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Academy's Underworld Player RAW novel - Chapter 83
83화
“뭐야! 지진? 지진이냐!”
황급히 텐트를 열고 튀어나온 나는 서둘러 주변을 훑어보았다.
이내 세니르의 모습이 시야에 들어왔다.
자리에 오도카니 선 채 저 너머의 산맥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그녀의 모습이…….
나는 잠시 그런 그녀를 빤히 바라보다가는 고개를 갸웃했다.
“응? 뭐해?”
“냄새…….”
“……?”
“냄새가 나. 이질적인 것의 냄새가…….”
“…….”
잠시 그녀를 주시하던 나는 얼른 생각에 잠겼다.
삼룡이가 보인 심상찮은 반응과 동시에 지면을 울린 잠깐의 지진.
그리고 어딘가 이상해 보이는 세니르의 반응까지…….
“……!”
순간 나도 모르게 두 눈을 부릅떴다.
번개처럼 머리를 스치고 지나간 기억이 있었기에.
[취익! 취이이이익! 취익, 취익 취이이이익! (진짜다! 갑자기 지진이 나서 자그마한 던전이 열렸는데… 그 안에 있던 거다! 우리 부족이 반년 넘게 공략해서 간신히 얻었다! 우린 그걸 얻고 나니까 갑자기 이곳 주변에 떨어졌다!)]“그래, 그때 분명 지진이 일었다고…….”
만약 그때 그 오크의 말이 사실이라면…….
이 주변에 무언가 기현상이 일어난 게 분명했다.
‘분명 그 던전에서 마법 스크롤을 얻었다고 했지.’
보통의 일반적인 던전에선 마법 스크롤이 나오지 않는다.
한데 그 오크는 분명 지진이 일은 후에 나타난 던전에서 그것을 얻었다고 했다.
그렇다면 이건…….
필시 한몫 챙길 수 있는 기회가 될 수도 있다는 것!
잠시 세니르의 눈치를 보던 나는 슬금슬금 백스텝을 밟았다.
혹시라도 고대 유물과 관련된 아티팩트라도 나타난다면…….
오히려 몬스터 따위보다 더 거슬리는 게 저 하프 엘프였다.
안 그래도 내 성흔에 잔뜩 관심을 보이던 녀석이 아닌가?
물론 고대 유물의 위치와 그것이 나타나는 타이밍은 이미 다 내 머릿속에 있지만…….
많은 것이 틀어져 버린 지금, 나도 모르는 아티팩트가 새로이 나타날 수도 있는 일이었다.
실제로 지진이 일어난 후에 오크가 봤다는 던전은 나도 모르는 요소였으니까.
“냄새가… 점점 진해지고 있어.”
세니르가 여전히 저편에 묵묵히 시선을 둔 채 나직이 읊조렸다.
‘그래, 냄새는 어쩔 수 없지. 잘하고 있어…….’
대체 무슨 냄새가 난다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입가에 슬며시 미소를 머금었다.
어쨌든 저 녀석이 다른 쪽에 온통 어그로가 끌린다는 건 내게 좋은 일이었기에.
그때였다.
세니르가 허공에 가볍게 손가락을 튕기자 그녀의 주변에 푸르스름한 빛 하나가 떠올랐다.
오묘한 빛을 발하는 원형의 구(球)는 흡사 도깨비불과 같은 형체였다.
‘위습(Wisp)인가?’
세니르의 능력은 정령술이었다.
비록 하프 엘프지만 아버지 쪽이 워낙에 강한 하이엘프였기에 그 능력만큼은 보통의 엘프에 뒤지지 않는다는 설정.
잠시 그 광경을 망연히 감상하고 있는데, 세니르가 등에 메고 있던 활까지 꺼내 들었다.
그러곤 사위에 화살을 걸어 가볍게 잡아당겼다.
그 과정이 군더더기 하나 없이 깨끗해서 예술적으로 보일 정도였다.
휘이이잉.
이내 어디선가 불어온 바람이 화살촉에 맴돌기 시작했다.
화살에 바람의 속성을 부여한 것.
빛은 물론 바람의 속성까지 다루는 것이 바로 저 사기적인 캐릭터였다.
잠시 저편의 어둠을 똑바로 주시하던 세니르.
