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Academy's Underworld Player RAW novel - Chapter 2
2화
“……이는 곧 제국의 황권이 한층 강화되는 계기가 되었으며 교역로를 대폭 확대하며 그 영향력이 바다 건너 동방에까지 미치게 되는 문화 융성의 시대로 접어들었음을 알리는 신호탄이 된 것으로…….”
영어 공부를 하다 보면 갑자기 입이 뚫리는 경험을 하게 된다고 했던가?
바로 지금, 나는 그 특이한 경험을 몸소 체험할 수 있었다.
마치 입이 뚫린 것마냥 내 입에서 한 번도 배우지 못한 언어가 줄줄 흘러나왔기에.
칠판의 낯선 홀로그램 문자를 막힘없이 읽는 내 모습은 나조차도 당황스러웠다.
그건 교수도 마찬가지였는지 날 향한 그의 시선에 완연한 당혹감이 느껴졌다.
어쨌든 덕분에 불편한 상황은 대충 모면한 것 같다.
나는 어깨를 으쓱하며 툭 물었다.
“됐나요?”
“그, 그래… 뭐, 아주 맹탕은 아니구나.”
교수가 내심 감탄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혹시… 책을 통째로 암기한 게냐?”
“네, 제가 다른 건 몰라도 무식하게 외워 버리는 건 잘하거든요.”
교수의 물음에 적당히 양념을 쳐서 포장했다.
어차피 대답만 잘하면 그 이후엔 뭐라 하든 상관없는 법이니까.
나는 내심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서둘러 자리를 떴다.
자리로 돌아가는 길에도 절로 몸이 부르르 떨렸다.
학창 시절에도 졸다가 꼭 이것과 같은 상황을 겪은 적이 있었기에.
‘그땐 개쪽당하고 엄청 처맞았는데…….’
황급히 자리로 돌아가던 내 뒤통수에 다시금 교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근데… 자네, 이름이 뭔가?”
순간 자리에 우뚝 멈춰 선 나는 잠시 고민에 빠졌다.
허나, 고민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강준식입니다.”
“……?”
이내 여기저기서 의아한 눈길이 쏟아졌다.
“강준식이라고?”
“미친… 어떻게 사람 이름이 강준식이지?”
한동안 교실에 수군거리는 목소리가 이어졌다.
나는 애써 그들을 무시한 채 어깨를 으쓱했다.
‘강준식이 어때서?’
아무리 게임 속에 들어왔다고 한들 갑자기 내 이름을 새로 만들어 낼 수도 없는 노릇이 아닌가?
내 정체성이라 할 수 있는 이름을 함부로 내다 버릴 순 없었으니까.
‘그나저나 이제 어쩌지…….’
너무도 실감 나는 주변의 풍경.
내가 창조한 모습 그대로 살아 숨 쉬는 캐릭터들…….
새삼 게임 속에 들어왔음을 깨닫는 순간이었다.
그리고.
뒤늦게 떠오른 생각에 일순 등줄기에 소름이 돋았다.
내가 이 게임의 결말을 어떻게 망쳐 버렸는지 생각나 버리고 말았기에…….
“헐… 시발, 미친… X됐네!!”
“……?”
순간 나도 모르게 터져 버린 욕설에 주변의 시선이 다시금 내게 집중되었다.
“뭐가… 됐다고?”
두 눈을 가늘게 뜬 교수의 물음.
나는 식은땀을 흘리며 어색한 미소를 흘렸다.
“아, 아닙니다…….”
교수는 잠시 그런 날 흘겨보다가는 다시금 강의를 진행했다.
‘아, 진짜 망했네…….”
뒤늦게 한숨을 돌린 나는 굳은 얼굴로 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언뜻 평화롭고 평범해 보이는 이 세계는, 이제 시한 폭탄을 품고 달려가는 것과 다름없었으니까.
그것도 좀비 엔딩이라는 희대의 미친 결말을 향해…….
* * *
“저 녀석은 뭐지? 우리 반에 저런 놈이 있었나?”
카엘이 의구심 어린 눈길로 강준식이 나간 교실의 문을 힐끔 바라보았다.
“그러게. 대체 얼마나 존재감이 없으면 이제야 눈에 띄냐?”
“맨날 엎어져 처자니까 안 보였겠지. 꼭 반에 저런 놈들 하나씩 있잖아.”
슈란도 코웃음을 치며 한마디 거들었다.
