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Academy’s Weakest Became A Demon-Limited Hunter RAW novel - Chapter (110)
목관악기 울리는 소리가 천공을 메웠다.
부유섬 위.
신화 속 백룡, 빙설룡-힐드가 날아올라 냉기를 머금은 백익(白翼)을 활짝 펼치고.
그 백룡을 중심으로 광범위한 [서리바람]이 매섭게 소용돌이쳤다.
나는 주먹으로 검은 기둥을 마저 깨부수고 도로시를 꺼내 공주님 안기로 들어 올렸다.
몸을 가눌 힘조차 없는지 공기 빠지는 힘겨운 숨소리만 연신 내뱉고 있는 그녀.
가까스로 반개한 눈이 내 얼굴을 바라보고 있었다.
“회…장….”
죽어 가는 목소리.
굳이 대답하진 않았다. 도로시가 무척 힘들어 보였기에, 억지로 대화를 이어나가게 하고 싶지 않았으니까.
그저, 그녀를 안심시켜 주기 위해 이를 드러내고 배시시 웃어 보였다. 내가 여기에 왔노라며.
그토록 고대해 왔던 순간이다.
>메르헨의 마법 기사>에서, 나는 오로지 이 순간만을 상상해 왔다. 어떻게 해서든 도로시를 구해 내고 싶었으니까.
고시 생활에 찌들어 있던 내게, 아무것도 남지 않았음에도 스스로를 빛내고자 했던 네 모습은 너무나도 멋있어 보여서.
나는 네가 죽는 게 그토록 싫었던 것이다.
희생하지 말고 계속 살아가자.
널 위해서 시나리오를 전면으로 부정하고, 이 거대한 땅덩어리 마족을 부수어낼 테니.
그것이 내 다짐이었다. 처음부터, 나는 도로시를 구해낼 생각밖에 없었다.
[천리안]을 사용하면 이안 일행이 토벌대와 합류해 부유섬에서 도망치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예정했던 대로 카야는 토벌대를 만나자마자 검은 괴물이 나타났으니 도망가자고 설득했을 테고.
때에 맞춰 내가 [멸악자]를 발동하고 주변을 박살 내며 냉기를 쏟아 내자, 토벌대도 위기감을 느끼고 도망쳐야겠다고 판단이 선 듯했다.
검은 괴물은 종잡을 수 없는 강자. 세계멸망급 마법을 쓸 수 있는 위험한 대마법사라는 인식이 만연하다.
그런 괴물이 부유섬과 맞다이를 뜨려고 작정하고 있다면,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지기 전에 도망치는 것이 응당 합리적인 것.
‘이안은 언제 또 기절했냐.’
참 놀랍게도 이안 녀석은 어느새 기절한 채 토벌대에 끌려가고 있었다.
부유섬의 핵인 오즈에게 [빛의 사도]를 날리고, 그 충격으로 떨어진 에메랄드 궁전의 파편에 머리를 얻어맞았다고 추측되지만.
‘이제는 신경 쓸 것도 아니지.’
여기서 이안이 해줘야 할 역할은 끝났으니까. 그저 여기까지 해 줘서 고마울 따름이었다.
고개를 들면 부유섬의 마력 가스가 터져 나온 충격으로 뻥 뚫려 버린 거대한 싱크홀이 보였다.
그 위로는 내 사역마, 빙설룡-힐드가 [서리바람]을 일으키며 전장을 휘젓고 있었다.
[서리바람]은 빙설룡과 그 주인인 나의 얼음 마법 위력을 높여주는 특성이 있다. 동시에 눈가림용으로도 쓰일 것이었다.적의를 품고 사역마 빙설룡을 통해 부유섬과 대립하고 있기에, 현재 나는 [멸악자]가 발동된 상태.
덕분에 몸이 무척 가벼워져 있어서 휘익, 하고 가볍게 뛰어올라 바깥에 착지했다.
