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Academy’s Weakest Became A Demon-Limited Hunter RAW novel - Chapter (179)
* * *
“회자앙!”
“도로시 선배? …오.”
상점에서 마도구를 구입한 뒤, 오르핀관 근처 벤치에 앉아 혼자서 유유자적하게 작업하던 중이었다. [바위 생성]으로 두꺼운 간이 테이블을 만들어 놓으니 작업하기 편했다.
그러다 돌연 위에서 도로시가 내려와 내게 말을 걸어왔다. 별빛 마력으로 날아다니던 중 나를 발견했나 보다.
3학년 얼굴 대표 역할이라 그런지, 그녀 또한 어여쁘게 디자인된 마녀 복장 차림이었다. 3학년 중에서 디자인 실력에 일가견이 있는 선배들이 만들어 준 옷이리라. 왜냐하면, 순간 넋을 잃었을 정도로 너무 예뻤거든.
“혹시 이거 남았어?”
도로시는 내가 작업하던 마도구와 똑같은 물건을 보여 주었다.
“네, 넉넉하게 사 놔서 여유분은 있어요. 몇 개 필요하세요?”
“한 20개!”
“…그렇게나 많이요?”
“애들 도와주려고 마력을 한꺼번에 불어넣으니까 20개 정도가 부서졌거든! 내가 책임지고 구해 오기로 했어!”
부서뜨린 걸 자랑이라도 되는 양 의기양양하게 대답하는 도로시.
이 작은 마도구를 너무 과대평가했네. 네 마력을 어떻게 견디겠냐, 얘가.
“근데 산 거야? 너희도 부족했나 보네?”
“네, 그렇더라고요.”
“니히히. 이 누난 겔이 남아도니까 2배 가격에 사주지!”
도로시는 검지와 중지를 펼쳤다.
“거절하지 않겠습니다.”
단숨에 수락했다.
눈은 호강했는데 경제적 이득까지 얻다니. 도로시는 신이다.
“읏차~.”
“선배?”
뜬금없이 도로시는 벤치로 다가와 내 옆에 앉았다. 아니, 누웠다. 내 허벅지를 베개 삼아서.
뭐야. 당황스럽네.
그녀의 어여쁜 얼굴이 고개를 조금만 숙여도 보이는 위치에 있었다. 웃는 얼굴로 나를 올려다보는 눈동자엔 별빛 마력 탓에 광활한 우주가 담겨 있는 듯했다.
“회장, 다리 좀 빌려도 되지?”
“아, 예…. 선배라면 얼마든지. 근데 이러고 있어도 됩니까?”
“귀찮아. 농땡이 피울래.”
가히 벌점 만점다운 마인드였다.
입꼬리가 멋대로 춤추려 하기에 최대한 평정심을 유지했다.
하지만 내 감정을 알아챈 건지, 도로시는 게슴츠레하게 눈을 뜨고는 능청맞게 웃었다.
“회장, 누나 이러고 있다고 흥분하면 안 된다?”
“노력해볼게요.”
야들야들한 목소리에 흠칫 놀랐으나, 나는 바위 테이블에서 작업을 이어가며 담담하게 대답했다. 역시나 내 수준에선 도로시에게 감정을 숨기기란 불가능했다.
허벅지에 도로시 머리가 올라가 있으니 은근슬쩍 성적인 자극이 오긴 했다. 평소와는 다른 야릇한 복장으로 꾸미기까지 한 탓에 더욱 그런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어떻게든 작업에 집중하다 보면 나아지겠지.
“불편하면 일어날게~. 누나도 조금 있으면 돌아가야 하는 입장이라.”
“아뇨.”
나는 도로시를 내려다보며 싱긋 웃었다. 예쁜 것.
“괜찮아요, 좀 더 이러고 있어요.”
“…오오?”
도로시는 내 반응이 의외라고 느꼈는지 입을 헤 벌리며 감탄했다.
그러더니 만족스러운 대답이라는 듯 고개를 끄덕이고는.
