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Academy's Underworld Player RAW novel - Chapter 149
149화
“매년, 우리 황립 아카데미 주최로 진행되는 성금 전달식과 자매결연 행사는… 캘록, 코올록… 유구히 이어져 온 전통 행사로써 우리 생도들에겐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정신을… 코울록, 컬럭, 캘록… 이웃 마을 주민들에겐 꿈과 희망을…….”
행사의 시작과 함께 이어지는 그레고리 교수의 축사에 마을 사람들이 저마다 답답한 표정으로 숙덕거렸다.
“자넨 무슨 말인지 알아듣겠나?”
“아니, 당최 저걸 어찌 알아듣는단 말인가!? 뭐, 기침이 반이라는 건 알겠구만…….”
“허… 생도들은 늘 저런 강의를 듣는다는 거 아닌가? 거 참, 대단하네 그려.”
“거, 이제 보니 황립 아카데미의 생도라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었구먼…….”
나는 떠들썩한 사람들의 잡담을 들으며 옅은 한숨을 내쉬었다.
대체 왜 저런 쓸데없는 설정은 만들어 놨는지… 새삼 내 손가락이 얄미울 지경이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어느덧 그레고리 교수는 이곳 마을과 긴밀한 관계를 맺고 함께 발전해 온 황립 아카데미의 발자취를 읊는 시간을 가졌다.
허나, 말투도 워낙 느릿한 데다가 중간중간 기침까지 섞으며 간간이 텀이 생기니 행사가 한없이 늘어졌다.
결국 성미 급한 몇몇 마을 사람들은 깊은 탄식을 흘렸다.
심지어 답답한지 퍽퍽 가슴을 치는 사내도 있었다.
“큭큭… 우리 그레고리 교수님의 매운맛에 아주 정신 못 차리는구만.”
윌터는 이 상황이 재미있는지 킥킥 웃었다.
생도들은 이제 그런 교수의 말투가 워낙에 익숙해진 터라 어느 정도 면역이 되어 있는 상황.
뭐, 사실 나도 이 정도면 견딜 만했다.
만약 라떼 제조 장인 불턴 교수가 저 자리에 섰다면…….
필시 네버 엔딩 스토리가 이어졌을 테니까.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요즘 젊은 사람들은 이런 거 오래 하면 영 재미 없어 한다고 하더군요, 홀홀. 그럼 전 짧게 여기서 끊고… 콜록, 커올록… 이장님께 자리를 넘기고 물러나도록 하겠습니다. 크흠, 흠. 부디 모두에게 뜻깊은 시간이 되길…….”
‘충분히 길었다고……!!’
그런 생각을 하는 듯 몇몇 마을 사람들이 발끈하는 표정을 보였다.
“하, 우리 그레고리 교수님의 귀한 말씀, 잘 들었습니다. 뭐, 전 하나도 못 알아들었지만… 교양 있는 교수님이 하신 말씀이니 다 좋은 얘기였겠죠. 사실 전 우리 교수님이 쓰러질까 봐 조마조마해서 영 못 보겠더라고요. 들것이라도 준비해야 하나 고민하고 있던 차였습니다.”
어느덧 진행을 넘겨받은 마을 이장의 능숙한 사회에 금세 여기저기서 왁자한 웃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자, 다들 오래 기다리셨죠? 그럼, 이제부터 본 행사에 들어가도록 하겠습니다!”
그렇게 행사가 시작되고.
몇 가지 간단한 이벤트가 진행되었다.
크게 대단할 건 없었다.
몇몇 생도와 적당히 문답을 주고받는 인터뷰와, 사회의 요청에 생도들이 개인기를 선보이는 코너와 같은 것들이 이어졌다.
“생도는 황립 아카데미에 어떻게 입학하게 됐습니까?”
“간단하지요! 무릇 남자라면 대륙 최고의 기재들과 자웅을 겨루며 호연지기를 길러야 하는 법! 비록 전 잘난 귀족도 아니고 변변한 뒷배도 없습니다만… 그 남자의 넓은 배포 하나만으로 몸뚱이만 들고 이렇게 당당히 황립 아카데미에 입성했습니다!!”
