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Academy's Underworld Player RAW novel - Chapter 79
79화
“생도들, 주말 동안 잘 쉬었습니까?”
새로운 실습수업.
아론 교수가 투구의 바이저를 올린 채 사람 좋은 미소를 머금었다.
허나, 생도들은 그 누구도 쉬이 웃지 못했다.
평소와는 달리 그가 온몸에 두른 철갑이 주는 위압감이 상당했기에…….
뿐만 아니라 교수의 앞에는 산처럼 쌓인 다른 갑옷이 그득했다.
딱 봐도 이번 수업의 교보재로 활용할 갑옷으로 보였다.
“다들 왜 이렇게 굳어 있습니까? 잘 쉬고 와서 그렇게 처져 있으면…….”
잠시 굳어 있던 생도들을 한 차례 둘러보던 아론 교수가 한층 음산한 어조로 되물었다.
“되겠습니까, 안 되겠습니까?”
“…….”
어느덧 생도들 사이에 한층 팽팽한 긴장감이 흘렀다.
올백 머리에 늘 깔끔한 인상과 정중한 말투로 생도들에게 꽤 인기가 있던 아론 교수.
그런 그도 실습수업만 되면 180도 변하게 되니 각별히 조심하라는 게 선배들의 조언이었다.
다들 이를 귀동냥으로 주워들은 바였기에 아론 교수의 첫 실습수업은 그만큼 더 긴장이 될 수밖에 없었다.
사실 이제야 실습에 들어가는 게 다행이라면 다행이었다.
아론 교수는 이론을 무척 중시하는 정통파에 가까웠기에 그동안 교재를 처음부터 끝까지 달달 외느라 뒤늦은 실습을 하게 된 것.
이론을 완벽하게 숙지한 후에 더욱 빡세고 확실하게 실습에 돌입하겠다는 요량이었다.
말하자면 이제부터 이 수업은… 지옥 시작이라는 것이었다.
“우리 병아리 생도들, 왜 대답이 없을까? 아무래도 이거… 벌써부터 기합이 쫙 빠진 모양인데?”
“여, 열심히 하겠습니다!!”
지금까지와는 확연히 다른 교수의 분위기에 얼어 있던 생도들이 황급히 소리쳤다.
“늦었다. 전원 기상.”
낮게 깔린 아론 교수의 목소리.
그 나지막한 음성에 생도들이 두 눈을 끔뻑이며 얼을 타고 있자 교수가 버럭 소리쳤다.
“기상!!”
후다닥.
순간 움찔한 생도들이 허겁지겁 자리에서 일어났다.
물론 나는 이미 눈치 빠르게 자리에서 일어나 있었다.
잠시 그런 날 힐끔 본 아론 교수가 다시금 생도들을 향해 두 눈을 부라렸다.
“앞으로 취침.”
이번에도 내가 제일 빨랐다.
거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앞으로 엎드렸으니까.
뭐, 군필에게 이 정도 눈치는 기본이지.
내 모습을 본 다른 생도들도 뒤늦게 엉거주춤 나를 따라 앞으로 엎드렸다.
허나, 귀족 가문에서 곱게 자라 온 녀석들이 많아서 그런지 다들 이 갑작스러운 상황에 적응하지 못한 채 매번 한 박자씩 늦었다.
“아직도 빠졌네? 정신 안 차려!? 뒤로 취침!!”
후다닥!
이쯤 되자 다른 놈들도 뒤늦게 분위기 파악이 됐는지 교수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황급히 뒤로 엎드렸다.
그렇게 몇 차례 생도들을 굴린 아론 교수가 묵묵히 우리를 내려다보았다.
“콜록, 콜록…….”
그새 다들 땀과 흙먼지에 범벅이 되어 버린 상황.
이내 아론 교수의 벼락같은 호통이 떨어졌다.
“누구야? 누가 기침 소리를 내었어!?”
순간 움찔한 생도들이 쥐 죽은 듯 고요해졌다.
팽팽한 긴장감 속에서… 잠시 정적이 흘렀다.
그제야 아론 교수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다들 들어서 알고 있겠지만… 앞으로 황립 아카데미의 수업은 한층 빡세질 예정이다. 제국과 아카데미 측에서도 이제 먼 미래의 전쟁을 준비하는 게 아니라 당장이라도 임무에 투입될 수 있는 실전형 인재를 양성하는 방향으로 교육 방침을 강화했으니까.”
