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Academy's Underworld Player RAW novel - Chapter 240
240화
츠츳, 츠츠츠츳.
거침없이 그림자를 통해 이동하던 와중, 슈란이 나지막한 음성으로 읊조렸다.
“저… 정말로… 방법이 이것밖엔 없는 거야?”
“응?”
뜬금없는 그녀의 물음에 의아한 어조로 되물었다.
늘 괄괄한 목청을 자랑하던 그녀답지 않게 어딘가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였기에.
“아니… 나도 충분히 빠른데…….”
여전히 힘겹게 입술을 떼는 그녀의 음성.
미니 맵 보랴, 그림자 이동기를 운용하랴… 안 그래도 이래저래 정신이 없던 차였기에 나도 모르게 힘주어 대꾸했다.
“아니, 그래서… 나보다 빨라?”
“뭐… 그건 아니지만…….”
“그럼 얌전히 있어. 안 그래도 한시가 급한 상황인데… 대체 또 뭐가 문제야!?”
“…….”
결국, 입술을 굳게 다문 슈란.
나는 다시금 정신을 집중한 채 전력으로 움직였다.
빠른 속도감 탓인지 내 등에 업혀 있던 슈란이 한층 내 목을 꼭 감았다.
‘최대한 빨리 이 근방의 좀비를 모두 제거해야 해…….’
분명 루치페르 그놈 또한 좀비를 찾아 움직일 터.
놈보다 한발 먼저 좀비들을 찾아 뚝배기를 깨 버려야만 했다.
다행히 내겐 미니 맵이란 기막힌 레이더가 있는 상황.
게다가 그 누구보다 빠르게 이동할 수 있는 그림자 이동기도 있었다.
얼추 수십은 되어 보이는 좀비들을 일일이 찾아가 죽이기엔 몸이 하나라는 게 문제였지만…….
그 또한 이번에 새로 개방된 그림자 분신 스킬로 해결할 수 있었다.
내 분신들로 하여금 동료들을 하나씩 맡아 사방으로 산개한 것.
‘이제 시간 싸움이야…….’
시시각각 늘어나는 좀비도 문제지만, 루치페르 역시 견제해야만 했다.
그 녀석 또한 모든 좀비를 찾아 권능을 다시 흡수하려 할 테니까.
결국, 내가 빌어먹을 좀비들을 하나씩 잡아 죽일 때마다 루치페르가 되찾을 권능 또한 희미해질 수밖에 없다.
어쨌든 나로선 좀비의 증식을 막든, 루치페르를 약화시키든 무조건 좀비를 잡아 족쳐야만 하는 상황.
이 시점에서 그림자 분신의 스킬 개방은 실로 적절한 타이밍이라 할 수 있었다.
“……?”
잠시 상황을 정리하며 생각에 잠겨 있던 찰나.
내 목을 꼭 감은 채 업혀 있던 슈란의 손이 미약하게 떨리는 게 느껴졌다.
‘뭐야, 이제 와서… 겁먹은 건가?’
좀 의외긴 했다.
리피나는 물론 그 무시무시한 루치페르를 눈앞에 두고도 눈 하나 끔뻑 않던 그녀였기에.
그래도 좀비는 조금 무섭긴 한 모양.
‘하긴, 얘도 아직 어린 녀석이지…….’
아무리 강한 재능을 타고난 주인공들이라고는 하나.
설정상, 아카데미의 생도들은 아직 여물지 않은 사춘기의 소년 소녀들이었다.
완전히 이지를 상실하여 괴물이 되어 버린 인간을 몇 번이고 마주해야 하는 게 그녀로서도 결코 쉬운 일은 아닐 터.
그런 생각이 들자 조금 미안해지기는 했다.
나는 입술을 잘근 깨물고는 나직이 중얼거렸다.
“미안, 슈란… 이런 일에 휘말리게 해서…….”
“…….”
