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Academy’s Weakest Became A Demon-Limited Hunter RAW novel - Chapter (122)
◆ ◆ ◆
[ 상 태 ]이름 : 아이작
Lv : 103
성별 : 남
학년 : (2)
칭호 : 예비 2학년
마력량 : 23880 / 24000
– 마력 회복 속도(B+)
엄지를 깨물었다.
이빨에 물려 압박되는 감촉이 선명하게 느껴졌다.
깨문 손가락을 다시 내리고, 지그시 눈을 깜박였다.
“언제부터였어요? 저 돌아온 거.”
“노래방에서 점점 괜찮아지다가, 이젠 완전히 돌아왔어.”
“왜 얘기 안 했어요?”
“그냥, 상황 좀 지켜보려 했지. 회장은 정신력 같은 게 좋으니까 금방 나아질 줄 알았어.”
“…….”
맥 빠지네….
실컷 놀면 내 상태가 호전될 거라는 도로시의 얼토당토않은 제안은 뜻밖에도 큰 효과를 거둔 모양이었다. 내가 회색이 되었던 건 고립되어 가는 감각 때문이었겠지.
사암의 시련에 들어선 이후, 이제까지의 내 행보는 고시 생활의 한때를 그대로 재현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나 혼자 고립된 채로 살았으니까.
하지만 이토록 청랑한 녀석과 같이 있다 보니 그런 감각에 빠질 여유조차 없었던 모양.
내 수험 생활에 딱 어울리는 시시한 해결책이었다. 나로선 골치 아팠지만.
‘도로시가 아예 내 멱살을 잡고 끌어내 준 기분.’
그렇다고 해도, 내 몸만 색을 되찾은 것에 불과했다. 세상은 여전히 흑백이니 아직 시작 지점에조차 돌아가지 못한 것이다.
그보다….
“근데 꼭 깍지 낄 필요 있어요?”
이거, 너무 부끄러운데….
“팬 서비스야. 싫어?”
“아뇨, 좋아서요.”
“니히히.”
여신의 보드라운 손을 깍지끼고 잡을 수 있다니. 커플 같아서 좋았다.
그 상태로 생각에 잠겼다. 도로시 덕분에 이 상황을 해결할 실마리가 잡혔다.
이 세상에서 따돌림 당하지 않는 것.
누구나 나라는 존재를 무시할 수 없도록, 세상을 마구 부숴대기라도 한다면.
세상의 색 또한 본래대로 되돌아오고 이 시련을 넘어설 수 있을지도 모른다. 폭력적인 방법이지만 시도해볼 만했다.
…그러나 일이 내 생각대로 잘 풀릴 리 없었다.
‘뭐야?’
갑자기 시스템 창이 내 눈앞에 튀어나왔다.
외부 변수 난입?
“어…?”
잇달아 깍지 끼고 잡고 있던 도로시 손이 모래성 무너지듯 사라졌다. 또 내가 감각을 잃은 건 아니었다. 아예 아무것도 쥐어지지 않았으니까.
다시 도로시를 쳐다보았다. 그녀의 몸이… 빛나는 별 가루가 되어 사라져가고 있었다.
“선배?!”
도로시는 이미 사라진 양손을 내려다보며 의미심장한 표정을 지었다.
마치 이렇게 될 줄 알고 있었다는 듯 담담한 표정이었다.
“니히히, 나 조금 무리했나 봐. 이제 더 못 버티겠네.”
이미 자기 몸 상태를 짐작하고 있었는지, 도로시는 겸연쩍게 웃으며 내게 말했다.
다른 세계선에 개입하는 인지를 초월한 능력. 아무리 생각해도 쉽게 해내는 게 말이 안 되는 능력이었지.
도로시는 나를 위해 무리하고 있었던 것이다.
[결과, [고르모스의 암철검]이 사암의 시련을 재조정합니다.]“회장.”
어느덧 도로시 몸의 반절이 사라져 버렸다.
그러나 그녀는 조금이라도 나를 더 보고 싶다는 듯 내 얼굴을 빤히 응시했다.
“나 오늘 너무 즐거웠다. 네가 있어서.”
도로시는 배시시 웃었다.
“그러니까, 꼭 돌아와야 해?”
“…네, 당연히.”
그리고, 완전히 사라졌다.
별 가루가 바람에 흩날리며 그 잔상이 내 시야에 여운처럼 남았다. 도로시는 원래 있던 세상으로 되돌아간 모양이었다.
도로시에게는 고마운 일뿐이다. 내게 가장 골치 아픈 과제를 녀석 덕분에 해결할 수 있었으니.