“그럼 어쩔 수 없네~. 호의는 거절하지 않는 주의라.”
배시시 웃으면서 눈을 감았다.
은근히 행복한 기분이 감돌아 슬쩍 도로시의 머리칼을 부드럽게 쓰다듬어주었다. 그럴 때면 도로시는 기분 좋은 미소를 머금은 채 가만히 내 손길을 즐겼다.
산뜻한 바람이 불어왔다.
* * *
“아이작 공…?”
담녹색 포니테일 머리의 여기사, 메를린 아스트레앙은 오르핀관에 출입할 수 없었기에, 그 근처 나무 위에 숨어 있었다. 사역마까지 대동해 내부를 감시하는 중이었다.
거리는 꽤 떨어져 있었지만, 여기선 화이트가 있는 다용도실이 바로 보였다. 수상한 자를 발견하면 곧바로 잡아낼 것이었다.
…다만, 왜 저들이 수상쩍은 머리를 하고 이상한 의식을 벌이고 있는지는 이해할 수 없었다. 아니, 이해하고 싶지도 않았다.
그렇게 화이트를 지켜보던 때.
오르핀관 근처 벤치에 앉은 채 작업하고 있던 아이작이 보였다.
그의 앞에는 바위 테이블이 놓여 있었고.
그 뒤편. 벤치 옆으로 여학생의 맨다리가 뻗어나와 있었다.
힐을 신은 발에선 발가락이 한창 난동을 피우고 있었다. 배배 꼬기도 하고, 힐을 밀어내고 벌떡 곧추서기도 하면서. 발가락은 붉게 달아오른 채 열심히 꼼지락거렸다.
여학생의 부끄러운 심정을 발가락이 열을 띠고 표현하고 있었으나, 아이작은 눈치채지 못한 모양이었다.
“훗.”
흐뭇. 메를린은 미소를 머금은 채 코를 슥 닦았다.
이럴 때마저도 아이작과 루체는 알콩달콩한 시간을 보내는 것일까.
그 두 사람의 관계를 떠올릴 때마다 메를린은 소녀가 된 듯한 감성을 느꼈다. 청춘의 풋풋한 연애사란 그녀의 가슴속을 적시는 힘이 있었다.
특히나 화이트의 멘토인 아이작의 연애사는 메를린에게 즐거움을 전해주고 있었다.
지금 저 두 사람은 연인 단계에 이르렀을까. 뭐, 저런 모습을 보인다면 말 다 했지.
‘끝내 사랑을 이루셨군요, 아이작 공.’
그렇기에, 아이작과 루체가 이미 연인 관계가 되었다고 생각하니 절로 뿌듯해지고 만다.
메를린은 잠시간 사역마에게 화이트를 지켜보라고 속으로 명령을 내린 뒤, 흥미롭게 아이작을 지켜보았다.
“……?”
그런데, 뭔가 이상했다.
메를린의 표정이 점차 굳어갔다.
그러고 보니 저 다리. 루체 엘타니아의 것이 맞는가?
떨어진 거리와 꼼지락대는 발가락 탓에 처음부터 제대로 눈치채지 못했는데, 루체보다는 조금 더 키가 큰 사람의 것 같았다.
“흠.”
뭐, 착각이지 않겠는가. 아이작 공이 루체 공 말고 저런 연인 행각을 벌일 만한 사람이 또 누가 있다고.
애당초 아이작은 한 여자만 우직하게 사랑하는 성격일 터. 근거는 없었지만, 어쨌든 메를린은 그리 확신하고 있었다.
그간 화이트를 가르쳐 온 아이작을 지켜봐 왔으니까. 그가 아름답고 훌륭한 성품을 지녔으리라고 당연히 짐작하고 마는 것이었다.
그러나 확신은 언제나 개인의 것.
곧 메를린의 환상은 깨져 버리고 말았다.
아이작의 다리에서 연보랏빛 머리칼의 여학생이 상체를 벌떡 일으켰다. 이제 떠나려는 듯한 눈치였다.