어느덧 등 뒤에 거칠게 느껴지던 숨결이 조금은 안정된 느낌이었다.
“무슨 소리야. 네 탓이 아니잖아.”
“하지만…….”
“그런 말 마. 네가 자책할 필요 없어.”
“…….”
조금 전과는 달리 사뭇 단호하기까지 한 그녀의 음성.
나는 왠지 더 마음이 무거워지는 걸 느끼며 입을 굳게 다물어 버렸다.
“오히려 우리가 네게 고마워해야지. 네가 아니었다면 이렇게 그 망할 놈들을 조기에 발견하고 소탕해 버릴 기회도 갖지 못했을 테니까.”
오히려 위로까지 건네는 슈란의 말에 나는 아무런 답도 할 수 없었다.
“나는 물론… 다른 녀석들도 역시 같은 생각일 거야. 네가 아니었다면 우리 모두 여전히 아카데미에 처박혀 서로 자기가 최고라고 건방을 떨며 형편없는 모습을 보였을 테니까.”
또박또박 말하는 슈란의 목소리에는 확신마저 어려 있었다.
그 음성에서 느껴지는 굳은 신뢰에 더욱 마음이 복잡해졌다.
“그렇게 우리가 우물 안 개구리처럼 치기 어린 경쟁심으로 시간 낭비를 하고 있을 때… 그 와중에도 넌 우릴 다그치고 진짜 현실을 깨닫게 하여 여기까지 이끌어 주었지. 혼자 더 먼 곳을 보면서 말이야. 어리석게도… 나는 나중에야 그 사실을 깨달았어.”
“…….”
“너는 좀 뭔가… 우리 또래 같지 않아. 정말 어른스러워. 강하고, 현명하고, 늘 깨어 있지……. 난 정말 네게 많이 배웠어.”
한번 말문이 트자 봇물 터지듯 쏟아 내는 그녀의 진솔한 발언.
‘아니, 근데 너무 올려 치는 거 아닌가…….’
미처 예상치 못한 슈란의 반응에 솔직히 조금 당혹스럽기까지 했다.
아무래도 그동안 혼자 수련을 한다고 돌아다니며 추억에 많이 잠긴 모양.
흔히 과거는 미화된다고 하지 않는가?
그간 혼자 외롭고 고된 수련을 지속하며 아카데미에서의 추억을 적잖이 보정한 듯했다.
“그래, 이제 보니 너도 좀 철이 든 것 같다.”
내 말에 슈란이 살짝 발끈했다.
“뭐? 그럼 예전엔 철딱서니가 없었단 거야!?”
“아니… 꼭 그런 얘긴 아니지만… 근데 뭐, 솔직히 말해서 철이 들었던 건 아니었…….”
“뭐, 이 자식아?”
“켁!”
내게 업혀 있던 슈란이 목에 걸고 있던 팔을 바짝 끌어당겨 헤드락을 가했다.
아무래도 내가 잘못 본 거 같다.
역시 얘는 철 들려면 아직 한참 남았…….
그렇게 잠시 녀석과 실랑이를 벌이던 찰나.
일순 어깨를 흠칫한 내가 두 눈을 가늘게 뜬 채 저편에 시선을 두었다.
심상치 않은 내 반응에 슈란도 잠시 멈칫하고는 내 시선을 따라 정면을 보았다.
– 그으으… 그워어어어…….
여기저기 찢기고 해져 누더기 된 차림으로 비틀거리며 걷는 형체.
이미 그 기이한 외형을 잘 알고 있던 우린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입을 열었다.
“찾았다.”
* * *
– 그우워어어어어!!
우릴 발견하자마자 이쪽을 향해 득달같이 달려오던 좀비.
파앗!
그 순간.
무언가 눈앞으로 튀어 나가며 등 뒤가 금세 허전해졌다.
그와 동시에 섬뜩한 예기가 빛을 번뜩였다.
