힘든 명품 중의 명품이라네.”
“그렇군요. 대충 봐도 질 좋은 무기가 많아 보이는 것 같습니다.”
“물론이지. 실은 짐이 지하 서고 이상으로 애정을 갖고 있는 장소라네. 지하에 있는 유적지는 짐이 만든 장소가 아니지만… 여긴 오롯이 짐의 손길이 하나하나 닿아 있는 장소니까 말일세.”
“정말입니까? 그럼 저 역시 이곳이 더 마음에 드는 바입니다.”
“왜 그러한가?”
“폐하의 노고가 녹아든 곳이라면 필시 범상한 곳이 아닐 테니 말입니다.”
“흐허허허허! 내, 본디 금칠을 좋아하는 성격은 아니다만… 왠지 자네의 그것은 듣기에 거북지 않구만. 아마 그대의 진정성이 충분히 전해져서 그런 것 같네.”
“물론입니다. 다른 건 몰라도 그것 하나만큼은 확언드릴 수 있습니다. 폐하에 대한 제 마음은 티끌만큼의 거짓도 없는, 오롯한 진실이라는 걸요.”
“그럼, 그럼! 짐 역시 다른 사람은 몰라도 자네는 신뢰하는 바이네. 앞으로도 이렇게 두터운 신뢰 관계를 유지했으면 좋겠군.”
“물론입니다, 폐하.”
그렇게 잠시 서로 사이좋게 빨아 주는 시간을 갖고, 이제 슬슬 본론으로 들어갔다.
“이번에도 조건은 같네. 무엇을 고르든 단 하나만 자네에게 하사토록 하겠네. 내 이번엔 확실히 자네의 안목을 확인할 수 있겠구만.”
“부족한 안목이지만… 폐하께서 거듭 귀한 기회를 내주신 만큼 최선을 다해 골라 보도록 하겠습니다.”
늘 그랬듯 잠시 날 흐뭇하게 주시하던 노황제.
이내 그가 무언가 생각난 듯 말했다.
“참, 이곳 무기고의 총관리인은 이 사람이네.”
츠츠츠츠츳.
참고로 이건 내가 내는 소리가 아니었다.
그의 곁에서 기척을 숨기고 있던 호위 기사가 모습을 드러낸 것.
“벨리타.”
이내 복면 차림의 여자가 한쪽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였다.
“…….”
뭐, 이전에도 한번 봤던 여자였고… 이미 미니맵을 통해 감지하고 있던 터라 덤덤한 표정으로 주시했다.
“네, 폐하.”
“내 이자에게 황궁 무기고에서 선물 하나를 하사하려고 하네. 그것이 무엇이 됐든 말이지.”
“…….”
잠시 침묵하던 그녀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뜻대로 하겠나이다.”
그 순간, 난 두 눈으로 똑똑히 확인할 수 있었다.
호위 기사의 한쪽 눈가가 파르르 떨리는 걸…….
“내 임종 후에 자네에게 이곳의 무기 하나를 내주기로 약조했었지. 허나, 자네도 알다시피 이자는 무려 지하 서고의 보상을 마다했다네. 그런 자에게 이 무기고의 선택 권한을 주는 것… 자네 역시 과하다고 생각지는 않겠지?”
“물론입니다.”
벨리타는 찰나의 고민도 없이 빠르게 답했다.
허나, 난 이미 조금 전에 그녀의 동요를 읽어 낸 터.
그래서 그런지 살짝 미안하기는 했다.
지금부터 난.
훗날 그녀가 고를 그 무기를 냅다 가져갈 심산이었으니까.
‘이런 못난 나라서… 미안하?!’
나는 속으로 잠시 참회의 시간을 갖고는 슬슬 쇼핑을 할 채비를 했다.
뭐, 이만하면 충분히 참회도 했으니 날름 가져가도 딱히 문제없을 터였다.
“자네도 이 무기고의 담당 기사이니 함께 참관할 자격이 있다고 생각했네. 어쨌든 자네 역시 강준식 생도의 다음 순번이 될 테니까.”
