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Academy's Underworld Player RAW novel - Chapter 155
155화
“좀 더 자세히 봐. 마음의 눈으로 말이야.”
“…….”
평소와 달리 한 치의 흔들림도 없는 내 눈빛과 담담한 어조.
결국 슈란은 자리에 붙박인 채 한동안 내게 시선을 고정했다.
작게 떨리는 두 눈동자는 그녀의 동요를 고스란히 보여 주었다.
“그… 마음의 눈으로 본다는 게… 대체 어떤 건데?”
슈란은 도저히 확신이 안 서는 듯 긴가민가하는 어투로 조심스레 물었다.
“하아, 이렇게까지 말해 줬는데 아직도 무슨 말인지 모르겠어?”
“…….”
왠지 모르게 살짝 위축된 슈란.
나는 그런 그녀의 양어깨를 거칠게 움켜쥐었다.
“……!?”
순간 두 눈을 동그랗게 뜬 슈란을 향해.
나는 한층 비장한 어조로 중얼거렸다.
“용(龍)의 눈으로 봐라.”
“……?”
내 의미심장한 말에 두 눈을 끔뻑이는 슈란.
어느덧 내 입가엔 씁쓸한 미소가 어렸다.
제자가 스스로 깨우치길 바라는 마음에 바로 답을 알려 주지 않는 스승의 애틋한 마음처럼…….
“스스로 탐구해 봐. 답은 네 안에 있으니까…….”
그리고.
몹시 혼란스러워 보이던 그녀를 향해 나지막이 덧붙였다.
“슈란, 난 널 믿어.”
어느덧 날 향한 그녀의 눈동자가 한층 격하게 떨렸다.
그 감정을 애써 억누르듯 조금 전보다 숨소리가 거칠어졌다.
나는 여전히 담담한 눈길로 중얼거렸다.
“너라면 분명 그 검의 진짜 모습을 볼 수 있을 거야.”
“내가… 대체 어떻게?”
안타깝게도 자신에 대한 믿음을 잃어버린 듯 떨리는 목소리로 내게 답을 구하는 슈란.
나는 방황하는 그 가여운 영혼을 보며 작게 미소를 흘렸다.
“왜냐하면… 그 검은 너와 닮아 있거든.”
“……?”
잠시 그녀의 눈빛에 의아함이 스치던 찰나.
한층 낮게 깔린 목소리로 말했다.
“아직도 모르겠어? 잔뜩 녹이 슬고 형편없어 보이지만… 실은 그 안에 세상에서 제일 예리한 날을 숨기고 있잖아.”
“!?”
몹시 떨리는 눈길로 날 바라보던 슈란.
그런 그녀를 둔 채 몸을 돌려 걸음을 옮겼다.
“뭐, 이쯤 했음 말해 줄 건 다 말해 준 거 같네. 만약 이렇게까지 말해 줬는데도 모른다면… 내가 널 잘못 본 거겠지.”
“…….”
“천하의 슈란 클라리네스가 고작 그 정도였다 생각할 수밖에…….”
마지막으로 적당히 가벼운 도발까지 섞어 주고는 총총 자리를 떴다.
슈란은 여전히 반쯤 넋이 나간 듯 녹슨 검을 바닥에 늘어뜨린 채 내게 망연히 시선을 고정했다.
* * *
‘크흐흡, 성공이다…….’
슈란에게 몸을 돌리자마자 애써 참고 있던 입꼬리가 꿈틀거렸다.
그제야 단단히 붙들고 있던 안면 근육도 마구 경련하기 시작했다.
‘아, 웃참 난이도 헬이잖아.’
나름 꽤 위험한 순간이었다.
혹시라도 중간에 입꼬리가 올라갔다면 공든 탑이 와르르 무너지는 것이나 다름없었기에.
그래도 분위기를 보아하니 대충 먹혀든 것 같다.
어쨌든 로제 글라디우스에 진짜 모습이 숨겨져 있을 거라 여기도록 하지 않았는가?
물론 틀린 말은 아니었지만…….