툭.
깨끗하게 잘린 좀비의 목이 바닥에 떨어졌다.
– 구으… 그으으…….
놀랍게도 좀비는 목이 잘리고도 머리만 남아 짧은 신음을 흘렸다.
심지어 기우뚱 쓰러진 몸뚱이도 이리저리 휘적거렸다.
푹!
그런 놈의 머리 위로 가차 없이 슈란의 로제 글라디우스가 떨어졌다.
결국 그대로 움직임이 멎어 버린 좀비의 모습.
이내 슈란이 고개를 돌려 날 바라보았다.
그리곤 입가에 씨익 미소를 흘렸다.
‘어때? 잘했지?’
마치 그렇게 묻듯 꽤나 열렬한 눈빛.
물론 그런 유치한 행태를 일일이 봐줄 시간이 없었다.
“가자.”
짧게 툭 내뱉고는 다시금 그녀를 향해 등을 내보였다.
잠시 우두커니 서 있던 슈란이 입술을 비죽이고는 성큼성큼 다가와 와락 등 뒤에 업혔다.
처음과는 달리 꽤나 거친 몸짓에 나도 모르게 헛숨을 들이켰다.
잠시 내가 굳은 채 말이 없자 그녀가 퉁명스레 물었다.
“왜?”
“…….”
철이 들기는 개뿔…….
역시 아직 애는 애였다.
결국 원활한 임무 수행을 위해 순순히 그녀의 뜻대로 해 주었다.
좀비가 있는 곳으로 업어 모시기만 하면 알아서 좀비들의 목을 뎅겅뎅겅 베어 주는데…….
이 정도는 충분히 해 줄 수 있는 게 아닌가?
돈 드는 것도 아닌데 뭐…….
“잘했어, 슈란. 네가 최고야.”
“…….”
“역시 저 망할 괴물 놈들을 베는 데엔 너만한 녀석이 없는 것 같네.”
선심 쓰듯 툭 내뱉은 나는 얼른 다음 목표물을 향해 빠르게 이동했다.
그 와중에 등 뒤의 슈란은 다시금 침묵에 잠겼다.
그리곤 한결 수그러든 말투로 중얼거렸다.
“아, 알면 됐어…….”
몰랐는데 확실히 칭찬에 은근히 약한 타입이다.
나는 한결 얌전해진 슈란의 모습에 살며시 한쪽 입가를 끌어 올렸다.
왠지 꽤나 좋은 조련 방법을 깨달은 듯했기에…….
* * *
스각!
벌써 네 번째 좀비.
보이기만 하면 눈 깜빡할 새에 목을 뎅겅 날려 버리는 슈란 덕분에 꽤나 빠르게 근방의 좀비들을 제거해 나갈 수 있었다.
물론 그때마다 적절히 칭찬을 곁들여 줬음은 물론이었다.
“잘했어, 슈란. 네 검술이 최고야. 늘 새로워. 짜릿해!!”
표정 관리가 안 되는지 슈란은 억지로 입꼬리를 간수하려 꽤나 애를 썼다.
“시끄러워, 오버하지 마…….”
요란스레 치켜세워 주는 내 말에 그녀가 퉁명스레 쏘아붙이며 다시 내게 업혔다.
하나 몸을 솔직한지 상기된 두 뺨은 숨길 수가 없었다.
나는 그런 슈란을 힐끔 보고는 회심의 미소를 흘렸다.
‘진심 너무 편한데?’
세 치 혀로 천 냥 빚을 갚는다더니… 역시 옛말 틀린 거 하나도 없었다.
[윌터, 카엘, 세니르. 지금 상황 어때? 놈들은 좀 잡았어?]나는 귓속말을 통해 세 사람을 향해 동시에 상황을 물었다.
다행히 다른 녀석들도 꽤 순조로운 듯했다.
물론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해 이미 놈들에게 그림자 부착도 해 둔 뒤였다.
