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Academy's Underworld Player RAW novel - Chapter 56
56화
끼기기긱- 쿠구구궁.
간단한 신분 확인 절차를 마치고, 마침내 성문이 열렸다.
완전히 열리기까지 꽤 시간이 걸릴 정도로 웅장한 문이었다.
“오…….”
마차에서 창밖으로 그 광경을 지켜보던 나는 저도 모르게 탄성을 흘렸다.
영화에서나 보던 모습을 실제로 보게 되니 감회가 새로웠다.
과연 제국의 수도는 수도였다.
이만한 높이의 성이면 어지간해선 적의 침입에 뚫리지 않을 것 같았으니까.
‘내가 아마 중간에 대규모 전쟁도 기획했던 거로 아는데…….’
나는 잠시 기억을 헤아리며 머릿속으로 내가 만든 공성전을 상상했다.
어느덧 입가에 절로 미소가 고였다.
영화에서나 보던 것을 실제로 겪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 절로 흥분이 됐기에…….
아마도 그때쯤이면 전쟁에서 대활약하는 것도 가능할 터였다.
지금의 난 주인공 3인방 이상의 성장 속도를 보이고 있었으니까.
‘그땐 또 얼마나 많은 경험치와 GP를 쓸어 담을 수 있을지…….’
특히 전쟁과 같은 대규모 이벤트에는 걸려 있는 것들이 많았다.
헤아려 보니 내가 착실히 성장하며 미래를 준비해야 할 이유가 또 늘었다.
드보르작이 외성에서 시선을 떼지 못하고 있던 날 보고는 헛웃음을 흘렸다.
“참 기묘한 분이시군요. 눈 하나 꿈뻑 않고 엄청난 일들을 벌이시는 분이 고작 성 하나엔 이리도 감탄을 하시다니요.”
“헤에… 제가 촌놈이라서요. 성이 정말 크긴 하네요.”
“물론 알그레브의 성이 그 어떤 왕국의 성보다 크고 웅장한 건 사실이지만… 제 눈엔 저 성보다 생도님의 존재가 몇 배는 더 신기해 보입니다.”
드보르작이 혀를 내두르며 다시금 헛웃음을 흘렸다.
아무래도 그 짧은 여정에서 내가 보인 모습이 꽤 인상적이었던 모양.
이윽고 마차가 성안으로 접어들자 마을 사람들이 하나둘 자리에 엎드려 머리를 조아리기 시작했다.
황실의 마차를 보자마자 본능적으로 예를 표하는 것.
그걸 보며 새삼 계급제의 세계에 들어왔다는 걸 다시금 실감할 수 있었다.
이내 마차가 지나가고…….
조심스레 자리에서 일어난 사람들이 뒤편에서 소리를 낮춰 저들끼리 수군거렸다.
“이번에 황립 아카데미의 생도가 황제 폐하의 초청을 받았다지?”
“정말인가? 그럼 레오너드 대공이 생도 시절에 폐하의 초청을 받은 이후 처음 아닌가?”
“그렇지. 안 그래도 요즘 시국이 흉흉한데… 어쩌면 메트니 제국의 차세대 영웅이 될지도 모르겠구만.”
나는 마차 밖으로 사람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며 이곳의 분위기를 파악했다.
생각보다 황립 아카데미의 생도에 대한 기대감이 적지 않은 모양이었다.
‘으음, 정작 난 별생각 없이 왔는데…….’
그제야 슬슬 앞일이 걱정되기 시작했다.
어차피 이번 휴가에서 황제의 알현 일정은 메인이 아니었다.
무려 황제가 부른다는데 안 갈 수도 없고, 또 총장의 간곡한 부탁도 있어 어쩔 수 없이 오긴 했다만…….
딱히 오래 있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지금도 한시라도 빨리 이곳에서 벗어나고 싶은 마음뿐.
내 입장에선 이 꿀 같은 휴가 기간에 조금이라도 경험치를 올리고, 아이템이라도 하나 더 얻는 게 이득이었으니까.
“저, 근데… 여긴 얼마나 있어야 합니까?”
조심스러운 내 물음에 드보르작이 차분히 답해 주었다.
“보통 생도님들은 폐하의 초청을 받으면 1박 2일 정도 머무는 게 관례입니다.”
짧다면 또 짧고, 길다면 또 길다고 할 수도 있는 시간.
나는 입맛을 다시며 조금 긴장한 마음을 다스렸다.
‘뭐, 황제라고 해 봐야 별거 있어? 내가 이 세상의 창조자인데…….’
틀린 말은 아니었다.
어찌 보면 내가 이 세상에선 신이나 다름없지 않은가?
그깟 황제가 뭐라고… 위축돼서야 안 될 일이었다.
끼기기기긱.
어느덧 마차가 내성 안으로 진입했다.
“여기서 내리시면 됩니다.”
성문 앞에서 드보르작이 마차의 문을 열어 주고는 고개를 숙여 보였다.
이내 마차에서 내린 나는 드보르작을 따라 내성 안으로 걸음을 옮겼다.
