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Academy’s Weakest Became A Demon-Limited Hunter RAW novel - Chapter (172)
〈 172화 〉 격분 – 막간 (3)
* * *
무녀 미야를 줘패버렸던 기억이 여전히 또렷하다.
앨리스를 적으로 뒀으면서 이성적이지 못했다거나, 신중하지 못했다거나…. 반성할 점은 여러모로 있었다.
뭐, 어쩌겠나.
견딜 수 없었는데.
과거로 돌아간다고 해도 나는 같은 방식을 되풀이할 것이었다. 미야를 족친 데에는 한 치의 후회도 없었다.
다행히 화이트는 미야의 소식을 전해 들은 이후로 내심 기분이 풀어진 듯했다. 내가 진짜로 미야와의 대련에서 이겨 버린 점에 놀라워했던 건 덤이다.
다만, 화이트는 미야와의 대련으로 자신이 얼마나 부족한 사람인지 지독히도 실감했기에, 그녀가 어떤 영향을 받게 될지 예상하기 어려웠다.
부디 의욕이 자극돼서 단련에 좋은 영향을 미치길 바랄 뿐.
화이트는 회복에 전념하기로 했고, 이어지는 대련에서 모두 기권하겠다는 의사를 표했다.
화이트처럼 며칠간 회복을 요하는 부상자 학생들이 몇몇 있었다. 그들도 마찬가지였다.
돌연 대련 상대를 잃어 버린 일부 학생들은 학사 측에서 비슷한 실력끼리 묶어 대련 상대를 정해주었고.
대련 평가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막힘없이 진행되었다.
‘앨리스는….’
무서울 만큼 파고들어온다.
설마 화이트 병문안까지 와서 내게 ‘애기야’라느니, ‘오늘도 귀엽네’ 따위의 애정 표현을 할 줄은 몰랐다.
당연히 화이트와 메를린의 추궁이 이어졌고.
솔직하게 ‘저 선배가 왜 저러는지 모르겠다’라고 대답했다.
물론 목적이야 안다. 내가 이름 없는 영웅이라고 의심하고 있을 테니, 친근하게 접근해서 떠보려는 의도겠지.
실제로 이름 없는 영웅은 앨리스 상대론 개허접이지만.
겉보기엔 그만큼 무섭고 강한 놈이 또 없으니까.
그래서 앨리스는 신중을 기하면서, 동시에 미인계를 써가면서 접근해 오는 것이리라.
내가 ‘앨리스가 왜 저러는지 모르겠다’라고 한 건, 이 정도로 심할 줄 몰랐다는 것이었다.
화이트와 메를린은 각자 알아서 오해했다. 학생회장이 내게 호감을 품은 것 같다고.
─ “학생회장님마저…. 아이작 선배가 점점 무서워져요…!”
라고 화이트가 감탄했을 땐 현기증이 일었다. 얘네들은 루체가 내게 호감을 품었다고 생각하니까.
화이트와 메를린은 ‘연적의 등장입니까’, ‘흥미로워지네요’ 따위의 대화로 나 몰래 시시덕거렸다.
그렇게, 앨리스가 내게 일방적으로 호감을 품은 것처럼 보이는 상황은 그녀들에게 즐거운 가십거리가 되었다. 마치 아침 드라마 보는 아줌마들 같았다고 해야 하나.
“하!”
오만방자한 실소 소리가 나를 머릿속에서 끄집어냈다.
대련 평가 마지막 날.
대련장 위. 학생들의 시선이 주목된 곳에서 가볍게 몸을 풀고 있었다.
허영심 많은 금발 귀족, 트리스탄 험프레이가 내 맞은편에 올라오고 나서야 몸풀기를 멈추었다.
“역시 네놈은 싸우기 전에 머리가 아니라 몸부터 푸는군. 마법학부에서 네놈 같은 별종은 또 없다.”
트리스탄은 내 전투 스타일을 아주 잘 안다. 내가 녀석 앞 등수에 서 보니 절절히 느껴진달까.
녀석은 자신보다 강한 자의 전투 방식을 면밀히 살피고 분석하며, 어떻게 쓰러뜨릴 수 있을지 고심한다.
승리를 향한 집착이 대놓고 부담스러운 시선처럼 느껴질 정도였으니….
“그래? 한번도 그런 생각 안 해 봐서 몰랐는데.”
