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Academy's Underworld Player RAW novel - Chapter 242
242화
“부탁할게.”
끄덕.
내 간곡한 부탁에 가볍게 고개를 끄덕인 세니르.
나는 그녀를 태운 슈란(말)의 갈기를 가볍게 쓰다듬어 주었다.
그러곤 녀석의 귓가에도 나지막이 속삭였다.
“슈란, 부탁해. 너만 믿는다.”
이?히히히히?!
슈란(말)이 걱정 말라는 듯 목을 빼고 길게 포효했다.
역시 늘 기운이 넘치는 녀석이었다.
우우우웅.
어느새 위습을 소환한 세니르가 바람을 부리기 시작했다.
더하여 슈란(말)도 날개를 활짝 펴고는 무서운 속도로 자리를 박차고 내달렸다.
금세 가속도를 얻은 슈란이 날개를 펄럭이며 저 너머로 사라졌다.
세니르의 버프 능력에 슈란(말)의 질주력이 더해지자 그야말로 제트기가 따로 없었다.
‘부디 좋은 소식이 있기를…….’
어느새 점처럼 작아진 세니르와 슈란(말)의 뒷모습을 보며 생각했다.
“크흑… 왜 저 녀석이 가는 거야. 전령 노릇은 나도 잘할 자신 있는데…….”
“세니르가 훨씬 가볍잖아. 동물도 잘 다루고……. 게다가 이동 속도 증가 기술까지 있으니 누가 봐도 저 녀석이 적임자야.”
“그, 그치만…….”
“멀미까지 심한 놈이 저 거친 녀석을 다루겠다고? 아서라. 나를 제외하곤 세니르 정도나 저 녀석을 컨트롤할 수 있다고.”
못내 아쉬움을 숨기지 못하던 윌터.
결국 녀석도 순순히 이 상황을 받아들였다.
“그래, 인정! 인정한다! 나 같은 백정 망나니는 그저 무식하게 적들이나 때려잡아야지. 따흐흑…….”
나는 그런 윌터의 양어깨를 거칠게 붙들었다.
“!?”
순간 놀란 눈으로 날 바라보는 윌터.
나는 한층 진지한 어조로 이어 말했다.
“잘 들어, 윌터. 이제 우리가 영웅이 되는 거야.”
“영웅… 이라고?”
“그래, 아실리 총장님이나 레오너드 대공처럼 역사에 길이 남을 영웅 말이야. 이 세상의 모든 부모는 잠들기 전 자식에게 네 활약상을 이야기해 주고, 음유 시인은 대륙을 떠돌며 너의 전설적인 무위를 노래하겠지…….”
“…….”
“남자라면 이런 포부 정도는 있어 줘야지. 안 그래? 다들 그 역사의 현장에서 전투를 치르고 있을 때… 넌 그 황금 같은 기회를 놓치고 혼자 멀미 나는 말이나 타고 있을 거야? 정말 그걸 원해? 그런 거야?”
“그, 그게…….”
“그래, 좋아! 그럼 세니르는 다시 빠꾸시키고 네가 대신 가는 걸로 할게!! 잘됐네. 이제 음유 시인의 노래에 이 대목이 추가되겠군. 아카데미의 영웅들이 모두 힘을 합쳐 필사의 전투를 치를 때 엔드류 윌터는 말을 타고 꽁지가 빠져라 달렸다네! 오오… 대륙에 다시 없을 위대한 전령, 엔드류 윌터!!”
“…….”
어느새 낯빛이 하얗게 질린 윌터가 빽 소리쳤다.
“아, 아니! 그렇지 않다!! 물론 그런 자리에 이 몸이 빠질 수야 없는 노릇이지!! 암, 그렇고말고……!!”
다급히 말하는 윌터의 모습에 어느덧 내 입가에 미소가 고였다.
역시나 다루기 제일 쉬운 녀석이었다.
쿠웅!
윌터를 진정시킨 나는 다시금 리빙 자이언트를 소환했다.
혹시 모를 좀비 사태에 대비해 세니르에겐 아실리 총장에게 상황 보고를 부탁한 상황.
더불어 로만 씨에게 보낼 좀비의 손가락도 함께 건넸다.
‘뒷일에 대한 대비는 모두 끝났으니… 이제 우리 차례야.’
어느덧 리빙 자이언트에 탑승한 나는 동료들을 품에 안았다.
