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Academy's Underworld Player RAW novel - Chapter 214
214화
[그럼 첫 번째 게임을 시작하지.]놈의 선언과 함께 동료들의 얼굴에 저마다 은근한 긴장이 어렸다.
첫 번째 주자는 윌터.
이번 이벤트에서 내가 준비한 카드는 다름 아닌 내 동료들이었다.
물론 전체적인 조율과 대미 장식은 내 몫이었지만…….
난 오케스트라의 지휘자와 같은 역할이라고나 할까?
[돌발 퀘스트, 자로체의 게임]고대 유물의 가디언, 자로체가 당신에게 게임을 제안했습니다.
오랜 시간 유적지 안에 갇혀서 권태에 짓눌린 탓이지요.
오직 승자와 패자로만 나뉘는 잔혹한 게임의 세계.
당신은 그가 제안하는 게임에서 총 3번의 승리를 거둬야만 합니다.
클리어 조건: 자로체가 제안하는 게임에서 총 3번의 승리.
보상: 433,000EXP 경험치 획득, 고대 유물 획득 루트 오픈.
잠시 퀘스트창을 재차 확인하던 와중.
파앗!
자로체가 손가락을 튕기자 윌터의 머리 위에서 돈주머니가 떨어졌다.
자연스럽게 이를 잡아챈 윌터가 멀뚱히 놈을 바라보았다.
[게임을 하려면 돈이 필요한 법이 아닌가? 돈이 걸리지 않은 게임은 재미가 없지… 안 그래? 크흐흐.]“오오, 이 녀석! 그래도 뭔가 좀 알긴 아는 놈이구나!!”
어느새 얼굴에 화색이 돈 윌터가 황급히 돈주머니를 열었다.
이내 주머니 안을 확인한 윌터의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미, 미친… 이게 얼마야!?”
휘황찬란한 금화로만 가득 채워져 있는 돈주머니.
이 정도면 이 주머니 하나만으로도 평생을 사치스럽게 살 수 있는 돈이었다.
“야… 너 이 자식… 좋은 놈이었구나. 오해해서 미안하다…….”
윌터가 언제 그랬냐는 듯 함박웃음을 지었다.
자로체가 특유의 기분 나쁜 미소와 함께 입을 열었다.
[판돈은 얼마든지 걸 수 있다. 먼저 돈을 모두 잃는 쪽이 패배하는 것으로 하지.]“으음. 혹시… 네놈만 돈이 몇 배는 더 많은 것 아니냐!? 암만 봐도 수상한데?”
[그런 걱정은 하지 않아도 좋다. 나도 판돈은 네놈과 같으니까.]제 주머니까지 열어 보이며 확인을 시켜 주던 녀석이 씨익 웃어 보였다.
결국 할 말이 없어진 윌터가 회심의 미소를 머금었다.
“좋아, 아주 패가망신을 시켜 주지. 팬티까지 홀랑 벗겨 먹여 주마. 흐흐…….”
윌터의 기세 좋은 도발에도 놈은 여전히 여유만만이었다.
[그럼 가볍게 동전 던지기 게임으로 시작하지.]“좋다!! 어디 해 보자. 도박하면 나, 윌터지!!”
윌터가 두 주먹을 불끈 쥔 채 한껏 소리쳤다.
* * *
핑그르르르, 팅.
동전이 격하게 돌며 허공을 날았다가는 다시 자로체의 손에 잡혔다.
이내 그것을 손등 위로 덮은 녀석이 음산한 미소를 띤 채 말했다.
[자, 선택해라. 앞이냐… 뒤냐?]벌써 네 번째 동전이었다.
심각한 얼굴로 뚫어져라 놈의 손등 안을 응시하던 윌터.
“으으… 으으으으으…….”
윌터 놈이 앓는 소리를 내며 고뇌에 잠겼다.
어느덧 처음의 그 기백은 완전히 사라져 버린 지 오래였다.