그녀의 눈빛이 그 어느 때보다 형형했다.
‘뭐야… 갑자기 왜 급발진인데?’
잠시 의아한 기색으로 세니르가 보던 방향에 함께 시선을 두던 찰나.
두두두두두!
무언가 저 멀리서 무서운 기세로 달려오는 소리가 들렸다.
“……!”
순간 나도 모르게 두 눈을 부릅떴다.
비록 어두워서 그 형체가 온전히 보이진 않았지만…….
푸른 불꽃이 떼 지어 몰려오는 것만큼은 분명히 확인할 수 있었다.
피잉!
그 순간 세니르의 화살이 활시위를 떠났다.
-커헝! 컹!
“……?”
순간 저 멀리 어둠 속에서 단말마의 신음 소리가 울려 퍼졌다.
마치 개나 늑대 따위의 울음과도 흡사한 소리였다.
세니르는 곧장 다음 화살을 사위에 걸었다.
그 와중에도 그녀의 주변을 맴돌던 위습은 끊임없이 푸르스름한 빛을 발했다.
[‘위습’이 시전자의 민첩성과 집중력을 62% 상승시켜줍니다.] [‘위습’이 시전자의 화살에 바람의 속성을 부여합니다.]그 와중에 눈앞의 메시지가 정령의 효과를 알려 주었다.
소환하여 주변에 띄워 놓는 것만으로도 무려 62%의 어마어마한 버프에 속성까지 부여하는 사기적 스킬!
더욱 놀라운 건 저게 일회성 스킬이 아니라 상시 적용되는 패시브 효과라는 것이었다.
‘내가 만들었지만 확실히 저 캐릭터가 사기긴 해…….’
피잉!
이내 다음 화살이 또 한 번 미지의 적을 꿰뚫었다.
-컹! 끄엉! 커헝!
그 와중에 점점 지면의 떨림이 격해지고 있었다.
놈들이 한층 가까워졌다는 증거.
두두두두두!
나는 뒷걸음질을 멈추곤 얼른 인벤토리에서 활을 꺼냈다.
던전이고 나발이고… 일단 저 망할 몬스터들부터 처리해야 할 성싶었으니까.
뒤늦게 미니맵을 켜자 붉은 점이 떼로 몰려오는 게 보였다.
“미친…….”
어느새 놈들의 형체를 두 눈으로 확인할 수 있을 정도로 가까워졌다.
“……!”
순간 나도 모르게 두 눈을 치떴다.
상대가 내 예상을 벗어난 규격 외의 존재들이었기에.
[‘전지자의 눈’이 활성화됩니다.] [헬하운드(Hellhound)]명계(冥界)의 하급 몬스터.
지옥에서 가장 흔하게 볼 수 있는 떠돌이 개로, 입과 꼬리에 푸른 지옥의 염화를 달고 다니는 것이 특징.
치악력도 사자나 하이에나를 가볍게 압도할 정도이며 아가리에선 지옥불을 분출하기도 한다.
비록 명계에선 최하급의 몬스터지만 현계(顯界)에선 먹이 사슬 최상부에 이름을 올릴 수 있을 정도로 만만히 볼 몬스터가 아니니 각별히 주의 요망.
일반적인 공격으론 죽이기 어려우며 반드시 마법을 쓰거나 마나가 실린 공격으로 상대해야 한다.
놈들의 정체를 확인한 나는 입술을 잘근 깨물었다.
‘이번에도 내가 설정한 몬스터가 아니야…….’
나는 신중하게 놈들을 살피며 얼른 아이템 하나를 사용했다.
[‘인내의 팔찌’의 액티브 효과를 활성화합니다.] [액티브 효과를 부여할 속성을 선택하십시오. (불, 물, 땅, 바람, 금속, 전격, 식물)] [주의- 빛 속성과 어둠 속성은 희귀 속성이기에 해당되지 않습니다.]“화염으로!”
[‘불’ 속성을 선택했습니다. 해당 속성에 액티브 효과를 적용합니다. (‘불’ 속성 저항력 +80%)] [‘불’ 속성을 제외한 나머지 속성의 저항력이 -60% 차감됩니다.]전투 준비 완료.
암만 봐도 불 속성을 지닌 놈들이었기에 만반의 준비를 갖춘 것.