“다들 준비됐어?”
슈란과 카엘이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답했다.
“언제든.”
* * *
쿠웅!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마침내 험준한 산맥을 넘은 리빙 자이언트가 지면에 착지했다.
고오오오.
놀랍게도 산맥 너머에는 또 다른 설산이 그 위용을 드러냈다.
하늘을 꿰뚫을 듯 까마득한 봉우리는 보는 것만으로도 아찔한 기분을 자아냈다.
‘찾았다…….’
이른바 블랙 드래곤의 레어(Lair)가 있는 장소였다.
대번에 산맥을 가로질러 보스 몬스터가 있는 최종 장소까지 오니 기분이 묘했다.
한 차례 숨을 돌린 나는 다시금 그곳을 향해 지면을 박차고 내달렸다.
금세 설산의 지척까지 이른 나는 감탄성을 흘렸다.
가까이 다가가자 그 위용이 한층 생생했다.
“설마… 이걸 오르려는 건 아니지?”
산의 높이를 본 윌터가 질린 표정으로 물었다.
나는 그런 녀석을 향해 무척 진지한 어조로 중얼거렸다.
“윌터 네 녀석… 영웅이 되고 싶지 않은…….”
“알았어, 알겠다고……!!”
효과 만점의 주문으로 금세 윌터의 입을 제압한 나는 지체 없이 설산을 향했다.
워낙 까마득한 산이라 그런지 지나쳐 온 산맥을 넘어올 때보다 훨씬 힘이 들었다.
경사도 무척 가팔랐기에 아무리 리빙 자이언트라 해도 동료들까지 품고 등반을 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
“좋아, 그럼 이쯤에서 한 번 갈아타 주고.”
빠르게 판단을 내린 나는 리빙 자이언트를 역소환하곤 재차 그림자 분신술을 썼다.
이것도 무한대로 활용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기에 최대한 아껴야 했지만 이곳에선 달리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하, 또 셔틀이야? 이거 완전 노동 착취 아니냐?”
분신들이 나오자마자 금세 상황 파악을 하곤 투덜거렸다.
“콱, 씨… 주인이 시키는데 까라면 까야지, 어딜 불평이야? 빠져 가지고.”
한 손을 들어 올리며 위협을 하자 다들 움찔하면서도 끝까지 입을 놀렸다.
“뉘예, 뉘예~”
“…….”
하여간 누구 닮아서 저렇게 촐싹대는지 모를 일이었다.
그렇게 리빙 자이언트에서 분신으로 환승을 시도하자 어김없이 슈란이 슬그머니 내게 다가왔다.
“난… 짝퉁은 안 키우는 거 알지?”
“…….”
결국 이번에도 내가 슈란을 맡고 분신들이 각각 카엘과 윌터를 업은 채 재차 이동을 시작했다.
확실히 가파른 산을 오를 땐 그림자를 쓰는 게 요긴했다.
마치 엘리베이터를 타듯 별 힘들이지 않고 산을 오르는 게 가능했으니까.
츠츠츠츠츳.
동료를 업은 세 사람의 신형이 빠르게 산을 타고 올랐다.
마치 경쟁이라도 하듯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무서운 속도로 치솟는 우리의 모습에 슈란이 새삼 혀를 내둘렀다.
“허… 하나도 무서운데 이런 괴물이 복사가 된다니…….”
그럼에도 설산은 쉬이 정복을 허락하지 않을 정도로 까마득한 높이를 자랑했다.
점점 고도가 올라갈수록 거친 눈보라와 함께 살을 에는 추위가 이어졌다.
파앗!
어느새 나를 비롯한 분신들이 산의 정상에 올랐다.
이내 눈앞에 들어온 광경에 동료들의 두 눈이 한층 커졌다.
“여, 여긴…….”
놀랍게도 산의 정상에는 분화구와 같은 널따란 공간에 드넓은 호수가 자리하고 있었다.
창백할 정도로 꽁꽁 얼어 버린 호수는 시야에 다 들어오지도 않을 정도로 장대한 위용을 자랑했다.
“아무것도… 없는데?”
어느새 분신과 함께 지면에 착지한 윌터가 의아한 기색으로 중얼거렸다.
그 와중에 눈썰미 좋은 카엘이 저편의 골짜기를 가리켰다.
“저기다.”
다들 그쪽을 보자 동굴처럼 생긴 틈바구니가 시야에 들어왔다.
