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Academy's Underworld Player RAW novel - Chapter 197
197화
“로… 로만 씨, 대체 여긴 어쩐 일이에요?”
잠시 주변의 눈치를 보다가 얼른 로만을 따라 나간 나는 서둘러 그에게 말을 걸었다.
로만은 태연히 미소를 띤 채 답했다.
“하하,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습니다.”
“그리 간단하게 정리할 수 있는 이야기가…….”
여전히 넉살 좋게 웃어 보이는 로만.
그 모습에 내가 당황한 기색을 보이자 그제야 차분히 상황을 정리해 주었다.
“그레고리 교수님이 우리 공방의 주 고객이십니다. 저도 몰랐는데 알고 보니 교수님이시더라고요. 허헛… 그분이 제게 임시 교수직을 추천해 주셨지 뭡니까? 실력이 꽤 좋다고 분명 생도들에게 도움이 될 거라면서…….”
“그렇게 된 거였군요. 그럼 로만 씨도 동의하신 건가요? 안 그래도 공방 일만으로도 충분히 바쁘실 텐데…….”
“괜찮습니다. 감사하게도 그레고리 교수님이 꽤 편의를 봐주셨어요. 이곳에 제 방과 함께 약제실도 따로 마련해 주셨답니다. 뿐만 아니라 수업만 마치면 언제든 공방으로 돌아가도 좋다고 하셨고요.”
“그렇군요… 하긴, 로만 씨 정도의 실력자라면 그만한 투자를 할 가치가 있죠.”
“마냥 부정할 순 없군요. 사실 제가 생각해도 요즘 부쩍 실력 발휘를 하는 것 같아서 개인적으로 흡족한 상태입니다. 새로운 포션도 몇 개 개발하기도 했고 말이에요.”
“호오… 그거 듣던 중 반가운 소리네요. 기대가 됩니다! 어쨌든 늦었지만 교수직 축하드립니다. 이제 로만 교수님이라 불러야겠네요.”
“하하, 사석에선 편하게 말씀하셔도 됩니다.”
함박웃음을 짓는 로만을 보며 어느덧 나도 입가에 옅은 미소를 머금었다.
확실히 처음 봤을 때와 달리 얼굴이 많이 좋아진 로만이었다.
내 덕에 한 사람의 인생이 구원을 받았다 생각하니 은근히 뿌듯한 기분도 들었다.
내가 아니었다면 고통 속에서 세상을 원망하며 사라졌을 사람이 아닌가?
“어쨌든 정말 고맙습니다. 요즘처럼 위험한 시국에 쉬운 결정은 아니었을 텐데… 꽤 든든하군요.”
내 말에 잠시 생각에 잠기던 로만.
이내 그가 씁쓸한 어조로 읊조렸다.
“그레고리 교수님이 이르길 이곳, 황립 아카데미도 폐쇄까지 고려하고 있을 정도로 심각한 상황이라고 하더군요.”
“네, 여러모로 상황이 복잡하다 보니…….”
“전 이미 고향에서 그 지옥을 제일 먼저 피부로 느꼈던 사람입니다. 절대… 그런 지옥도가 이 세상에 펼쳐지게 가만히 두진 않을 거예요.”
어느덧 로만의 얼굴이 한층 비장해졌다.
아무래도 교수직 제안을 받아들인 것 역시 나름 꽤 큰 각오가 있던 모양이었다.
“동감입니다. 저도 더 노력하겠습니다.”
내 말에 금세 로만의 입가에 부드러운 미소가 어렸다.
“그런 말 하지 않아도 강준식 씨라면 확실하죠.”
그렇게 뜻밖의 조우에 한창 훈훈한 분위기가 감돌던 와중.
대뜸 윌터가 곁으로 다가와 아는 체를 했다.
“오우, 긴가민가했는데… 역시 로만 씨였군요! 마을 행사 때 뵌 거 같은데… 여기서 이렇게 또 뵙게 될 줄이야!! 반갑습니다.”
“…….”
