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Academy's Underworld Player RAW novel - Chapter 213
213화
“가자고, 어서!”
카엘이 연신 뒤를 돌아보며 우리를 재촉했다.
마치 놀이동산에 가는 아이가 앞서가던 중 자꾸 멈춰 선 채 부모를 재촉하는 것처럼.
뭐 마려운 강아지마냥 안달복달하는 녀석의 모습.
“아이고, 허리야. 아이고, 다리야. 죽겠다, 죽겠어…….”
반면 아까와 달리 윌터는 나이롱 환자마냥 우는소리를 했다.
“…….”
눈빛으로 사람을 죽일 수 있다면 아마 저런 눈이 아닐까?
매서운 카엘의 눈초리에도 윌터는 굴하지 않고 녀석의 속을 긁었다.
“야, 근데 너 사람이 너무 물욕에 집착하는 거 아니냐? 자꾸 뭘 손에 넣으려 하지 말고 마음을 깨끗이 비우란 말이야. 자고로 무인은 무소유의 정신이 몸에 배어야 내면에서 진정한 힘을…….”
“네 잘난 그 아티팩트부터 내려놓고 지껄이시지…….”
“야, 인마! 이건 소유물이 아니라 내 소중한 애인이라고! 엄연한 인격체야.”
“너 이 자식… 전부터 자꾸 훼방 놓는데… 넌 이미 얻을 거 얻었다, 이거지?”
“하, 이 자식이 사람을 뭘로 보고! 내가 그렇게 치졸하고 더러운 놈으로 보여!?”
“정확하군. 딱 그렇게 보인다.”
“아니거든! 그냥 좀 쉽게쉽게 가자, 이거지. 그동안 고생은 할 만큼 했잖아. 안 그래?”
“그럼 네 아티팩트 구할 때나 좀 그렇게 쉬엄쉬엄하지 그랬나?”
“…….”
연신 깐죽대는 윌터와 그 작태에 분노를 금치 못하는 카엘.
그대로 두면 당장 멱살잡이라도 할 것 같은 분위기였기에 얼른 내가 중재했다.
“카엘, 너무 초조해하지 말라고. 네 아티팩트는 무슨 일이 있어도 오늘 구해 줄 테니 말이야. 약속했잖아. 나 못 믿어?”
“내가 강준식을 안 믿으면 누굴 믿는단 말이냐…….”
그제야 조금 안정이 된 듯 녀석이 차분한 어조로 읊조렸다.
나는 고개를 돌려 윌터에게도 짧게 훈계를 했다.
“윌터, 너도 그만 심술부리고. 어차피 우리가 다 같이 전력이 올라야 모두에게 좋은 일이라고~”
“…….”
“너 혼자만으론 힘들어. 나 역시 마찬가지고. 내가 괜히 요새 너희의 성장에 치중하는 게 아니야. 알아들어?”
어느새 입을 꾹 다문 채 내 말에 집중하던 윌터.
조금 전 카엘에게 깐죽대던 모습은 이미 온데간데없었다.
나는 그런 녀석을 향해 한층 힘주어 말했다.
“이제부터 우린 하나로 똘똘 뭉쳐야 한다고…….”
“…….”
어느덧 주변의 모두가 침묵한 채 날 빤히 응시하고 있었다.
윌터뿐만 아니라 카엘과 세니르, 리즐까지도…….
“그래 뭐… 무슨 말인지는 알겠다.”
윌터가 머리를 긁적이며 대답했다.
어쨌든 이제 내가 이 팸을 이끄는 리더나 다름없었다.
누가 나서서 그리 공언한 적은 없지만… 암묵적으로 그러한 분위기가 형성된 지 오래였다.
그동안 이들을 급격히 성장시켜 줬을 뿐 아니라 새로운 방향성을 제시하며 모두를 이끌고 있었으니까.
“좋아, 그럼 가자고. 이쪽이야.”
그새 미니맵으로 목적지의 방향을 확인한 나는 슬슬 걸음을 옮겼다.
이에 다른 녀석들도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곤 하나둘 나를 따랐다.
힐끔.
잠시 그 모습을 일견한 나는 입가에 옅은 미소를 머금었다.
처음 아카데미에선 서로 경쟁하는 구도였다면, 이제부턴 함께 협력하여 대업을 이뤄 내야만 할 관계.
이들과 함께라면 분명 해낼 수 있을 것이다.
나는 내 캐릭터들을 믿으니까.
* * *
쿠구궁.
우리는 최종 보스룸까지 아무 막힘없이 이동할 수 있었다.
물론 중간에 몇몇 파수꾼이 우릴 막아서기도 했지만.
여지없이 내 동료들이 나서서 간단히 이를 처리했다.
특히 윌터의 태도가 변한 게 의외였다.
웬일로 저가 먼저 나서서 몬스터들을 빠르게 처리해 준 것.
그 모습에 카엘도 실소를 흘렸다.