“저곳이… 레어의 입구?”
슈란도 긴장했는지 살짝 떨리는 어조로 읊조렸다.
나는 고개를 내젓고는 쿨하게 내뱉었다.
“아니, 그쪽이 아니야.”
“……?”
내 말에 동료들이 의아한 기색으로 날 바라보았다.
물론 원래대로라면 그곳이 레어의 입구가 맞다.
하지만 지금 우린 그런 정석적인 루트를 이용할 시간이 없다.
굳이 그럴 필요도 없고.
내가 분신들을 향해 눈짓하자 다들 지면의 그림자로 일제히 스며들었다.
츠츠츠츠츳.
그 후로도 몇 번을 더 그림자를 타고 내려갈 정도로 깊디깊은 공간.
얼마 지나지 않아 새로운 장소에 이르자 동료들이 저마다 두 눈을 부릅떴다.
“……!?”
어찌 이런 공간이 있을까 싶을 정도로 어마어마하게 넓은 공동.
사방에 가득 쌓인 금은보화는 눈이 부실 정도였다.
그리고…….
그곳의 중앙엔 거대한 크기의 드래곤이 잠들어 있었다.
눈에 다 들어오기도 어려울 만큼, 실로 웅장한 위용.
“저… 저 녀석을… 잡으라고?”
윌터가 떨리는 목소리로 읊조렸다.
어이가 없는지 헛웃음까지 흘리는 녀석.
사실 내가 봐도 황당하기는 했다.
실제 게임에서도 화면에 다 안 들어올 정도로 초거대 몬스터로 기획했던 녀석이니까…….
뭐, 그래도 게임에서야 그동안 착실히 성장을 했다면 수십 번의 트라이 끝에 패턴을 파훼하여 충분히 제압할 수 있는 녀석이기도 했다.
허나 실제와 게임은 엄연히 다른 법.
흡사 빌딩 하나가 웅크리고 있는 것만 같은 저 괴물을 때려잡아야 한다는 게 몹시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잡을 수 있어…….”
내 말에 동료들이 천천히 고개를 돌려 날 바라보았다.
다들 반신반의하면서도 한편으론 한층 힘을 얻은 듯 비장한 얼굴이었다.
저들도 알고 있는 것이다.
내가 이렇게 말할 땐 뭔가 믿는 바가 있다는 걸.
“저기 있다. 바로 저거야.”
나는 단상 위에 있는 작은 보물 상자를 가리켰다.
온갖 금은보화가 쌓여 있는 이곳에서도 제일 귀해 보이는 물건이었다.
다른 곳도 아니고 바로 드래곤의 코앞에 위치해 있었으니까…….
아마 온갖 제물을 탐하기로 유명한 드래곤조차 제일 아끼는 물건이리라.
“저거 뭐? 설마… 아니지? 내가 생각하는 그런 거 아니지?”
윌터가 불안한 어조로 물어 왔다.
“네가 뭘 생각하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보통 믿고 싶지 않은 게 사실일 때가 많은 법이지.”
짧게 대꾸한 나는 숨을 죽인 채 재차 그림자 이동을 시도했다.
츠츠츠츳.
“야, 야… 어디 가? 안 돼…….”
윌터가 식겁한 표정으로 만류했지만 이미 자리를 뜬 지 오래였다.
몇 번의 이동 끝에 어느새 단상 근처의 그림자에 다다랐다.
스으윽.
나는 그림자 밖으로 슬그머니 한 손을 꺼낸 채 단상 위를 더듬었다.
조심스레 단상 위를 더듬거리는 내 손길에 이를 지켜보던 동료들이 저마다 사색이 되었다.
잠든 드래곤이 날숨을 내뱉을 때마다 뜨거운 콧김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더듬더듬.
상자가 한 번에 잡히질 않으니 그 손길이 점차 분주해졌다.
그렇게 한창 바쁘게 단상 위를 더듬던 와중.
뭔가 이상한 기분이 들어 동료들이 있던 곳을 바라보았다.
“……?”
순간 나도 모르게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동료들이 누구 하나 할 것 없이 경악에 찬 얼굴로 이쪽을 응시하고 있었기에.
“…….”
왠지 싸한 예감에 다시 고개를 돌려 단상 쪽을 바라본 순간.
어느새 시야를 가득 채운 시커먼 형체가 두 눈을 희번덕거리는 게 보였다.