“오오… 멋지다! 완전 상남자일세!!”
사람들의 호응에 더욱 흥분한 윌터가 대뜸 제 상의를 벗어 던졌다.
그러곤 보란 듯이 제 가슴을 탕탕 치며 소리쳤다.
“여러분도 할 수 있습니다! 어차피 한 번 사는 인생… 다들 이 넓다란 가슴에 큰 꿈을 품으라 이 말입니다!!”
“어머, 어머머…….”
“오오오! 저 마, 쏴라 있네~!!”
뜬금없는 윌터의 탈의 쇼에 한층 분위기가 달아올랐다.
귀족 신분도 아닌 윌터가 당당히 황립 아카데미에 입성했다는 자수성가형 스토리가 마을 사람들의 가슴을 울린 것.
심지어 우락부락한 근육질의 몸매 덕에 몇몇 여자들은 손으로 눈을 가리는 시늉을 하면서도 손 틈으론 부단히 동공 운동을 하기에 바빴다.
“쟨 왜 저렇게 오바하냐?”
슈란이 그런 윌터를 보며 코웃음을 흘렸다.
카엘 역시 영 마음에 들지 않는지 조용히 고개를 내저었다.
“저 녀석, 뭔가 단단히 잘못 알고 있군. 무릇 남자란 저토록 경박한 게 아니다. 좀 더 묵직하고, 말보단 묵묵히 행동으로 보여 주는 것이 진짜 남자인 것을…….”
“넌 또 뭔 개소리야?”
하여간 이래저래 여러모로 혼란스러운 행사였다.
“호오, 감동적인 사연에 이어 두 눈이 호강하는 시간이었군요. 그럼 우리 엔드류 윌터 생도님께선 간단히 선보일 개인기 같은 게 있을까요?”
“물론입니다.”
흔쾌히 대답한 윌터가 성큼 한 걸음 앞으로 나와 양손을 구부리며 보디빌딩 자세를 취했다.
그리고.
“꺄아아악!!”
“어머, 어머멋… 맙소사…….”
터질 듯 우락부락한 그의 가슴 근육이 좌우로 번갈아 가며 경련하기 시작했다.
그 기이한 광경에 여기저기서 웅성거리며 탄성이 터져 나왔다.
“하… 진짜 역겨워 죽겠네.”
슈란이 눈살을 찌푸리며 뇌까렸다.
카엘 역시 굳은 얼굴로 나직이 한탄을 했다.
“하여간 황립 아카데미의 품위는 저놈이 다 떨어뜨리는군. 같은 생도라는 게 부끄러울 지경이다…….”
“…….”
윌터의 기행에 나 역시 잠시 할 말을 잃은 채 조용히 이마를 짚었다.
뭐, 바자회니 성금 전달식이니 하는 게임 내의 작은 이벤트를 기획하긴 한 건 나였지만…….
무슨 세부 설정까지도 이렇게 현실과 동기화가 되어 버렸는지 새삼 개탄스러웠다.
이런 세계관에서 당최 개인기가 웬 말이란 말인가?
그렇게 윌터의 혼란한 개인기가 끝나고.
이어서 다른 생도들도 차례로 인터뷰와 함께 간단한 개인기를 선보이는 시간을 가졌다.
“저는 자랑스러운 황립 아카데미의 생도로서, 앞으로 메트니 제국의 번영과 제국민들의 안녕을 위해 늘 정진하고 노력하도록 하겠습니다.”
대부분 평이하고 교과서적인 대답이 이어졌다.
사실 윌터가 워낙 튀었던 것뿐, 보통 저렇게 흠결 없이 진행하는 게 정석이었다.
무엇보다 황립 아카데미의 생도로서 품위를 지키는 것 또한 중요한 일 중 하나였기에.
이윽고 돌아온 슈란과 카엘의 차례도 비교적 차분하게 마무리되었다.
사회자의 질문 세례에도 슈란은 내내 시크했고, 카엘은 과묵하게 대응했기에 딱히 말이 길어질 일이 없었다.
다만 개인기 시간에 보여 준 슈란의 신속한 검무와 카엘의 현란한 몸놀림은 절로 사람들의 감탄을 끌어냈다.