아마도 지금이 녀석의 인생에서 제일 치열하게 고민하는 순간이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들 정도로 놈의 표정은 그 어느 때보다 진지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마침내 결정을 내린 듯 윌터가 호기롭게 소리쳤다.
“앞! 앞이다!! 이번에야말로 확실해!!”
악에 받친 윌터의 외침에 놈이 씨익 웃어 보였다.
[정말이냐? 확실해……?]“그래, 확실하다!! 이번만큼은 제대로 촉이 왔다고!!”
[아닐 텐데… 잘 생각해 봐. 단 한 번 바꿀 기회를 주마.]그 모습에 윌터가 히죽 미소를 머금었다.
“흐흐, 지랄… 너 이 새끼, 딱 걸렸어… 엄청 쫄리나 보네? 그치? 크하핫! 연기는 영 잼병이구만~”
[그럴 리가……. 난 그저 좀 더 게임을 즐기고 싶은 것뿐, 진심으로 널 위해 조언을 하는 게다. 이번에 그나마 남은 돈도 올인을 하지 않았느냐?]표정 하나 변하지 않고 침착하게 답하는 자로체.
그런 녀석의 모습에도 윌터는 확신한 듯 제 결정을 몰아붙였다.
“응, 아니야. 넌 끝났어~ 마지막에 이긴 자가 진정한 승자인 법! 황금 같은 타이밍을 잡은 내 과감한 베팅의 승리다!!”
[뭐, 정 그렇다면야…….]미련 없이 제 동전을 깐 자로체.
마침내 손등 위의 동전을 확인한 윌터의 표정이 그대로 굳어 버리고 말았다.
“마… 말도 안 돼. 어떻게 이게 또…….”
[그러게 내가 뭐랬나?]“…….”
잠시 넋이 나간 듯 우두커니 서 있던 윌터가 현실을 부정하며 광분을 토해 냈다.
“아니, 이 새끼 사기꾼이야!! 이게 말이 돼!? 이건 그냥 운빨인데… 어떻게 네 번 연속으로 틀릴 수가 있냐고!!”
[모르는 소릴 하는군. 자고로 운도 실력인 법. 졌으면 순순히 패배를 받아들이길, 크흐흐.]“으아아아아악!! 이건 아니야, 인정 못해!! 다시 해, 다시 하자고!!”
[방금 올인하지 않았나? 돈 없으면 끝이니 돌아가거라.]이내 주먹을 부들부들 떨던 윌터가 황급히 내게 달려와 애원을 했다.
“가… 강준식! 나 돈 좀 빌려주라!! 응?”
“응, 안 돼. 돌아가.”
“아, 좀… 따서 갚을게! 따서 갚는다고오~!!”
“됐고, 넌 죽을 때까지 도박엔 손도 대지 말아라…….”
“…….”
결국 첫 번째 주자로 나선 윌터가 보기 좋게 1패를 적립하고 돌아왔다.
그리고…….
윌터에 이어 다음 주자로 나선 리즐도 광속으로 1패를 추가 적립했다.
수인 남매의 활약에 힘입어 순식간에 2패…….
어느덧 리즐이 시무룩한 표정으로 내게 다가왔다.
어느새 커다란 눈망울이 그렁그렁했다.
나는 축 처진 모습으로 슬금슬금 눈치를 보던 녀석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려 주었다.
“괜찮아. 남은 게임 이기면 되지.”
[이런이런… 이렇게 시시할 줄이야. 나름 기대했는데 이건 너무 실망인데?]그 와중에 자로체가 진심으로 안타까운 듯 픽 웃으며 중얼거렸다.
[분발 좀 해 달라구. 천 년 만의 여흥이 이렇게 시시하게 끝나면 영 곤란하단 말이야…….]허나, 핀치에 몰린 상황에서도 나는 여전히 여유를 잃지 않았다.
어차피 윌터 도박 실력이 잼병인 건 이미 알고 있었고, 그다음으로 리즐을 내보낸 것 역시 전략적으로 제일 약한 카드를 먼저 꺼내어 최대한 놈을 탐색하려는 의도였다.
