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Academy’s Weakest Became A Demon-Limited Hunter RAW novel - Chapter (171)
* * *
“아악!! 당장 그 새끼 불러와!! 그 버러지 새끼가!! 악!!”
“진정하세요! 미야 학생!!”
아카데미 병원. 치료실.
피투성이 몸으로, 미야는 소리를 고래고래 내지르며 난동을 피웠다. 치유 마법을 받았으나 아직 상처가 채 낫기도 전이었다.
바닥에는 온갖 물품이 부서진 채 널브러져 있었다. 그녀가 선반에 있던 것들을 팔로 힘껏 밀어냈던 탓에 떨어져 박살 난 것이었다.
처음보단 나아졌으나, 미야는 여전히 내장이 뒤틀리는 고통을 느끼고 있었고.
그 고통은 불처럼 타오르는 그녀의 분노에 연신 기름을 끼얹었다.
치유 마법사들은 팔을 뻗은 채 그녀를 진정시키려 했다. 온몸의 털이 모조리 곤두서게 만드는 강인한 마력 앞에서 그들은 살 떨리는 긴장감을 느꼈다.
“회, 회복부터 하셔야…!”
“미야 학생, 진정해요! 상처가 벌어집니다!!”
치유 마법사들이 버러지처럼 보였던 미야는, 피로 물들여 새빨갛게 변한 눈을 부릅뜨고 그들을 쏘아보았다.
붉게 달아오른 이마에 핏줄이 터질 듯이 돋아 있었다. 이빨을 드러내고 짐승처럼 위협하는 그녀.
“버러지 새끼들이. 그놈을 불러오라니까 자꾸 누구한테 명령질…!”
그때.
끼익, 하고 문이 열렸다.
모두의 시선이 출입문 쪽으로 돌아가고.
연금발의 어여쁜 3학년 여학생이 안으로 들어오자, 미야의 두 눈이 휘둥그레 뜨였다.
상냥한 미소를 흘리는 그녀는 여기에 나타날 거라곤 상상조차 못 했던 존재.
학생회장, 앨리스 캐럴이었다.
“학생회장? 왜 여기에…?”
“지나가는 길에 소란스러워서 들렸단다.”
앨리스 캐럴 또한 미야가 포섭하려 했던 대상 중 한 명이었으니. 움찔거리는 고통 속에서도 미야의 목소리가 저절로 차분해졌다.
도로시 다음가는 실력자. 괴묘-체셔를 사역마로 부리는 명실상부한 강자.
그 만면에는 여유로운 미소가 가득했다.
앨리스는 저벅저벅 걸어가 미야 앞에서 멈춰 섰다. 미야는 언젠가 수하로 삼고 싶은 그녀와 조용히 눈을 마주했다.
“얘야.”
자상한 목소리.
앨리스는 상체를 살짝 숙이고 미야의 귓가 가까이에 고개를 내밀었다.
앨리스의 따스한 숨결이 맞닿자, 미야의 귀가 반사적으로 빨갛게 달아올랐다.
미야는 저도 모르게 숨을 삼키고 긴장했다. 앨리스는 그토록 존재 자체로 고혹적인 매력을 흩뿌리고 있었다.
치유 마법사들은 숨을 죽인 채 그녀들의 모습을 지켜보았다. 학생회는 사건, 사고를 수습하는 역할도 도맡기에 앨리스의 대처에 맡겨보기로 한 것이었다.
앨리스의 매혹적인 목소리가 나직하게 속삭여졌다.
“아이작에게 당했다고 들었단다. 정말… 많이 분하겠구나. 그렇지?”
그 목소리엔 사람의 마음을 홀리는 마성이 있었다.
미야는 저도 모르게 고개를 살며시 끄덕였다.
이 분노를 진정시키고 위로해주려는 의도일까.
그런 생각을 하며 미야는 마른침을 삼켰고.
앨리스는 여전히 자상한 미소를 머금은 채 말을 이어갔다.
그 이어지는 말은, 미야의 예상을 완전히 뒤엎는 것이었다.