“오오! 저게 황립 아카데미 생도의 검술인가?”
“허어… 우리 같은 무지렁이들은 눈으로 따라가기도 힘들구먼.”
“저, 저… 쇠꼬챙이 같은 무기는 처음 보는구만!! 거, 볼수록 신기허네.”
그렇게 성적의 역순으로 한 명씩 진행한 인터뷰는 어느덧 나까지 이르렀다.
“자, 기대해도 좋습니다! 이번 순서는 드디어 전체 수석의 영광을 차지한 최우수 생도입니다!”
진행자의 호명에 별수 없이 단상 앞으로 나간 나는 저도 모르게 흠칫했다.
눈앞에 가득 들어찬 마을 사람들은 물론 성금 수혜자로 특별히 초청되어 제일 앞자리에 앉아 있던 어린아이들까지…….
다들 한층 두 눈을 빛내며 나를 빤히 주시하고 있었다.
확실히 수석이란 말 때문인지 지금까지완 확연히 다른 관심을 보이는 모습이었다.
“오오, 저 생도가 이번 기수 수석인가?”
“잘 봐 두게. 저 생도가 나중에 얼마나 유명해질지 모르는 일이니까……. 듣자 하니 아카데미 출신 중에 이름을 날린 이들은 대부분 학기 중에 한 번씩은 수석을 기록했다더군.”
“자네 아직도 못 들었는가? 저 생도는 이미 유명하다고! 아실리 총장은 물론 벌써 루슬란 폐하의 총애를 받고 있다고 하니 말일세.”
“그게 정말인가? 그래 봐야 아직 1학년인데… 그럴 수가 있나?”
“그러니까 역대급 생도라는 거지. 레오너드 대공의 뒤를 이을 재목으로 다들 기대가 적지 않은 모양이야.”
“하핫! 참고로 우리 공방과 특별 협약을 맺은 생도입니다! 저도 이 마을에서 십 년이 넘도록 수많은 생도를 봐 왔지만… 저만한 청년은 아직 보지 못했습죠!!”
금세 여기저기서 수군거리는 소리와 함께 분위기에 은근한 무게감이 실렸다.
꽤 부담되는 분위기…….
나는 가볍게 헛기침을 하고는 인사를 했다.
“안녕하세요, 황립 아카데미의 1학년에 재학 중인 강준식 생도입니다.”
“응?”
“방금 저 생도가 뭐라고 했나? 뭔 준식……?”
“허어, 세상에. 어찌 그런 이름이…….”
“허허… 고것 참, 귀여운 이름이구먼.”
이내 사람들이 여기저기서 술렁였다.
뭐, 이미 어느 정도 익숙한 상황이었기에 조용히 사람들의 반응이 잦아들길 기다렸다.
살짝 당황한 사회자가 가볍게 헛기침을 하고는 얼른 진행을 이어 나갔다.
“역시 범상치 않은 성적답게 이름도 개성이 넘치는군요! 좋습니다. 그럼 영광의 전체 수석을 차지한 우리 미래의 영웅에게 한마디 여쭙겠습니다. 일단 고정 질문입니다. 황립 아카데미는 어떠한 계기로 입학하게 되셨는지요?”
‘그냥 술 처마시고 뻗었다가 일어나 보니 입학해 있었는데요…….’
어쨌든 그리 말할 수는 없는 노릇.
나는 잠시 고민에 잠겼다.
그러던 와중.
문득 내 시야에 동료들의 모습이 들어왔다.
윌터와 카엘은 물론 슈란까지…….
비록 길지 않은 시간이었지만 나름 정이 붙은 녀석들이었다.
그들도 내 대답이 궁금하긴 했는지 지금까지완 다르게 내게 똑바로 시선을 고정하고 있었다.
하긴… 저것들 입장에서도 내 모든 게 미스테리하긴 할 터.
특이한 이름에 출신 성분도 불분명한 데다가 짧은 시간 무서운 성장세까지 보여 줬으니까.
여러모로 궁금할 법도 했다.
하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저들은 그저 순수하게 알고 싶어 하는 눈빛이었다.