“걱정 마. 이제부터가 진짜니까.”
다음 주자는 세니르.
나는 세니르의 뒤편에서 어깨에 손을 얹고는 귓가에 가만히 속삭였다.
“이번에 이기면 카엘 바로 다음 아티팩트는 세니르, 네 차례야.”
“……!?”
순간 세니르가 흠칫하고는 가만히 고개를 돌려 날 바라보았다.
그녀와 눈이 마주친 나는 말없이 빙긋 웃어 보였다.
“…….”
그리고.
어느새 그녀의 눈동자에 기이한 열기가 일렁이기 시작했다.
[좋아, 그럼 다음 게임은 좀 색다른 걸 해 볼까?]그 와중에 자로체가 입가를 쫙 찢으며 의미심장한 미소를 머금었다.
2연승을 내달리며 한층 여유가 생긴 녀석은 이제 거의 우릴 독 안에 든 쥐를 보듯이 했다.
나는 그런 놈을 보며 속으로 콧방귀를 뀌었다.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
요기 베라의 명언을 떠올리며 머릿속으로 나름의 새로운 설계를 했다.
* * *
기기기기긱.
길고 음산하게 생긴 검은 손톱으로 서서히 나무 조각을 빼내는 자로체.
놈의 움직임은 흡사 폭탄 제거반을 방불케 할 정도로 신중하기 짝이 없었다.
그 섬세한 움직임에 아슬아슬했던 나무 탑이 그 형태를 유지했다.
[흐흐… 성공이다. 얼른 진행하도록.]“……!?”
믿을 수 없는 광경에 다들 입을 떡 벌리고 말았다.
저토록 빈약하고 앙상한 모습에도 무너지지 않고 온전히 서 있을 수 있다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나무 탑은 아슬아슬해 보였다.
“맙소사… 대체 저게 어떻게 가능한 건데? 저것도 사기 아니야!?”
윌터가 혀를 내두르며 탄식을 했다.
녀석의 눈에는 어떻게 해도 더는 비벼 볼 각이 보이질 않는 모양.
물론 내가 보기에도 그랬다.
어지간해선 살짝 입김만 불어도 쓰러질 것처럼 위태로워 보였으니까.
하지만.
적어도 이런 분야에서 세니르는 어지간한 부류가 아니었다.
[얼른 진행하라니까? 크흐흐… 이제 그 잘난 여유도 끝이다.]꽤 흥이 난 듯 자로체가 연신 세니르를 도발했다.
그럴 법도 한 게, 그녀는 놈과의 게임에서 시종일관 여유로운 태도로 나무 조각을 슥슥 빼냈다.
아무런 고민도, 망설임도 없는 신속한 움직임…….
허나, 단 한 번도 나무 탑이 흔들리거나 위태로운 모습을 보인 적이 없었다.
그 빠르면서도 안정적인 움직임에 자로체는 물론 다른 이들도 반쯤 넋을 잃고 이를 지켜봐야만 했다.
허나, 이번만큼은 그런 그녀조차도 더는 어렵다고 느껴질 만큼 너무 난이도가 높아 보였다.
어느덧 나를 제외한 다른 동료들이 근심 어린 눈길로 그녀를 지켜보는 가운데…….
세니르는 늘 그랬듯 군더더기 없는 움직임으로 대번에 나무 조각을 빼냈다.
쏙.
아무 저항 없이 슥 빠진 나무 조각.
이번에도 그 앙상한 나무 탑이 미동도 하지 않았다.
마치 제일 정확하고 안전한 조각을 본능적으로 알아채는 초감각이 있는 듯한 모습.
[…….]자로체가 할 말을 잃은 듯 한동안 굳은 얼굴로 우두커니 서 있었다.
설마 이것까지 이렇게 쉽게 성공할 줄은 몰랐는지 제 차례가 왔음에도 미동도 없었다.
나는 씨익 웃고는 그런 놈을 향해 역도발을 가했다.