휘우우우우───.
백옥빛을 뽐내며 광대하게 몰아치고 있는 [서리바람]은 기대 이상으로 색이 짙었다.
‘이 정도면 위장할 필요도 없겠네.’
굳이 불편하게 마스크까지 써서 변장할 필요는 없겠구나. 만전의 상태를 기할 수 있겠다.
쿠웅──.
거체를 자랑하는 백룡, 빙설룡-힐드가 내려와 내게 고개를 낮게 조아렸다. 녀석이 고작 지면에 내려앉는 것만으로도 고밀도의 냉기 마력과 먼지 폭풍이 흩어지며 땅이 울렸다.
힘없이 축 늘어져 있는 도로시를 빙설룡의 등 위에 태운 뒤, [바위 생성]을 사용해 그녀를 고정하고.
그녀 주위로 내 얼음 마법과 바위 마법이 무력화되도록 [빙결 차단막]. [석설 차단막]을 각각 씌웠다.
도로시는 무어라 말을 걸려 했지만, 목소리가 제대로 튀어나오지 않는 듯했다.
여전히 저주는 그녀의 생명력과 마력을 야금야금 갉아먹고 있을 터. 목소리를 낼 여력조차 남아 있지 않으리라.
“기다리고 있어.”
괜찮다. 전부 괜찮을 거야.
“내가 이거 부술 때까지만.”
도로시의 두 눈이 조금 더 크게 뜨였다. 내가 한 말에 놀란 것인지 모르겠으나, 어차피 심리를 읽을 수 없는 녀석이니 넘어가기로 했다.
[서리바람]에 머리칼과 군청색 옷자락이 나부꼈다. 반면에, 도로시는 내가 만들어낸 보호막 안에서 홀로 평온한 세계에 갇혀 있는 것만 같았다.이제 됐다.
그녀에게서 등을 돌리고, 환상의 세계 ‘오즈의 나라’를 내 눈에 담았다.
내 뒤에서, 도로시를 태운 빙설룡-힐드가 위로 비상하고.
거대한 날개를 양옆으로 펼쳐 백옥빛 냉기 마력을 돌풍처럼 흩뿌렸다.
[───────!!]지진이라도 난 것처럼 부유섬이 진동했다. 어디서 흘러나오는지 모를 목관악기 소리가 굉음처럼 울려 퍼져 내 청각을 괴롭혔다.
내 마력을 느끼고 위협하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가볍게 어깨를 돌리며 스트레칭을 한 뒤.
후드를 뒤집어쓰고, 오른쪽 손바닥 위로 얼음 마력을 피어올렸다. 연푸른빛 냉기가 흘러나오고, 작은 얼음 결정들이 둥실둥실 떠다닌다.
그리고 조용히, 이 세계를 노려보았다.
지금부터, 나는 오즈의 나라를 완전히 쳐부술 터이니.
>메르헨의 마법 기사> 두 번째 에피소드, 「비하인드 스토리 – 오즈의 마법사」.
실제 동화에서는, 환상의 세계에서 모험을 마치고 고향으로 돌아온 도로시가 외숙모 품에 안기며 해피엔딩을 맞이하지만.
이 세계에서는, 고향에 돌아온 도로시는 절망스러운 현실만을 마주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녀는 딛고 일어서서, 빛나고자 했다.
이 빌어먹을 세상에 자신이 얼마나 멋있는 존재인지를 있는 힘껏 드러내고자 했다.
그 최후가, 고고한 희생이라고.
아카데미에 있는 그 누구도 쓰러뜨리지 못할 적을 쓰러뜨리기 위해, 웃으면서 목숨을 내던져, [초신성 폭발]의 발동 조건을 충족시켜 부유섬을 쓰러뜨려야 한다고.
…그딴 걸 내가 어떻게 용납할 수 있을까.
너는 살고 싶다고 했다.
그렇기에 나는 더욱 너를 포기할 수 없었다.
