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Academy's Underworld Player RAW novel - Chapter 15
15화
“야, 강준식. 나랑 한판 붙자.”
순간 분주히 교실을 빠져나가던 생도들이 멈칫했다.
그리고 다들 거의 동시에 이쪽을 응시하는 것이 느껴졌다.
루안과 카엘의 떡밥도 꺼져 갈 때쯤 또 하나의 화젯거리가 생겨날 분위기.
이를 민감하게 느낀 생도들의 눈빛이 반짝였다.
“뭐?”
“짱 뜨자고. 루안이랑 카엘도 한 따까리 했잖아.”
슈란의 거침없는 결투 신청에 나는 잠시 벙찐 채 그녀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그녀는 안 될 거 뭐 있냐는 듯 다시금 은근한 미소를 머금었다.
“이쪽도 서열 정리 함 해야지. 안 그래?”
“…….”
나는 애써 당혹감을 숨긴 채 입술을 굳게 다물었다.
루안과 카엘도 이쪽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것이, 흥미를 숨기지 않는 기색이었다.
하여간 이래서 슈란이 제일 위험했다.
그야말로 어디로 튈지 모르는 광녀(狂女) 그 자체였으니까.
이 게임에서 난이도가 제일 높은 숙련자용 캐릭터.
루안처럼 딱히 재능충도 아니고, 카엘처럼 특수 능력이 있는 것도 아니지만…….
특유의 집요함으로 원하는 것은 반드시 얻고야 마는 지독한 성정의 소유자가 바로 슈란이었다.
스토리 또한 예측이 불가능할 정도로 제멋대로 진행돼서 온전히 따라가기가 쉽지 않은 캐릭터였다.
창조자인 나조차도 그녀의 다음 행동이 예상이 안 될 정도였으니까…….
아무래도 루안과 카엘의 결투가 그녀의 호승심을 자극한 모양.
‘아니, 근데 그걸 왜 나한테 표출하냐고…….’
내가 두 사람보단 만만해서 그런가?
나는 그 짧은 사이에 머릿속으로 별별 생각을 다했다.
어떻게든 이 빌어먹을 상황에서 빠져나갈 방법을 강구하기 위해.
당연한 일이었다.
난 지금 아카데미에서 이런 애들과 투닥거릴 시간이 없었다.
내 입장에선 어차피 좀비가 출몰하면 다들 한입에 뚝딱 당해 버릴 놈들…….
그런 것들이 서로 아옹다옹하는 게 얼마나 우습겠는가?
“싫은데?”
결국 아무리 통밥을 굴려도 직설적으로 거절하는 것만큼 좋은 방법이 떠오르질 않았다.
어차피 결투에 응할 생각은 없었고, 어설프게 말을 빙빙 돌려 봐야 슈란에겐 통하지 않을 것 같았기에.
“왜? 쫄았냐?”
슈란이 기세 좋게 물어 왔다.
‘하여간 쟨 입만 열면 저 소리네…….’
다소 도발적인 그녀의 물음에 나는 별 고민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응, 쫄았어. 너 무서워.”
“……?”
미처 예상치 못한 답이었는지 슈란이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어느덧 책을 갈무리하여 품에 챙긴 나는 그런 슈란을 향해 빙긋 웃어 보였다.
“미안, 최상급 또라이와는 최대한 엮이지 않는단 주의라서…….”
“!?”
순간 두 눈을 부릅뜬 슈란의 표정이 빠르게 굳어 갔다.
그와 동시에 여기저기서 웃음을 참지 못한 생도들의 쿡쿡거리는 소리가 이어졌다.
허나, 슈란이 싸늘한 표정으로 고개를 돌리자 산발적인 웃음소리도 뚝 멎어 버렸다.
그리고… 슈란이 다시 고개를 돌렸을 때.
그 자리에 나는 없었다.
그때를 틈타 얼른 교실 문 쪽으로 빠르게 걸어가고 있었기에.
“야, 강준식!”
뒤편에서 들려온 슈란의 목청 좋은 외침.
잰걸음으로 움직이던 나는 곧장 달리기로 전환했다.
후다닥!
나는 교실 문을 지나쳐 나오자마자 빠르게 복도를 내달렸다.
이미 그동안 수없이 쫓기면서 빤스런에는 도가 튼 나였다.
“강준식! 너 이 새끼… 거기 안 서!?”
하여간 추적자들은 어차피 안 설 걸 알면서도 꼭 저 소린 빼먹지 않는다.
누가 게임 속 캐릭터 아니랄까 봐 클리셰도 야무지게 챙기는 모양.
빠르게 계단을 내려온 나는 주변에 사람이 없는 걸 확인하곤 황급히 그림자 속으로 다이빙했다.
츠츠츠츳.
뒤늦게 계단을 따라 내려온 슈란이 다급히 고개를 돌리며 나를 찾았다.
이내 내가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진 걸 확인한 그녀가 신경질적으로 머리를 마구 헤집었다.