“…….”
“다들 무슨 말인지 알겠느냐? 이제부터 1학년 생도라고 해서 마음 놓고 편히 수업에 임할 생각일랑 진즉에 접어 두는 게 좋을 거란 얘기다!!”
다시금 못을 박는 아론 교수의 엄포.
이에 생도들의 분위기도 한층 무겁게 가라앉았다.
사실 그럴 만도 했다.
대부분 가문의 명예나 스팩을 얻기 위해 이곳에 왔지, 당장 살벌한 임무나 전쟁 따위에 투입되기 위해서 온 건 아니니까.
하지만 당장 눈앞에 닥친 전운은 이미 현실이었다.
실습 임무에 들어간 3학년 생도들이 급작스럽게 죽어 나가고, 포상 수여식에서 암살 위협까지 들어오는 형국.
더는 도련님 같은 마인드로 이곳에서 살아남을 순 없었다.
‘재밌네.’
사실 아카데미의 분위기가 이런 식으로 변하는 것도 먼 훗날의 일이었지만…….
이제 이런 식의 빠른 전개도 어느 정도 익숙해진 터.
스토리가 예상보다 빠르게 진행되면 난 그보다 더욱 기민하게 움직이며 성장하면 그만이었다.
한 차례 기강을 다진 아론 교수가 군기가 바짝 들어간 생도들을 보며 입매를 추켜 올렸다.
“좋아, 그럼 수업을 시작하지. 자, 지금 내가 입고 있는 게 바로 중갑옷이다! 무겁지만 본격적인 전쟁에서 내 몸을 보호해 주는 확실한 수단이지. 알아들었나?”
“네!”
“만약 전쟁이 났을 시 너희는 수면을 취할 때도 검과 함께 이 갑옷을 애인처럼 꼭 곁에 두고 있어야 한다. 그리고 뿔피리가 울리면 벌떡 일어나 누구보다 빠르게 갑옷을 착용해야 하지.”
“…….”
“그럼 거두절미하고 착용법에 대해 설명하겠다. 다들 귀를 활짝 열고 잘 듣도록! 단 한 번만 설명할 테니까.”
슬슬 본격적인 내용이 나오려던 순간.
어느덧 생도들이 두 눈을 빛내며 한껏 집중했다.
“최대한 신속하게 입는다! 손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
“자, 이해했나?”
아론 교수가 어리둥절한 생도들을 향해 거침없이 소리쳤다.
“뭘 얼타고 있나!? 이미 이론 수업 때 다 배운 부분 아닌가? 그래서 이론이 중요하다는 거다!! 모르면 몸으로 때우면서 배워야지!!”
“아, 알겠습니다!”
“그럼 바로 실습에 들어가겠다! 앞 열의 생도들부터 시작한다. 생도들 앞으로!!”
뒤늦게 정신을 차린 앞쪽의 생도들이 허겁지겁 앞으로 나왔다.
교수는 그런 생도들의 앞에 중갑옷을 하나씩 던져 주었다.
“제한 시간은 30초! 30초 내로 착용을 완료하도록 한다. 알았나?”
“네… 네, 알겠습니다!”
교수의 호령과 동시에 생도들이 황급히 갑옷을 주워입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30초가 흘렀다.
대부분 갑옷은커녕 건틀렛이나 정강이 쪽의 그리브 정도나 겨우 걸친 정도가 다였다.
게다가 땡볕 밑에서 달아오른 중갑옷을 하나하나 주워입는 것도 꽤 곤혹스러워 보였다.
“지금 나랑 장난하나!? 앞 열 전부 머리 박아!!”
교수의 호통에 생도들이 허겁지겁 바닥에 머리를 박았다.
앞 열이 얼차려를 받는 동안, 곧바로 다음 열이 실습에 들어갔다.
물론 대부분 상황이 비슷했다.
그 와중에 슈란과 카엘은 역시나 우등생들답게 거의 성공에 가까운 모습을 보여 주었다.
장비 한두 개 빼고는 전신 착용에 성공했으니까.
고도의 장비 숙련도와 더불어 마나 호흡으로 인한 빠른 손놀림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
허나, 아론 교수는 그것으로 만족하지 않았다.