그리고 지금, 내가 여기에 있다.
내가 이렇게 버젓이 서 있다.
━━━━━━━━━━━━━━━「빙제 (얼음 속성, ★9)」━━━━━━━━━━━━━━━
머리털이 쭈뼛쭈뼛 곤두선다.
피부의 채도가 높아져 가고, 내 몸속 심지에서부터 빙결 제왕의 기운이 조용히 흘러나온다.
[빙제]. 그 효과는 단순명료하다.내가 사용할 얼음 속성 마법의 위력을 극대화해주는 것.
>메르헨의 마법 기사>와는 달리 나는 9성급 패시브 스킬 [빙제]와 전설 무기 서리낫을 지니고 있고, 신화 속 마수 빙설룡-힐드를 사역마로서 부리고 있다.
따라서 내 전력은 부유섬의 레벨인 190 수준은 가뿐히 넘어갈 터.
다만, [빙제] 상태를 오래 유지하지는 못하리라.
‘좋게 쳐봐야 10분.’
정확하지는 않다. 단지 감각적으로 약 10분간 [빙제] 상태를 온전히 유지할 수 있겠다는 판단이 세워졌다.
몸 안에 수납되어 있던 서리낫을 꺼내 들었다. 옆으로 뻗은 오른손에 연푸른빛 마력이 모여 들더니 군청색 빛깔을 흘리는 대낫의 형태가 되어 쥐어졌다.
퍼져나오는 냉기.
서리낫 끝부분을 지면에 가볍게 내리꽂자, 연푸른 마력이 수십 개의 파문이 되어 퍼져나가고.
삽시간에 부유섬에 엄한(嚴寒)이 들어찼다.
이어, 마력을 끌어올렸다.
위우우웅──.
천공에 수백 개의 거대한 마법진을 단숨에 전개하고서.
나는 서리낫의 낫날을 앞으로 살짝 내밀며 덤덤하게 명령을 내렸다.
“힐드, 전부 얼려.”
빙설룡-힐드가 거칠게 포효하며 얼음 마력을 쏟아낸다.
───────[카아아아아아────!!!]
빙설룡의 머리 위로 어마어마한 마력이 담겨 있는 웅대한 연푸른빛 마법진이 그려진다.
그대로, 백룡은 마법진에서 대규모의 은빛 마법을 쏟아부었다.
────────────────「마하발특마 (얼음 속성, ★8)」
허공에 새겨지는 새하얀 빗금.
그것은 순식간에 크기를 키워 서리를 머금은 은빛 광선의 형태가 되었고.
콰아아아아아아──────!!!
거센 폭발을 일으키며 주변을 새하얗게 물들여갔다.
나라멸망급 얼음 마법, [마하발특마]. 극심한 냉기로 천지를 얼음 지옥으로 탈바꿈시킨다.
동시에 나는 희뿌옇게 덧칠된 오즈의 나라를 쏘아 보며, 수백 개의 마법진에서 거대한 얼음덩이를 일제히 발사했다.
쿠우우우우우우─────!!!
콰아아아앙──────!!!!
바위를 감싼 웅대한 얼음덩이 수십 발이 새하얀 냉기를 머금고서 부유섬을 향해 소나기처럼 엄청난 속도로 퍼부어진다.
덩어리 하나하나가 드넓은 메르헨 아카데미 부지를 전부 가볍게 파괴할 수 있는 수준.
[겨울 혜성].그 얼음의 혜성이 부유섬에 내리꽂힐 때마다 고밀도로 뭉쳐 있던 빙결 마력이 폭발하고─.
묵직한 물리적 충격. 고막을 찢을 듯한 폭음과 함께 땅이 울리고 공간이 비틀렸다.
부유섬의 파편이 허공을 비산했다. 단순히 지면처럼 생긴 딱딱한 껍질이 부서지자, 그 안쪽에 놈의 꿀렁이는 붉은 신체 내부가 드러나기 시작했다.