아직은 좀 시간이 필요한 일이었다.
그때까지 저 성질 급한 슈란이 검을 품게 하려면 어떻게든 입을 털고 수작을 부리는 수밖에 없었다.
‘휴우… 이게 되네.’
그래도 그나마 허튼수작이 먹힐 수 있던 건, 결국 내가 그동안 쌓아 온 유명세가 있기 때문이다.
유명해지면 똥을 싸도 박수를 쳐준다고 하지 않는가?
그 말대로 그동안 슈란에게 뭔가 있어 보이는 이미지로 자리 잡다 보니 적당히 분위기를 잡고 대충 헛소리를 싸질러도 어느 정도 먹히는 분위기였다.
그야말로 입으로 똥을 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상황.
-용의 눈으로 봐라.
실제로 아무 말이나 막 내뱉다 보니 할 말이 없어져서 무심코 다른 게임의 유명 대사를 대충 싸지른 것.
허나, 그 와중에 슈란은 그 말이 꽤 의미심장했던 모양이다.
“뭐, 어쨌든… 이걸로 슈란은 한동안 얌전해지려나?”
나는 여전히 저편에 우두커니 서 있던 슈란을 힐끔 보고는 씨익 미소를 흘렸다.
한동안 다시 질풍노도와 같은 생각과 고민의 늪에 빠지긴 하겠지만…….
그래도 난 최선을 다했다.
어쨌든 로제 글라디우스가 천하의 명검인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니까.
그것도 슈란과 영혼의 듀오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찰떡궁합을 자랑하는.
본래 엔딩까지 슈란의 곁에서 함께 악명을 쌓아 가는 그녀의 상징과도 같은 검…….
-아직도 모르겠어? 잔뜩 녹이 슬고 형편없어 보이지만… 실은 그 안에 세상에서 제일 예리한 날을 숨기고 있잖아.
시간을 벌기 위해 헛소리를 지껄이긴 했지만.
적어도 그 말은 백 프로 진심이었다.
[축하합니다! 주요 캐릭터에 유의미한 영향을 끼쳤습니다. ‘행사한 영향력- 720’] [게임의 스토리가 소폭 변화할 수 있습니다.] [보상으로 720GP를 획득합니다.]‘오랜만이네…….’
간만의 GP 획득 메시지.
이걸로 주요 캐릭터에게 또 한 번 큰 영향력을 행사했다.
분명 이 변화는 슈란에게 최상의 결과를 도출할 터.
“…….”
나는 잠시 저 멀리 망연히 서 있던 슈란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이윽고 미련 없이 발걸음을 뗐다.
어차피 이제부턴 온전히 그녀의 몫이었으니까.
* * *
“드디어 해방이다!! 아우우우우우~!!”
진정한 종업을 알리는 마지막 종소리와 함께.
윌터가 두 손을 번쩍 치켜들며 허공에 하울링을 했다.
잠시 그 모습을 빤히 바라보던 나는 저도 모르게 실소를 흘렸다.
“야, 늑대냐? 왜 그렇게 울부짖는데?”
“어? 아, 아니… 그냥 너무 기쁜 나머지 그만…….”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윌터.
그런 녀석을 보자 더욱 장난기가 발동했다.
“아니, 성대모사야? 뭐가 이렇게 실감 나? 난 무슨 진짜 늑대라도 출몰한 줄 알았네…….”
“뭐, 뭔 소리냐!? 너 이 자식… 엄연한 사람한테 그런 말 실례라고, 이 새끼야!!”
“아니면 아닌 거지 흥분은 왜 하냐? 그러니까 더 수상하네. 혹시… 너 진짜로 수인 이런 거 아니야?”
“…….”
나는 급속히 얼굴이 굳는 윌터의 어깨를 격하게 두드려 주었다.
“아니, 뭔 농담도 못하나. 왜 이렇게 정색해? 웃어, 인마.”
“하하… 멍청한 녀석. 나도 그냥 장난친 것뿐이라고!! 단순하기는…….”
입가를 파르르 떨며 어색한 미소를 지어 보이는 윌터.
