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Academy's Underworld Player RAW novel - Chapter 29
29화
“크으으! 죽인다…….”
대번에 맥주를 원샷한 윌터가 잔을 식탁 위에 쿵 내려 두고는 입가를 슥 닦았다.
그러곤 노릇하게 구워 나온 사슴 구이를 으적으적 씹으며 세상 행복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역시 맥주에 고기만 한 게 없구나! 그동안 저 안에서 어떻게 버티고 살았는지 몰라. 하하핫!”
내가 말없이 맥주를 홀짝거리자 윌터가 맥주 한 잔을 더 주문하고는 툴툴거렸다.
“체내에 있는 마나의 정순함을 위해 식단까지 관리해야 한다니… 그건 너무 가혹하잖아. 안 그래? 대체 사람이 먹는 낙도 없으면 어떻게 사냐?”
여전히 내가 별다른 반응이 없자 윌터가 새로 나온 맥주를 또 한 잔 거하게 들이켜고는 입가를 슥 닦았다.
“크으… 근데 너 이 자식, 갑자기 왜 이렇게 말이 없어졌어? 코가 삐뚤어지게 놀자더니 잘 마시지도 않고… 설마 벌써 한계냐? 고작 반 잔도 안 마셔 놓고?”
“응, 내가 술을 잘 못해서.”
당연히 거짓말이었다.
퇴근하면 캔맥주 하나 따는 게 유일한 낙이었는데 술을 못할 리가 없지 않은가?
나 역시 알싸한 이 맥주 맛이 몹시 그리웠던 바이기도 했고…….
허나, 지금은 함부로 술에 취할 수가 없었다.
저편의 테이블 두어 개를 차지한 심상찮은 무리가 살벌한 눈길로 이쪽을 주시하고 있는 걸 보면…….
“그래, 역시 샌님은 샌님이었구만. 크흐흐…….”
윌터가 귀엽다는 듯 코웃음을 흘리며 또 맥주를 원샷해 버렸다.
벌써 일곱 잔째였는데 매번 저렇게 원샷을 해 버렸다.
아무래도 거친 용병단에서 술을 배우다 보니 저런 몹쓸 습관이 생긴 듯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크으으, 취한다…….”
어느덧 얼큰하게 취한 윌터.
그가 상체를 이리저리 흔들며 좀체 몸을 가누지 못했다.
그 모습을 확인한 도적 길드 놈들의 눈빛이 한층 날카로워졌다.
아무래도 이쪽이 취하길 기다리고 있던 모양.
분명 저쪽은 머릿수도 더 많고 은밀히 무장까지 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곧장 달려들지 않고 이쪽이 최대한 약화되길 기다리는 걸 보면 확실히 신중한 놈들이긴 한 것 같다.
하긴… 어쨌든 저들 입장에서 상대는 무려 황립 아카데미의 생도들.
최대한 유리한 상황을 조성하고 덤벼든다는 의중도 충분히 이해가 됐다.
‘하여간 하이에나 같은 놈들…….’
나는 헛웃음을 흘리며 가볍게 맥주를 홀짝였다.
그때였다.
놈들이 하나둘 자리에서 일어나려는 기미가 보였다.
윌터가 인사불성이 되어 테이블 위로 엎어져 버린 것과 거의 동시였다.
‘뭐야, 이 자식들… 난 아직 안 취했잖아!?’
나는 테이블 위에 엎드린 윌터를 빤히 바라보다가는 뒤늦게 그 연유를 깨달을 수 있었다.
‘설마… 이 녀석만 무력화되면 나 정도는 어렵지 않겠다 생각한 건가?’
이거, 아무래도 얕보이고 만 것 같다.
하긴… 단순히 체격만 봐도 윌터는 결코 녹록지 않아 보이기는 했다.
반대로 난 아카데미 생도라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유약해 보였고…….
‘제길! 이럼 계획에 차질이…….’
내가 입술을 잘근 깨물고는 얼른 자리에서 일어나려던 순간.