“뭐야? 젠가 하던 놈 화장실 갔나? 갑자기 꿀 먹은 벙어리가 됐네.”
[…….]“거, 뭐 하슈? 답답해 죽겠네… 빨리 빨리 좀 합시다.”
결국 내 재촉에 침통한 얼굴로 입술을 꾹 다물고 있던 놈이 다시금 움직이기 시작했다.
파르르.
어느새 놈의 손가락이 미세하게 떨리는 것이 보였다.
이제 놈이 긴장할 정도로 불가능의 영역에 이르고 만 것.
[할 수 있다. 할 수 있어…….]마치 스스로에게 최면이라도 걸 듯 혼잣말로 중얼거리며 손을 뻗던 자로체.
그가 탑의 중앙 즈음, 삐죽 튀어나와 아슬아슬하게 걸쳐 있던 나무 조각에 손을 대는 순간.
툭.
와르르르르!
여지없이 나무 탑이 무너져 내렸다.
이내 초조한 눈길로 이를 지켜보던 윌터와 카엘이 잔뜩 흥분하여 소리쳤다.
“돼… 됐다!! 해냈어!! 세니르가 드디어 저 못생긴 놈에게 제대로 한 방 먹였다고!!”
평소에 별로 사이가 안좋았지만 격하게 하이파이브를 할 정도로 한껏 고무된 카엘과 윌터.
이 순간만큼은 두 사람도 승리의 기쁨에 흠뻑 취할 수밖에 없었다.
전판에 참혹하게 패배하여 앙금이 남아 있던 윌터는 물론 이 게임에 제 아티팩트가 걸려 있던 카엘의 입장이 들어맞은 것.
[으으으…….]한편 이를 멍하니 지켜보던 자로체의 눈가가 파르르 떨렸다.
방정맞은 놈들의 세레머니가 영 심기가 불편한 모양.
나는 그런 놈의 모습을 힐끔 보고는 회심의 미소를 머금었다.
세니르는 다른 건 몰라도 균형 감각에 한해서는 천부적인 재능을 타고났다.
애초에 엘프 자체가 그런 쪽에 특화된 종족일 뿐 아니라 세니르는 바람을 다루는 능력까지 있기에 공기 중의 미묘한 흐름까지 읽어 내는 눈썰미를 지닌 것.
결국 이 게임에선 시작부터 세니르가 이기고 들어간 것이나 다름없었다.
더하여 현재 카엘과 세니르는 내가 제시한 고대 유물이란 당근에 눈이 돌아간 상태.
무릇 확고한 목표가 생긴 이는 집중력이 극한에 이르는 법이었다.
‘역시 내 주인공들이야…….’
나는 흡족한 미소를 띤 채 한껏 승리의 여운을 즐겼다.
[그래… 뭐, 좋다!! 그럼 바로 다음 게임에 들어가지!! 뭐… 어차피 한 번 정도는 져 주려고 했어. 오랜만의 여흥인데 나도 좀 즐겨야 하지 않겠어? 크흐흐.]뒤늦게 평정을 되찾은 자로체가 웃음기 어린 어조로 중얼거렸다.
[사실 지금부터가 본격적인 게임이 될 거야. 여태껏 몸풀기였다면… 이제부턴 고도의 재능이 필요한 진짜배기 게임을 진행할 예정이거든. 흐흐… 자! 다음엔 누가 하겠나!?]놈의 물음과 동시에 기다렸다는 듯 우리 쪽에서 다음 주자가 앞으로 나섰다.
“내가 하겠다.”
낮고 묵직한 음성.
어느새 성큼 앞으로 나선 카엘의 두 눈엔 기이한 열기가 일렁이기 시작했다.
왠지 기시감이 느껴지는 눈빛…….
바로 조금 전에 세니르가 게임을 시작할 때 보였던 바로 그 눈빛이었다.
‘끝났네…….’
이미 승리를 예감한 나는 입가에 은근한 미소를 머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