‘하여간 이 팔찌는 아무리 봐도 꿀템이라니까…….’
그 와중에 또 한 번 세니르의 화살이 어둠을 꿰뚫고 놈들에게 적중했다.
-컹! 커컹! 커헝!
잠시 후.
그제야 그 진상을 확인한 나는 저도 모르게 헛웃음을 흘렸다.
헬하운드를 거침없이 꿰뚫은 화살이 그 뒤편에서 내달려오던 다른 놈들까지 줄줄이 꼬치로 만들어 버렸기에…….
아마도 화살에 부여한 바람의 속성이 관통력을 극대화해 준 듯했다.
그녀가 화살을 쏠 때마다 놈들의 신음 소리가 연이어 났던 이유가 있었다.
과연 활을 귀신같이 다룬다는 엘프다운 전투력이었다.
허나, 여전히 놈들의 숫자에 비해 화력이 턱없이 부족했다.
츠츠츠츳.
나는 지체 없이 활시위에 화살을 잔뜩 걸고는 곧장 그림자를 욱여넣었다.
그러곤 허공을 향해 거침없이 화살을 쏘아 날렸다.
파파파파팟!
이내 사위를 떠난 화살 다발이 세니르를 지나 전방의 헬하운드들을 휩쓸어 버렸다.
-컹! 커헝!
-크헝! 컹! 꺼헝!
-커컹! 껑! 끼잉, 낑…….
세니르의 것처럼 화살 하나가 동시에 여러 마리를 꿰뚫기도 했다.
심지어 하나도 아니고 여러 개를 쏴 날렸기에 그 효과는 곱절이었다.
마치 수십의 궁수들이 동시에 화살을 쏴 날린 것과 비슷한 효과.
[‘헬하운드’를 처치했습니다!] [경험치 ‘8,900EXP’를 획득했습니다!] [‘헬하운드’를 처치했습니다!] [경험치 ‘8,900EXP’를 획득했습니다!] [‘헬하운드’를 처치했습니다!] [경험치 ‘8,900EXP’를 획득했습니다!].
.
.
[레벨이 올랐습니다!]눈앞을 수놓는 메시지에 절로 입이 헤벌쭉 벌어졌다.
단 한 번의 활질로 레벨 업까지 해 버린 나는 더욱 신명 나게 사위에 화살을 걸었다.
“…….”
그제야 처음으로 뒤를 돌아본 세니르가 잠시 날 빤히 바라보았다.
아직도 눈앞에 헬하운드들이 떼로 몰려들고 있다는 걸 생각하면 꽤 무모한 행동이었다.
그만큼 놀랐다는 거겠지.
활 실력만큼은 누구에게도 지지 않는다고 자부하는 종족이니까.
“뭐해? 멍때리지 말고 얼른 활이나 당겨!”
허나, 지금은 한가하게 놀라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여전히 놈들의 숫자는 무시무시했으니까.
몰이사냥을 좋아하는 나조차도 뒷골이 서늘해질 정도로 말이었다.
피잉!
파파파파팟!
이내 정신을 차린 세니르와 내가 합심하여 연신 활을 당겼다.
그러자 놀라운 속도로 헬하운드들이 나자빠지기 시작했다.
단 두 명의 공격이라곤 믿을 수 없을 정도.
허나, 그 놀라운 화력에도 불구하고 몰려오던 헬하운드의 기세는 수그러들지 않았다.
그만큼 놈들의 물량이 만만치 않았기에…….
“제길… 온다!”
이내 놈들이 화살비를 뚫고 지근거리까지 접근했다.
나는 얼른 활을 다시 인벤토리에 넣고는 검을 꺼냈다.
이번 임무에 투입되면서 총장에게 받은 검이었다.
엄청나게 좋은 명검까지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제법 단단하고 날이 잘 드는 것이 상급은 되어 보였다.
어차피 난 그리 좋은 검이 필요 없기도 했고 말이었다.
‘그림자만 때려 박으면 그만이니까!’
츠츠츠츳.
이내 검에 그림자를 씌운 내가 코앞까지 뛰어든 헬하운드를 단숨에 베어 버렸다.
-깨갱!
뒤이어 몸을 회전하며 옆구리를 노리고 뛰어든 녀석까지 베어 넘겼다.