테이블 위에 엎어져 있던 윌터가 나지막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뒤에 머저리 새끼들… 슬슬 일어났냐?”
“!?”
순간 나도 모르게 할 말을 잃곤 윌터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허나, 놈은 여전히 붉게 물든 뺨을 한 채 팔자 좋게 두 눈을 감고 있었다.
‘뭐야, 이 녀석… 알고 있었나?’
그러고 보니 요새 좀 친해지면서 잠시 잊고 있었다.
윌터가 용병왕의 제자이자 무시무시한 웨어 울프의 수인이라는 걸.
“걱정 마. 한 놈도 남김없이 흠씬 패 줄 테니까…….”
윌터가 취한 목소리로 어깨를 떨며 큭큭거렸다.
“…….”
잠시 멍한 얼굴로 앉아 있던 나는 뒤늦게 정신이 번쩍 들었다.
결국 이렇게 되면 결과는 뻔했다.
분명 놈들은 윌터에게 흠씬 두들겨 맞고 무난하게 서브 퀘스트가 끝나게 될 터…….
벌떡!
순간 급한 마음에 나도 모르게 자리에서 일어나 버렸다.
“……?”
뜬금없는 내 움직임에 도적놈들은 물론 윌터도 의아한 기색으로 날 바라보았다.
‘원래 좀 더 동태를 살피다가 움직이려고 했는데…….’
아무래도 조금 더 빨리 작전을 수행해야 할 것 같다.
터벅터벅.
나는 곧장 도적놈들이 있는 테이블 쪽으로 직진했다.
그러곤 눈앞의 놈들을 향해 빙긋 웃으며 인사를 건넸다.
“안녕하세요.”
“……!?”
놈들이 놀란 얼굴로 서로 시선을 교환했다.
자신들의 의도가 들킨 것인지, 아니면 그냥 단순한 접근인지 헷갈리는 모양.
그때였다.
드디어 눈앞에 기다리던 퀘스트 창이 떴다.
[히든 퀘스트, ‘자, 이제 누가 무뢰한이지?’]당신은 도적 길드원들이 불순한 의도로 접근하기 전에 한발 앞서 접촉을 시도했습니다.
보통 이런 곳에선 도적들이 먼저 물욕에 눈이 멀어 시비를 걸기 마련이지요.
허나, 이번엔 당신이 먼저 선수를 쳐 버렸네요.
이렇게 된 김에 역할을 한번 바꿔 보는 건 어떨까요?
바로 당신이 물욕에 눈이 멀어 미련한 짓을 벌이는 무뢰한이 되어 보는 것이지요.
클리어 조건: 도적 길드원의 소탕 & 도적 길드 밑천 강탈
보상
1. 마을 주민들의 경외심
2. 9,000EXP
3. ?????
“돼, 됐다…….”
순간 반가운 마음에 나도 모르게 주먹을 불끈 쥐었다.
평범한 서브 퀘스트가 드디어 히든 퀘스트로 전환된 것.
이 히든 퀘스트는 도적놈들이 시비를 걸기 전에 먼저 다가가서 대화를 시도하면 일정한 확률로 발생하는 퀘스트였다.
헌데, 그 확률을 높이려면 최대한 놈들이 다가오기 직전까지 기다리는 게 중요했다.
생각보다 일찍 접근해 혹시나 발동을 안 할까 걱정했는데… 다행히도 제대로 먹힌 모양이었다.
“뭐냐, 넌… 이쪽에 볼일이라도 있어?”
제일 키가 큰 사내가 꽤 위압적인 분위기를 풍기며 내게 물어 왔다.
아무래도 그가 우두머리인 모양이었다.
나는 만면에 미소를 띤 채 조용히 입을 열었다.
“죄송한데… 아무래도 저희가 술값이 좀 부족할 것 같아서 말이에요. 혹시 적선 좀 해 주실 수 있을까요?”
“!?”
잠시 날 빤히 바라보던 도적 길드원들의 분위기가 묘하게 변해 갔다.