그런 두 사람에게도 어김없이 불호령과 함께 기합 명령이 떨어졌다.
“내 실습수업에선 오직 성공 아니면 실패뿐, 중간 따윈 없다! 알았나!? 안 되면 될 때까지 한다!! 못하면 굴러야지.”
그렇게 어느덧 내 차례가 되었다.
내가 다른 생도들과 함께 앞으로 나오자 아론 교수가 이쪽을 힐끗 바라보았다.
나는 이번에도 그 미세한 시선을 놓치지 않았다.
역시 교수들이 날 주목하고 있기는 한 모양.
‘그렇담 제대로 보여 줘야지…….’
나는 입가에 은근한 미소를 머금었다.
군대에서 화생방 보호의를 입던 짬을 보여 줄 차례다.
다들 앞선 생도들이 줄줄이 실패한 걸 봐서 그런지 대부분 어느 정도 체념한 기색이었다.
애초에 불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하는 모양.
나는 사뭇 여유로운 표정으로 내가 입어야 할 중갑옷 앞에 섰다.
“시작!”
아론 교수의 호령과 동시에 생도들이 정신없이 갑옷을 주워입기 시작했다.
허나, 나는 말년 병장마냥 설렁설렁 갑옷을 주워들었다.
“뭐야, 강준식 쟨 완전히 포기했나 본데……?”
“저거, 아주 군기 쫙 빠진 거 봐라. 저러다 아론 교수한테 귓방맹이를 한 대 후드려 맞아 봐야 정신을 차리지…….”
이를 관전하던 몇 생도가 수군거렸지만 늘 그랬듯 신경 쓰지 않고 내 할 일을 했다.
[‘낡은 중갑옷 (일반)’을 획득했습니다.]“!?”
순간 날 지켜보던 생도들은 물론 아론 교수도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다들 적잖이 놀란 모양.
그럴 수밖에.
방금 내가 갑옷을 인벤토리에 넣었으니까.
“뭐야? 뭔데!? 갑옷 갑자기 어디 간 건데?”
벌써 놀라면 안 되는데…….
‘이제부터가 진짜거든.’
나는 허공을 두드리며 인벤토리에 있던 중갑옷을 지정했다.
그러곤 빠르게 두어 번 더 두드렸다.
[‘낡은 중갑옷 (일반)’을 착용했습니다.]“…….”
어느덧 주변에 기묘한 정적이 흘렀다.
조금 전과는 달리 다들 입도 벙긋하지 못하는 분위기.
“대, 대체… 이게 무슨…….”
심지어 정자세로 머리를 박고 있던 몇몇 생도도 자세를 풀고는 연신 두 눈을 비볐다.
교수의 불호령도 괘념치 않을 정도로 눈앞의 광경을 제대로 확인하고 싶었던 것.
뿐만 아니라 옆에서 같이 실습을 받던 생도들 역시 하던 걸 멈추곤 벙찐 표정으로 날 응시하고 있었다.
‘좀 무겁긴 하네.’
그 와중에도 난 순식간에 내 몸에 꼭 맞게 장착된 갑옷을 이리저리 살펴보았다.
확실히 그리 좋은 갑옷은 아니라서 그런지 착용감이 썩 좋지는 않았다.
“뭐, 뭐야 너… 마술사냐?”
“이게 가능해?”
“미친… 어떻게 했누…….”
“아니, 저 새낀 대체 정체가 뭔데? 어떻게 된 게 까도 까도 기행만 나오냐…….”
“…….”
아론 교수조차 이미 제한 시간이 꽤 지났음에도 멍한 눈길로 내게 시선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저 성공한 거 맞나요?”
결국 기다리다 못한 내가 먼저 물었다.
그제야 정신을 차린 교수가 뻣뻣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 그래… 성공이다.”
그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인벤토리에서 착용 상태의 갑옷을 빠르게 두드렸다.
[‘낡은 중갑옷 (일반)’의 착용을 해제했습니다.]쿵!
이내 내가 입었던 갑옷이 눈앞에 떨어졌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온몸을 감싸던 쇳덩이를 벗어 던지고 나니 좀 살 것 같았다.
나는 그제야 좀 가뿐해진 기분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후아…….”