허나, 윌터의 넉살에도 로만은 그를 빤히 바라볼 뿐.
별다른 반응이 없었다.
“로만 씨?”
윌터가 고개를 갸웃하며 되묻자 로만이 담담한 어조로 내뱉었다.
“앤드류 윌터 생도, 교수님께 그게 무슨 말버릇이죠?”
“네에……?”
“무릇 생도라면 교수에게 마땅한 예의를 갖추도록 해야죠. 안 그런가요?”
“…….”
잠시 할 말을 잃은 듯 우두커니 서 있던 윌터.
이내 녀석이 억울하다는 듯 날 가리키며 소리쳤다.
“아니, 얘는요!? 얘랑은 평소처럼 편하게 이야기하시더니… 왜 나한테만 그래요…….”
“어허~ 강준식 생도는 예외입니다.”
“마… 말도 안 돼! 왜 이 녀석은 되고 난 안 된다는 겁니까!? 이거… 명백한 차별 대우 아닙니까?”
“윌터 생도, 설마… 지금 생도가 교수님께 말대꾸하는 겁니까?”
“그, 그게 아니라… 강준식 이 녀석도 알고 보면 별거 없는 놈인데 왜 이놈한테만…….”
“흠흠, 어디 보자… 아카데미엔 상벌점이라는 좋은 제도가 있다던데…….”
“…….”
결국 윌터는 낭패감 어린 얼굴로 황급히 자리를 피했다.
“저… 전 먼저 가 보겠습니다! 교수님, 수고하십시오……!!”
잠시 그 뒷모습을 빤히 바라보던 나는 그만 헛웃음을 흘렸다.
“벌써 생도들 다루는 솜씨가 보통이 아니네요, 로만 교수님.”
“하하, 강준식 씨께 많이 배웠습니다.”
너털웃음을 터뜨리는 로만을 보며 나도 모르게 실소를 흘렸다.
하여간 왜 다들 나한테 이런 것만 배우는지 모를 일이었다.
* * *
[제가 하고 싶은 말은 여기까지예요. 노파심에 너무 말이 길어진 것 같아 부끄럽군요……. 무운을 빌어요, 강준식 생도. 비록 상황이 상황인지라 예전처럼 가까이에서 지켜보고 지도해 줄 수는 없지만… 그래도 늘 응원하며 소식 기다리고 있겠습니다.]다시금 양피지를 읽어 내려간 나는 그것을 곱게 접어 침대 머리맡의 서랍에 두었다.
침대의 머리맡에는 촛불이 춤을 추듯 일렁이며 기숙사의 방 안을 밝히고 있었다.
‘총장님… 많이 바쁘시구나.’
사실 편지의 내용은 생각보다 특별한 건 없었다.
그냥 비상 체제로 들어간 현재 황궁의 분위기와, 상황이 심각한 영지를 우선으로 이리저리 파견을 다니느라 정신없는 나날을 보내고 있다는 그녀의 안부가 주된 내용이었다.
더하여 남은 지면은 대부분 내 안위를 걱정하고 앞으로 주의했으면 하는 내용들로 가득 채워져 있었다.
그런 바쁜 와중에도 짬을 내어 내게 이런 편지를 작성했을 그녀의 마음을 생각하니 어쩐지 조금 짠한 기분이 들기도 했다.
‘슬슬 나도 다음 단계로 나아가야 해…….’
나는 진지한 얼굴로 깊은 생각에 잠겼다.
상황이 이러한데 나라고 예전처럼 아카데미에서 한가하게 넋 놓고 있을 수만은 없는 노릇이었다.
힐끔.
나는 저편의 침대에서 꽤 집중하여 책을 읽고 있던 윌터를 일견했다.
아마 용병왕이 건네준 무투술 비급인 듯한데… 독서를 죽기보다 싫어하는 녀석의 성정을 생각하면 대견하다 싶을 정도로 의외였다.
이번 방학에 확실히 윌터도, 카엘도 비약적인 성장을 이뤘다.