황가의 문양이 새겨진 긴 휘장이 곳곳에서 그 위용을 뽐냈다.
들어서자마자 절로 주눅이 들게 하는 휘황찬란한 내부의 모습.
어느덧 나도 모르게 숨을 죽인 채 드보르작을 따랐다.
물론 이 또한 내가 각종 성에 대해 자료 조사를 하고, 컨셉 아트까지 손수 그리며 기획한 광경이었지만…….
몸소 체험하는 것은 또 다른 문제였다.
이윽고 붉은 카펫이 깔린 웅장한 대전을 지나 커다란 문에 당도했다.
재차 신분을 확인한 문지기들의 출입 허락이 떨어지자 그제야 황제를 알현할 수 있었다.
가신들이 정렬한, 웅장한 공간.
그 너머에 카펫이 깔린 몇 개의 계단 위로 커다란 황좌가 그 위용을 드러냈다.
황좌엔 금빛의 황관을 쓴 백발의 노황제가 나를 물끄러미 주시하고 있었다.
루슬란 카라예프.
카라예프 황조를 한층 굳건하게 만든 장본인이었다.
몇 안 남은 종족 대전의 유공자이기도 했다.
설정상 황립 아카데미를 설립한 것도 이 사람이었다.
“메트니 제국의 태양, 황제 폐하를 뵙습니다.”
나는 황제 앞에 한쪽 무릎을 꿇고 고개를 조아리며 예를 표했다.
이미 내가 만든 설정은 꿰고 있었기에 예법을 적용하는 것도 딱히 무리는 없었다.
“그래, 자네가 강준식 생도라고.”
“네, 그렇습니다.”
잠시 나를 똑바로 응시하던 노황제가 나지막한 어조로 읊조렸다.
“내, 아실리 총장에게 얘기는 많이 들었네. 오랜만에 아카데미에 역대급 재능을 지닌 생도가 출현했다고 말이야.”
“과찬입니다. 미흡한 저를 성심껏 이끌어 주신 총장님과 우리 황립 아카데미에 지원을 아끼지 않으시는 폐하의 성은 덕분이옵니다.”
“아실리 총장도 못하는 더블 캐스팅에 소실된 고대의 마법까지 쓴다고 들었네. 그만한 능력을 지닌 이라면 과도한 겸손도 기만이지.”
“폐하께서 직접 그리 평가해 주시니… 감읍하여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
잠깐의 정적을 깨고 그가 다시금 조용히 입을 열었다.
“그럼 먼 길 오느라 피곤했을 터이니 오늘은 푹 쉬도록 하게.”
“감사합니다.”
그렇게 간단히 알현을 끝낸 나는 조심스럽게 자리에서 물러났다.
끼이이이이.
천천히 닫히던 문 사이로.
자리에 남은 드보르작이 황좌 앞으로 다가가 머리를 조아리는 것이 시야에 들어왔다.
* * *
다음 날.
푹 쉬고 일어난 나는 바로 간단히 운동을 했다.
이건 이제 습관이 되어 버려 그런지 어딜 가도 거를 수가 없었다.
게다가 내가 배정받은 방이 워낙에 넓어서 운동을 하기에도 무리가 없었다.
“크으, 개운하구만.”
오늘도 땀이 흠뻑 날 정도로 운동을 마친 나는 눈앞의 메시지를 보며 흡족한 미소를 머금었다.
[운동의 효과로 스탯이 상승합니다.] [평소보다 운동 강도가 0.7% 올랐습니다. 가산점으로 스탯 상승치가 향상됩니다.] [힘 67.35 → 68.16] [민첩 81.74 → 82.33] [체력 1,624 → 1,695]그동안 워낙에 운동 강도를 끌어 올려서 그런지 이제 강도 상승에 따른 스탯 상승치는 크지 않았다.
그래도 레벨 업 말고도 조금씩이나마 스탯을 올릴 수 있는 수단이 아직 남아 있다는 게 좋았다.
이젠 조금이나마 스탯이 상승했다는 메시지를 보지 않으면 입안에 가시가 돋을 정도…….
“흐음…….”
나는 한쪽의 거울 앞에 서서 유심히 내 모습을 관찰했다.
잔근육이 오밀조밀 잡힌 상체엔 여기저기 땀방울이 맺혀 있었다.
“뭐, 이만하면… 나도 좀 괜찮은 거 아닌가?”
잠시 거울 앞에서 보디빌더들이나 취할 법한 자세를 취해 보였다.
한창 흐뭇한 눈길로 거울 속 내 모습을 주시하던 와중.
“어머.”
뒤편에서 들려온 짧은 신음에 얼른 고개를 돌렸다.
어느새 문가에 있던 시녀 하나가 두 뺨을 붉힌 채 눈을 내리깔았다.
“죄송합니다. 노크를 했는데 아무런 반응이 없어서 그만…….”
민망함에 황급히 상의를 꿰어 입고는 헛기침을 했다.
“크음, 흠… 무슨 일이십니까?”