“배려에 감사드립니다.”
그렇게 벨리타와 이야기를 끝낸 노황제.
그가 한층 기대감 어린 눈빛으로 내게 말했다.
“좋아, 그럼 넉넉하게 2시간을 내줄 터이니 어디 천천히 골라 보게나.”
나는 말없이 가볍게 묵례를 하고는 본격적으로 걸음을 옮겼다.
웅장하기 그지없는 무기고의 심장부를 향해서…….
* * *
점점 멀어져 가는 강준식의 신형.
흥미로운 눈빛으로 이를 빤히 지켜보던 노황제가 툭 물었다.
“어떻게 생각하나?”
“솔직히… 잘 모르겠습니다.”
“호오…….”
나지막한 벨리타의 대답에 황제의 두 눈이 한층 가늘어졌다.
그녀는 제국에서도 흔치 않은 실력을 지닌 살수였다.
수십 년을 함께했지만 그런 그녀의 입에서 모르겠다는 말이 나온 건 이번이 처음.
어지간한 상대의 무위는 물론 그 속내까지 모조리 꿰뚫어 보는 그녀의 안목을 생각하면 심히 놀라운 일이었다.
‘재미있군…….’
루슬란 황제는 가만히 턱을 쓸며 생각에 잠겼다.
종족 전쟁 당시, 적 진영에서 활약하던 다크 엘프를 생포했던 터.
허나, 당시 루슬란은 어린 나이임에도 과감히 그녀를 제 진영으로 거두는 포용력을 보여 주었다.
모두가 반대했지만 그는 끝끝내 제 뜻을 굽히지 않았다.
그리고.
결과적으로 그건 최선의 선택이 되었다.
오랜 시간.
벨리타는 황제의 곁에서 그를 수호하고, 그의 뜻을 오롯이 수행하는 최고의 검이자 방패가 되어 주었으니까.
그러한 인망과 포용력으로 황제는 제국을 여기까지 일궈 냈고, 수없는 위협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벨리타 역시 오랜 시간 황제의 곁을 지키며 진심으로 그를 받들고 그 뜻을 따랐다.
다크 엘프는 엘프족 내에서도 늘 괄시와 천대를 받기 마련.
그들이 태생부터 오직 종족의 뜻을 받들기 위한 암살 기계로 키워지는 이유였다.
그런 그녀가 살면서 한 번도 받아 보지 못한 신뢰와 존중은 벨리타로 하여금 진심 어린 충심을 이끌어 냈다.
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었다.
사실 루슬란이 벨리타를 받아들일 때 그들 사이엔 모종의 거래가 하나 더 있었다.
황제는 제 임종 뒤에 원하는 것 하나를 그녀에게 내어 준다고 했고, 벨리타는 그것으로 황실 무기고의 무기 하나를 가지겠다고 한 것.
비록 그게 무언지는 말하지 않았지만…….
그것만으로도 황제는 그녀가 탐을 낼 만한 보물이 이곳에 잠들어 있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무엇이든 본질을 꿰뚫어 보는 벨리타의 안목을 곧잘 봐 왔던 바니까.
이곳엔 최고의 장인이 만든 온갖 명품은 물론 종족 전쟁 당시에 수집한 전리품도 적잖이 보관되어 있었다.
허나, 그가 알기로 이곳의 전리품 중에서 극상의 보물이라 할 만한 건 없었다.
이 무기고에 들어오는 무기는 모두 제국 최고의 감정사들을 통해 엄격한 감정을 거치기 마련.
그럼에도 전리품은 대부분 수준 이하의 무기들뿐이었다.
그나마 황제가 따로 구색을 갖춰 놓은 장인의 명품만이 빛을 발하는 형국.
‘확실히 무언가 숨겨져 있기는 한 게지…….’
허나, 노황제는 아직까지도 그게 무언지 찾아내지 못했다.
각별한 애정으로 이 방대한 무기고의 병장기 하나하나를 모두 헤아리고 있던 그조차도 말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지금 이 상황이 더욱 기대가 됐다.