나는 새도 떨어뜨린다는 클라리네스 공작가의 무남독녀.
강준식이 속해 있는 반은 기가 막히게도 황립 아카데미에서 날고 기는 수재들이 다 모인 반이었다.
물론 이는 다 외부의 입김이 작용한 결과.
늘 그렇듯 힘 있는 가문은 아카데미에 모종의 영향력을 행사하길 주저하지 않았으니까.
그러한 입김이 작용해 ‘우연히’ 만들어진 것이 바로 이 우등반이었다.
“근데 아론 교수님이 물었던 거, 아직 안 배운 부분 아니야?”
“응, 그래서 나도 찾아보니까 한참 뒤에 나오는 부분이던데?”
“그럼 저 새끼… 진짜로 교과서 다 외운 거야? 이 두꺼운걸? 완전 또라이네.”
“교수가 엿 먹이려고 함정을 팠는데… 거꾸로 한 방 먹은 거지, 뭐.”
“아론 교수도 설마 그런 또라인 줄 알았겠냐?”
저마다 한마디씩 던지며 교실을 나서던 가운데, 루안 엘시르는 멍한 얼굴로 자리를 지켰다.
힐끔, 이를 본 슈란이 툭 내뱉었다.
“뭐해? 넌 안 가냐?”
“응? 어, 잠깐 좀 생각할 게 있어서.”
슈란은 고개를 갸웃하곤 대수롭지 않게 자리를 떴다.
허나, 루안은 여전히 묘한 표정으로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존재감이 없어서 아무도 몰랐다고……?’
루안은 미심쩍은 얼굴로 생각에 잠겼다.
그는 기억력이 몹시 좋은 편이었다.
이곳에 입학한 지 일주일도 안 되어 같은 반 학생은 물론 전교의 모든 학생을 외웠으니까.
허나, 아무리 생각해도 저런 녀석 따윈 기억에 없었다.
근데 대체 어찌 이리도 자연스럽게 이곳에서 수업을 듣고 있단 말인가?
심지어 그 누구도 이에 위화감을 느끼지 않고 있었다.
‘수상한데…….’
어느덧 루안의 붉은 눈동자에 이채가 서렸다.
* * *
“시발, 시발…….”
기숙사로 돌아온 나는 거울을 보며 연신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분명 익숙하면서도 낯선 얼굴이었다.
거울 속에 비친 건… 다름 아닌 내 학창 시절의 모습이었으니까.
아마도 중학교 때쯤?
그때가 확실했다.
이마에 여드름이 이렇게 불긋했던 적은 그때뿐이었으니까.
아마도 이곳 아카데미의 연령대가 그쯤 되니까 그에 맞춰 내 나이도 보정된 모양이었다.
물론 나이가 어려졌다고 좋아할 수도 있겠지만… 나는 절대 아니었다.
내게 학창 시절은 별로 돌아가고 싶지 않은 시절이었으니까.
학교에서 적응하지 못하여 구석에서 몰래 소설책이나 만화 따위를 읽던, 지극히 평범한 학생.
공부를 잘하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놀던 것도 아닌…….
정말 이도 저도 아닌, 가장 보통의 학생.
그게 바로 나였다.
그런 내가 게임 속, 황립 아카데미의 학생이 된 것이다.
‘좆됐네, 진짜…….’
설정상 여긴 대륙에서 날고 기는 최고의 수재들만 모인 곳이었다.
게다가 내가 있는 반은 편의상 강력한 주요 인물들을 한곳에 모아 두기까지 했다.
물론 대충 있는 듯 없는 듯 지내다 졸업하면 그만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여기, 망하잖아. 그것도 좀비 떼로…….’
절대 안 될 일이었다.
내가 만든 게임 속에 이렇게 들어와 버린 것도 환장할 노릇인데…….
좀비 따위에 물어뜯겨 허무하게 생을 마감한다고?
아직 연애 한 번 못해 봤다.
심지어 전역한 지도 얼마 안 됐다.
게다가 게임이 좋아 입사한 회사에선 쥐꼬리 같은 월급을 받으며 개처럼 구르기만 했다.
입사 2년 차에 처음으로 맡은 게임 기획에 정말 혼신의 힘을 다했지만…….
부장에게 거하게 뒤통수를 맞고 내 손으로 직접 기획서를 망가뜨려 버렸다.
‘근데 망가지는 건 나였군…….’