-컹!
‘와… 효과 죽이네.’
마치 두부 자르듯 저항감도 없이 슥슥 베어지는 게 기분이 묘했다.
근육은 물론 뼈까지 스르륵 잘라 버리니 왠지 생물체를 베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커컹!
어김없이 내게 덤벼들던 녀석 하나가 또 반으로 갈라져서 죽었다.
단말마와 함께 허공에서 푸른 피를 흩뿌린 헬하운드.
‘이 맛이 반갈죽이구나…….’
활질과는 또 다른 손맛에 나는 한층 템포를 올리며 놈들을 베고 또 벴다.
그 와중에 세니르가 있는 쪽을 힐끗 바라보았다.
부우웅.
위습이 일으킨 돌개바람에 헬하운드 몇 마리가 허공으로 치솟았다.
세니르는 그곳을 향해 지체 없이 화살을 쏘아 날렸다.
-깨개개갱!
아무런 저항도 못한 채 허공에서 허우적대던 놈들이 화살 세례에 힘없이 투두둑 떨어졌다.
그러곤 침을 질질 흘리며 달려온 다른 놈들은 쌍검을 역수로 쥔 채 빠르게 목을 베어 버렸다.
꽤 현란한 몸놀림.
쌍검에도 바람의 속성이 부여되어 있어서 그런지 그림자만큼은 아니더라도 꽤 가볍게 베어 나가는 모습이었다.
허나, 놈들이 많아도 너무 많았다.
세니르의 현란한 활질과 검무에도 꾸역꾸역 몰려드는 놈들의 기세는 도통 수그러들 기미가 보이질 않았다.
‘아니, 씨발 이게 대체 다 어디서 튀어나온 거야?’
나는 새삼 그 무지막지한 물량에 혀를 내두르며 더욱 바쁘게 검을 휘둘렀다.
그때였다.
-크르르르르.
갑자기 자리에 멈춘 헬하운드 몇 마리가 심상찮은 울음소리를 냈다.
이내 놈들이 아가리에서 푸른 불꽃을 피워 올리기 시작했다.
“……!”
순간 아까 전지자의 눈을 통해 봤던 정보가 떠올랐다.
분명 놈들이 원거리 공격을 하기도 한다는 내용의…….
“세니르!”
다급한 마음에 내가 얼른 세니르를 부르자 그녀가 고개를 돌렸다.
‘아니, 날 보라는 게 아니라!’
그때였다.
헬하운드가 내뿜은 불꽃이 그대로 세니르를 덮쳤다.
아니, 덮친 줄 알았다.
“…….”
나는 잠시 눈앞의 광경을 멀거니 바라봐야만 했다.
위습이 일으킨 바람의 막이 세니르의 주변을 휘감으며 헬하운드의 불꽃을 무력화시키고 있었기에…….
“무슨 문제라도?”
특유의 무덤덤한 얼굴로 내게 묻는 세니르.
나는 조용히 고개를 내저었다.
‘그래, 내가 누굴 걱정하냐? 히든 캐릭터인데…….’
잠시 그런 생각을 하던 찰나.
이번엔 세니르가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조심해!”
순간 헬하운드가 내쏜 불꽃이 이쪽을 향했다.
아무래도 저쪽이 여의치 않으니 이쪽으로 타깃을 변경한 모양.
[‘마법 스크롤 (프로텍트 실드)’을 사용하시겠습니까? (Y/N)]“바로!”
[‘마나석’ 10개를 사용합니다.] [‘헬하운드’의 지옥불에 타격당했습니다.] [속성 저항력이 발동합니다. ‘현재 화염 속성 저항력: 80%’]‘거, 뜨뜻하구만…….’
어느덧 내가 전개한 방어막에 막혀 버린 푸른 불꽃이 눈앞에 넘실거렸다.
그래도 그 온도는 전달되어 방어막 안이 순식간에 후끈해졌다.
허나, 이미 높은 수치의 속성 저항력까지 겸비하고 있었기에 별다른 문제가 되질 않았다.
나는 아늑하게 몸을 데우는 불길 속에서 세니르를 향해 되물었다.
“무슨 문제라도?”
“…….”
결국 그녀와 나는 서로 입을 다문 채 다시금 전투에 집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