나는 픽 코웃음을 흘리고는 강의실을 빠져나갈 채비를 했다.
“근데… 너 방학 때 어디 갈 거냐?”
“응?”
뒤늦게 정신을 차린 윌터의 물음에 나는 잠시 벙찐 표정으로 녀석을 빤히 바라보았다.
“아니, 방학이니까 집으로 갈 거 아냐? 집이 어디냐고.”
“…….”
잠시 뇌 정지가 온 나는 태연히 답했다.
“집 안 갈 건데?”
“뭐?”
“그냥 기숙사에서 혼자 개인 수련하면서 여기저기 돌아다닐 거야.”
“방학인데… 집에 안 간다고?”
“으응.”
내 어색한 대답에 잠시 윌터가 날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왠지 추궁을 받는 느낌이 순식간에 공방이 뒤바뀐 분위기였다.
“크흠… 뭘 그렇게 봐? 방학 땐 꼭 집에 가야 한다는 법이라도 있어?”
그 불편한 분위기에 내가 헛기침을 하며 중얼거리던 찰나.
대뜸 뒤편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강준식!”
“……?”
뒤를 돌아보자 어느덧 뒤편에 서 있던 카엘과 슈란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뭔가 심상치 않은 표정을 보아하니 아무래도 나와 윌터의 대화를 고스란히 다 들은 모양.
저벅저벅.
어느덧 내 곁으로 다가온 카엘이 내 어깨에 가만히 손을 짚었다.
내가 의아한 얼굴로 놈을 올려다보자 녀석이 입가에 씁쓸한 미소를 머금었다.
“다 안다. 무릇 저주받은 가문의 저택이란 대부분 비슷한 풍경이지. 외롭고 황량하며 쓸쓸한… 왠지 혼자선 가고 싶지 않은 분위기가 감도는 그 불길한 기운 말이야…….”
“……?”
두 눈을 끔뻑이며 카엘을 빤히 바라보자.
녀석이 한층 낮게 깔린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강준식, 우리 집으로 가자. 물론 데로트 가의 저택 또한 황량하기 그지없지만…….”
잠시 할 말을 고르듯 생각에 잠기던 카엘.
녀석이 다시금 입을 열었다.
“…그래도 우린 같은 처지이니 그 황량함마저 이해해 줄 수 있겠지. 그렇지 않나?”
혼자 무게를 잡고 잔뜩 진지해져 버린 카엘.
그 모습에 나는 물론 슈란과 윌터까지 질린 표정을 지었다.
“…….”
뭐, 텅 빈 대저택을 생각하면 녀석의 말도 아예 이해 못할 바는 아니지만…….
“어휴, 싸대기 마려워. 아주 혼자 세상 불쌍하고 쓸쓸한 척은 다 하네.”
슈란은 그런 카엘을 벌레 보듯 흘기며 치를 떨었다.
허나, 카엘은 그녀의 푸념을 완전히 무시한 채 내게 시선을 고정했다.
“어떠한가? 비극의 운명을 지닌 두 남자가 함께 무(武)에 대한 토론과 수련을 병행하며 방학을 알차게 보내는 거지. 우리 가문의 저택은 무척 넓고 텅텅 비어 있으니 아마 함께 쓰기에 부족함도 없을 것이다.”
“…….”
뭐라 대답을 해야 할지 몰라 잠시 묵묵히 앉아 있던 와중.
슈란이 우두커니 서 있던 카엘을 옆으로 확 밀친 채 성큼 내게 다가왔다.
“야, 강준식.”
“……?”
“저딴 음침한 새끼 말고… 우리 집으로 가.”
태연한 어조로 툭 내뱉는 슈란의 말에 나는 물론 윌터와 카엘도 놀란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클라리네스의 가주는 어지간한 실력자나 권력자가 아니라면 일절 교류를 하지 않는 것으로 유명했으니까.
게다가 독불장군 같은 슈란이 누군가를 집에 초대했다는 것만으로도 꽤 의외인 상황.