세상에 나만큼 재수 없는 놈이 또 있을까?
좀비 엔딩으로 기획서를 날려 버린 바로 그 날, 그 세계 안으로 들어와 버리다니…….
‘제길. 정신 차리자, 강준식!’
호랑이 굴에 들어와도 정신만 차리면 산다고 하지 않았는가?
‘아마 여기서 죽으면… 나도 죽겠지?’
물론 죽는다는 확신은 없었다.
허나, 반대로 안 죽는다는 확신도 없었다.
그리고… 생존이 걸린 문제에 함부로 도박을 할 수는 없었다.
‘그럼 일단 죽는다고 가정하고…….’
그렇게 생각하니 앞으로 내가 해야 할 일이 좀 더 명확해졌다.
일단 어떻게든 내가 만든 이 막장 엔딩을 막아 내야 한다는 것.
판타지 세계에 빌어먹을 좀비가 출몰해서 모든 종족이 멸절(滅?)한다는 그 좆같은 엔딩을 말이었다.
그래도 다행인 건, 일단 내가 메인 시나리오 안에 들어왔다는 것이었다.
이 세계에서 가장 잠재력이 높은 캐릭터들…….
주인공 3인방을 비롯한 주요 인물이 바로 이곳 아카데미에 모여 있었다.
그러니 어떻게든 이곳에서 버티며 메인 스토리를 꼭 붙잡고 가야만 했다.
그리고… 원래 기획했던 것보다 더욱 큰 성장을 이뤄 내야만 했다.
나는 물론이고 주인공 3인방까지 전부.
‘아니, 그걸로도 모자라…….’
할 수만 있다면 이 세계의 모든 역량을 끌어모아야만 했다.
메트니 제국을 비롯하여 인접 중소 왕국, 동방의 국가까지…….
더하여 엘프나 드워프 같은 다른 종족의 힘까지도 빌려 와야 할 것만 같다.
가능하면 최후의 보스였던 블랙 드래곤까지도…….
그만큼 좀비 떼의 위력은 상상을 초월했다.
말도 안 되는 전염성과 좀비답지 않은 빠른 기동력까지 자랑했으니까.
하필 기획서를 망가뜨리기 전, 내가 본 좀비 영화가 역대급 위력을 지닌 좀비가 나온다고 평가받던 작품이었다.
그에 영향을 받아 찌끄린 엔딩이었으니…….
분명 앞으로 닥칠 재앙은 상상을 초월할 수준일 터.
‘근데… 내가 그걸 막아 낼 순 있을까?’
솔직히 그리 긍정적으로 보이진 않았다.
그래도 이토록 암울한 상황에서 딱 하나 위안이 되는 부분은 있었다.
어찌 됐든 내가 이 세계의 창조자라는 것.
잘만 한다면… 스토리를 조율하여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끌고 나갈 수 있을 것이다.
게임 속 웬만한 내용은 전부 다 내 머릿속에 있었으니까.
물론 쉽지는 않겠지만…….
그렇다고 이렇게 손 놓고 있다가 죽어 버릴 수는 없는 노릇이 아닌가?
짝!
그렇게 생각을 정리한 나는 두 손으로 힘껏 뺨을 부딪치며 기합을 내질렀다.
“까짓거, 함 해 보입시더!!”
허나, 문제가 하나 있었다.
너무 생각에 골몰한 나머지 취침 시간이었다는 걸 깜빡한 것.
“시발, 깜짝이야! 뭐야, 이 새끼야?”
내 고함에 잠에서 깬 룸메이트가 머리를 벅벅 긁으며 두 눈을 부라렸다.
“아이 씨, 이 꼴통 새끼가… 오밤중에 왜 소리는 처 지지르고 지랄이야? 뒤질래? 기숙사가 네 안방이야?”
우락부락한 체격에 얼굴엔 칼자국까지 있는, 험악한 인상.
절대 10대라고는 믿기지 않는 야만적인 비주얼.
그러고 보니 이런 놈이 내 룸메이트였다…….
“미, 미안…….”
내가 빠른 사과를 하자 놈이 이를 으득 물고는 나를 위아래로 훑어보았다.
그러곤 조용히 다시 침대로 기어 들어갔다.
나는 잠시 그런 놈의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옅은 한숨을 내쉬었다.
놀랍게도 저 녀석은 내가 설정한 인물이 아니었다.