마치 인간처럼, 놈도 온갖 장기를 지닌 생명체인 것.
하늘을 찌를 기세로 수없이 많은 뾰족한 빙괴가 솟아오르길 반복하고, [서리바람]과 함께 폭한과 눈보라가 세차게 휘몰아쳤다.
쉴 새 없이 폭발이 반복되고, 굉음이 멎을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지금 이곳에, 천공을 떨게 만드는 폭음과 지옥이 오가고 있었다.
“이든, 가세해.”
골렘 사역마, 이든을 소환했다.
바위 마력을 들이부어 강화시켜 주자, 녀석은 신체가 급격히 커지고 바위 피부가 덧붙여져 한 마리의 거인이 되었다.
────────[구오오오오오───!]
이든은 부유섬을 향해 거대한 바위 주먹을 내리꽂았다.
격한 파공음이 울리고, 마치 소행성이 충돌한 듯한 충격음과 함께 엄청난 풍압이 사방으로 퍼져나가 모래폭풍을 일으켰다.
빙설룡이 마법을 쏟아 내고, 이든이 연격으로 주먹을 휘두르고, [겨울 혜성]이 쏟아지고 있는 그곳에서.
괴로운지 부유섬이 목관악기 소리처럼 연신 내지르는 단말마를 귀담아 들으며.
나는 천천히, 지옥도를 가로질렀다.
가슴속이 끓어오른다. 심장이 달음박질하고 있다.
[빙제]를 수 분이나마 버틸 수 있게 된 까닭인가. 마치 내가 다른 세계에 발을 들이밀려고 하는 것 같은 위화감이 느껴졌다.묵직하고도 매혹적인 선율이 머릿속에 흐르며, 내 몸 근원에 있는 어딘가에서 기이한 감각이 꿈틀댔다.
앞으로 몇 발자국만 더 나아가면, 무언가가 깨어날 것 같은─.
[───────!!]예상했던 대로, 부유섬이 내 공격을 가만히 당해줄 리가 없었다.
부유섬의 땅 속성 마력이 광선의 형태가 되어 다발로 들이닥쳤다.
공격 하나하나의 규모가 어마어마하다. 피한다는 선택지는 없었다.
마력을 두른 팔을 휙 휘둘러 산처럼 드높은 얼음과 바위의 벽을 지면에서 끌어올렸다.
연푸른빛 얼음벽 안에 연갈빛 바위 마력이 흐르고 있는 원소 마법, [화석빙].
밀도 높게 응집된 원소 벽은 굳건한 요새처럼 자리 잡으며 부유섬의 광선을 막아냈다.
쉴 새 없이 퍼부어지는 땅 속성 공격. 이 드넓은 땅덩어리 마족은 고통스럽게 울부짖으면서 내게 연신 반격해왔으나.
그것이 놈이 처치 될 징조는 아니리라.
[아파아파아파아파아파아파아파아파아파아파아파아파아파아파아파아파아파아파아파아파아파아파아파아파아파아파아파아파아파아파아파아파아파아파아파아파아파아파아파아파아파아파아파아파아파아파아파아파아파아파아파아파아파아파아파아파아파아파아파아파아파아파아파아파아파아파아파.]내 발밑에 대량의 사람 얼굴이 땅 위로 튀어나왔다.
안구가 없어 공허하게 비어 있는 눈. 다만 입술만이 빠르게 움직이며 나를 향해 고통을 호소하고 있었다.
“시끄…!”
쿠우우우우우───!!
돌연, 내가 서 있던 지면이 하늘을 향해 거침없이 솟구치기 시작했다.
무거운 압력에 짓눌려, 한쪽 무릎을 꿇고 지면을 짚은 채 고개를 숙였다.
어디에도 도망칠 곳이 없었다. 드넓은 지면 자체가 솟아나고 있는 상황이었으니.