지금도 상단의 멀티 캠에 보이는 각각의 화면에선 내 분신에 업힌 채 바쁘게 움직이는 동료들의 모습이 고스란히 시야에 들어왔다.
나는 동료들의 이동 수단이 된 분신들을 보며 헛웃음을 흘렸다.
‘늬들이 욕 본다…….’
어쨌든 내겐 천만다행이었다.
아무리 시국이 시국이라지만 그래도 시커먼 남정네를 들쳐 업고 뛰어다니고 싶진 않았기에…….
원래 제일 가벼워 보이는 세니르와 함께하려 했지만 대뜸 슈란이 끼어들었다.
[저… 저 수상해 보이는 가짜들이랑은…… 왠지 같이 다니기 찝찝해서 그렇다고!!]얼굴을 붉힌 채 변명하듯 한껏 소리치던 그녀의 고집에 결국 슈란이 나와 함께하게 되었다.
뭐, 어쨌든 남자 놈들보단 낫지 않은가?
생각보다 그리 무겁지도 않았고.
“좋아, 이제 얼마 안 남았어…….”
재차 미니 맵을 확인한 나는 주먹을 꾹 말아 쥐었다.
뭐 아직 좀비가 어디까지 퍼진지는 확실치 않지만…….
이 부근의 좀비들만 확실히 제거해도 한시름 놓을 수 있을 터였다.
“슈란, 조금만 더 힘내자.”
“걱정 말고 믿기만 하라고. 난 늘 힘이 넘치는 상태니까.”
슈란이 꽤 상기된 얼굴로 중얼거렸다.
역시나 든든하기 그지없는 그녀의 모습에 나 역시 흡족한 미소를 흘렸다.
– 구으으…….
– 그으… 으으워어어…….
그 순간.
저편에 좀비 두어 마리가 몰려 있는 게 시야에 들어왔다.
‘찾았다…….’
안 그래도 미니 맵의 외곽 쪽에 뭉쳐 있던 붉은 점을 보고 전력으로 이쪽으로 내달려 온 참이었다.
“슈란!”
“말 안 해도 이미 출동하려던 참이었다고~!”
슈란이 신을 내며 그쪽을 향해 도약하려던 순간.
두 눈을 부릅뜬 나는 얼른 그녀의 목덜미를 잡아챘다.
“……!?”
생각지도 못한 상황에 균형을 잃고 휘청한 슈란.
나는 그대로 그녀를 끌어안고는 그림자로 숨어들었다.
“뭐… 뭐 하는!? 으읍…….”
얼굴이 벌겋게 물든 채 빽 소리를 내지르던 그녀의 입을 얼른 틀어막았다.
그리곤 서둘러 눈짓으로 저편을 가리키며 신호를 보냈다.
“…….”
그제야 돌발 상황을 알아챈 슈란이 조심스레 내 시선을 따라 저쪽을 바라보았다.
펄럭, 펄럭.
크고 앙상한 날개를 펄럭이며 좀비들을 향해 사뿐히 착지하는 검은 형체.
여전히 그 존재감이 실로 어마어마했다.
꽤 거리가 있음에도 여기까지 느껴지는 농밀한 마기에 절로 소름이 돋았기에…….
“루치페르…….”
내가 심각한 얼굴로 중얼거리자.
어느새 입이 풀린 슈란이 미간을 찡그리며 말했다.
“뭔 소리야? 쟨 루안이잖아.”
“…….”
내가 말이없자 그녀가 이를 으득 물고는 거침없이 내뱉었다.
“하여간 저 새끼… 감히 통수를 때리고 저런 역겨운 마족이랑 손을 잡아? 두고 봐. 내가 저 놈은 꼭 죽기 직전까지 흠씬 패 줄 테니까…….”
순간 나도 모르게 실소를 흘렸다.
왠지 슈란이라면 정말로 그럴 것 같았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