바로 나, 강준식이란 인간에 대해…….
‘재밌네…….’
잠시 그런 동료들의 시선을 가만히 마주하던 나는 저도 모르게 헛웃음을 흘렸다.
누군가에게 이토록 순수한 관심을 받아 본 적은 처음이었기에.
학창 시절에도, 군대에서도, 회사에 다닐 때도…….
늘 보이지 않는 곳에서 조용히 눈에 띄지 않고 살아왔기에 지금 상황이 조금 어색하게까지 느껴졌다.
그래서일까?
왠지 이 순간만큼은 거짓말을 하면 안 될 것만 같았다.
나 자신은 물론 온통 내게 관심을 보이는 저들에게까지…….
‘거 참, 그렇게 쳐다보면 멋대로 입을 못 털겠잖아.’
나는 가볍게 헛웃음을 흘리곤 조용히 입을 열었다.
“사실 저는… 지키기 위해 왔습니다.”
뜬금없는 내 말에 진행자가 고개를 갸웃하고는 되물었다.
“네? 무엇을 말씀입니까?”
나는 잠시 말을 고르며 생각에 잠겼다.
그러곤 한층 담담한 어조로 이어 말했다.
“그냥 전부요. 사실 전 여기가 좋거든요…….”
“……?”
여전히 두 눈을 끔뻑이며 의아한 눈길로 날 바라보는 사람들.
나는 그런 이들을 향해 가볍게 웃어 보였다.
“그래서 더 지키고 싶네요. 사실 최근에 더욱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
간단한 문답이 끝나고.
어느덧 주변에 기묘한 정적이 흘렀다.
뭔가 의미심장한 어조라 그런지 다들 잘 이해가 안 가는 표정이었다.
뭐, 상관없었다.
그냥 한 번쯤 저들 앞에서 나름의 진심을 말하고 싶었던 것뿐이니까.
이젠 너무 생생해서 현실과 다를 바 없이 느껴지는 모든 이들에게 말이었다.
나는 그런 내 진심을 담아 잠시 동료들과 묵묵히 아이 컨택을 했다.
“…….”
그 마음을 느꼈는지 그들 또한 한동안 멍한 눈길로 나와 시선을 마주했다.
잠시 후.
슈란이 어김없이 눈살을 찌푸렸다.
“쟨… 또 뭐라고 씨부리는 거야?”
그러곤 헛웃음을 흘리더니 혼자 조용히 고개를 내저었다.
“확실히 예전부터 좀 이상하긴 했는데… 쟤 무슨 정신에 문제 있는 거 아냐?”
“인정한다. 가문의 저주를 공유한 사이지만… 솔직히 그런 면이 없지 않아 있긴 하지.”
“미안하다. 룸메이트 관리 못한 내 불찰이다.”
“…….”
주변이 조용해진 탓인지 그들의 매서운 대화가 고스란히 들려왔다.
‘아니, 저것들이… 사람이 이렇게 진지한데 좀 진지하게 들어 줄 것이지!’
역시 게임 속 캐릭터들이라 그런지 너무 정이 없다.
팍 김이 새버린 나는 멋쩍은 얼굴로 무대를 내려올 채비를 했다.
그 순간.
진행자가 얼른 내 옷깃을 붙들고는 소리쳤다.
“아니, 생도님. 어디 가십니까!? 아직 안 끝났습니다. 개인기 보여 주셔야죠! 다들 한 가닥씩 선보였는데… 여기서 전체 수석의 개인기를 못 본다는 게 어디 말이나 됩니까?”
“…….”
결국 꼼짝없이 붙들려 버린 나는 금세 얼굴이 굳었다.
나 역시 피해 갈 수 없는 시간이 찾아오고 만 것.
“설마 빼실 생각은 아니겠죠? 지금 다들 반짝반짝한 눈으로 생도님만 바라보고 있는 거 안 보이십니까? 하핫!”
그 말에 잠시 굳은 표정으로 단상 밑의 사람들을 훑어보던 중.
‘저, 저건!?’
순간 나도 모르게 눈가를 꿈틀했다.
생각지도 못한 것이 시야에 들어왔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