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Academy’s Weakest Became A Demon-Limited Hunter RAW novel - Chapter (17)
어느덧 밤이 깊었다.
마차에서 내리자 협곡이 눈에 비쳤다. 달빛만이 비쳐 어둡긴 했으나, 아카데미에서 약 4시간 거리에 있다고 보기엔 믿기 힘들 만큼 장엄한 광경이었다.
바로 앞에는 탄타크 지하 동굴로 가는 입구가 있었다. 칠흑처럼 어두컴컴한 내부. 평범한 동굴 입구처럼 보인다. 들어가면 지하로 이어지는 내리막길이 펼쳐질 것이다.
“학생, 진짜로 괜찮겠어?”
마부가 걱정하는 목소리로 물었다. 진짜로 괜찮다니까···.
그래도 걱정하는 사람을 나무랄 수는 없으니.
나는 가벼운 미소와 함께 고개를 끄덕였다.
“괜찮아요. 조심히 들어가세요.”
“학생이야말로···.”
마부는 내가 준 삯을 받은 뒤, 마차를 몰고 돌아가기 시작했다.
어느새 찾아든 고요. 심호흡을 한번 한 후, 동굴 입구로 들어갔다.
···진짜 어둡네.
마법 주머니에서 발광 램프를 꺼냈다. 간편한 휴대용 램프는 빛을 발산해 주위 풍경을 밝게 내비쳤다.
[휴대용 발광 램프]: 발광석이 들어 있는 램프. 들고 다니기 편리하다.
등급 : 9티어
파다다다다다닥──!
“우왓!”
발광 램프로 천장을 비추니, 매달려 있던 박쥐들이 일제히 사방으로 날갯짓해대기 시작했다.
와, 심장 떨어지는 줄 알았다···.
나 이런 거 약하다고···.
“하, 개무서워···.”
가슴에 손을 얹고 숨을 가다듬었다.
어차피 대낮에 와도 어두운 건 마찬가지였을 터. 이 시간대에 온 걸 후회하지 마라, 나야···.
일단 어둡고 무서운 건 오래가지 않는다. 쭉 안으로 들어가다 보면 가르지아가 길목을 구분하기 위해 마나로 만들어둔 발광석들이 설치돼 있을 것이다.
그때까지만 참자. 뭐, 귀신이 있는 것도 아니니까.
나는 천천히 앞으로 나아갔다.
“…….”
내리막길이 나타났다. 완만한 경사. 여기서 쭉 내려가면 지하 미로가 나올 것이다.
지하 미로 길쯤이야 전부 외워둔 상태였다. 그 정도야 >메르헨의 마법 기사> 고인물로서의 기본 소양이니까.
혹여나 넘어지지 않을까, 주의를 기울여 조심조심 내리막길을 타고 내려가기 시작했다.
“…….”
아, 근데 진짜.
조오오오오오올라 무섭다.
발광 램프가 빛을 비추는 범위는 한정적이다. 빛이 비추는 범위 너머는 여전히 깜깜한 어둠뿐.
돌연 저 어둠 속에서 갑자기 새하얗고 무서운 귀신 얼굴이 불쑥 튀어나오는 상상이 들고 만다.
그러면 무조건 기절하겠지. 그래, 기절할 거야.
침을 꿀꺽 삼켰다. 심장이 터질 듯한 긴장감 속에서 조용히, 조용히 나는 발을 옮겼다.
···그때였다.
──꺄아아아아아악─!!
──콰다다당───!!
“……!!”
뒤편에서 귀를 찌르는 비명과, 돌덩이 무너지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순간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기절할 뻔한 정신을 붙들고, 가까스로 이성을 챙겼다.
방금 그건 여자의 비명이었다. 귀신···일 리는 없겠지.
나는 등을 돌리고 동굴 입구 쪽으로 오르막길을 내달리기 시작했다.
“……?”
오르막길을 다 오르자 동굴 입구 주변, 사방에 부서져 있는 돌덩이들이 보였다.
그리고 발광 램프를 앞으로 뻗으니, 한가운데 주저앉아 있는 익숙한 여학생의 모습이 시야에 들어왔다.
나와 같은 메르헨 아카데미 교복 차림. 덜덜 떨고 있는 담녹색 양갈래 머리칼의 여학생.