“폐하께서 아침 식사를 위해 식당에 들라 하십니다.”
“알겠습니다.”
“그럼 앞에서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시녀가 가볍게 묵례를 하고는 조용히 뒷걸음질 치며 문을 닫았다.
“…….”
잠시 닫혀 있던 문을 빤히 바라보던 나는 그대로 침대에 다이빙했다.
그러곤 잠시 이불을 퍽퍽 걷어차며 짧은 참회의 시간을 가졌다.
* * *
달그락.
아무래도 이번 여정의 테마는 조용한 식사인가 보다.
물론 음식은 야영 때와는 비교하는 것조차 실례될 정도로 화려했지만…….
분위기는 그때보다 훨씬 더 고요하고 숨이 막혔다.
쪼르르.
간간이 하인들이 포도주나 물을 채워 주는 소리와 식기구 부딪는 소리만이 이어졌다.
노황제는 종족 전쟁에서 자식들을 모두 잃었다.
그나마 남은 딸 하나도 폐병으로 잃어 건국 이래 죽 이어져 온 카라예프가의 대가 끊길 위기였다.
그래서 그런지 황제와 함께 노화된 제국은 현재 안팎으로 혼란스러운 상황.
‘좀 미안하네…….’
그렇다.
그것도 다 내가 만든 설정이었다.
본래 윗대가리가 좀 위태위태해야 안팎으로 위기도 좀 생기고, 심상치 않은 사건도 생기기 마련이니까.
그래서 그런지 노황제의 두 눈엔 짙은 피로가 어려 있었다.
그나마 그의 곁을 지키는 황후가 없었더라면… 황제가 아니라 그냥 뒷방 늙은이라고 해도 무리가 없을 정도로 초라한 모습.
나는 잠시 눈치를 보다가는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새삼스럽지만… 귀한 자리에 초대해 주셔서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격식 차릴 것 없네. 그냥 편히 들게나.”
“…….”
더는 대화를 이어 나갈 수가 없었다.
지금 황제는 대화는커녕 포크를 드는 것도 벅차 보였기에…….
결국 금세 말이 막힌 나는 조용히 다시 식사를 했다.
그렇게 숨이 막히는 식사 시간이 끝나고…….
황제와 간단한 티타임을 가졌다.
그는 나와 독대하길 원했는지 사람들을 다 무르고는 조용히 마주 앉았다.
차를 한 모금 기울인 황제가 찻잔을 내려놓고는 날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
왠지 모를 위압감에 잠시 입술을 굳게 다문 채 그 시선을 마주했다.
그래도 확실히 전설적인 전쟁 영웅이자 만인지상의 인물이라 그런지 여전히 그 눈빛엔 묵직한 힘이 실려 있었다.
“알고 있을지 모르겠지만… 지금 메트니 제국은 여러모로 혼란스러운 상황일세.”
“네, 저도 피부로 느끼고 있습니다.”
조용히 운을 띄운 황제의 말에 가볍게 수긍했다.
이내 다시금 정적이 흘렀다.
기품 있는 빛깔의 찻잔에서 뜨거운 김이 올라왔다.
잠시 그것에 멀거니 시선을 두고 있던 차.
황제가 다시금 입을 뗐다.
“알다시피 황립 아카데미는 제국의 미래를 지켜 낼 영웅을 양성하는 요람이지. 또 언제 닥칠지 모를 이종과의 전쟁으로부터 인류를 지킬 방패이기도 하고.”
“물론입니다. 저도 그 아카데미의 일원으로서 무거운 책임감을 느끼고 있습니다.”
잠시 날 물끄러미 바라보던 황제가 입가에 옅은 미소를 머금었다.
“자네가 아카데미에 잠입한 수상한 외부 세력을 색출해 냈다고 들었네.”
“네, 운이 좋았습니다.”
“물론 자네 도움을 받아 그자를 잡아들이긴 했다만… 우린 끝내 그 배후를 밝혀내지 못했다네.”
어쩐지 조금은 침통한 분위기였다.
아무래도 그 일에 꽤 많은 신경을 쏟고 있는 모양이었다.
“이번에 3학년 생도들이 의문의 사고를 당했다는 보고를 받았네. 우린… 그 사고가 일전에 자네가 밝힌 일과 무관하지 않다고 여기고 있지.”
어느덧 황제의 목소리가 한층 진지해졌다.
나는 나름 마음의 준비를 하며 다가올 그의 질문을 기다렸다.
아마도 이제 곧 황제가 날 초청한 진짜 이유가 드러날 터였으니까.
“자네는 어떤가? 혹시 이번 일의 배후로 추측되는 세력이 있는가?”
불시의 질문에 황제의 시선을 담담히 마주했다.
“제가 스스로 입증해 보이겠습니다.”
다소 뜬금없는 내 말에 황제의 두 눈이 가늘어졌다.
“무엇을 말인가?”
나는 노황제를 똑바로 응시한 채 입가에 옅은 미소를 머금었다.
“제가 그 배후가 아니란 걸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