아무리 그래도 게임 내 세세한 캐릭터 하나하나까지 죄다 만들 정도로 여유가 있지는 않았으니까.
‘그러고 보면 참 신기하네…….’
내가 만든 설정 밖에서도 이렇게 그 여백이 채워져 있다는 것이 아닌가?
그래서인지 새삼 이곳 세계가 더욱 실감이 갔다.
단순히 게임 속 세계가 아니라 정말 실제 창조된 세계처럼 느껴졌기에…….
그런 생각을 하던 와중.
대뜸 또 낯선 메시지가 내 망막에 새겨졌다.
[‘전지자의 눈’이 활성화됩니다.] [앤드류 윌터, 수인(獸人)]대륙에 얼마 남지 않은 웨어 울프 족의 수인이자 전설적인 용병왕, 엔드류 게일의 양자(養子).
천애 고아였지만 우연히 용병왕의 눈에 띄어 그의 밑에서 용병 생활을 하다가 금세 그 재능을 인정받았다.
어린 나이에도 실전 경험이 적지 않으며 거친 용병 생활로 다져진 몸은 나이에 맞지 않은 피지컬을 자랑한다.
현재 용병왕의 명으로 정체를 숨기고 황립 아카데미에 입학.
우수한 성적으로 이곳을 졸업하고 붉은매 용병단을 이끄는 그의 후계자가 될 미션을 부여받은 상태.
‘맙소사…….’
엔드류 게일이라면… 게임의 중반부에 주인공의 적으로 등장하는 강력한 빌런 중 하나.
용병왕이라는 칭호로 대륙에 명성이 자자한 강자였다.
내 룸메이트가 그런 놈의 제자라는 것.
‘심지어 수인이라고?’
반쯤 얼어 버린 표정으로 윌터의 침대를 빤히 바라보고 있던 와중.
대뜸 놈이 다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러곤 성큼성큼 내게 걸어오기 시작했다.
“……?”
뭔가 답답한 표정으로 날 이리저리 살펴보던 녀석이 심각한 얼굴로 물었다.
“근데 너… 누구냐?”
“응?”
“이상한데… 나한테 룸메이트가 있었던가?”
순간 뜨끔한 나는 어색한 미소를 흘리며 황급히 말했다.
“어? 다, 당연하지… 갑자기 그런 건 왜 물어?”
“흐음… 분명 있기는 했던 것 같은데… 묘하게 얼굴이 기억이 안 나네. 벌써 입학한 지 한 달이나 됐는데 말이야.”
“그, 그건 내가 워낙 존재감이 없어서 그래! 하하…….”
“미친놈아, 그게 말이 되냐? 아무리 그래도 어떻게 룸메이트 얼굴을 이제 처음 보는 것 같냐고.”
“지, 진짜라니까?”
윌터는 굵은 턱을 쓸며 나를 눈여겨보았다.
왠지 모르게 등줄기에 식은땀이 흐르는 기분이었다.
만약 여기서 수상한 인물이라는 걸 들켜 버린다면…….
초장부터 아카데미에서 나가리가 될지도 모를 일이었으니까.
그것만은 절대 안 될 일이었다.
내겐 이곳이 미래의 재앙을 막을 부트 캠프나 다름없지 않은가?
“뭐, 상관없겠지. 졸업하는 데 방해만 안 된다면 말이야.”
대수롭지 않게 내뱉던 그의 말에 내심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때였다.
대뜸 윌터가 내게 스윽 얼굴을 들이밀었다.
얼굴이 가까워지니 그 험악한 인상이 한층 실감 나게 보였다.
“잘 들어. 미리 경고하는데, 너… 내가 졸업하는 데 조금이라도 방해되면 죽는다.”
끄덕끄덕.
그 흉흉한 기세에 나도 모르게 얼른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놈이 가볍게 코웃음을 흘리곤 내 어깨를 툭툭 두드렸다.
어느새 다시 침대로 돌아가는 그의 뒷모습을 보며 옅은 한숨을 내쉬었다.
‘시발, 진짜 주변에 괴물밖에 없네…….’
안 그래도 같은 반에 괴물 같은 수재들뿐인데, 기숙사에까지 저런 짐승 같은 놈이 들어앉아 있다니.
한창 그런 생각을 하며 자리에 멀거니 서 있던 와중.
다시금 침대 쪽에서 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참, 근데 너… 이름이 뭐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