역시 내 스타일은 아니네.
물론 수업의 커리큘럼이라 입어 보긴 했지만…….
온몸을 옥죄던 그 답답함을 생각하면 내게 맞는 갑옷은 아닌 듯했다.
“교수님! 저런 게 허용이 됩니까!? 마술인지 마법인진 모르겠지만 저런 요행수로 실습 시험에 통과한다면 형평성에 위배되는 것 같습니다!!”
뒤늦게 정신을 차린 생도 하나가 손을 번쩍 들곤 이의를 제기했다.
고개를 돌려 그런 생도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아론 교수.
이내 그가 한쪽 입매를 비틀었다.
“난 30초 안에 입으라고 했지, 다른 조건은 내건 적이 없는데?”
“네?”
“잘 들어라! 전쟁이나 임무 수행 중에는 게임처럼 서로 제한된 룰을 두고 싸우는 게 아니다! 실전에선 무슨 수를 쓰든 오직 이기는 것만이 중요하지!! 그 과정이야 어찌 됐든 결국엔 그저 승자와 패자로 나뉠 뿐이다. 알아들었나?”
“…….”
“그리고… 너희들도 적절한 마나 호흡으로 손놀림을 빠르게 하지 않았느냐!? 그건 되고 강준식 생도의 방식은 안 될 게 뭐란 말이냐?”
“그, 그건…….”
이의를 제기한 생도는 말문이 막혔는지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난 그 모습을 여유로이 지켜보며 회심의 미소를 머금었다.
아카데미의 학습 방침이 실전형 인재 양성 쪽으로 굳혀지다 보니 이런 방식도 별 거부감 없이 받아들여질 거라 예상했던 바였다.
‘뭐, 이제 이 정도 능력쯤은 선보여도 큰 무리는 없을 거라 생각하기도 했고…….’
어차피 그림자를 제외하면 최근 마법을 비롯해 어지간한 능력은 다 내보였으니까.
잠시 날 힐끔 바라보던 아론 교수가 입가에 옅은 미소를 머금었다.
“강준식 생도는 통과. 열외해서 쉬어도 좋다.”
“감사합니다.”
나는 기다렸다는 듯 얼른 그늘가로 자리를 이동했다.
“…….”
이를 멀거니 지켜보던 생도들의 얼굴에선 숨길 수 없는 부러움이 묻어나왔다.
어느새 교정의 나무 밑에 털썩 주저앉은 나는 여유롭게 생도들의 실습수업을 관전했다.
한편 이쪽을 빤히 응시하던 카엘과 슈란의 눈빛에선 불길이 일었다.
하여간 쟤들은 나랑 관련된 일이면 너무 쉽게 불타오르는 것 같다.
‘그나저나 세니르는 좀 부럽긴 하네…….’
그녀는 전학을 온 지 하루만에 아카데미에 모습을 보이지 않고 있었다.
아마도 지금쯤 필드를 돌아다니며 이런저런 임무를 수행하고 있을 터.
애초에 그 캐릭터는 이러한 자율성을 보장해 주는 조건으로 아카데미에 입학한 것이었다.
히든 캐릭터가 괜히 특별한 게 아니라는 것.
‘흐음, 나도 슬슬 한 번 더 나가야 하는데…….’
물론 테네브리아 놈들의 소환 의식까지는 아직 기한이 좀 남아 있었지만.
모든 게 빠르게 진행되는 형국이니 만약에 대비해 좀 더 서둘러야 할 필요성은 있었다.
“남은 인원은 다시 실습에 들어간다. 1열부터 일어나도록!”
이내 여기저기서 앓는 소리와 함께 다시금 수업이 시작되었다.
귀찮은 일거리 하나를 해치운 나는 늘 그랬듯 허공의 상태창을 두드리며 다음 할 일을 점검했다.
‘참, 그나저나 루안은 이제 좀 나아졌으려나?’
의식을 되찾았다는 소리는 듣긴 했는데…….
총장의 말로는 도통 의무실에서 나올 생각을 하지 않고 있다고 했다.
아무래도 충격이 크기는 한 모양.
잠시 골똘히 생각에 잠기던 나는 고개를 돌려 의무실 쪽을 바라보았다.
‘일과 시간 끝나면… 면회나 가 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