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Academy's Underworld Player RAW novel - Chapter 179
179화
왁자지껄.
테네브리아에게 카즈란 영지를 탈환한 기념으로 조촐한 행사가 열렸다.
맥주잔을 든 채 막 건배사를 읊으려던 험프리가 잠시 자리에 멈칫했다.
“뭐, 이번에 체면은 좀 구겼지만…….”
멋쩍은 얼굴로 잠깐 고민하던 그가 맥주잔을 쥔 손에 한층 힘을 주었다.
“그래도… 여전히 멋지고 자랑스러운 우리 붉은매 용병단을 위하여!!”
“위하여!!”
이내 용병들의 걸쭉한 후창이 이어졌다.
영지에서 다시 합류한 용병들까지 더해지자 확실히 용병단은 상당한 규모를 자랑했다.
물론 험프리 말대로 이번에 체면은 좀 구겼지만…….
뭐, 그건 워낙 테네브리아가 규격 외의 집단이라 그럴 뿐.
이만하면 용병들도 꽤 선전한 편이었다.
‘게다가…….’
나는 맥주를 홀짝이며 저편의 용병왕을 힐끔 바라보았다.
나름 조촐하게 즐기는 자리가 마련됐음에도 그는 무리에 끼지 않았다.
그저 무언가 생각에 잠긴 듯 혼자 입술을 굳게 다문 채 외벽에 기대어 서 있을 뿐.
“…….”
나는 한동안 그의 모습을 두 눈에 담았다.
만약, 그가 제대로 마음을 먹고 부딪쳤다면 이번 일도 자력으로 해결할 수 있었을지도 몰랐다.
그만큼 그가 보여 준 무위는 나 역시 등골이 서늘해질 정도였으니까…….
허나, 무용하게 단원들을 잃고 싶지 않은 마음에 후일을 도모하고 제 발로 테네브리아에 잡힌 모양.
또 두 눈으로 직접 놈들의 정체와 정보를 캐내기 위한 목적도 있는 듯했다.
아마 누군가 다시 용병단을 재정비하고 이끌어 제대로 된 후속 공격을 해 줄 것이라 믿은 것.
그리고…….
용병단이 재차 공격을 감행했을 때 그는 내부에서 최대한 혼란을 일으킬 계획까지 지니고 있었다.
확실히 무력뿐 아니라 다른 방면으로도 꽤 무서운 면모가 있는 사내였다.
아무렴… 괜히 중간 보스가 아니겠지.
한창 생각에 잠겨 있던 와중.
“캬우웅…….”
어느새 리즐이 눈치를 보며 슬그머니 내 곁으로 다가왔다.
뚫어져라 날 주시하는 시선.
나는 왠지 부담스러운 눈빛에 일부러 눈을 마주치지 않고 슬며시 맥주를 기울였다.
허나, 그녀의 집요함은 상상 이상이었다.
마치 고양잇과 동물이 몸을 낮춘 채 사냥감을 주시하듯 꽤 오랫동안 인내심 있게 날 응시했다.
왠지 식은땀이 날 것 같은 순간…….
어느새 곁으로 다가온 윌터가 히죽 웃으며 중얼거렸다.
“여어. 강준식, 이 녀석… 왜 내 어여쁜 동생을 외면하는 게냐? 엉!? 예전엔 네가 먼저 소개시켜 달라고 하더니… 설마 벌써 질려 버린 거냐? 그래서 이렇게 내팽개치는 거냐고!”
“무슨 소리야!? 대체 내가 언제 소개를 시켜 달라고… 그리고 내팽개치긴 뭘 내팽개쳤다는 거…….”
“강준식, 이거 이 자식… 이제 보니 나쁜 남자였구만!? 순진한 내 동생의 순정을 짓밟았다고!! 동네 사람들!! 여기 이놈이……!!”
“…….”
졸지에 나쁜 남자가 되어 버렸다.
그 모습에 용병들이 이쪽을 힐끔거리며 히죽 웃었다.