메를린은 두 눈이 번뜩 뜨일 만큼 놀랐다. 처음엔 몸을 일으킨 여학생이 루체가 아니라는 사실에 놀랐고, 둘째론 그녀의 정체에 놀랐다.
별의 마녀, 도로시 하트노바. 대륙에서 손가락 안에 꼽히는 강자. 주신 만할라의 축복을 몰아받았다고 전해지는 희대의 천재.
그런 존재가, 지금 어째서…?
“……!”
도로시의 눈동자가 메를린 쪽으로 휙 돌아갔다.
메를린은 그녀와 눈을 마주치고는 재빨리 몸을 낮추어 나뭇가지와 나뭇잎 틈으로 몸을 숨겼다.
이마에서 목 언저리까지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알아챈 건가. 그럴 만했다. 저 여학생은 이 아카데미가 감당할 수 있는 인물이 아니니까.
하지만 적의는 없어 보였다. 단지 도로시는 메를린에게 네가 우릴 왜 지켜보느냐고 눈빛으로 항의하는 듯했다.
‘아이작 공, 당신은 대체…?’
메를린은 상황을 이해할 수 없었다.
훌륭한 심성을 지녔을 거라고 생각했던 아이작이 사실은, 두 명의 여자와 서로 마음을 주고 받고 있었단 말인가…?
그것도 2학년 수석인 루체 엘타니아와 3학년 수석인 도로시 하트노바가 그 상대라고…?
‘그럴 리가….’
어떻게 납득할 수 있을까. 아이작이 두 명의 여자를 품고 있다는 점도 그렇고, 그 두 명이 대륙 최고의 재능을 타고난 엄청난 강자들이라는 사실도 문제였다.
그 자존심 강한 여자들이 한 남자, 아이작만을 좋아한다면.
이 아카데미가 감당할 수 없는 피 튀기는 싸움이 벌어질 것이 분명하지 않은가.
메를린은 필시 무언가 착각이 있을 것이라고 여겼다.
그렇다고 단도직입적으로 물을 만한 내용도 아니고…!
아이작과 루체의 훈훈한 연애사를 지지했던 메를린은 스멀스멀 떠오르는 배신감을 애써 지우려 노력했다.
* * *
“트리스탄 님, 이쪽 다 끝났습니다!”
“하! 뭐냐, 이 모형은? 훌륭하기 짝이 없군!”
“트리스탄, 이거 한번 봐봐! 좀 못 만들었을지도 모르겠는데, 그래도 나름 열심히 만들었거든…!”
“하! 네 녀석 눈은 장식인가? 한심하군! 아름답기 그지없거늘!”
“트리스탄 님, 이거 어떠세요? 완벽하지 않습니까?”
“섣불리 완벽을 논하지 마라! 각도가 완벽하지 않잖느냐!”
어느덧 해가 뉘엿뉘엿 져가고 있었다.
나는 마도구 작업을 마친 뒤, 무거운 물품이나 장식품 따위를 옮기는 작업을 돕고 있었다. 뜻밖에 근력 운동과 체력 단련에 도움이 되길래 훅훅, 달리면서 옮기니 학생들은 놀라워하며 나를 쳐다보았다.
달리면서 오르핀관 인근을 살펴보았다.
허영심 많은 금발 귀족, 트리스탄 험프레이는 마법학부 2학년 축제 준비의 완전한 관리자가 되어 버렸다. 말투는 꼭 악평을 퍼붓는 것 같은데, 막상 내용을 들어 보면 칭찬이 많았다.
주위를 둘러보면 내가 흔히 알던 메르헨 아카데미의 풍경에서 제법 벗어나 있었다.
머리 위를 메운 형형색색의 깃발이 마력의 빛깔로 반짝이고, 화려한 장식들이 건물에 접합되어 심미감을 뽐냈다. 건물과 건물 사이를 잇는 아리따운 끈들. 구조물을 예쁘게 비출 다양한 조명과 독특한 디자인의 램프들.
>메르헨의 마법 기사>에선 숱하게 봤던 풍경이지만, 실제로 보니 감회가 새로운 건 어쩔 수 없었다.