연이어 상공 멀리, 하늘 너머 어딘가에서 막대한 마력이 느껴졌다.
눈을 슬쩍 돌리자, 불타고 있는 무언가가 내 쪽으로 떨어지고 있었다.
어마어마한 크기의, 운석.
땅 속성 마력을 머금어, 드센 화염 속에서도 황옥빛 마력이 꼬리처럼 뻗어 나와 운석을 뒤따르고 있었다.
주먹을 쥐었다. 솟구치는 지면을 향해 내지른다.
콰아아아앙────!!
파열음. 내 주먹은 폭발적인 위력을 쏟아 냈다.
솟아오르던 땅이 와르르 박살 났다. 그 풍압으로 내 후드가 밀려나 벗겨졌다.
풍비박산하여 사방으로 튀어 나가는 부유섬의 파편 속, 내 몸은 허공을 부유했고.
나는 내 쪽으로 날아오는 땅 속성 운석을 향해 몸을 돌렸다.
남들이 이 광경을 본다면, 부유섬이 날린 운석의 크기에 비해 나는 한없이 초라하고 작아 보일 터.
하지만 [빙제] 상태의 내 마법으로 저 정도 운석을 막아내는 건 식은 죽 먹기나 다름없었다.
내 주위로 전개해 놨던 [화석빙]을 푼 뒤.
6성 얼음 속성 마법, [엄동의 파란] 마법진을 전개하고 운석을 향해 팔을 뻗었다.
그때였다.
───────[니히히.]
어린아이 같은 해맑은 웃음소리.
방금 전까지 부유섬에게서 느껴지던 살벌한 마력이 무시무시한 농도로 뿜어져 나와, 하늘에 파동처럼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그 마력을 느끼고서, 나는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뭐야…?’
내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고개를 아래쪽으로 돌리자 많은 사람 머리가 지면을 메운 채, 눈알이 없는 새까맣고도 공허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며.
얼굴이 찌그러지도록 기괴한 표정을 짓고서─.
[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 [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 [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 [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 [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 [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나를 비웃기 시작했다.
마치 ‘속았지?’라고 하는 것처럼.
화아아아아아아───.
부유섬의 몸체가 레드와인색으로 물들어갔다. 지면에서 튀어나온 사람 머리조차도.
지면 곳곳이 쩌적, 갈라져 가고.
땅 속성 마력은 용암의 형태가 되어, 갈라진 틈새에서 간헐천처럼 솟구쳤다. 그 열기는 [서리바람]조차도 압도하고 있었다.
연이어 화산 분출하듯 쏟아져 나오는 용암과, 매캐하게 피어오르는 대량의 검은 연기 속에서.
피가 용암처럼 흐르고 있는 검은 화산석으로 이루어진 마족들이 줄줄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지랄하지 마….”
나는, 벌려진 입을 도저히 다물 수 없었다.
───────[그흐흐흐흐흐흐흐───.]
부유섬 너머, 동서남북으로.
나를 포위하듯 거대한 존재들이 바다에서부터 튀어나왔다.
용암에 잡아 먹혀가는 [서리바람] 너머 이류 안개 속, 거대한 마족을 감싸고 있던 바닷물이 폭포처럼 쏟아져 내린다.
검은 암석으로 이루어진 몸체. 암석이 맞붙여진 틈새 사이사이로 붉게 빛나며 흐르는 용암.
호랑이처럼 생긴 머리와 곰 같은 몸체는 몹시 비대했다.
그 엄청난 크기의 외눈 거인들은 오로지 나만을 쳐다보며 뒤틀린 미소를 내보이었다.
저마다, 부유섬의 하수인이었다.
[ 괴상의 칼리다 ]Lv : 185
종족 : 마족
속성 : 어둠, 땅
위험도 : 극상
심리 : [ 당신을 손바닥으로 내려찍고 싶어 합니다. ]
개체 하나하나가 빙설룡-힐드보다도 강하다.