짓궂게도 묘한 눈길로 휘파람을 부는 이도 있었다.
“흐흐… 좋을 때다, 좋을 때야. 청춘이구만.”
“리즐 저 녀석, 그동안 사냥이 제일 재밌다고 노래를 부르더니… 더 재미있는 게 생겨 버린 모양인데?”
“이제 우리 리즐도 다~ 컸구만.”
“이봐, 우리 리즐 눈에 눈물 나게 하면 피눈물을 흘리게 해 줄 테니 각오하라고! 그 녀석은 우리 붉은매 용병단의 딸이니까.”
저마다 한마디씩 얹는 용병들의 장난 섞인 야유.
허나, 말은 그렇게 해도 그들 역시 이 상황을 즐기고 있는 듯했다.
용병들의 짓궂은 야유에 리즐이 얼굴을 붉힌 채 그들을 향해 날 선 반응을 보였다.
허나, 한편으론 또 은근히 그 어시스트가 싫지만은 않은 기색이었다.
다들 한마음으로 밀어주는 분위기였으니까.
‘내 의사는 없는 거냐…….’
잠시 헛웃음을 흘리고 있던 찰나.
용병왕이 나지막한 어조로 날 불렀다.
나는 이때다 싶어 얼른 그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어? 어디 가는 거…….”
다들 놀려 먹기 좋은 먹잇감을 놓쳐서 그런지 아쉬운 기색이었다.
허나, 무려 단장의 호출이었기에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없었다.
내가 그에게 다가가 가볍게 목례를 하자 단장이 입가에 옅은 미소를 머금었다.
“자네에겐 다시 한번 감사를 표하고 싶군.”
“괜찮습니다. 저도 그저 필요해서 한 일이니까요.”
“그래, 분명 잊지 말아 달라고 했지…….”
잠시 그 말을 곱씹듯 생각에 잠기던 용병왕.
어느덧 그가 다시금 나와 시선을 마주했다.
“자넨… 그들을 알고 있지?”
“…….”
잠시 침묵하던 나는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저 질문이 무얼 의미하는지는 충분히 느껴졌으니까.
“혹시 이번 일… 미래에 닥칠 비극의 징조라 봐도 무관한가?”
“……!?”
순간 나도 모르게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비록 구체적이진 않지만 상당히 진실에 근접한 예측이었기에.
“역시… 그렇군. 안 그래도 최근에 흉흉한 소식이 많이 들려왔던 터라… 아마도 이번 일 역시 그 연장선상에 있을 거라 생각했네.”
“그렇군요.”
하긴, 그라면 분명 여기저기 확실한 정보책을 지니고 있을 테니…….
그러한 분위기를 감지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그렇다면 역시 그들을 저지해야겠군…….”
“네, 그냥 방치한다면 앞으로 더 큰 위기가 올 테니까요.”
“…….”
꽤 진지한 얼굴로 답하는 내 모습에 그가 한동안 묵묵히 나와 시선을 마주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마침내 그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오늘부로 우리 붉은매 용병단은 자네를 최우선 고객으로 두겠네.”
“!?”
나는 놀란 눈으로 그를 빤히 바라보았다.
그 말인즉슨.
언제, 어디서 무슨 일이 있든 내 의뢰를 우선시하겠다는 뜻일 터.
생각보다 묵직한 무게감을 지닌 말이었다.
이만한 규모의 용병단이라면 필시 높은 지위를 지닌 VIP 고객들도 많이 있을 테니까.
그들을 모두 배제하고 나를 우선하겠다는 건 결코 쉬운 선택은 아닐 터였다.
어쩌면 오랫동안 쌓아 온 그들의 경제 기반이 무너질 수도 있는 일일 테니까.
“정말… 그래도 괜찮습니까?”
“물론 자네에겐 일절 의뢰비도 받지 않겠네.”
내 물음에 한층 확신에 찬 어조로 답하는 용병왕.
그 모습에 도리어 내가 당황할 정도였다.
“왜… 그렇게까지?”