말만 온화하게 했을 뿐, 결국 까고 보면 돈 내놓으란 소리였으니까.
“크하하하하!”
순간 내게 말을 걸었던 키 큰 사내가 폭소를 터뜨렸다.
그와 동시에 다른 놈들도 배를 잡고 웃기 시작했다.
“너, 말이야… 지금 혹시 누구한테 돈을 뜯으려 하는 건지는 알고 있냐? 크흐흐…….”
“그럼요, 못 배워 먹은 도적놈들이잖아요.”
태연한 내 대답에 왁자하게 웃던 소리가 뚝 멎었다.
그제야 내가 처음부터 알고서 접근한 걸 깨달은 것.
나는 한층 살벌한 기운을 흘리는 놈들을 향해 다시금 푸근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에이, 그러지 말고 좀 도와주세요. 저희가 학생이라 돈도 없고 생활이 많이 힘들거든요. 대신 그쪽은 그동안 쓰레기 같은 도적질 하면서 돈도 많이 벌어 놓으셨을 텐데… 이참에 그냥 서로 돕고 살면 안 될까요?”
“이, 이 새끼가 감히 누구 앞이라고 아가리를 함부로 놀려!?”
키가 큰 도적놈이 노기 띤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어찌나 화가 났는지 살찐 뺨이 파들파들 떨릴 정도였다.
하긴, 늘 먼저 협박하고 강탈만 하던 놈들이 언제 이런 소릴 들어 봤겠는가?
“휴우… 거, 새끼들 참 말 많네.”
“…….”
갑작스러운 내 거친 말투에 놈들이 황당한 얼굴로 이쪽을 빤히 바라보았다.
난 그런 놈들을 향해 나지막한 어조로 중얼거렸다.
“맞고 내놓을래, 그냥 내놓을래?”
더는 이쪽도 곱게 말하지 않았다.
그러자 놈들이 일시에 빠르게 흉기를 꺼내 들었다.
“건방진 애송이 같으니. 겁도 없이 함부로 입을 놀린 대가를 치르게 해 주마.”
“아마 생도라고 목에 힘이 들어간 모양인데… 우린 그렇다고 겁을 먹거나 내빼는 무리가 아니거든.”
“그래? 나도 그깟 도적놈들이 칼 좀 쥐었다고 쪼는 사람은 아닌데…….”
“흐흐, 어디 배때지에 구멍이 뚫리고도 그리 아가리를 놀릴 수 있나 보자!”
도적놈들이 분기탱천하여 내게 달려들던 순간.
대뜸 뒤편에서 커다란 테이블이 통째 날아왔다.
“컥…….”
놈들은 미처 테이블을 피하지 못한 채 그대로 자세를 잃고 우르르 쓰러졌다.
그 큰 테이블이 무슨 대포알처럼 무서운 속도로 날아왔기에…….
“어이, 네놈들! 이 몸은 잊은 거냐고!!”
윌터가 쿡쿡 웃으며 손에 쥔 맥주잔을 벌컥 들이켰다.
저 와중에도 손에서 술을 놓지 않다니…….
여러모로 참 대단한 녀석이었다.
“끄으으으…….”
꽤 충격이 컸는지 도적놈들이 저마다 신음을 흘렸다.
나는 그 광경을 보며 씨익 미소를 흘렸다.
‘많이 아플 거다.’
오죽할까?
저놈이 던진 건 베개로만 맞아도 죽을 맛인데…….
“와, 이 새끼들… 그동안 도적질 쉽게 했네? 고작 테이블에 얻어맞고 낑낑거리는 꼴이라니, 원…….”
어느덧 내 곁으로 다가온 윌터가 놈들을 내려다보며 코웃음을 흘렸다.
‘그래, 이 녀석은 어렸을 때부터 세상에서 가장 빡센 용병단에서 구르던 놈이지.’
아무리 무장을 한 도적놈들이라고 하기로서니… 그런 윌터가 보기엔 어찌나 우습겠는가?
사실 내가 이 도적놈들 앞에서도 거침없이 입을 놀릴 수 있던 이유이기도 했다.