손에 쥔 잔야의 지팡이로 어깨를 톡톡 두들기며 툭 내뱉듯 대답했다.
생각해 보면 마법 기사를 꿈꾸는 이안 페어리테일도 대련 전에 몸을 풀지는 않았던 것 같다.
나만 이랬나.
“…재미없는 얘기는 관두지. 아이작, 오늘부로 그 등수를 내려놔야 할 거다. 이전보다 더 강해진 이 몸이! 네놈에게 처참한 패배를 안겨줄 테니! 크하하하!!”
트리스탄은 삼류 악역처럼 힘차게 웃다가 별안간 사레 들려 콜록콜록 헛기침했다.
같은 클래스에 다니면서 나름 녀석에게 인정받고 살다 보니, 그리 밉살스럽게 보이진 않았다. 그래서 헛웃음이 툭 튀어나왔다.
나야, 상태창의 힘을 받아 빠른 속도로 강해졌을 뿐인 보잘것없는 놈이지만.
녀석이 쫓고 있는 목표로서 당연히 진중하게 임해야겠다는 생각만 들고 만다.
눈을 반쯤 감았다. 고개를 살짝 아래로 숙이고.
동그란 안경 끝을 잡고, 안경을 벗었다.
내 몸에서 스멀스멀 냉기가 피어오른다.
집중한다.
다시 고개를 들고, 눈을 제대로 뜨고 트리스탄을 노려보았다.
“덤벼봐.”
트리스탄은 내 담담한 한마디를 듣더니 씨익 웃었다.
내 차가운 마력이 공기를 타고 퍼져 나갔다.
그 탓에 트리스탄은 피부가 짓눌리는 감각과, 등줄기를 타고 흐르는 오싹한 감각을 느낀 듯했다.
녀석은 내 냉기에 대항해 바람을 일으켰다.
당장 나와 싸워 보고 싶다는 표정.
곧 심판이 대련 시작을 선언하고.
내 얼음 원소 마법과 트리스탄의 바람 원소 마법이 맞부딪쳤다.
* * *
심사관들과 학생들은 입을 떡 벌린 채 대련을 지켜보았다.
아이작과 트리스탄은 격렬하고도 놀라운 공방전을 펼치고 있었으니.
도저히 마법학부의 싸움으로는 보이지 않았다.
그렇다고 기사학부의 싸움이라고도 보기 어려운, 다채로운 전투법이 두 사람 사이에서 오갔다.
머리를 끊임없이 굴려가며, 상대의 다음 수를 예측해가며.
눈으로 따라잡기 힘든 속도로 움직이고, 공격을 피해가고, 대처해가며.
연푸른빛 냉기와 연녹빛 바람이 대련장 위에서 웅대하고도 현란하게 춤추었다.
트리스탄의 마력 운용력은 놀라운 수준이었다.
자기 몸에 바람을 씌우고, 그 힘을 이용해 매서운 속도로 움직이는 금발 귀족. 마치 한 마리의 매와 같다.
그 움직임에는 굉장히 정밀한 마력 운용이 요구될 터. 보기만 해도 멀미가 날 지경이었다.
하물며 트리스탄의 주먹과 발차기에는 강화된 바람 마력의 폭발까지 얹어져, 엄청난 위력의 공격이 동반되었다.
트리스탄이 저리 되기까지 얼마나 많이 토악질했을지, 대련을 지켜보는 이들은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
그 트리스탄 험프레이에게 대항하는 아이작도 놀라웠다.
트리스탄의 엄청난 속도를 눈으로 쫓고, 그의 공격에 능수능란하게 대처했다.
빠른 바람 연격이 퍼부어져도 아이작은 조금도 밀리지 않았다.
저 청은발 학생은 무려 1학년 수석이자 천재, 무녀 미야를 압도한 남자.
저 학생은 저 학생대로 괴물인 것이었다.
퍼억!
아이작과 트리스탄이 서로의 안면에 주먹을 꽂았다.
눈 깜짝할 새에 벌어진 일이었다. 언제 두 사람이 서로에게 이르렀는지, 대부분의 학생들은 이해할 수 없었다. 그 정도로 두 사람의 움직임은 미친 듯이 빨랐다.
심사관들과 관객석에 앉은 학생들은 두 눈을 부릅뜨고 두 사람의 싸움에 몰입했다.
콰아앙!!