“자네가 그들을 상대하는 모습을 볼 때 결심이 섰네.”
“제가 그들을… 상대할 때요?”
“악을 쓰고 부딪치더군. 거의 인생을 통째로 건 사람처럼 말이야.”
“…….”
“나도 나름 절박한 삶을 살아왔다 생각했지만… 언뜻 보여 준 자네의 기운은 의아할 정도였지.”
내가 그랬나?
솔직히 나는 전투에 여념이 없었기에 돌이켜 봐도 기억에 없었다.
“자네는… 대체 무슨 연유로 그런 괴단체와 대적하고 있는 건가? 그것도 그렇게 절박하게 말이네.”
꽤 진지한 그의 질문에 나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얼른 생각이 나질 않았다.
잠시 고민하던 나는 결국 조용히 입을 열었다.
“책임을 져야 한다고 생각하니까요.”
“……?”
“그들이 암약하게 된 데는 제게도 확실히 책임이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게 무슨…….”
이해가 되질 않는지 그가 말꼬리를 흐리며 되물었다.
나는 한층 단호한 어조로 말했다.
마치 내 자신에게 다짐이라도 하듯.
“그러니까… 제가 확실하게 매듭을 짓고 싶어요. 그뿐입니다.”
잠시 나와 시선을 마주하던 용병왕.
이내 그가 입가에 묘한 미소를 머금었다.
“그래, 그거지. 자세한 연유는 모르겠다만… 그만한 각오가 있는 사내라면 남자로서 밀어주는 것이 인지상정. 그런 자네의 각오 덕에 이번에 우리 용병단이 큰 빚을 지기도 했고 말이야.”
“감사합니다.”
그 말에 이번 원정이 성공적으로 이루어졌음을 깨달았다.
결론적으로 그의 지원 약속을 이끌어 냈으니까.
든든하기 짝이 없는 우군이었다.
[축하합니다! 주요 캐릭터에 유의미한 영향을 끼쳤습니다. ‘행사한 영향력- 9,740GP’] [게임의 스토리가 최대폭 변화할 수 있습니다.] [보상으로 9,740GP를 획득합니다.]적절한 타이밍에 뜬 메시지.
‘좋았어…….’
이것으로 이곳에서의 매듭은 확실히 짓게 됐다.
용병왕의 흑화 루트를 틀어막는 데도 성공한 듯했으니까.
“그럼 이제 윌터 녀석을 좀 불러 주겠나?”
태연히 웃으며 말하는 용병왕.
그 모습에 나는 왠지 알 수 없는 한기를 느꼈다.
“알겠습니다.”
나는 슬그머니 윌터에게 가서 귀엣말을 했다.
“야, 너 오래.”
한창 먹고 마시며 뒤풀이를 즐기던 윌터가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
“응? 누가?”
내가 말없이 뒤편을 가리키자 뒤늦게 그쪽을 돌아본 윌터의 표정이 점차 사색이 되었다.
“…….”
언제 그랬냐는 듯 금세 입술을 굳게 다문 윌터.
녀석은 연신 그의 눈치를 보며 마른침을 삼켰다.
벌써 동공이 커지고 입술이 바짝 마른 게 꽤 긴장한 기색이었다.
나는 그런 녀석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려 주었다.
“힘내라. 설마 죽기야 하겠어?”
“죽을 것 같은데…….”
잔뜩 공포에 질린 윌터의 모습에 나도 모르게 실소를 흘렸다.
삼룡이를 볼 때도 이 정도는 아니었던 것 같은데…….
확실히 용병왕의 교육이 많이 엄하긴 한 모양이었다.
정작 내가 겪은 그는 생각보다 평범해서 의외였는데 말이야.
“이게 다 너 때문이야…….”
“응? 내가 왜?”
“왜긴 왜야, 동기인 네가 너무 뛰어난 모습을 보이니 내가 엄청 비교되잖아! 안 그래도 처음 아카데미 입학할 때 무조건 1등 먹으라고 했는데…….”