과연 저 특출 난 생도가 그 수많은 무기 속에서 무엇을 고르게 될지.
그리고.
혹여라도 벨리타의 심중에 있는 그 무기를 고르지는 않을지…….
힐끔.
어느덧 노황제의 시선이 벨리타를 향했다.
까만 복면에 노출된 그녀의 두 눈은 흡사 얼음의 표면처럼 차갑고 그 속을 알 수 없었다.
어느덧 황제의 입가에 옅은 미소가 어렸다.
한 번쯤.
그 얼음의 밑바닥을 보고 싶었다.
오랜 시간 충심으로 저를 따라왔지만.
끝까지 제일 내밀한 속내는 내보이지 않는 그녀의 기저에 대체 무엇이 자리하고 있는지를…….
‘어쩌면 저자라면…….’
노황제는 어느새 생도가 자취를 감춘 무기고 안쪽에 가만히 시선을 두었다.
저 생도라면 뭔가 재미있는 상황을 만들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고…….
* * *
“버, 벌써……?”
들어간 지 채 5분도 안 되어 나와 버린 내 모습에 황제가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심지어 우두커니 그 곁을 지키고 있던 벨리타조차 동공이 살짝 흔들리는 게 보였다.
“설마… 이번에도 아무것도 고르지 않은 건 아니겠지?”
“아닙니다. 폐하께서 친히 내려 주신 기회를 두 번이나 마다할 수는 없는 노릇이지요.”
“그렇다면 정말로 마음에 드는 무기를 벌써 골랐단 말인가?”
“네, 폐하.”
나는 가볍게 고개를 숙여 보이곤 선선히 가져온 검을 꺼냈다.
“!?”
그 순간.
황제의 두 눈이 눈에 띄게 커졌다.
“정말로… 그걸 고른 겐가?”
그가 도통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되물었다.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심하게 녹이 슬어 있는 데다가 군데군데 이까지 빠진 게, 워낙 볼품없는 몰골을 하고 있었으니까.
나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대답했다.
“네, 그렇습니다.”
“대체 왜… 하필 그런 검을?”
여전히 이해가 안 되는 듯 눈가를 살짝 찌푸린 그의 물음에 가볍게 미소를 머금었다.
이건 보물이라기보단 그저 역사적 가치밖에 없는 골동품이나 다름없을 테니까.
“전 무기에 의존하는 나약한 마음을 갖고 싶지 않습니다. 벌써부터 그런 마음을 품게 된다면… 결국 제 검술 실력은 이 검만큼이나 녹슬게 될 테니까요.”
나는 반쯤 넋이 나가 있던 노황제를 향해 한층 비장한 어투로 말했다.
“그것을 잊지 않고자 저는 이 검을 택했습니다. 제 모습과 가장 닮은 검을요. 겸허한 마음으로 매일 기름칠을 해 녹을 벗겨 내고, 끊임없이 칼을 갈며 저를 단련할 마음으로 말입니다.”
“…….”
잠시 멍하니 날 바라보던 그가 다시금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으하하하하! 참으로 볼수록 대쪽 같은 사내로구만. 한결같은 성정이야!”
나 역시 그런 노황제의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켜보며 함께 미소를 머금었다.
그때였다.
대뜸 벨리타의 다급한 음성이 울려 퍼졌다.
“아, 안 됩니다!!”
“……?”
황제가 놀란 눈으로 그런 그녀를 빤히 바라보았다.
아까 내가 이 녹슨 검을 들고나왔을 때보다 더욱 놀란 기색이었다.
“베, 벨리타? 자네…….”
노황제의 반응에 벨리타가 당황한 기색으로 얼른 고개를 숙여 보였다.
“죄, 죄송합니다. 전 그저… 전도유망한 청년이 이런 귀한 기회를 그릇된 선택으로 잃어버리는 것이 심히 안타까운 마음에 저도 모르게 그만…….”
“…….”
다급한 그녀의 변명에도 황제는 여전히 놀라운 기색을 숨기지 못했다.