“그러면 분한 대로 닥치고 있으렴. 시끄럽게 하지 말고, 씹년아.”
“…뭐?”
잘못 들은 걸까.
미야는 의문을 느꼈다.
그녀의 표정에 당혹감이 번졌다.
아무리 곱씹어 봐도 분명했다. 분명 앨리스의 입은 온화한 목소리와는 안 어울리는 공격적인 언사를 뱉어냈다.
치유 마법사들은 앨리스의 속삭임이 들리지 않았기에 그저 가만히 서서 경계할 뿐이었다.
미야는 놀란 얼굴로 앨리스를 쳐다보았다. 지근거리에서 두 사람의 눈동자가 서로의 것을 들여다보았다.
앨리스의 미소, 어여쁜 연분홍빛 눈동자. 그 모든 것이 돌연 미야의 화를 자극하기 시작했다.
미야의 표정이 험악하게 일그러졌다.
묵직한 마력이 공기를 억누르고, 미야의 몸을 타고 화염 마력이 스멀스멀 피어 올랐다.
미야는 앨리스를 죽일 듯이 노려보았다.
“너, 지금 뭐라고 했…?”
퍼엉!
의문의 힘이 미야의 팔다리를 터뜨렸다.
그런 감각을, 미야는 순간 체험했다.
“어?!”
미야는 화염 마력을 사그라뜨리고 급박하게 자신의 팔다리를 살폈다. 모두 멀쩡했다.
식은땀이 비 오듯 흘러내렸다. 동공이 크게 뒤흔들렸다. 방금, 자신은 뭘 당했던 걸까.
고오오오.
“……!”
미야는 느꼈다. 어느새 앨리스의 마력이 치료실을 메우며 자신의 마력을 집어삼켰다는 걸.
자신보다 훨씬 우월한 마력 밀도. 적어도 이성이 제대로 박힌 인간이라면 그 무서운 힘 앞에서 끝까지 강단 어린 자태를 유지할 순 없으리라.
공포란 생존을 위해 만들어진 감정. 어서 도망치라고 아우성치는 신체의 경고다. 이 순간, 미야가 본능적으로 느끼고 있는 감정이었다.
미야는 고개를 덜덜 떨며 앨리스 쪽으로 눈길을 돌렸다.
나름대로 엄청난 마력을 지닌 미야는, 오히려 그 힘 때문에 자신을 향한 위협을 또렷이 확인할 수 있었다.
앨리스 뒤로, 마력의 형태로 이루어진 거대하고 기괴한 보랏빛 괴물이 포효하는 듯했다. 괴묘-체셔의 힘이었다.
이름 없는 영웅에 묻혔으나, 여전히 이 아카데미에는 괴물들이 있었고.
앨리스도 그중 한 명이라는 사실을 지금, 미야는 진득하게 실감했다.
“아….”
그리고, 미야는 깨달았다.
여기서 앨리스를 향해 화염을 휘둘렀으면, 아이작에게 당했던 것과는 비교조차 안 되는 참담한 결과를 맞이했으리라고.
앨리스는 고고한 기품을 내보이며 미야에게서 떨어졌다.
“널 이해 못 하는 게 아니야. 그래도 널 위해 하는 소리이니 명심하렴. ‘복수는 교칙 내에서 할 것’. 지금은 그 화를 삭이고 회복에 전념했으면 좋겠구나.”
앨리스는 싱긋 웃으면서 검지를 펼치고 여유만만하게 다그쳤다. 욕설을 내뱉었던 게 거짓말처럼 느껴질 정도로 상냥한 언행이었다.
“그래 줄 거지?”
“…….”
앨리스가 친절하게 묻자 힘겹게 고개를 끄덕이는 미야. 흡사 강요였다.
“옳지.”
앨리스는 만족스럽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더니, 치유 마법사들에게 “전 이만. 다들 수고하세요~.”하고 손을 살랑살랑 흔들면서 치료실을 떠나갔다.
시종 무거운 공기가 감돌고.