그 거친 움직임에 붉은 머리가 마구 흐트러졌다.
“아오, 이 개 같은 자식… 하여간 도망은 전교 1등이라니까!”
뒤늦게 구경을 하러 따라 내려온 생도들이 웅성거리며 그런 슈란을 힐끔거렸다.
“뭘 봐, 이 새끼들아!? 구경났어?”
슈란의 외침에 움찔한 구경꾼들이 썰물처럼 우르르 다시 올라가 버렸다.
그 와중에 루안과 카엘이 여유롭게 계단을 내려왔다.
두 사람은 씩씩거리는 슈란을 힐끔 보곤 옅은 미소를 머금었다.
마치 ‘우리도 못 잡았는데 너라고 별수 있겠냐…….’ 라고 말하는 듯한 표정.
“웃어?”
그 미묘한 미소를 예민하게 느낀 슈란이 그들을 홱 쏘아보았다.
그러자 두 사람의 발걸음도 한층 빨라졌다.
그러던 와중 루안이 들릴 듯 말 듯 아주 작게 중얼거렸다.
“야, 최상급 또라이 화났다…….”
“뭐, 이 새끼야!?”
후다닥!
한층 험악해진 슈란의 목소리에 루안도 빠르게 시야에서 사라져 버렸다.
카엘도 조용히 눈치를 보며 빠르게 자리를 뜬 건 물론이었다.
“하아, 강준식 이 새끼… 잡히기만 해 봐!!”
분을 참지 못한 슈란의 고함이 아카데미에 울려 퍼졌다.
* * *
“하나… 둘. 하나… 두울…….”
나는 가슴을 파르르 떨며 안간힘으로 상체를 일으켰다.
시작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벌써부터 현기증이 났다.
“흐아, 개빡세네…….”
결국 더는 버티지 못하고 그대로 바닥에 대자로 널브러지고 말았다.
나는 거친 숨을 몰아쉬며 한동안 심호흡을 했다.
기본 스탯이 너무 딸리니 나름 운동이라도 해서 체력을 보강하고 싶었다.
허나, 운동이라곤 회사에서 주말에 억지로 불려 나와 가끔 등산을 했던 게 전부…….
그것조차 윤 부장의 따가운 설교를 감내하며 간신히 정상을 밟았던 터였다.
변명을 하자면 출퇴근을 하며 업무를 온전히 수행하는 데만 해도 기력이 모자랐다.
매일 아침에 출근해 저녁 11시까지 야근을 하기 일쑤.
당최 그런 상황에 어찌 운동을 하겠는가?
심지어 주말에 출근하는 일도 다반사였다.
그래도 참고 버틸 수 있던 건 언젠가 내가 직접 기획한 게임을 만들 수 있을 거란 희망 하나 때문이었다.
어렸을 때부터 좋아했던 게임을 내 손으로 직접 기획하고 만든다는 것.
그건 내게 상상만으로도 꽤 황홀한 일이었기에…….
‘뭐, 그 꿈도 개박살이 나고 이렇게 미완의 게임으로 들어와 버렸지만…….’
그래도 간만에 이렇게 의욕이 샘솟는 걸 보면 아직 내 열정도 죽지 않은 모양이었다.
영혼을 갈아 만든 기획서가 휴지통으로 들어갔을 때 완전히 죽어 버린 줄 알았는데 말이었다.
잠시 바닥에 대자로 뻗어 있던 나는 저도 모르게 멍청한 웃음을 흘렸다.
“하아… 하아… 큭큭…….”
“뭘 쪼개? 운동은 그따위 엉망으로 조지고는.”
“……?”
대뜸 날 내려다보는 윌터의 모습에 나도 모르게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어, 언제 온 거야?”
“막 그 저질 윗몸 일으키기 시작했을 때부터.”
‘아니, 그럼 다 본 거잖아…….’
나는 잠시 내가 혼자 운동하던 모습을 되새겼다.
시작하자마자 가슴을 파르르 떨며 벌게진 얼굴로 간신히 상체를 일으키던 모습…….
연신 끙끙거리며 똥 싸는 소리를 곁들인 건 덤이었다.
“…….”
순간 나도 모르게 얼굴을 감싸 쥐었다.
“그래도 쪽팔린 건 아나 보네?”
차마 고개를 들지 못하는 내 모습에 윌터가 픽 웃었다.
그러곤 내 옆에 쪼그리고 앉아 신기한 동물이라도 보듯 날 관찰했다.
“야, 너 이번 적성 검사에서 활 썼다며? 그것도 아주 기가 막히게 쐈다고 하더만.”
“뭐, 그냥저냥…….”
나는 적당히 대충 흘려 말했다.
아무래도 자세한 내용은 듣지 못한 모양.
“참 신기한 놈일세. 암만 봐도 역대급 약골인데 말이지……. 뭐, 굼벵이도 구르는 재주는 있다 이거지?”
윌터는 꽤 흥미로운 눈빛으로 날 빤히 바라보았다.