그녀는 나를 쳐다 봤다가, 고개를 옆으로 휙 돌리며 울먹이고 있던 표정을 재빨리 갈무리했다.
[ 카야 아스트레앙 ]Lv : 91
종족 : 인간
속성 : 바람, 얼음
위험도 : X
심리 : [ 당신에게 부끄러운 모습을 보여서 창피해하고 있습니다. ]
카야가 여기서 왜 나와···?
“카야···?”
“아아, 아이작 님. 저는 말입니다, 그···.”
아무튼, 방금 비명 지른 게 얘라는 거지?
설마 가르지아의 하수인이 나타난 건가?
나는 얼른 카야에게 달려가 한쪽 무릎을 굽히고 그녀와 눈높이를 맞췄다.
“뭐 때문에 그렇게 놀란 거냐?”
“…….”
“혹시 거대 개미라도 마주친···.”
“바, 박쥐···.”
“어?”
“박쥐 때문에··· 놀랐습니다···.”
···그랬구나.
“죄송합니다···.”
카야는 의기소침해진 목소리로 사과했다.
굳이 사과할 건 아닌데.
어쨌든 위험한 문제가 아니라면 됐다.
“됐다. 근데 난 왜 쫓아온 거야?”
“……!”
카야가 여기 있는 이유. 이 타이밍에 나타난 걸 보니, 그녀는 나를 쫓아온 듯 보였다.
깜짝 놀라는 반응 보니 확실하네.
‘왜?’
나를 동경하는 것 정도는 알고 있다. 그런데 카야가 동경하는 사람을 스토킹하는 사람이었던가?
“저도 여기에 볼일이 있어서···.”
“나 쫓아온 거잖아.”
“윽, 그건···. 이유는 말 못합니다.”
어쩌면 나는 지금, 내가 모르고 있던 카야의 모습을 보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굳이 말하고 싶지 않은 이유라면 됐다. 당장 말하라고 강요할 생각은 없었다.
“일어날 수 있겠어?”
“…….”
“……?”
손을 내밀자, 쭉 표정을 숨기고 있던 카야가 갑자기 나를 멀뚱히 쳐다보았다.
[ 카야 아스트레앙 ]심리 : [ 당신의 서글서글한 태도가 어색하다고 느끼고 있습니다. ]
아, 맞다.
카야한텐 여태 차가운 태도로 대해왔지. 일부러 강한 척하려고, 본색을 드러낸 척.
일단 카야한테 내 밑천을 드러내선 안 되는 상황인 건 매한가지다. 내가 실제로 약하다는 사실을 들키면 어떤 후폭풍이 들이닥칠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괜한 의구심이 생기지 않도록, 평상시의 ‘힘숨찐이지만 본색을 드러낸 듯한 태도’를 일관할 필요가 있었다.
“하아.”
일단 한숨.
“날 방해하러 온 건 아니지?”
냉소적인 목소리로 물었다.
그제야 카야는 의구심 어려 있던 표정을 가라앉히고, 동경과 두려움이 뒤섞인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아, 아닙니다···! 그럴 리가!”
카야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군기가 바짝 오른 모습이었다.
나는 그녀를 무시하고 다시 내리막길로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고.
카야는 뽈뽈뽈 나를 뒤쫓았다.
“그런데 아이작 님께선 왜 여기에···?”
굳이 목적을 숨길 필요는 없었기에 솔직하게 대답하기로 했다.
“마족 처치하러.”
“그, 그런 건가요!”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대답하는 카야.
“여기에 마족이 있었군요···!”
“네가 올 곳이 아니야. 돌아가.”
카야는 여기 있으면 위험하다. 아무리 은둔의 가르지아가 완전체 상태가 아니라고 해도 카야보다는 레벨이 높을 테니.
“아니요, 저도 돕겠습니다.”
카야는 내 옆으로 오더니 결연한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아카데미를 지키기 위해.”
[ 카야 아스트레앙 ]심리 : [ 아카데미의 평화를 지키려는 자신이 멋있다고 느끼고 있습니다. ]
얘 무슨 상상 중인 거야···?
뭔지는 몰라도, 꽤 풍부한 상상력을 발휘하고 있다는 것쯤은 알 것 같았다.