내 키보다도 더욱 커 보이는 긴 동공이 세로로 죽 찢어져서는 한층 위협적인 형체를 띠었다.
-크롸라라라라라!!
공동을 통째로 뒤흔들 만큼 어마어마한 포효가 이어졌다.
나는 얼른 다시 그림자 속으로 쏙 몸을 숨겼다.
화르르륵!
순식간에 그 거대한 아가리에서 뿜어져 나온 불길이 공동을 뒤덮었다.
분신들 역시 눈치 빠르게 동료들을 데리고 그림자 속으로 숨어 버렸다.
“하, 고 새끼… 승질 드럽네…….”
설마 곧장 브레스를 쏴 날릴 줄은 몰랐다.
어쨌든 놈이 아끼는 보물이 잔뜩 있는 거처가 아닌가?
포악하다는 설정답게 아주 성질머리가 더럽고 고약한 녀석이었다.
“에라, 모르겠다!!”
그 순간.
그림자에서 튀어나온 윌터가 템페스트 버스터를 소환하곤 놈의 등 뒤를 후려갈겼다.
쿠콰콰콰콰!
방어력 극강을 자랑하는 드래곤의 비늘에 부딪힌 회오리가 격렬한 굉음을 자아냈다.
“윌터… 이 미친 새끼…….”
정면 대결을 할 생각 따윈 전혀 없던 나로선 당황할 수밖에 없는 상황.
허나 슈란과 카엘도 질 수 없다는 듯 각자 전용 아티팩트를 꺼내 든 채 블랙 드래곤을 향해 공격을 가했다.
“좋아, 오늘 저녁은 도마뱀 구이로 정했다!”
“드래곤 따위, 우리 저주받은 일족의 상대가 되지 못한다!”
초장부터 모든 화력을 뿜어내는 듯 사방에서 세 사람의 공격이 쉬지 않고 이어졌다.
원기의 알약을 통해 이미 모든 체력을 회복한 데다가 여기까지 오는 데 분신들의 도움으로 체력을 보존할 수 있었기에 가능한 일.
거의 모든 성장을 끝마친 주인공급 캐릭터들이 한 번에 화력을 쏟아 내니 녀석조차 적잖이 타격을 받은 듯 비틀거렸다.
“이 녀석들…….”
다들 어떻게든 저들 쪽으로 이목을 끌려고 하는 듯 꽤 필사적인 모습.
그 와중에 슈란이 사력을 다해 외쳤다.
“지금이야, 강준식… 빨리!!”
나는 입술을 잘근 깨물고는 얼른 보물 상자를 향해 이동했다.
“고맙다!”
-크롸라라라라!
머리끝까지 분노가 차오른 듯 놈이 한층 거세게 포효했다.
덥석!
그 틈에 보물 상자를 손에 넣은 나는 그 급박한 상황에서도 씨익 미소를 머금었다.
제아무리 드래곤의 위용을 자랑하는 최종 보스라도… 세계관의 설계자 앞에선 한낱 도마뱀일 뿐.
그렇게 나만의 꼼수를 통해 놈을 제압하려던 순간.
“어……?”
순간 시야에 들어온 광경에 나도 모르게 두 눈을 부릅떴다.
분노한 블랙 드래곤과 이를 에워싼 채 대치하고 있는 동료들.
그 와중에 어디선가 튀어나온 익숙한 형체 하나가 튀어 올랐다.
웅장한 드래곤의 위용에도 조금도 두려움이 없는 듯 무척이나 매서운 기세로…….
-그으워어어어어!
이내 블랙 드래곤의 꼬리에 들러붙은 놈이 비늘을 마구 물어뜯기 시작했다.
허나 드래곤은 파리를 떨쳐 내듯 곧장 꼬리를 휘둘러 그것을 날려 버렸다.
쾅!
“뭐, 뭐야…….”
생각지도 못한 광경에 나는 물론 동료들도 멍하니 굳어 있던 와중.
어느새 공동의 천장 틈바구니에서 무언가 우수수 쏟아져 나왔다.
-그으으!!
-그워어어어어!
-그으… 그으으워어!
“미… 미친…….”
순간 나도 모르게 욕지거리를 뇌까렸다.
소나기처럼 쏟아져 내린 좀비들이 순식간에 개미 떼마냥 블랙 드래곤의 몸에 들러붙고 있었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