“내 말은 그리도 안 듣더니… 강준식 한마디에 아주 다른 사람이 되어 버렸구나.”
“고마우면 그냥 솔직하게 고맙다고 하라구.”
“너한텐 하나도 안 고맙다. 그저 강준식에게 고마울 뿐.”
“어휴, 저 싸가지… 이래서 머리 검은 짐승은 돕는 게 아니라니까.”
물론 늘 그랬듯 사소한 언쟁이 있기는 했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유적지의 돌파 속도는 꽤 신속했다.
정확한 방향을 알고 있는 내 정보력과 더불어 부쩍 향상된 동료들의 전투력에 힘입어 최단 시간 내에 보스룸에 도달한 것.
특히 카엘은 제 능력을 십분 발휘하며 제일 적극적으로 전투에 임했다.
“좋아, 다들 한 번씩 경험해 봐서 알지? 지금부터가 진짜 시작이야.”
내 말에 다들 살짝 긴장한 기색으로 정면을 주시했다.
“아마 바짝 집중해야 할 거야. 특수 유물을 얻을 수 있는 기회는 단 한 번만 주어지니까.”
어느새 모든 준비를 마친 카엘은 두 눈을 빛내며 조용히 의욕을 불태우고 있었다.
세니르 역시 위습을 띄운 채 본격적인 전투 준비에 돌입했고, 그새 퓨마로 변한 리즐은 바닥에 발톱을 긁으며 언제라도 튀어 나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심지어 윌터조차 사뭇 진지한 얼굴로 다가올 전투에 임했다.
지금까지완 달리 장난기를 쏙 빼고 정면을 주시하는 모습.
어느덧 거대한 석문이 닫히고.
웅장한 공동에 들어선 우리는 만반의 준비를 갖춘 채 다음 상황을 기다렸다.
쿠르르르릉.
늘 그랬듯 지면에 진동이 이는가 싶더니…….
대뜸 새로이 생성된 보스 몬스터의 몸체가 바닥에 쿵 떨어졌다.
“!?”
순간 다들 적잖이 놀란 얼굴로 놈을 빤히 응시했다.
그만큼 그 외양이 그간 상대했던 녀석들과는 달리 무척 이색적인 모습.
비록 괴물형이 아니라 오히려 인간에 가까운 모습이기는 했지만…….
광대와도 같은 기괴한 옷차림이 누가 봐도 이런 곳에서 마주칠 만한 외양은 아니었다.
“…….”
그 기괴한 모습에 다들 멀거니 놈을 바라보고 있던 와중…….
녀석이 양 입가를 쫙 찢으며 기이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게임을 시작하지.]* * *
“마… 말을 하잖아!?”
윌터가 적잖이 당황한 얼굴로 소리쳤다.
당연히 괴물형의 몬스터가 나올 거라 생각한 모양.
물론 다른 이들은 여전히 잔뜩 긴장한 기색으로 놈과 대치하고 있었다.
비록 외양만큼은 오히려 인간에 가까웠지만 그것에게서 느껴지는 압박감이 보통이 아니었기에…….
애초에 이런 깊숙한 지하 유적지 안에 저런 차림의 인간이 있을 리가 없었다.
“저 녀석에게서… 너무 불길한 냄새가 풍겨…….”
그 와중에 세니르가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그녀답지 않게 꽤 동요한 모습.
“캬오웅… 캬우우우우웅!!”
리즐도 털과 꼬리를 바짝 세운 채 연신 낮은 울음을 흘렸다.
다들 본능적으로 놈을 무척이나 경계하는 모습이었다.
[크크… 다들 왜 이렇게 진지해? 게임이라고, 게임. 난 그저 게임을 즐기는 광대일 뿐이야. 긴장들 풀고 즐기자고~]허나, 놈은 특유의 미소를 머금은 채 꽤 여유로운 모습을 보였다.
그 와중에 전지자의 눈이 놈의 정보를 열람해 주었다.
[‘전지자의 눈’이 활성화됩니다.] [‘자로체’- 탐욕과 기만의 광대]고대 유적지를 지키는 인간 형태의 가디언.
정밀하게 빚은 그릇에 섬세한 자아를 심어 전투 병기로 거듭난 강력한 몬스터로, 오직 정해진 영역의 수호를 위해서 살아가는 존재.
초월적인 육체 능력과 더불어 마나의 제약 없이 온갖 마법을 부리며 특히 정해진 제 영역 안에선 거의 절대적인 무위를 보여 준다.
다만 제게 부여된 임무 때문에 너무 오랜 시간을 견뎌 온 탓에 자아가 무척 불안정하다.
까다로운 상대인 만큼 정공법보다는 최대한 그 약점을 노리는 공략법이 필요!
‘그래, 이런 녀석도 만들었지…….’
배트맨 이후로 광대형 빌런은 그야말로 어지간한 영화나 게임에서의 단골 소재.