윌터는 그간 용병왕에게 특훈을 받으며 수인으로의 변신 능력을 완전히 컨트롤할 수 있을 정도로 꽤 익숙해졌다.
카엘 역시 좌안과 우안의 능력을 모두 개화해 냈으며 방학 내내 이를 더욱 능숙하게 활용하도록 세밀하게 갈고닦은 것으로 알고 있다.
‘뭐, 슈란이 좀 걸리긴 하지만…….’
녀석의 성격을 생각하면 분명 슈란도 여러모로 분발하고 있을 터.
나는 잠시 아카데미를 떠날 때 마지막으로 봤던 슈란의 모습을 떠올렸다.
[두고 봐! 다시 돌아오면 그땐… 반드시 너보다 위에 있을 테니까!!]물론 슈란이 좀 거친 면모가 있고, 승부욕이 과하긴 했지만…….
그만큼 노력에 한해서는 그 누구보다 진심인 녀석이었다.
아직 능력을 개화하지 못한 상태에서… 그 평범한 재능으로도 단순 노력만으로 지금의 자리까지 온 녀석이었으니까.
‘슈란은… 아직 내가 개입하지 않아도 충분히 혼자 성장할 여지가 있는 녀석이야.’
결국 지금 내가 해야 할 일은 가급적 빠른 시일 내에 이 녀석들의 전력을 극대화시켜 주는 것이었다.
그리고…….
빠른 시일 내에 전력을 올리기 가장 좋은 방법은 그 무엇보다 템빨을 활용하는 것.
‘뭐, 수련이야 알아서 할 테니… 이제 남은 건 아티팩트지.’
각 주인공 캐릭터들에겐 전용 아티팩트가 있었다.
루안은 파천검(破天劍).
카엘은 아스타로트(Astaroth).
슈란은 로제 글라디우스(Rose Gladius).
세니르는 문라이트 보우(Moonlight bow).
이는 그 주인과 만났을 때 극한의 성능을 발휘하게 되는, 그야말로 종결급 무기였다.
일단 여기서 루안은 차치하더라도…….
슈란에겐 이미 로제 글라디우스를 건네준 상황.
세니르는 아직 포지션이 애매해서 좀 더 지켜볼 필요가 있었다.
결국 지금은 카엘의 아스타로트를 구하는 것이 제일 시급해 보였다.
모든 능력을 개화한 상황에서… 만약 그것까지 손에 넣게 된다면 카엘은 가히 일인 군단과도 같은 전력을 보유하게 될 테니까.
이미 제 영지를 방어하며 그 가능성을 보여 준 바가 있지 않은가?
‘아스타로트라…….’
카엘이 즐겨 쓰는 클로의 엔드 컨텐츠인 신화급 무기였다.
당연히 구하기가 무척 어려운 아티팩트 중 하나였다.
허나, 내게는 해당 사항이 없는 일이었다.
이미 그것이 숨겨져 있는 장소와 그곳의 결계를 열 수 있는 방법이 고스란히 내 머릿속에 있었으니까.
‘조만간 또 외출 한번 해야겠군…….’
물론 아직 개강을 한 지도 얼마 되지 않은 상황이었지만.
어차피 이제 아카데미를 나가는 건 내게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이미 어지간한 교수들의 신망을 한 몸에 받고 있었으니 간단한 부탁만으로도 충분히 아카데미를 빠져나갈 수 있을 터.
뭐, 여차하면 그냥 몰래 나가도 그만이고 말이었다.
이런 비상시국에 아카데미의 성적이나 졸업 따위가 중요한 게 아닐 테니까.
“좋아, 이런 뜻이었군! 이제야 좀 알 것 같다…….”
그 와중에 오랜 정적을 깨고 윌터 놈이 혼잣말로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녀석은 여전히 책의 내용에 완전히 몰입한 듯 시선은 책에 둔 채 허공에 기묘한 동작으로 주먹을 내질렀다.
그 모습을 물끄러미 지켜보던 나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저 녀석도 뭐 하나 쥐여 줘야 하는데…….’