아카데미의 뒤편, 어둠 속에 들어가 악의 무리를 무찌른다. 학생들을 지키기 위해서.
이런 상상쯤 하고 있지 않았을까.
다시 생각해 보니, 카야가 있어도 나쁘진 않을 것 같았다.
이 어둠 속, 내리막길 너머는 미지의 영역이다. 즉, 내가 모든 변수에 대처할 수는 없다는 얘기다.
게다가 카야는 실력이 출중하기까지 하다. 온갖 예상치 못한 변수가 들이닥치더라도, 내 등을 맡길 실력은 된다.
은둔의 가르지아가 공격해 온다면, 내가 그녀를 지키면 될 일이고.
“···맘대로 해라.”
마지못해 수락하는 느낌으로 대답했다.
카야의 표정이 급격히 밝아졌다. 그녀는 고개를 끄덕이곤 다시 앞으로 시선을 돌렸다.
품 안에서 녹색 마석이 박혀있는 완드를 꺼내 들고 경계 태세에 돌입한 카야. 믿음직스럽다.
우리는 발광 램프의 빛에 의존한 채 20분 동안 내리막길을 걸었다.
내리막길 너머, 나타난 곳은 어둑한 통로.
‘지하 미로’의 입구였다.
“여기는?”
“지하 미로. 길 잃기 쉬우니 잘 따라와.”
“앗, 네엣···!”
나는 곧장 발걸음을 재촉했고, 카야는 내 뒤를 쫄쫄 뒤쫓았다.
지하 미로에 들어서자 벽면에 질서정연하게 나열된 연갈색 발광석들이 눈에 비쳤다. 길목을 쉽게 구분할 수 있도록 가르지아의 바위 속성 마법으로 만들어진 것들이었다.
덕분에 발광 램프가 필요하지 않을 만큼 주위가 쉽게 분간되었다.
나는 발광 램프에 빛 가리개를 씌운 다음, 마법 주머니에 집어넣었다.
숨을 죽이고 미로를 걸어 다녔다. 갈림길이 나올 때면, 카야가 망설이기 전에 얼른 길을 골라 나아갔다.
역시 >메르헨의 마법 기사>를 플레이했을 때와 별반 다를 바 없는 구조였다.
중심부까지 쉽게 도달할 수 있겠어.
“아이작 님.”
갑자기 카야가 멈춰 서서 나를 불러세웠다.
“아까부터 느꼈는데, 어떻게 길을 이리 잘 아시죠?”
“…….”
···어?
잠깐만.
‘나 지금 의심 받고 있는 건가?’
나는 카야를 힐끔 쳐다보며 상태창을 띄웠다.
[ 카야 아스트레앙 ]심리 : [ 당신이 한때는 마족과 한패였다가 마족에게 대적하기로 결심한 뒷배경이 있는 게 아닌지 의심하고 있습니다. ]
그건 또 무슨 시나리오냐···?
카야는 상상력이 풍부한 만큼, 별별 이상한 상상을 시도 때도 없이 하고 만다. 이는 곧 대처하기 곤란한 변수로 이어질 우려가 있었다.
이건 확실하게 대답할 필요가 있겠다.
뭐라 하지? 음···.
아, 그렇게 지어내 볼까.
“마족의 마나를 감지하고 길을 찾고 있는 것뿐이야. 놈의 마나를 처음부터, 아카데미에 있을 때부터 쭉 느껴왔으니까.”
내가 말했지만 정말 말도 안 된다.
아카데미에서 이 지하 동굴에 있는 마나를 감지했다고? 마나를 감지할 수 있는 범위가 얼마나 씹사기란 얘기인가. 무척이나 허황된 얘기였다.
그러나 역시, 카야는 믿는 듯한 눈치였다.
“와아···.”
엄청 놀라워하네.
“전 지금도 아무것도 감지하지 못하고 있었는데···. 이것이 대마법사의 마나 감지력이란 겁니까!”
떡 벌어진 입으로 진심 어린 감탄사를 내뱉는 카야.
역시 생각 단순하구나.
“슬슬 너도 느낄 수 있을 거야.”
나와 카야는 다시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고.
그녀는 한동안 나를 향해 눈빛을 반짝였다.