>메르헨의 마법 기사>에서 나는 이런 광경을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즉, 이는 내가 모르고 있던 부유섬의 모습인 것.
“…….”
그제야 나는 깨달았다.
도로시는 자기 목숨을 바쳐 [초신성 폭발]로 부유섬을 압도했고.
그랬기에 부유섬은 진정한 제 모습을 드러낼 틈조차 없이 처치 당했던 것이었다.
아무도 부유섬을 쓰러뜨릴 수 없다며 도로시가 판단할 수 있었던 건, 바로 모든 것의 본질을 꿰뚫어 볼 수 있는 [천라만상]의 힘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
[ 지괴의 카발리온 ]Lv : 200
종족 : 마족
속성 : 어둠, 땅
위험도 : 극상
심리 : [ 당신을 인형처럼 갖고 놀다 사지를 찢어 죽이고 싶어 합니다. ]
부유섬은, 인간으로 치면 대마법사의 경지에 오른 자.
최대 마력량을 조절할 줄 알고, 자기 전력을 레벨 190 수준으로 속일 줄 아는 놈이었다.
눈을 돌리면 부유섬을 향해 얼음 마법을 쏟아 내고 있던 빙설룡-힐드가 보였고.
그 등 위에서 힘겹게 뜬 눈으로 나를 걱정스럽게 바라보고 있는 도로시가 내 시야에 담겼다.
그리고, 부유섬 아래로 전개되고 있는 드넓은 흑갈빛 마법진은 메르헨 아카데미가 있는 섬을 흔적도 없이 말소시킬 준비를 하고 있었다.
부유섬이 정체를 드러내자 마법진이 그려지는 속도가 더욱 빨라져 간다.
앞으로 좋게 쳐봐야 수십 초 안에 이 주위를 쑥대밭으로 만들 마법진이 완성되리라.
그렇다, 놈은 인간들을 갖고 놀고 있었던 것.
자신이라는 위협적인 존재를 온 세상에 드러내, 자신을 향해 덤벼오는 인간들을 즐겁게 바라보고 있었던 것이었다.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피할 곳은 없었다.
이 거대한 땅덩어리를 어서 빨리 해치우지 않으면.
전부 죽는다.
전부 끝장이 난다.
도로시를 구해 냈다는 이유만으로.
한 여학생의 숭고한 희생이 있어야만 이 세계는 해피 엔딩을 맞이할 수 있다고, 마치 운명조차도 내게 강요하는 듯했다.
희생.
그 지랄 맞은 희생이 뭐라고.
“…하, 씨발.”
그리, 나는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그 명제를, 그딴 시나리오를 내가, 내가 여기 있는데 어떻게 인정할 수 있을까.
도로시는 구해 낸다. 배드 엔딩도 막아 낸다. 내가 어떻게 해서든, 반드시.
…정말 지독하게도, 잊을 만하면 [얼어붙은 영혼]의 효과가 일어나 마음이 진정되고야 만다.
고개를 다시 위쪽으로 돌렸다.
떨어지고 있는 운석 아래.
드높은 상공을 추락하며, 나는 지그시 눈을 깜박였다.
두근.
무언의 압박이 내 심장을 옥죄어 온다. 내 내면에 있는 무언가가 얼음 마력을 더욱 굳세게 움켜쥐라고 채근하고 있었다.
네 힘을, [빙제]라는 힘을 온전히 다루라고.
[빙제] 상태를 유지한 채 1분, 1분이 흘러갈 때마다 새로운 경지에 발을 들이미는 것 같은 감각이 느껴졌다.내 몸 안에, 아주 깊숙한 곳 어딘가에서 쿠웅, 하고 거대한 철문을 누군가 연신 두들기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 까닭을 나는 모른다.
그러나 지금은 무엇이든지, 내게 힘이 되어 줄 수만 있다면 두 팔 벌려 환영할 일이었다.