당연한 일이었다.
아마도 노황제는 벨리타의 저런 모습을 한 번도 본 적이 없었을 테니까…….
흔들리는 눈길로 좀체 검에서 시선을 떼지 못하던 벨리타.
그런 그녀를 향해 다시금 마음으로 양해를 구했다.
‘미안, 이건 좀 일찍 가져갈게~’
어차피 훗날 슈란의 손에 들어가게 될 검이었다.
물론 벨리타는 언젠가 제 손에 들어오게 되리라 굳게 믿고 있겠지만…….
사실 이미 이 검의 주인은 정해져 있었다.
이 녀석은 스스로 주인을 고르는, 까다로운 녀석이었으니까.
그리고.
애석하게도 벨리타는 이 검의 주인이 될 수 없었다.
반드시 광증(狂症)의 피를 지닌 특수한 혈족에게만 반응하는 녀석이었으니까.
실제로 슈란 루트의 메인 퀘스트에서 이 검을 얻지 못하면 더는 진행 자체가 되질 않았다.
말하자면 어차피 언젠가는 슈란의 손에 들어갈 수밖에 없는 검이라는 것.
나는 그걸 좀 더 빠르게 진행시킬 심산이었다.
‘하는 김에 적당히 생색도 좀 내고…….’
어차피 그녀의 손에 들어갈 거, 내가 직접 건네주며 생색까지 내면 얼마나 좋겠는가?
자존심 강한 천재에게 부리는 생색만큼 재미있는 게 또 없으니까.
츠츠츠츳.
그때였다.
눈 깜빡할 새에 바람같이 내게 다가온 벨리타가 두 눈을 가늘게 뜨곤 물었다.
“정말로 이 검을 고르시겠습니까? 당신이 보기에도 이건 수준 이하의 저질품이 아닙니까? 만약 생각이 있다면… 진지하게 다시 숙고해 보는 게 좋지 않겠습니까?”
허, 요것 봐라?
나는 서늘한 눈길로 날 응시하던 벨리타를 향해 못을 박듯 또박또박 말했다.
“아니요, 전 이게 딱 좋습니다. 제 마음에 쏙 들었어요. 영 볼품없는 게 제 모습과 닮아 있기도 하고요. 저는 앞으로 이 검과 함께 성장해 나갈 겁니다.”
“…….”
내 말에 벨리타의 눈동자가 몹시 흔들렸다.
마치 나라라도 잃은 듯한 허망한 눈빛.
“그리고 언젠가 스스로 부끄럽지 않을 실력을 갖추게 되면… 그때 스스로 이 검을 놓을 겁니다. 그러니까 이건 제 자신에게 하는 다짐이나 다름없지요.”
“……!?”
그 순간.
나는 똑똑히 목격할 수 있었다.
벨리타의 눈동자에 다시금 진한 탐욕과 함께 생기가 일렁이는 것을…….
어쨌든 내가 언젠가 이 검을 놓는다는 말에 일말의 희망이 생긴 듯했다.
“정 그리한다면… 알겠습니다. 행운을 빌죠.”
순순히 물러나는 그녀의 모습에 잠시 두 눈을 끔뻑이며 이를 지켜보던 노황제.
잠시 후 그가 눈치 빠르게 입을 열었다.
“잘됐군. 그럼 그 검을 놓게 되는 날이 오면 다시 한번 무기고에 들르도록 하게나. 짐 역시 그대의 성취를 치하하며 제대로 된 검으로 교환할 수 있는 기회를 주도록 할 터이니 말일세.”
“감사합니다.”
나는 황제에게 다시금 감사를 표하며 가볍게 고개를 숙여 보였다.
어차피 그럴 일은 없겠지만 말이었다.
“…….”
한편 벨리타는 여전히 우두커니 선 채 그런 날 지그시 응시했다.
일견 시리고 무심한 시선이었지만…….
이미 내 눈엔 훗날을 기약하며 타들어 가는 속을 애써 삼키는 게 훤히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