아이작과 트리스탄이 휘두른 주먹에서, 냉기 마력과 바람 마력이 폭발해 서로에게 강력한 일격을 날렸다. 전투법이 흡사했다.
차가운 마력 폭발이 일고, 두 사람은 서로 반대편으로 튕겨 나가 대련장을 수차례 뒹굴었다.
쿠웅!
아이작은 얼음덩이를 끌어올려 그것에 부딪쳤다. 그렇게 몸이 대련장 밖으로 넘어가는 걸 막아 냈고.
휘우우!
트리스탄은 빠르게 온몸에 바람을 일으켜 자세를 고쳐 잡고는 고개를 휙 치들었다.
그렇게 두 사람은 대련장 바닥을 짚고 몸을 일으키며 서로를 노려보았다.
입과 코에서 피를 줄줄 흘리면서도 “크흐흐, 제법이구나!” 하고 즐겁게 깔깔대는 트리스탄.
코피를 슥 훔치며 자리에서 일어나는, 평소의 순한 인상과는 정반대의 냉철한 아이작.
이내, 두 사람은 이를 악물고 다시 서로를 향해 뛰어들었다.
“저 애들은 대체 뭡니까…?”
중년의 여성 심사관은 기록을 들춰 보고는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감탄이 멎지 않았다.
“트리스탄 학생은 저번 학기 때랑 전투법이 완전히 달라졌어요. 저런 건 저도 못 해요…. 대체 얼마나 자기 몸을 혹사시켜 왔으면 저런 게 가능한지….”
“메르헨 아카데미니까요. 천재 중의 천재, 별종 중의 별종이 모여드는 곳이잖습니까. 이상할 건 없지요.”
옆에 있던 나이 지긋이 먹은 남성 심사관이 웃는 얼굴로 대답했다.
“아무리 그래도 저건, 루체 학생 같은 천재가 엄청난 마법을 휘두르는 것과는 완전히 다른 영역이잖아요? 저것만 해도 놀라운데, 아이작 학생까지…. 저 학생은 정말, 이 아카데미에서 제일 미친 학생 같아요….”
여성 심사관은 다시 아이작과 트리스탄을 쳐다보았다. 두 사람은 서로를 향해 마법을 쏟아붓고 있었다.
“이거 기록 맞나요? 어떻게 저게 마력량 E급, 사실상 아카데미 최약체였던 학생입니까…? 마력량 S급의 천재를 쓰러뜨린 데다, 저런 눈에 안 보이는 공격도 당연하다는 듯이 대처하는 애가….”
“참 묘한 광경이지요?”
“예?”
남성 심사관은 껄껄댔다.
“제가 이 나이 먹도록 교편을 놓지 못 하는 이유가, 바로 저런 학생들 때문입니다.”
아이작과 트리스탄의 마법과 주먹이, 단련의 시간이 교차했다.
피 흘리고, 구토하고. 때론 울고, 때론 기절하고. 매일 온몸이 땀에 젖도록, 머리에 쥐가 나도록, 죽을힘을 다해 살아왔던 지난 나날이.
서로에게 쉴 새 없이 퍼부어졌다.
“보십시오. 정말…, 가슴 뛰는 광경이지 않습니까?”
여성 심사관은 아이작과 트리스탄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다.
저렇게 바람 마법을 강렬히 휘감은 채라면, 지금쯤 트리스탄은 극심한 격통을 느끼고 있을 터였다.
그러나 그는 멈추지 않았다. 이미 이따위 고통은 지겹도록 겪어왔기 때문에.
오히려 “크하하하!”하고 한껏 웃어대며 격통을 잊으려 노력할 뿐이었다.
그런 트리스탄의 움직임을, 여전히 아이작은 집중하며 눈으로 쫓고 있었다.
쿠우우우!! 차라라락!! 콰아아아!!
이윽고, 아이작은 [암석 붕괴]로 트리스탄의 움직임을 유도한 뒤, [엄동의 파란]을 날리고.
어느새 트리스탄에게 이르러, [빙결 폭발]을 시전해 얼음 마력을 터뜨리며 대련을 마무리 지었다.
냉기가 난무하는 대련장 위. 아이작의 숨결이 새하얀 냉기가 되어 바람에 흩날렸다.
트리스탄을 가두었던 빙괴가 연푸른빛 마력이 되어 흩날리고.
뼛속까지 차가운 기운으로 그득해진, 피투성이 몸이 되어 버린 트리스탄은 그대로 대련장에 철퍽, 쓰러져 버렸다.