“원래 아무나 초대 안 하는데… 강준식, 너라면 괜찮을 것 같아. 개인적으로 물어보고 싶은 것도 있고…….”
슈란이 애써 내 시선을 피한 채 제 허리춤에 있던 칼자루를 더듬거렸다.
그새 임시 검집을 구한 그녀는 늘 그것을 허리춤에 달고 다녔다.
아무래도 내가 한 말이 어느 정도 효과가 있기는 했던 모양.
“아마… 분명 아버지도 좋아하실 거야.”
“…….”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본인도 당장 확신은 안 서는 듯 영 나와 눈을 마주치질 못했다.
‘좋아하긴 개뿔…….’
앞서 말했듯 클라리네스의 가주는 상대가 어지간한 권력자나 실력자가 아니라면 사람 취급도 하지 않는 성정의 소유자였다.
게다가 보수적인 성향이 무척 강해서 내 머리색이나 눈동자의 색깔조차 문제 삼을 수 있는 자였다.
‘그건 슈란 본인이 누구보다 잘 알 텐데…….’
그럼에도 애써 내게 초대를 권유하는 슈란도 조금 의외이긴 했다.
그렇게 갑작스러운 돌발 상황에 잠시 생각에 잠겨 있던 와중.
“닥쳐, 이 새끼들아!! 느그들은 대체 강준식이 누구의 룸메이트라 생각하는 게냐!?”
윌터도 발끈하며 가세했다.
그러곤 뭔가 결심한 듯 한층 비장한 얼굴로 말했다.
“강준식! 우리 집… 아니, 우리 식구들한테 가자!! 사실 우리가 좀 대식구거든. 아마 저런 삭막한 자식들의 저택 따위보단… 우리 쪽이 훨씬 더 정감 있고 배울 것도 많을 게다!!”
“…….”
이게 바로 말로만 듣던…….
무수히 많은 악수의 요청?
생각지도 못한 초대 러쉬에 나는 잠시 벙찐 얼굴로 생각에 잠겼다.
‘대체 어쩌다 일이 이렇게 됐지?’
본래 주인공 캐릭터들은 방학 때 각자의 고향으로 돌아가 이런저런 퀘스트와 함께 개인 수련을 하며 폭풍 성장을 하도록 되어 있었다.
그 본 시나리오에 내가 개입하는 게 좋은 일인지 영 확신이 서질 않았다.
아직은 내가 메인 시나리오를 완전히 휘어잡고 주도할 정도의 성장을 이룬 건 아니었으니까.
‘흐음…….’
그래도 가만히 생각해 보니 방학 기간을 이용해 주인공 캐릭터와 좀 더 깊은 관계를 맺고, 그들의 성장을 가속화시켜 주는 것도 그리 나쁜 선택은 아닌 듯했다.
어쨌든 내가 개입하여 개인 지도를 한다면 주인공들을 더욱 빠르게 성장시켜 주는 것도 어려운 일은 아니었으니까.
“강준식, 잘 생각하도록. 저주받은 가문은 같은 처지가 아니라면 타인에게 영원한 이방인에 불과하다는 것… 너도 모르는 바는 아닐 거다.”
“강준식, 너 잘 생각해!! 이 몸이 직접 클라리네스 가에 초대까지 해 줬는데… 설마 이 희귀한 기회를 네 발로 차 버리진 않겠지? 두 번은 없으니까 심사숙고 해야 할 거야!!”
“강준식, 너 이 새끼… 설마 지금 이 쉬운 문제를 고민하고 있는 건 아니겠지!? 난 우리 강준식이 뜨거운 룸메이트의 의리를 저버리진 않을 거라 믿는다.”
“…….”
경쟁이라도 하듯 내게 상체를 들이민 채 선택을 재촉하는 세 사람.
흡사 미연시의 선택지를 보는 듯한 광경이었다.
‘흐음…….’
나는 잠시 모든 선택지를 저울질 하며 고민에 고민을 거듭했다.
그리고…….
‘그래, 결심했어!’
마침내 선택을 했다.
지금 이 상황에서 내가 둘 수 있는 최고의 한 수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