내 뒤엔 무시무시한 괴물이 자리하고 있었기에…….
용병왕의 제자이자 웨어 울프의 수인.
주인공 3인방과 비견해도 꿀리지 않을, 괴물 같은 피지컬의 소유자.
‘봤냐? 이게 바로 프랜드 실드라는 것이다…….’
프로페서 실드에 이은 프랜드 실드.
현대의 방어 마법 중 최상위 서클을 점하고 있는 마법들이었다.
‘그나저나 이거… 생각보다 편하게 해 먹을 수 있겠는데?’
만약 윌터 놈이 계속 인사불성으로 취해 있었다면 그냥 그림자를 이용해 필요한 것만 강탈하고 튀려고 했던 터.
허나, 이제 그럴 필요도 없어져 버렸다.
“크큭. 강준식 이 새끼, 골때리네……. 어떻게 도적놈들 삥을 뜯을 생각을 하냐? 난 적당히 손만 봐주고 쫓아내려고 했더니 말이야. 역시 재밌는 놈이라니까.”
뒤늦게 정신을 차린 도적놈들은 윌터의 기세에 압박감을 느낀 듯 한층 긴장한 기색이었다.
“제길! 저 녀석은 완전히 취한 줄 알았는데 어떻게…….”
낭패감 어린 도적의 말에 윌터가 반쯤 풀린 눈으로 씨익 웃어 보였다.
“응? 취한 거 맞아. 지금도 머리가 빙빙 돌거든.”
“……!?”
“근데 아무리 취해도 말이야… 네놈들 같은 버러지쯤은 충분히 혼내 줄 수 있지.”
놈들 입장에선 굉장히 모욕적인 언사였다.
심지어 반쯤 취한 상태에서 하는 말.
허나, 슬프게도 내 도발보다 훨씬 무게감이 있었다.
실제로 내가 말했을 땐 대로하여 당장이라도 달려들듯 했던 도적들이 지금은 굳은 표정으로 좀체 먼저 움직일 생각을 하지 못했으니까.
“제길, 쳐! 일단 저 약골 놈부터!!”
이내 키 큰 우두머리의 고함과 동시에 도적놈들이 일시에 날 향해 달려들었다.
역시 제대로 얕보인 게 맞는 모양.
휙, 휙.
나는 놈들이 휘두르는 흉기를 가까스로 피해 냈다.
비록 좀 아슬아슬하긴 했지만…….
놈들의 공격을 회피해 내는 데 큰 무리는 없었다.
‘좋아! 확실히 스탯이 오른 효과가 있다…….’
나는 놈들의 공격을 요리조리 피해 내며 새삼 펌핑한 스탯빨의 위력을 체감했다.
“이… 쥐새끼 같은 놈!!”
잔뜩 약이 오른 놈들이 더욱 다급하게 공격을 시도했다.
허나, 역시 회피는 그리 어렵지 않았다.
물론 그렇다고 반격까지 할 여유는 없었지만…….
상관없었다.
어차피 공격은 곰 같은 내 친구가 알아서 해 줄 테니까.
퍼걱!
이내 윌터의 묵직한 주먹이 날 공격하던 도적놈의 안면을 강타했다.
대번에 이빨 몇 개가 허공에 튀며 놈이 풀썩 쓰러졌다.
그러곤 입에 게거품을 문 채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단 한 방에 그대로 기절해 버린 모양.
순간 놈들이 멈칫한 채 바닥에 쓰러진 동료를 일별했다.
그러곤 얼른 고개를 들어 당황한 기색으로 윌터를 바라보았다.
“킥킥, 역시 사람 패는 것만큼 손맛 좋은 게 없지…….”
윌터가 씨익 웃으며 도적 떼를 향해 손가락을 까딱였다.
“드루와.”
“…….”
나는 하얗게 질린 도적놈들을 보며 회심의 미소를 머금었다.
역시 프렌드 실드.
마나도 필요 없는, 가성비 최고의 주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