이내, 미야는 다리에 힘이 풀려 침대에 풀썩, 나앉았다.
망연자실한 표정이었다.
한편, 아카데미 병원 복도.
앨리스는 지나가는 치유 마법사들과 웃는 얼굴로 인사하며 발걸음을 재촉했다.
[니오옹. 앨리스, 방금 재밌었어.]별안간 앨리스의 머릿속에서 괴묘-체셔의 목소리가 울렸다.
이미 괴묘-체셔는 가까운 곳에 있었기에, 아무에게도 들리지 않는 주인과 사역마 간의 대화가 가능했다.
[무녀는 쓸 만해 보이니?]‘응.’
앨리스는 미야를 이용하고 싶었다.
그녀는 오만하고 멍청한 데다, 강력한 마수인 구미호의 주인이며, 꽤 괜찮은 실력을 갖추고 있으니까.
게다가.
‘그림자 안에 마족이 숨어 있기도 하고.’
미야의 그림자 속에는, 숨죽여 적절한 때를 기다리고 있는 마족이 숨어 있었다.
부하들의 정신을 초대할 수 있는 미궁에서, 앨리스는 클로버 팔라딘으로부터 흥미로운 정보를 전해 들었다.
아이작이 무녀 미야를 대련에서 쓰러뜨렸다는 정보였다.
그것도 단순한 대련이 아니라 감정이 담긴 대련이었다지. 앨리스에겐 흡족한 상황이었다.
마족까지 붙어 있는 데다, 막 나가기까지 하는 무녀가.
검은 괴물일지도 모르는 아이작을 원망하고 있으니까.
어찌 이리도 이용하기에 적절할 수가 있을까.
‘그냥 헛되이 보내기엔 아까운 애야.’
비유하자면.
메르헨 아카데미를 체스판으로 삼은 검은 괴물과의 체스에서, 미야는 써먹기 좋은 게임 말이었다.
그런 좋은 게임 말이 자기 감정을 주체하지 못해 크게 사고 치고, 수위 높은 징계를 받는 걸 앨리스는 원치 않았다.
그래서 앨리스는 난동 피우는 개를 제압하듯 미야를 위협적으로 억눌렀던 것이었다.
망할 허상의 리파 탓에 현재 아카데미엔 내통자가 있다는 정보가 만연한 상황이니.
자신이 내통자라는 사실을 들켰다간 퇴학은 물론이요, 아카데미와 황국이 자신을 적으로 삼게 될 터.
즉 섣불리 움직일 수 없는 처지로서, 미야처럼 유용하게 써먹을 수 있는 존재는 앨리스에게 귀중했다.
‘그 애는 아직 덜 익었어. 그 애가 점점 화를 쌓고, 마침내 농익는다면….’
미야가 서서히 아이작에게 억하심정을 갖길 원했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다가.
‘아주 좋은 기회가 왔을 때, 폭발시켜줘야겠지.’
아이작이 검은 괴물인지 아닌지 확인하는 용도로 미야를 희생시키면 좋으리라.
앨리스는 태평하게 걸어 나갔다.
향하는 곳은 화이트의 개인 병실이었다.
* * *
지금 내 눈앞에는 상상도 못한 광경이 펼쳐져 있었다.
화이트 개인 병실. 마력기로 단련하면서 메를린과 함께 화이트를 간호하던 중.
똑똑, 하고 문 쪽에서 노크 소리가 들려 메를린이 문을 열어 주었다. 그러자 미모의 여학생이 안으로 들어왔다.
화이트는 믿을 수 없다는 얼굴로 그 아름다운 선배를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동경심 어린 눈빛이 쏟아지고 있었다.
‘뭐야?’
당황스러웠다. 얘가 여길 왜 와?
그녀는 연금발을 찰랑이며 나와 화이트 쪽으로 걸어왔고.
내게 싱긋 미소를 건네고는 화이트에게 정중하게 인사했다.
일단…, 황녀 앞이라고 대놓고 아는 척은 안 하는 것 같았다. 대충 화이트 멘토구나, 하고 넘어가는 분위기야.