아, 저 초롱초롱한 눈빛. 별빛이 쏟아지는 것 같아서 심히 부담스럽다.
─그때였다.
사각사각사각사각···.
날카로운 뭔가가 쓱쓱 긁히는 소리, 돌덩이를 뒤척이는 소리, 더듬이로 마찰을 일으키는 소리.
나와 카야는 발걸음을 멈추고 일제히 전방을 주시했다.
사각사각사각사각사각···.
가르지아에게는 하수인이 있다. 일명, ‘재해 개미’.
2막 4장의 난이도를 급증시키는 요인 중 하나.
사각사각사각사각사각사각···.
재해 개미는 집단지성이 뛰어나다. 온갖 전략과 전술로 플레이어를 압박해 오는 발암 요소다. 나도 처음 지옥 난이도를 플레이했을 때 놈들 때문에 깨나 고생 좀 했다.
가르지아가 여기서 은신하고 있다면, 재해 개미 군단이 이 미로를 지키고 있는 것도 당연지사.
대략 300마리 정도가 이 지하 동굴에 포진해 있을 것이다.
사각사각사각사각사각사각사각사각사각사각사각사각사각사각사각사각사각사각사각사각사각사각사각사각사각사각사각사각사각사각사각사각사각사각사각사각사각사각사각사각사각사각사각사각사각사각사각사각사각사각사각사각사각사각사각사각사각사각사각사각사각사각사각사각사각사각사각사각사각사각사각사각사각사각사각사각사각사각사각사각사각사각사각사각사각사각───.
저 앞, 어둠을 뚫고 큼직한 곤충 한 마리가 튀어나왔다.
쓱쓱, 더듬이를 휘저으며. 입 앞에 달린 날카로운 집게를 오므렸다 펼치길 반복하는 커다란 검은 개미.
벌어진 양 눈은 붉은 안광을 내비치고 있었다.
재해 개미였다.
[ 재해 개미 ]Lv : 70
종족 : 마족
속성 : 어둠, 바위
위험도 : 중상
심리 : [ 침입자인 당신을 처치하고 싶어 합니다. ]
“저게 뭐야?”
카야는 거대 곤충을 보고 질색했다.
다행히 우리 앞에 나타난 재해 개미는 한 마리뿐. 정찰 중인 녀석인 듯했다.
재해 개미가 집단으로 몰려들면 위험하다. 내가 아무리 마족 한정 깡패라고 해도, 녀석들이 어떤 전략 전술을 펼쳐 나를 압박해 올지는 모르는 일.
[마족을 적으로 인식했습니다.] [고유 특성 [멸악자]가 발동됩니다!] [레벨과 능력치가 일시적으로 크게 향상됩니다!] [스킬트리가 일시적으로 +10이 됩니다!]그렇다면, 방법은 하나뿐.
나는 앞으로 나서면서 카야에게 손을 뻗어 마나를 흘렸다.
그녀의 주위로 얉은 막이 씌워졌다. 아름다운 얼음 결정들이 둥실둥실 떠다니는 반투명한 얼음막이었다.
「빙결 차단막 (얼음 속성, ★6)」
“아이작 님, 뭐 하시려고···?”
사각사각사각사각사각사각사각사각사각──!
재해 개미가 여섯 개의 다리를 움직이며 잽싸게 달려오기 시작했다.
동시에 나는 한쪽 무릎을 굽혀 앉은 뒤, 오른손으로 바닥을 짚었다.
“미로 전체를 얼린다.”
그리고.
얼음 마나를 쏟아부었다.
────────────────「엄동의 파란 (얼음 속성, ★6)」
차라라라라라라라라라라라라라라라락────!!!
내 손에서 흘러나온 대량의 냉기가 지하 미로 전부를 순식간에 휩쓸어가고, 재해 개미를 꽁꽁 얼려 얼음 동상으로 만들어 버리며.
마치 처음부터 이러했다는 듯, 삽시간에 동굴 전체를 싸늘한 얼음 동굴의 모습으로 탈바꿈시켰다.
“하아.”
차디찬 냉기가 숨결로 흘러나왔다.
뛰어난 집단지성을 가진 개미 군단이 있다면.
놈들이 전략 전술을 펼쳐오기 전에 전부 얼려 버리면 그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