부유섬을 터뜨릴 수 있는 화력. 내게 필요한 건 그뿐이었으니.
하지만… 아쉽게도 나는 아직 그 문을 열 힘이 없었다. 그만한 경지에 이르지 못한 것이었다.
‘그럼….’
억지로라도 열어야겠지.
이 절망스러운 상황도, 막상 돌이켜 보면 여느 때와 같았다.
인생은 원래 뜻대로 풀리지 않는다.
하물며 이 세계의 시나리오를 알고 있었음에도, 내 계획은 언제나 엉망진창으로 꼬이기 마련이었어.
새삼스러운 일도 아니었다. 단지 꿋꿋하게 헤쳐 나가야 할 터.
운석과 더불어 ‘괴상의 칼리다’ 무리가 일제히 허공에 붕 떠 있는 나를 향해 용암을 휘감은 팔을 뻗어 왔다.
주먹을 내지르거나 팔을 움직이는 것만으로 엄청난 풍압이 인다.
연이어 부유섬 위로 흑갈빛 마법진이 새겨지고, 나를 향해 용암 기둥이 무서운 기세로 뻗어 나왔다.
그리 사방팔방에서 부유섬의 공격이 나를 노려왔으나.
─그때, 나는 품 안에서 물건 하나를 꺼내 들고 있었다.
초라하디 초라한, 낡아빠진 열쇠 하나.
[의문의 지하실 열쇠]: 정체를 알 수 없는 마력이 스며 있는 열쇠. 어느 지하실의 문을 여는 데 쓰인다. 어디서든 사용할 수 있다.
이 열쇠를 쓰면 명계로 갈 수 있다.
효과 범위는 나와 맞닿는 모든 것.
>메르헨의 마법 기사>에서 이안이 ‘의문의 지하실 열쇠’를 썼을 때, 녀석이 흘려내는 빛 속성 힘을 직격으로 받고 있던 마물도 함께 명계로 이동됐던 기억이 난다.
마물은 명계에서 무언가에 발을 들이밀었다가 녹아 죽으면서, 플레이어에게 그 세계의 위험성을 몸소 가르쳐 주었다.
즉, 효과 범위에는 내 마법에 맞닿고 있는 것까지 포함된다는 얘기. 게다가 사역마도 내 힘 그 자체이니 함께 따라가게 된다.
돌아올 때는 이 열쇠의 힘으로 함께 명계로 갔던 것들이 한꺼번에 따라오기 때문에, 명계에서 부유섬을 처치하지 못하면.
‘나까지 죽겠지.’
그래도 할 수 있는 건 해 봐야 하지 않겠는가.
연푸른빛 마법진을 내 주위로 수십 개 전개했다. 그대로 강력한 냉기를 쏟아 내는 6성 마법, [엄동의 파란]을 시전했다.
차라라라라락─────!!
내 마력으로 이루어진 냉기가 무서운 기세로 몰아쳐 운석을, 구름을, 괴상의 칼리다가 내지르는 주먹을 얼려냈다.
용암의 기세는 미처 꺾지 못했으나, 이 정도면 충분했다.
[엄동의 파란]으로 발생 시킨 냉기가 빙설룡의 [서리바람]과 더불어 회오리바람처럼 휘몰아친다.여느 게임에서 그러하듯, 네놈에게도 2페이즈가 있다면.
“이번엔 내 차례다.”
내 2페이즈로 넘어가자.
나는 허공에 ‘의문의 지하실 열쇠’를 내밀었다.
열쇠를 돌리겠다는 의지를 품자 무언가가 딸깍거렸다. 보이지 않은 문은 이질적인 빛을 흘려내며 열쇠를 고정시켰고.
그대로, 나는 열쇠를 돌렸다.
고오오오오오오오오━━━━━━━━━━━━━.
어딘가에서 이 세상의 것이 아닌 거대한 입이 나타나 모든 걸 집어삼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