그런 점은 다행이었다.
나는 경계심을 품은 채 앨리스를 지켜보았다.
“불초의 몸으로 존귀하신 황녀 전하를 뵙습니다. 학생회장, 앨리스 캐럴입니다.”
“하, 하, 학생회장님?! 여긴 어떻게…?”
“대련 중에 험한 일을 당하셨다고 들어서…. 보고 받았거든요. 그래서 학생회 차원에서 병문안 온 거랍니다.”
“아아…! 그, 그러실 필요 없는데요?!”
화이트도 나처럼 당황했지만 눈빛 만큼은 별빛처럼 빛나고 있었다. 존경하는 학생회장을 가까이서 마주하니 내심 기쁜 모양이었다.
앨리스는 많은 학생의 존경을 두루 받는 애니까. 화이트도 예외는 아니었다.
앨리스는 병문안 선물인 과일이 담긴 바구니를 침대 옆, 수납장 위에 올려 두었다.
화이트는 붉은 사과가 없어서 안도했다.
‘학생회 차원이라.’
무슨 의미로 그런 말을 내뱉었는지 알 것 같았다. 아마 일을 크게 키우고 싶지 않은 거겠지.
“옥체는 어떠신지?”
“괘, 괜찮아요…! 그것보다, 음….”
심리를 읽어 보니, 화이트도 앨리스가 여기까지 직접 찾아온 연유를 대번에 알아챈 듯했다.
“그, 이런 걸 염려하셨는진 모르겠지만…. 일단 걱정하지 마세요! 딱히 국가적 차원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진 않을 거예요. 아카데미에서 벌어진 일은 아카데미에서 끝내야죠.”
예전에 내가 알려줬던 말이네. 잘 써먹는구나.
“단지 제가 약해서 벌어진 일이니까요…. 그렇게 나쁘게 생각 안 해요. 어찌 됐든 찾아와 주셔서 고마워요, 학생회장님.”
“히. 감사합니다. 황녀 전하의 넓으신 아량에 감복했습니다.”
“아, 에헤헤. 아량이 뭐, 딱히 그렇지는….”
나와 메를린은 멀뚱히 두 사람을 지켜보았다. 재미없고 훈훈한 이야기가 이어졌다.
그러다 적당한 때에 앨리스는 창밖 멀리 있는 시계탑을 확인했다. 일부러 타이밍을 잰 듯했다.
“…아, 시간이. 이제 가봐야겠네요. 불초의 몸으로 황녀 전하와 담화하는 호사를 누렸습니다. 정말 영광이었답니다.”
“으억?! 아, 아니에요!!”
잔상이 남을 만큼 팔과 고개를 격하게 가로젓는 화이트.
불초의 몸이라니. 화이트는 극구 부인했으나, 오히려 앨리스는 즐겁다는 듯 피식 웃을 뿐이었다.
앨리스는 “그럼.”하고 상체를 숙여 인사했고, 화이트는 “와줘서 고마웠어요.”하고 감사를 표했다.
그렇게 앨리스는 출입문 쪽으로 걸어갔다.
이렇게 그냥 떠나는구나. 별일 없어서 다행이다.
…라고 생각할 때였다.
“아.”
앨리스는 깜박했다는 듯 출입문 앞에서 발을 멈추더니.
고개를 뒤로 돌려 나와 눈을 마주쳤다.
“애기야, 만나서 반가웠어. 오늘도 귀엽네.”
싱그러운 미소를 흘리는 앨리스.
이 새끼. 역시 이 기회를 놓치고 조용히 넘어갈 리 없었다.
알아서 수습하라는 듯, 그녀는 그리 폭탄을 터뜨리고 유유히 병실을 떠나갔고.
돌연 예상치 못했던 불편한 공기가 감돌기 시작했다.
나는 어느 쪽으로도 고개를 돌릴 수 없었다. 식은땀이 한 방울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화이트와 메를린이, 경악한 얼굴로 나를 쳐다보고 있었으니까.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