내가 활을 잘 쐈다는 말이 꽤 인상 깊었던 모양.
아마 기사와는 달리 용병 출신인 그는 특정 무기를 편애하는 경향이 없어서 더 그랬는지도 몰랐다.
심지어 용병들은 검보다 활을 더 선호하기도 했다.
아무래도 지극히 실용적인 성향을 띤 터라 활을 더 고평가할 수밖에 없는 것.
아군의 피해를 최소화하고 적에게 타격을 줄 수 있는 무기가 아닌가?
매일 생사를 넘나드는 전투를 지속해야 먹고살 수 있는 용병들로선 그저 안 다치고 잘 죽이는 게 최고였다.
“너… 활 쏘려면 힘 좋아야 하는 건 알지?”
“응? 뭐, 알기야 하는데… 왜?”
뜬금없이 이런 건 왜 묻는 걸까?
무심결에 고개를 끄덕이자 윌터가 이를 드러내며 씨익 웃어 보였다.
“좋아, 그럼 이 몸이 특별히 네 저질스러운 몸을 개조해 주도록 하지.”
“……?”
“내가 빡시게 운동 계획 짜서 옆에서 보조해 주겠다, 이 말이야!”
나는 잠시 멍한 얼굴로 두 눈을 끔뻑였다.
별안간 윌터가 내 등을 팡팡 두드렸다.
“컥…….”
흡사 곰이 두드리는 것만 같은 묵직한 충격에 절로 몸이 앞으로 휘청였다.
얜 진짜 인간 탱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뭘 그렇게 멍청히 앉아 있어? 다시 해 봐.”
“뭐를?”
“윗몸 일으키기 말이야. 그렇게 하는 거 아니라고, 새끼야.”
어느덧 내 앞으로 와 내 하체를 단단히 움켜쥔 녀석이 씨익 웃어 보였다.
“좋아, 내가 너 한 달 안에 사람 만들어 본다.”
“아, 아니 잠깐!! 굳이 번거롭게 그렇게까지 할 필요는…….”
“괜찮아. 그래도 명색이 룸메이튼데… 이 정도쯤은 기꺼이 도와줘야지.”
뭔가 좆됐다 싶은 위기감에 다급히 만류했지만…….
이미 결정해 버린 듯 윌터는 꿈쩍도 안 했다.
“자, 허리 바닥에 딱 박고! 복부에 힘 빡 주고! 내려올 땐 최대한 천천히… 자, 해 봐!!”
“자, 잠깐…….”
나는 미꾸라지처럼 바둥거리며 어떻게든 빠져나오려고 했지만.
이미 그의 괴물 같은 팔뚝에 단단히 붙들려 버린 터라 옴짝달싹할 수가 없었다.
“뭘 그렇게 말이 많아!? 일단 시작해!”
“네… 넵!!”
윌터의 우렁찬 기합과 무시무시한 기세에 나도 모르게 구호에 맞춰 운동을 시작했다.
“허나, 둘… 헛, 둘… 헛, 둘!!”
확실히 옆에서 잡아 주고 구호까지 외쳐 주는 사람이 있으니 아까보다 한층 힘이 나는 기분이 들기는 했다.
“허리 쫙 펴고!! 모든 힘의 근원은 허리와 복근에서 나온다! 항상 허리 의식하고, 복근으로 움직여! 자, 하낫… 둘!!”
“하낫… 둘!!”
정신을 차리고 보니 어느새 비지땀을 흘리며 미친 듯이 운동을 하고 있었다.
그렇게 기숙사는 땀내 나는 헬스장으로 뒤바뀌고 말았다.
의도치 않게 지옥의 피티를 시작하고 만 것…….
졸지에 곰 같은 트레이너에게 잘못 걸린 탓이었다.
대체 어쩌다 이렇게 된 건지는 모르겠지만…….
“자, 마지막으로 한 번 더!”
“끄으으응차!”
“자, 진짜로 마지막 한 번만 더!”
“끄윽… 끄그그그극!”
“좋아, 잘했어! 진짜 진짜 마지막. 딱 한 번만 더!!”
“아니… 씨발!! 끄으으윽… 왜 안 끝나냐고!?”
“진짜 마지막. 찐막이야! 한 번만 더 얼른……!!”
“끄으으으… 못해! 못한다고 씨발!!”
“할 수 있어. 할 수 있다고 씨발!!”
“끄아아아아아!”
나는 거의 울 것 같은 표정으로 이를 악문 채 몸을 움직였다.
현대에서도 안 하던 피티를 여기서 하게 될 줄은 정말 꿈에도 몰랐다.
“잘했어! 입가심으로 마지막 딱 한 번만 더~!!”
순간 발끈해서 놈의 면상에 주먹을 날릴 뻔했다.
수인이고 나발이고 정말 그랬을지도 몰랐다.
띠링.
타이밍 좋게 울린 익숙한 알림음만 아니었다면 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