물론 이미 이전에 건틀렛 하나를 건네주긴 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준수한 수준의 무기일 뿐이었지, 지금 내가 생각하는 다른 주인공 캐릭터들의 종결급 무기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격차가 있었다.
‘윌터가 쓰는 무구는 건틀렛… 그리고 건틀렛의 종결급 무기라면…….’
순간 나도 모르게 두 눈을 부릅떴다.
때마침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가는 것이 있었기에.
“그래, 맞아. 그게 있었지!!”
순간 나도 모르게 짝 손뼉을 부딪쳤다.
안 그래도 바로 지금 상황에서 제일 손에 넣기 적절한 아티팩트였기에…….
“하! 이 자식… 또, 또 제 버릇 개 못 주고 야밤에 급발진하네!? 지금 형님 독서하는 거 안 보이냐? 간만에 공부 좀 하려고 했더니 도와주질 않아요, 도와주질 않아. 에잉, 쯔쯧…….”
늦은 시간에도 한창 비급을 탐독하며 무투술 공부에 여념이 없던 윌터.
녀석이 눈치를 주듯 두 눈을 가늘게 뜬 채 나를 흘겨보았다.
그래도 처음 야밤에 기숙사에서 떠들어 된통 당했던 때와는 달리 내 멱살을 쥐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나는 새삼 많은 것들이 변했음을 체감하며 윌터를 향해 은근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
그런 내 모습에 윌터가 고개를 갸웃하고는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뭐냐, 징그럽게… 갑자기 왜 그런 얼굴로 히죽거리고 난리야? 불안하게…….”
나는 불안한 눈빛으로 날 바라보던 윌터를 향해 빙긋 미소를 지어 보였다.
“너… 나랑 일 하나 같이 하자.”
“……?”
뜬금없는 내 말에 윌터가 더욱 의문에 잠긴 표정으로 나를 빤히 바라보았다.
어느덧 침대에서 일어나 윌터에게 다가가서는 녀석이 들고 있던 책을 낚아챘다.
“물론 이런 책도 좋지만… 무인에게 어울리는 것은 바로 최상급의 질 좋은 무기지. 안 그래?”
“아니, 무슨 당연한 얘기를……. 근데 갑자기 그런 얘긴 왜 하는데?”
“사실 내가 기똥찬 건틀렛이 있는 곳을 알고 있거든. 어때? 마음이 좀 동하나?”
“뭐, 그… 그야 두말하면 잔소리지… 손에 넣을 수만 있다면 말이야…….”
내 말에 윌터는 금세 열띤 흥분을 숨기지 못하는 기색이었다.
밤새 몇 번이고 탐독이라도 할 듯 손에 꼭 쥐고 있던 책은 이미 관심 밖이었다.
녀석은 이미 내가 트레저 헌터라고 알고 있는 상황.
이미 내가 땅을 파서 기이한 던전을 찾아내고, 온갖 아이템을 만들어 내거나 발굴해 내는 능력을 봤으니 그 말이 결코 허언으로 들리지 않을 터.
휙.
나는 윌터에게 다시 책을 던져 주었다.
얼결에 책을 받아 든 윌터.
녀석이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나를 빤히 바라보았다.
그런 윌터를 향해 씨익 미소를 지어 보였다.
“좋아, 그럼 당장 내일 나가자.”
“……?”
이해가 안 되는지 여전히 벙찐 표정으로 두 눈을 끔뻑이던 윌터.
나는 그런 녀석을 향해 가볍게 내뱉었다.
“내일 바로 나가자고. 관심 있다며. 아니야?”
“아, 아니! 당연히 관심 있지!! 관심이 있다 못해 넘치고말고!!”
뒤늦게 정신을 차린 윌터가 허겁지겁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는 그런 녀석을 보며 입가에 옅은 미소를 머금었다.
템페스트 버스터(Tempest buster).
건틀렛의 끝판왕이라 할 수 있는 그 무기가 숨겨져 있는 곳은…….
다름 아닌 이곳 아카데미의 뒷산에 위치한 비밀 던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