“대련 종료! B 클래스 아이작 승!”
심판의 대련 종료 선언.
학생들의 환호성과 갈채가 쏟아졌다. 아이작과 트리스탄이 보인 대련이 무척 감탄스러웠기 때문이었다.
의료반이 들 것을 들고 달려왔다. 그 와중에 트리스탄은 쿨럭, 하고 피를 토하며 의식을 되찾았다.
“아직…, 아직….”
트리스탄은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바닥을 짚어 가까스로 몸을 일으키려 했으나.
바람을 휘감은 채 싸웠던 부작용이 온몸에 들이닥치자, 힘이 빠져 바닥에 엎어져 버렸다. 과부하가 온 것이었다.
아이작은 그를 가만히 내려다보았다.
트리스탄은 아직도 싸울 수 있다는 듯, 힘겹게 일어나려다 쓰러지길 반복했다. 입에선 침과 피가 뒤섞여 점액질처럼 길쭉하게 쏟아져 내렸다.
그의 몸을 일으키려는 건 머릿속을 가득 메운 단련의 기억이었다.
언젠가 위대한 마법사가 되겠노라며 달려온, 그의 재미없고 처절했던 일대기였다.
아이작은 눈을 감고 소리 없이 한숨을 내뱉었다.
여기서 손을 내미는 건, 피땀 흘려가며 자신을 뒤쫓고 있는 트리스탄에게 모욕이 될 터.
알량한 배려심은 오히려 그에게 독이 되리라.
그러니 지금 자신이 해 줄 수 있는 말은 단 하나뿐.
아이작은 다시 눈을 뜨고, 냉소적인 목소리로 말했다.
“내가 이겼어, 트리스탄.”
그 한마디가 내려앉자 트리스탄은 그대로 멈춰버렸다.
그제야 아이작은 등을 돌릴 수 있었다.
“심사평은 나중에 받겠습니다.”
아이작은 심사관들에게 그리 말하고서 다시 안경을 쓰고 대련장을 떠나갔고.
의료반이 그를 제치고 달려왔다.
아이작은 일부러 뒤돌아보지 않고 묵묵히 걸어 나갔다.
그때.
“하!”
트리스탄의 자신감 넘치는 실소 소리.
아이작은 멈칫하고, 고개를 뒤로 돌려 그를 쳐다보았다.
“트, 트리스탄 학생! 어서 여기 누우셔야…!”
“움직이면 안 돼요!”
트리스탄은 의료반의 부축을 받아 겨우 상체를 일으킨 채였다. 그러나 들 것에 올라가지 않으려 해 의료반은 곤란해했다.
상관없다는 듯 얼굴이 피로 범벅인 트리스탄은 큭큭, 하고 웃어댔다. 피 가래 탓인지 그의 웃음소리에 울컥거리는 소리가 얹어졌다.
“역시… 인정하마…! 지금은, 네놈이 나보다 강하다…! 하지만!!”
삼류 악역 같은 어투.
트리스탄은 일부러 턱을 치켜들고, 자만심 넘치는 미소를 한껏 지어 보였다.
오만방자한 목소리가 대련장에 쩌렁쩌렁 울려 퍼졌다.
“고작 그 정도라면, 곧이다! 얼마 안 가 이 몸이! 네놈을, 압살해 주마!! 크하하학!!”
트리스탄은 깔깔대더니, 그만 사레 들려 켁켁 헛기침했다. 피가 바닥에 튀겨졌다.
그간 아이작이 보내 왔던, 고통스러웠던 단련의 시간을 트리스탄은 경험적으로 이해하고 있었다.
저 빌어먹을 놈이 E급 최약체에서 지금의 경지까지 올라오는 데 얼마나 괴로운 나날을 보내 왔을지를.
아이작을 이기지 못했던 건 녀석보다 단련이 부족했기 때문이리라.
그렇다면, 아이작에게 지지 않으려면, 그를 뛰어넘으려면.
더욱 피와 땀을 쏟아가며 노력해야 할 터.
아무리 분하더라도 주눅 들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야만 할 것이었다.
아이작은 순한 얼굴로 피식 웃고는 다시 고개를 돌리고 그 자리를 떠나갔다.
트리스탄의 웃음소리가 서서히 잦아들었다. 이내, 그는 눈이 뒤집히며 정신을 잃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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