다만 시스템 창 내용을 보건대.
고르모스의 대검 즉, ‘암철검’은 도로시라는 변수가 내게 끼친 영향을 인식하고.
그녀가 개입한 몫만큼 시련 내용을 새롭게 고칠 작정인 듯했다. 아마도, 난이도가 급격히 올라가겠지.
‘인정해.’
이곳은 전설 무기의 주인이 되기 위해 거쳐야 할 시련의 한복판이다. 도로시의 도움으로 사암의 시련을 통과해 암철검의 주인이 된다는 건 어불성설이었다.
여전히 추락하는 하늘을 보니 시련 자체를 초기화시키진 않을 것 같았다. 남은 걸 더 어렵게 만들 작정이겠구나.
‘그리고 내 트라우마.’
>메르헨의 마법 기사>에서 모든 시련의 목적은 결국 같았다. 트라우마 극복이었지. 이번 시련도 예외는 아닐 것이었다.
하지만 고시 생활 말고 트라우마라고 할 만한 게 더 있었을까. 고등학생 때 좋아했던 옆 반 여자애한테 고백했다 차였던 거? 잘 끓인 라면 먹으려다 냄비 엎었던 거? 당장에 떠오르는 건 그 정도뿐인데.
“……?”
별안간 칙칙한 잿가루가 내 시야에 끼어들었다.
고개를 들자, 대량의 잿가루가 바람에 흩날리는 광경이 펼쳐졌다. 이게 다 뭐냐?
벤치에서 일어나 도시 전경을 살폈다.
도시를 메운 수많은 건물이, 윗부분부터 서서히 검은 불길에 타들어 가며 재가 되어가고 있는 세상. 그것은 태우기보다는 ‘소멸’시키는 불꽃이었다.
동시에 우주의 어둠처럼 칠흑처럼 새까만 복잡한 형태의 무언가가 곳곳에서 일어나며 공간을 잠식해나갔다.
“왜 저게…?”
저 불꽃과 검은 형상이 왜 튀어 나와?
저건 >메르헨의 마법 기사>에서 자주 봐 왔고, 서리의 시련 때는 눈앞에서 목격했던, 바로 악신 네피드의 마법이었다…!
‘악신을 여기서 재탕한다고?’
제정신이냐?
쿠우우우우───!!
“아니 시벌?!”
지반도 붕괴되네…?!
가만히 생각에 잠겨 있을 때가 아니었다. 부리나케 도망치기 시작했다.
주위를 둘러보았다. 길을 지나던 회색빛 사람들의 처절한 비명 소리. 그들은 검은 불꽃에 타들어가 삽시간에 소멸되거나, 무너지는 지반 아래로 떨어지거나, 검은 구체에 잡아먹히고 있었다.
‘어떡하지?!’
시련을 재조정한다고 바로 악신을 재탕하는 건 무슨 심보냐. 지금부터 아예 짧고 굵게 가 보자는 건가.
악신은 어딨는데? 애초에 왜 악신의 마법이 여기서 튀어나오고 있냐고….
우르르──!
뒤를 돌아보면 땅이 굳은 흙더미 부서지듯 침몰하고 있었다!
머리를 굴려라. 여기서 살아남을 방법을 찾아야 한다. 제발 뉴런아, 일 좀 해 봐!
◆ ◆
“끄윽…!”
신음성이 터져 나왔다. 하필 이때 몸이 지나치게 무거웠기에. 신체 일부가 돌이 된 까닭이다. 생명력도 꽤 많이 깎여나간 듯했다.
하지만 애써 온몸에 힘을 주고 무너지는 지반을 피해 죽어라 내달렸다.
그때.
쿠우우우───!!
“우왁!”
땅이 미친 듯이 흔들렸다.
넘어지기 전에 재빨리 [바위 생성]으로 바위를 만들어 몸을 고정했다.
도로에 스크래치가 생기고 쩌적, 하고 갈라졌다. 발을 멈출 수 없었다.
고강도의 지진. 불타고 있던 고층 건물들이 간단하게 와르르 무너져 내렸다.
그리고.
“……!!”
피부를 짓누르는 묵직한 마력이 느껴졌다. 그 마력만으로 압사당할 것 같았다.
부유섬, 지괴의 카발리온조차도 가뿐히 뛰어넘는 마력량.
“악신? 아니…. 뭐야?”
악신이 아니다.
서리의 시련 때 느꼈던 악신의 것과는 다른 종류의 마력이었다. 그것이 무엇인지는 나로선 알 길이 없었으나, 마치 데자뷰처럼 익숙하게 느껴졌다.