어느새 울상이 된 윌터가 대역 죄인과도 같은 얼굴을 하곤 힘겹게 걸음을 옮겼다.
잠시 그런 윌터의 뒷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와중.
“캬웅…….”
어느새 다시 내 곁으로 다가온 리즐이 눈치를 보며 이쪽을 힐끔거렸다.
왠지 뭔가 바라고 있는 듯한 눈치.
결국 나는 별수 없이 그녀의 머리를 가볍게 쓰다듬어 주었다.
“고마워. 덕분에 이번에 큰 힘이 됐어.”
그러던 와중.
순간 흠칫하고는 얼른 손을 뗐다.
나도 모르게 동물 대하듯 쓰다듬어 버리고 만 것.
워낙 행동거지가 고양이 같아서 그런지 자연스럽게 손이 먼저 움직여 버리고 말았다.
사람에게 하기엔 확실히 실례되는 행동이었다.
“미, 미안.”
“캬우웅…….”
허나, 의외로 리즐은 배시시 웃으며 좋아하는 기색이었다.
오히려 내가 하던 걸 멈추자 내 손을 쥐곤 다시 제 머리 위로 올려 두었다.
“응?”
그녀의 돌발 행동에 잠시 우두커니 서 있던 찰나.
용병 하나가 이쪽으로 와 볼멘소리를 했다.
“여어, 리즐 이 녀석… 우린 손끝만 건드려도 잔뜩 날을 세우더니 이거, 너무 하는 거 아니냐!?”
장난스러운 그의 푸념에도 리즐은 그를 흘기며 여지없이 불편한 심기를 내비쳤다.
“와, 노려보는 거 봐! 이래서 자식새끼 키워 봐야 소용없다고 하는 거구나. 서럽다, 서러워~”
농을 던지던 용병이 물러가자 어느새 다시 표정이 온화해진 리즐이 조용히 나와 시선을 마주했다.
무언가 갈구하는 듯한 눈빛.
나는 픽 미소를 흘리곤 그런 녀석의 머리를 다시금 쓰다듬어 주었다.
암만 봐도 고양이처럼 여겨져서 그저 귀엽기만 했다.
“으악, 단장님!! 제발 그것만은…….”
그 와중에 윌터가 겁에 질린 얼굴로 용병왕에게 애원하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확실히 윌터에겐 꽤 엄한 훈련 방식을 고집하는 듯했다.
“네 친구를 봐라. 얼마나 고집스럽게 제 목표를 위해 정진하는지 말이야. 부끄럽지도 않느냐?”
“…….”
잠시 나와 시선을 마주하던 윌터.
이내 녀석이 마음의 결정을 내린 듯 입술을 굳게 다물었다.
“훈련… 시작하죠.”
사뭇 비장한 모습의 윌터.
그 모습에 나 역시 피식 미소를 흘렸다.
‘일단 윌터는 안심이군.’
앞으로 녀석도 더욱 가파르게 성장할 것이 분명했다.
게다가 용병왕을 비롯해 붉은매 용병단도 이번 일로 어느 정도 경각심이 생겼을 테니 보다 단단한 단체로 거듭날 터.
그리고…….
어느덧 내 시선이 용병왕을 향했다.
윌터를 향한 그의 눈빛은 매섭기 짝이 없었다.
허나, 그 엄정함 안에는 분명 각별한 애정이 스며 있었다.
그 역시 앞으로 한층 마음을 강하게 먹지 않는다면 몹시 위험해지리란 걸 알고 있는 것일 터.
용병들 역시 잠깐의 뒤풀이를 끝내고 저마다 용병단의 재정비를 준비하는 분위기였다.
‘든든하구만.’
나는 만족스러운 얼굴로 그들을 지켜보았다.
“자, 잠깐만요! 아무래도 다시 생각해 봐야 할 것 같… 끄아악!!”
그 와중에 윌터의 세된 고함이 울려 퍼졌다.
지독한 후회가 어려 있는 목소리였지만…….
돌이키기엔 이미 많이 늦어 버린 듯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