나 또한 이에 모티브를 얻어 고대 유적지 중 한 곳의 보스를 그런 식으로 구성한 바가 있었다.
물론 내가 만들었던 놈은 이렇게 눈이 풀려 마구 헛소리를 지껄이는 미친놈까진 아니었지만…….
어쨌든 큰 틀에선 이미 어느 정도 파악이 된 녀석이었다.
아무래도 이 녀석 또한 현실이 되어 버린 게임에서 천 년이 넘도록 이곳에 갇혀 있다 보니 정신이 훼까닥 가 버린 모양.
안 그래도 오락가락한 광대 컨셉의 캐릭터였는데 오죽할까?
“뭐야, 이 새낀? 게임? 이 와중에 게임은 무슨 개뼉다구 같은 소리야?”
윌터가 헛웃음을 흘리며 대꾸했지만 놈은 신경조차 쓰지 않았다.
그저 연신 히죽거리며 특유의 미소를 내보일 뿐.
그 미소에서 적잖은 설렘의 감정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놈은 이곳을 지키는 것 따위엔 관심이 없어 보였다.
도리어 오랜만에 맞이한 생명체와 게임을 즐길 생각에 한껏 흥분한 모습.
[벌레들 따위, 간단히 죽일 수도 있지만… 그냥 그렇게 끝내는 건 재미가 없잖아. 안 그래?]“…….”
웃음기 어린놈의 말에 이쪽의 분위기가 눈에 띄게 굳어졌다.
그 말이 결코 단순한 허언으로 들리지 않았기에.
그만큼 순간순간 놈에게서 느껴지는 압박감이 상당했다.
[그러니까 이쪽에서 먼저 제안하지. 그보다 좀 더 스릴 있는 게임으로 승부를 가리자고. 뭐, 그편이 서로 즐겁지 않겠어? 어차피 네놈들도 이곳의 유물을 노리고 온 거잖아. 내 게임에서 이기기만 한다면 조건 없이 유물을 내주도록 하지.]“지랄하네. 혓바닥이 긴 걸 보니 너도 좀 맞아야겠…….”
윌터가 몸이 근질근질한 듯 판을 엎어 버리려 하던 찰나.
내가 얼른 먼저 나서서 놈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그래, 하자. 게임.”
“강준식……?”
의아한 눈으로 날 바라보던 윌터.
허나 나는 개의치 않고 거침없이 이어 말했다.
“게임 좋지. 이쪽도 게임 좋아하거든.”
[호오… 다행히 말이 좀 통하는 녀석이 있구나. 그래, 아주 좋아. 오랜만의 여흥이 심심치 않겠어…….]어느덧 놈의 두 눈이 기이한 열기로 번들거렸다.
그 순간만큼은 누가 봐도 맛이 간 사이코의 눈빛이었다.
[게임은 총 다섯 판으로 먼저 세 번을 이긴 쪽이 승리하는 것으로 하지. 어때? 이만하면 네놈들을 생각해 충분히 기회도 줬다고 생각하는데…….]“그저 네가 더 오래 즐기고 싶은 거겠지. 헛소리하지 말고 얼른 시작하기나 해.”
[크헤, 크헤헤헤헷!! 역시 꽤 눈치가 빠른 꼬맹이로구나……!! 너무 눈치 빠른 꼬맹이는 곤란한데 말이야. 푸흐흣.]“…….”
어느덧 다른 동료들이 굳은 얼굴로 날 주시하고 있었다.
워낙 급작스럽게 돌아가는 상황이 영 적응이 안 되는 모양.
특히 카엘이 제일 심란한 얼굴이었다.
뭐, 그럴 법도 했다.
녀석만큼은 이곳에서 반드시 얻어야 할 것이 있었으니까.
나는 내 동료들을 향해 한층 여유로운 어조로 중얼거렸다.
“걱정 마. 나만 믿어. 다 생각이 있으니까.”
“…….”
내 말에 잠시 우두커니 날 응시하던 카엘.
녀석이 조용히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그래… 역시 넌 다 계획이 있군.”
어쩌면 제일 초조할 법도 한 카엘이었지만… 그 음성엔 한 치의 의심도 없었다.
“뭐, 강준식이 그렇다면 그런 거겠지. 확실히 뭔가 있기는 한가 보네…….”
“그래, 파시어는 늘 옳은 선택을 하는 법이지…….”
“캬웅, 캬우우우웅!!”
“…….”
뭐, 이만하면 나름 동료들에게 신뢰는 충분히 받고 있는 것 같다.
그렇다면 이제 보여 줄 차례겠지…….
‘게임이라면 충분히 해 볼 만해.’
저 녀석은 실수한 거다.
어렸을 때부터 다른 건 몰라도 게임 하나만큼은 누구에게도 지지 않는 성미였으니까.
하다못해 이 세계도 내가 만든 게임이라는 걸, 저 녀석은 알까?
나는 상기된 눈빛으로 이쪽을 응시하던 자로체를 보며 씨익 미소를 머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