식은땀이 한 방울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입을 꾹 다물고, 숨을 헐떡이며, 마른침을 힘겹게 삼키고, 무시무시한 마력이 퍼져 나오는 진원지 쪽을 쳐다보았다.
어디인지는 모르겠지만, 꽤 먼 곳이라는 건 분명해 보였다.
콰아아아아앙─────────!!!!
그곳에서, 짙푸른빛이 화산 폭발하듯 무섭게 피어올랐다. 화려하다. 아마도 마법진의 빛.
무언가가 튀어나오려 한다.
상공에서 검푸른색 빛깔의 마력 파동이 일었다. 그것은 파문처럼 연신 사방으로 퍼져나가며 내 머리 위를 스쳐 지나갔다. 그 여파로 도시를 채우고 있던 빛이 뚝 꺼지고, 대한민국은 이질적인 검은빛으로 물들었다.
이윽고 무언가가 마법진의 빛을 받으며, 지상 위로 모습을 드러냈다.
그것은, 몹시 비대한 몸집을 지닌 무언가였다.
[■■■….]기괴한 음성이 대기를 울린다. 무슨 말을 하는 건지 당최 알아들을 수 없었다.
그리고, 나는 음성의 주인이 어떻게 생겼는지 확인할 수 없었다.
치이이익──.
그 생물에게 노이즈가 뒤덮였기에.
마치 그 존재를 봐서는 안 된다는 듯이.
‘마족은 아니야.’
나는 멀리 있는 마족은 감지하지 못하지만.
마족이 흘린 마력이 내 감지 범위에 들어온다면 감지할 수 있다. 서리의 시련 때 악신 덕분에 알아낸 것이다.
‘그럼, 대체 뭐냐고….’
상태창을 켜보려 하였으나.
[ ※ 정보를 확인할 수 없습니다! ]상태창조차도 일말의 정보를 들춰내지 못했다.
도로시나 앨리스, 죽음을 초월한 원옥마수, 내 목표인 악신까지도… 모두 정보는 제한적이었어도 상태창은 떴었는데.
저놈은 여태까지 내가 봐 왔던 모든 존재들과는 궤를 달리하는 듯했다. 어떤 비밀이 숨겨져 있는 것이리라.
더욱이 문제는, 저것이 무엇인지 추정할 수조차 없다는 것.
단연코 >메르헨의 마법 기사>에서 악신보다 위험한 것은 없었다. 히든 라스트 보스인가? 그럴 리 없지. >메르헨의 마법 기사> 고인물인 나조차도 그런 건 들어 본 적이 없으니까.
노이즈도 그 생물을 완전히 감추지는 못하겠는지, 언뜻언뜻 구멍이 뚫리다 다시 메워지면서 그 생물의 일부를 알아보게 했다. 그때마다 색이 구분되지 않는 피부와 덕지덕지 박혀 있는 많은 눈이 내비쳤다.
문득 말도 안 되는 가능성이 내 머릿속에 떠올랐다.
>메르헨의 마법 기사>와 관련된 것을 볼 때마다 노이즈가 일었고, 저 거대한 형상에게도 같은 현상이 벌어지고 있으니.
‘그 얘기는.’
저놈은, >메르헨의 마법 기사>에 나오는 존재가 아니라는 것.
저놈은, 그러나 >메르헨의 마법 기사>와 연관된 존재라는 것.
저놈은, 아마도 대한민국 땅에 틀어박혀 있는 존재라는 것.
그리고 이 세계가 종말에 처했을 때 나타난다는 것. 마치 그전까지는 족쇄라도 채워져 있었던 것처럼.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왜 >메르헨의 마법 기사>엔 노이즈가 일어나고 있는가?
사람이나 세상이 잿빛으로 보이는 건 내 트라우마와 연관성이 있었다. 하지만 >메르헨의 마법 기사>가 그럴 이유는 하등 없었다.
즉, 노이즈를 일으키고 있는 장본인은 별개. 그것이… 저 괴물일까.
“……!”
그때, 경쾌한 효과음이 내 귓전을 울렸다. 한창 긴장하고 있을 때라 화들짝 놀랐다.
눈앞에는 시스템 창 하나가 떠 있었다.
“뭐야…?”
그 시스템 창을 보고서, 한동안 나는 상황을 이해하지 못해 돌처럼 굳어 있어야만 했다.
[ [파멸의 악신 네피드]가 모든 세계에 종말을 불러왔습니다. ] [ 초기화될 때까지 살아남으십시오. ] [ 로딩 중… ] [ 1% ]……
[ 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