공신제 당일이 되면 이 풍경이 얼마나 아름답게 변할까.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감탄스러울 듯했다.
자, 아카데미를 꾸미는 작업은 틈틈이 이루어지겠고.
이제 각 종목별 연습, 응원 연습 따위를 하려나. 나도 아크볼 레이스를 슬슬 연습해 봐야겠지.
이번 공신제에서 내 목표는 크게 세 가지였다.
첫째, 화이트 지키기.
둘째, 클로버 팔라딘 쓰러뜨리기.
그리고 셋째.
‘8장 무사히 클리어하기.’
>메르헨의 마법 기사>에선 어느 종목에 참가하든 경험치를 얻긴 했는데, 여기서도 그럴지는 알 수 없었다.
이제까지의 경험을 돌아본다면 아마 얻을 수 있으리란 생각이 들었다.
‘게다가 아크볼 레이스에서 클로버 새끼랑 격돌할 텐데.’
경험치를 안 주면 상당히 섭섭할 듯했다.
또한, 메르헨 아카데미는 공신제에 많은 경품을 걸었다. 덕분에 크게 활약하면 꽤 쏠쏠한 보상을 얻을 수 있을 터였다.
‘열심히 해 봐야지.’
여느 때와 같았다.
나는 부딪치고, 넘어설 뿐이었다.
* * *
오르핀관 옥상. 무녀 미야는 저녁노을로 물든 하늘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었다.
1학년 공신제 준비 작업은 대강 도와주었다. 자신이 학생 신분이라는 자각은 있었으니까.
“…….”
일주일 전, 이 시간대에.
빈 강의실에 앉아 있을 때 학생회장, 앨리스 캐럴의 속삭임이 떠올랐다.
그녀의 매혹적인 입술이 달싹일 때마다 미야는 정신이 혼미해지는 기분을 느꼈다.
─ ‘아이작 선배가 밉지?’ ─ ‘사람들이 밉지?’
미야는 최면에 빠져드는 것 같은 착각마저 느끼며 앨리스의 목소리에 흠뻑 빠져들었고.
─ ‘괜찮단다, 감정을 숨기지 않아도.’
초커 안쪽. 앨리스의 목에서부터 가느다랗게 스멀스멀 피어오르는 어둠 마력이 미야에게로 조용히 흘러들어갔다.
그리고, 앨리스의 목소리는 미야의 정신을 쥐새끼처럼 갉아먹어갔다.
─ ‘단지 그때는 무고한 희생자가 나오면 안 돼서 널 막았던 거란다.’ ─ ‘그러니 얘야. 아주 적절한 때에, 네가 미워하는 사람에게 네 기분을 표현하면 어떻겠니?’
─ ‘지금 네가 느끼고 있는 그 감정을, 한번 원 없이 쏟아부어 보는 건?’
─ ‘분명, 기분이 나아질 거란다.’
미야의 정신 속에 악의가 살을 덧붙였다. 서서히 마음이 잠식당하는 기분에, 그녀는 경각심을 느끼면서도 앨리스에게서 벗어날 수 없었다.
마치 온몸이 쇠사슬에 꽁꽁 묶인 듯했으니까. 도저히 꼼짝할 수 없었다.
미야는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왜 내게 그런 말을 하느냐고.
그러자 앨리스는 마음이 포근해지는 상냥한 미소를 지으며, 내밀한 음색으로 속삭였다.
─ ‘네가 우월한 존재라는 사실을 알고 있으니까.’
─ ‘누구에게도 무시 받아선 안 될, 아주 특별한 아이.’
─ ‘너는 그런 사람이란다.’
돌연 빛이 바래 버린 미야의 눈동자가 교정을 훑었다.
청은발의 2학년 선배, 아이작이 그녀의 눈에 들어왔다. 그는 학생들 사이에 뒤섞여 시시덕거리고 있었다.
한동안 미야는 싸늘한 눈동자로 그를 바라보더니, 등을 돌리고 그 자리를 떠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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